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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6-12 (일) 14:54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16사도행전12강-1(최동진).hwp (31KB) (Down: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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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12강] 이방의 빛

 2016년 사도행전 제12강                                                                  최동진

이방의 빛

말씀 / 사도행전 13:1-52
요절 / 사도행전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2장까지 전반부는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역사라면 13장부터 전개되는 후반부 사역은 바울의 전도여행을 중심으로 한 역사로서 바울행전이라고도 불립니다. 13,14장은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첫 번째 전도여행지역은 이방 세계라고는 하지만 유대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던 지역으로서 세계선교 측면에서는 미미해보였습니다. 그러나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은 획기적인 발걸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 지역의 문을 여시고 복음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첫 선교지 구브로 역사(1-12)
  이전까지 모든 역사의 중심지는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13장부터 이방 선교의 중심지는 안디옥으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안디옥은 어떤 교회였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첫째로, 유능한 성경선생들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선지자는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아 영적인 통찰력이 있어 예언도 하고 말씀도 가르치는 자입니다. 교사는 성경을 연구하여 가르칠 수 있는 자립적인 성경선생입니다. 유능한 성경 선생 한 명만 있어도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는데 안디옥 교회에는 그런 성경선생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갈수록 죄의 세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죄로 죽어가는 캠퍼스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어느 때보다 성경선생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희 각자가 이 시대의 유능한 성경선생들로 빚어지고 유능한 성경선생들을 키워내는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교회였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처음부터 안디옥 교회를 개척한 뛰어난 성경선생들이었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었고, 구레네 사람 루기오 역시 북아프리카 출신이었습니다. 마나엔은 분봉왕 헤롯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로얄 패밀리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을 보면 흑인과 백인, 금수저와 흙수저, 본토인과 이주민 등 민족이나 인종이나 직업, 신분이 다양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영접하고 섬길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주를 섬기는 열정으로 한 스피릿이 되었을 때 이방 선교에 귀하게 쓰임 받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그들이 주님의 뜻을 알고 섬기기 위해 금식까지 하면서 기도에 힘쓴 것을 보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명하셨습니다. 이는 세계 선교를 위한 역사적인 하나님의 진군명령입니다. “따로 세우라”는 말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일을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강한 소원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안디옥 교회의 두 기둥과도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택하신 것입니까? 현재 안디옥 교회도 개척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강력한 지도력과 탁월한 성경선생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 모두를 따로 세우라 명하신 것은 그만큼 세계선교가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역사임을 말해줍니다. 세계선교는 UBF만의 특별한 역사방향이 아닙니다. 세계선교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으로서 하나님의 특심한 열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안디옥 교회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그들은 즉시 두 사람을 세계선교 역사에 바쳤습니다. 그들은 자체역사보다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자신을 헌신할 자세가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계선교의 전진기지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에 복종하는 자세와 이에 쓰임 받는 것을 가장 영광스럽게 여기는 분명한 영적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UBF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이유도 세계선교에 쓰임 받는 것을 최대의 영광이요, 큰 특권으로 여기는 분명한 가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저희 경성 센타를 안디옥 교회와 같이 세계 선교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1980년대 말 구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의 문이 열렸을 때 경성센타 조상이신 한아브라함 목자님 가정을 러시아 지부장으로 세우시고 최빠벨 선교사님과 강갈렙 목자님 가정을 후속 선교사로 보내심으로 러시아 역사의 기초를 놓게 하셨습니다. 박엘리야 선교사님과 김마태 선교사님, 김안드레 선교사님 가정을 브라질로 보내셔서 남미 개척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 외에도 미국과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 오대양 육대주에 60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심으로 세계선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저희가 계속해서 성령의 방향에 순종하여 2041년까지 일만 선교사를 파송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이 시대 안디옥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이르렀습니다. 구브로는 현재 터키 아래에 있는 섬나라로서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바나바에게 이곳은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요한도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구브로의 첫 성인 살라미에 이르러 먼저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는 바울의 전도 원칙이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 섬을 가로질러 바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마술사를 만났습니다. ‘바예수’란 예수의 아들이란 뜻으로서 자신을 예수의 아들이라 하며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도 행하여 속임수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인정을 받았습니다. 율법에서는 이런 자들을 반드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레20:27) 그런데도 이런 자가 활개를 치며 다니는 것을 보면 바보가 얼마나 거짓으로 가득 찬 도시였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진리가 없는 곳,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곳의 총독 서기오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는 지혜 있는 사람이요, 이방인이지만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말씀을 듣고자 할 정도로 진리를 찾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목자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엘루마는 총독이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습니다. 엘루마는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한 선량한 영혼을 이용해 온 사탄의 자식이었습니다. 이때 사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여기서부터 사울의 이름은 바울로 바뀌어 기록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울이 회개한 후 큰 자란 의미의 사울에서 작은 자란 의미의 바울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맞는 말이 아닙니다. 사울에게는 처음부터 바울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히브리인이었으며 동시에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과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을 둘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자기의 정체성을 로마 시민권자로 생각하기보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여기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려 할 때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보다 이방인들에게 거부감 없고 부르기 쉬운 바울이라는 로마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했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외국에서 활동하고 계신 선교사님들은 현지에서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바꾸어서 부르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우크라이나 수양회에 말씀강사로 초청받아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제 이름을 발음할 수가 없어서 그곳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부르기 편한 빅토르초이로 바꿔서 부르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세계 선교 역사를 지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영접하고 수양회 기간 동안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빅토르 초이로 지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도 세계선교에 합당한 이름이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바울은 배후에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음을 파악하고 담대히 사탄의 세력에 도전하였습니다. 바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마귀의 실체를 드러내고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11a)” 바울의 선포가 떨어지자마자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인도해 줄 사람을 찾아 버둥거리는 엘루마의 모습을 보면서 총독은 누구의 말이 참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총독은 복음을 믿고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구브로는 처음부터 복음의 원수와 치열한 전투를 통해 개척되었습니다. 선교일선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최전방 전선입니다. 복음 전파자는 바로 이런 전쟁터에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복음의 원수들과 싸워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우리도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도와주려 할 때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끈질기게 기도하고 도전하다 보면 문제의식이 있고 성경을 알고자 하는 소원 있는 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목자는 요즘 보기 드문 좋은 양을 만났다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양이 복음에 관심을 보이려는 순간 사탄도 그 즉시 방해공작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부모님을 통해 박해를 하기도 하고 이성 친구를 통해 유혹하기도 하고 친한 친구나 선배를 통해 불신을 심기도 합니다. 말씀을 잘 받던 양이 어느 순간 카톡도 안 받고 잠적해 버립니다. 그럴 때 목자는 심한 배신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더 이상 도와줄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때 어쩔 수 없다고 물러선다면 한 영혼도 구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우리 모임에는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불개미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UBF를 Ultra Bond Family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전의 그런 정신이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 역사를 섬기는 것은 영적 전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의 목표는 이기는 데