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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6-28 (일) 13:36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5_요한복음_제15강-1(오정훈).hwp (56KB) (Down: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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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15강]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015년 요한복음 제15강                                                          오정훈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 요한복음 12:1-36
요절/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람들은 흔히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을 하며 인생 허무를 논합니다. 실제로 아무리 부자라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어떤 삶을 사는가에 따라 빈손으로 왔지만 많은 열매를 남기고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밀알의 진리로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사는 길이 무엇인지 배우고 한 알의 밀알로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Ⅰ. 향유를 깨뜨려 부어 드린 마리아(1-1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러 잔치에 초대를 받게 되셨습니다. 이곳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나사로도 함께 초대받은 곳이었습니다. 이때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불고기, 잡채, 김밥, 샐러드, 떡볶이 등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죽은 오빠 나사로를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정성껏 예수님일행을 대접하고자 땀을 뻘뻘 흘리며 수고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빠 나사로가 죽어서 어둡고 슬픈 초상집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죽은 오라비를 살려 주시므로 이제 그 가정은 부활신앙으로 충만하여 기쁘고 즐거운 잔칫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나가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예기치 않는 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갑자기 향유 옥합을 들고 나오더니 그것을 깨뜨려 식사중이시던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 머리를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씻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마리아는 마르다가 만들라고 한 잡채 떡볶이 순대는 만들지 않고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다 큰 자매가 밥상머리에서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도대체 마리아에게 있어서 향유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것을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당시 물가에 정통하던 가룟 유다에 의하면 이 향유는 자그마치 삼백 데나리온이나 나가는 지극히 비싼 것이었습니다. 당시 여인들은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값비싼 향유를 아끼고 아낀 물질로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모았습니다. 요즘처럼 공장에서 만드는 샤넬5 같은 향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모으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삼백 데나리온의 값어치가 나가는 향유를 모았으니 이는 마리아의 장밋빛 꿈과 미래가 담긴 그에게는 피와 같이 소중한 향유였습니다. 이것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귀한 손님이 오면 겨우 한방울 머리에 환영의 의미로 떨어뜨려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도 머리에 한 두방울 뿌려 주면 충분한대도 마리아는 이를 깨뜨려 완전히 쏟아부어버렸습니다. 이는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단순한 랍비나 존경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죽은 오라비를 살리신 부활의 주시오 또 누가복음 7장37절에 기록된 대로 죄 많은 자신의 죄를 사하여 주신 구원의 주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크고도 놀라운 것이었기에 이를 주체할 수 없어서 식사자리였지만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드린 것이었습니다. 이 마리아의 행동은 주님께 대한 죄인들의 진정한 경배의 모습이요 찬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리아의 감사와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던 가룟 유다는 식사하다 향유냄새에 비위가 몹시 상했는지 마리아를 마구 비난하였습니다. 5절입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인간적으로 볼 때 유다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요즘도 가끔 평생 김밥장사를 해서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쾌척하시는 분들을 보면 훈훈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그 비싼 향유를 팔아서 베다니 무의탁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돕기를 했다면 베다니 벼룩신문에 이렇게 기사가 났을 것입니다. “베다니 마리아, 결혼의 꿈마저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피 같은 향유를 기부하다” 그러나 성경은 가룟 유다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실상은 ‘그는 도둑이라’ 고발합니다.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감이러라’ 그는 제자들이 낸 장막비를 몰래 훔쳐내어 베다니 일촌분식집에 가서 떡볶이와 순대를 사먹었습니다. 유다는 그렇게 돈을 훔칠 뿐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진심도 훔쳐 버렸습니다. 가룟 유다는 진심을 드리는 제자생활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왜 저래,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자주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그 향유 속에 담긴, 값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마리아의 진심과 사랑과 열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진심을 쏟아 붓는 생활을 해 보았다면 절대로 마리아의 진심을 그런 식으로 폄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마리아의 진심을 어떻게 받아주셨습니까? 7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다 큰 자매가 갑자기 밥상머리에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를 풀어 그 발을 쓱쓱 문질렀을 때 예수님은 얼마나 민망하고 불편하셨겠습니까? ‘마리아 너의 진심은 알겠는데 그래도 때와 장소는 좀 가려야지 민망하게 이게 뭐냐?’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좀 거칠고 부담스럽지만 마리아의 진심과 애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이는 향유를 허비한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이렇게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내가 드린 진심이 땅에 쏟아진 향유처럼 헛되이 허비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말 애를 쓰고 진심을 바쳐 섬기고 헌신했는데 물거품이 되어서 사라질 때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의 진심을 모두 받아주시고 한 방울도 땅에 흘리지 않으시고 복음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우리에게도 순전한 나드 한 근 같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시간이 피 같은 향유가 될 수 있고 또 어떤 분에게는 조금씩 모으는 물질이 값비싼 향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모아서 아껴두었다가 여름휴가를 가거나 꼭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디에다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이사가랴 목자님은 여름휴가가 많지 않는데 UBF 수양회에다 JBF 여름수양회까지 섬겨야 돼서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천금 같은 여름휴가까지 바쳐서 복음역사에 드리는 사가랴 목자님은 아름다운 분이요 주님이 이 종의 헌신을 귀하게 받으시고 쓰실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렸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3절입니다. ‘향유 냄새가 온 집에 가득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옥합은 깨어지고 향유는 쏟아져서 더 이상 어떻게 담을 수도 없게 되어 버렸지만 그 향기는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 삶을 통해서 반드시 그 어떤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사람도 있고 악취를 풍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있는 듯 마는 듯 무색무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2:15,16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저희들이 마리아처럼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생명의 냄새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8절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거꾸로 생각합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섬길 수 있지만 나의 청춘은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드릴 기회를 자꾸만 뒤로 미룹니다. 어떤 부부에게 소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정이라 그 소 두 마리를 잘 길러서 한 마리는 주님께 드리고, 한 마리는 자식들을 키우는데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태풍이 부는 바람에 외양간이 무너져서 소 한 마리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들어온 남편이 아내를 향해 말했습니다. “여보, 주님의 소가 죽었소.” 왜 하필 죽은 소는 항상 주님께 드릴 소인지, 오늘날에도 수많은 주님의 소들이 무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주님께 귀한 것들을 바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꽃도 한창일 때 싱그럽고 향기롭지, 때가 지나면 별로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한창때, 젊었을 때에, 나의 진심과 정열과 힘이 넘칠 때, 주님께 드려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나의 삶도 영광스럽게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Ⅱ.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12-36)
  12-19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로 레드카펫을 만들어 예수님을 환호하며 호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대세는 이제 완전히 기울어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할 분위기였습니다. 여론조사나 후보경선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헬라인들까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뵙기를 청했습니다. 지혜를 찾고 새로운 사상을 추구하는 헬라인들까지 나온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헬라인 몇이 나온 것을 보고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23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환호하는 유대인들, 거기다가 헬라인들까지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분위기를 보며 제자들도 이제 정말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로마 군대만 몰아내고 왕좌에 앉기만 하시면 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이 생각하는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은 세상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때 다른 영광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영광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자신도 부활하게 되는 영광을 가리킵니다. 죽음 너머의 영광 곧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 구원 역사의 완성을 바라보셨습니다. 고난만 바라보면 고난은 고난으로 고통스럽게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서 일어나게 될 영광스러운 역사를 바라볼 때 비전을 가지고 이를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십자가를 져야할 때 이런 믿음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여름수양회 앞두고 말씀강사님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 이동원 목자님이 새벽5시도 안 되서 센터에 나와 메시지 준비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본문의 예수님처럼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나온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시간에 쫓겨서 였을까요?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이처럼 때로 새벽 5시 이전에 일어나야 하는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수고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할 때 이제 죽었구나 하지 말고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믿음으로 고백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24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뭔가 심오한 진리를 구하러 나온 헬라인들에게 누구나 다 아는 밀알의 진리에 대해 말씀하여 주십니다. 한 알의 밀알은 그 자체는 영광이 아닙니다. 참새 간식거리도 되지 않는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많은 열매를 맺으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어떻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한데 먼저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떨어지셨습니다. 우리 인생들도 한 알의 밀로 이 땅에 왔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말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자기희생이요 자기 분해를 가리킵니다. 싹이 나올 때까지 한 알의 밀은 자신의 영양분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내어줍니다. 그렇게 철저히 분해되고 죽을 때 싹이 나오고 열매를 맺습니다. 저는 초등학교5학년 때 배가 고파서 이맘 때 쯤 동네 아이들과 고구마를 캔 적이 있었습니다. 호미로 땅을 파니 여기저기에 고구마가 달려 있어서 신이나 삶았는데 달콤한 고구마 살은 하나도 없고 거칠고 질긴 섬유질만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씨 고구마로서 싹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밀이든 고구마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양분을 내어주며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 죽음은 썩어 없어지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거룩한 죽음이요 영광스러운 죽음입니다. 이렇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계속 죽으면 5년 후에는 자그마치 1만 7천 가마니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이 땅에 한 알의 밀알로 오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죄인들을 섬기는 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이 각종 병들고 상처받고 귀신들려 고통 받는 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거룩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생명의 열매로 맺히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 백성인 우리도 구원받고 생명의 길 또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버리시고 온전히 죽으신 한 알의 밀알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호주 교회가 우리나라에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는 죠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s)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누나 메리와 함께 1889년 10월 2일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가 한 명도 없는 곳에 가겠다고 결단하고 5개월 후에 부산으로 떠났습니다. 20일을 걸쳐서 500킬로를 여행하여 마침내 부산에 도착하였지만 불행히도 폐렴과 천연두에 걸려 그는 부산에 도착한 다음날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그의 나의 34세였습니다. 그는 호주 멜버른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결혼도 못해보고 선교사로서 제대로 일도 못해보고 죽었으니 얼마나 안됐습니까? 그러나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순교소식에 감동을 받은 호주교회에서 120명이 넘는 후속 선교사들이 그 후로 한국 땅에 파송된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이 억 만리 한국 땅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 실로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열매를 맺는데는 특별한 법칙이 없습니다.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자녀가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가 온전히 희생하고 헌신하는 죽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생명의 열매가 없는 이유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주위에서 생명의 열매가 시작되는데, 내가 죽지 않으니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즘은 시대가 힘들다 보니 열매 없음을 환경과 조건문제로 돌립니다. 물론 환경과 조건에 따라 열매 맺기에 좋은 환경이 있고 나쁜 환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환경이지만 죽음의 헌신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는 것은 항상 현재적입니다. 이전에 죽었지만, 지금은 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는 것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 죽는 것을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저는 요즘 존경하는 이종하 목자님 통해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종하 목자님은 집이 회기동 이문동도 아닌 창동인데도 날마다 새벽 이른 시간에 센터에 나와 기도하십니다. 제가 3층 기도실에 있으면 이종하 목자님 자동차 특유의 소리 <가스차 특유의 엔진소리가 있습니다.>가 나서 도착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날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할 뿐 아니라 주일 예배 끝나고 그의 사랑하시는 양 김민호 형제님과 까페에 앉아서 소감을 쓰고 발표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죄인들은 탁구치느라 정신이 없는데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리는 삶, 땅에 떨어져 죽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이렇게 죽을 때 거기서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열매가 많이 맺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이렇게 죽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요즘은 영 죽기가 싫어졌습니다. 수년전만 하더라도 일대일하면서 졸고 일대일 끝나고 양이랑 기도하다가 졸만큼 수고하고 헌신했는데 요즘은 별로 그러지 못했습니다. 집에 가면 애들한테 치이고 치과에 가면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좀 깎아달라는 환자에게 치여서 삶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새벽을 깨우지만 기도실에 엎드려 침 흘리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지긴 했는데 전혀 죽지 않을 때 제 삶에 열매가 없었습니다. 시대가 악하고 환경이 나빠서 열매가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죽으면 열매가 맺힌다는 진리를 잊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진리에 기초해 죽고자 방향잡고 10년 넘게 내면문제로 졸업하지 못하고 있는 한 형제를 새롭게 돕고자 방향 잡게 하셨습니다. 기도할 뿐 아니라 이 분이 사는 지방으로 심방 가서 섬기고 수양회 초청하고자 방향 잡게 하셨습니다. 다시 고난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오히려 마음은 홀가분하고 확신과 기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는 저의 이런 수고와 헌신을 통해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 많은 열매를 맺는 역사가 시작될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젊음을 자신만을 위해 쓰는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다시 주와 복음 역사에 마리아처럼 드리길 기도합니다. 죽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된다는 한 가지 진리를 굳게 붙들고 땅에 떨어져 온전히 죽으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역사에 쓰임 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영원히 보존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자는 잃게 되고 오히려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게 됩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원숭이를 잡을 때 작은 구멍을 내고 거기다 바나나 미끼를 달아놓으면 원숭이는 잡힐지도 모르는데 결코 그 바나나를 놓지 않습니다. 이는 원숭이가 자기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죽음입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통해 충분히 체험했습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며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다 잃어버릴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생하도록 보존된다고 하십니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데는 분명 고통이 따릅니다. 아픔과 눈물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과 아픔과 희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기쁨과 보람과 열매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그런 생명을 영원토록 보존할 것이요, 장차 하나님나라에서 그 인생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26절입니다. 그런 믿음과 가치관이 있는 사람은 항상 주님을 섬기는 곳, 십자가의 자리에 있습니다. 운동할 때, 뭐 먹으러 갈 때, 엠티 갈 때는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자리에 항상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이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영생하도록 보존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27-36절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마음의 괴로움으로 민망하셨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세상에 십자가 체질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위대한 전환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십자가 앞에 결단이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28절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끝까지 십자가 질 힘을 덧입을 수 있고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31절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날 비전을 보셨습니다. 곧 죽음으로서 이루시는 완전한 승리를 바라보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땅에서 들리십니다(32). 이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죽음으로 끝나는 패배자가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어둠에 다니지 않고 빛의 아들이 됩니다(35,36).
 
  결론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 알의 밀에 불과하며 한 방울의 향유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어디다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지고 열매가 바뀌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아끼고 자기만을 위해서 쓰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런 인생은 한 알 그대로 있는 인생, 아무 열매도 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부어드리고 복음 역사를 위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향기로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밀알의 진리를 몸소 보여주신 주님을 본받아 한 알의 썩는 밀알로 이 땅에 드려지므로 많은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영광스러운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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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2928
61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7강]열매를 맺으려면 리스닝 2010-06-27 2927
618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관리자 2014-03-16 2922
617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관리자 2011-03-20 2922
616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5강] 길이 참으라 관리자 2012-02-19 2920
61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7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11-07-24 2919
614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3강]굳게 잡으라 관리자 2009-09-20 2910
613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3강]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관리자 2014-02-02 2897
612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1]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09-08-16 2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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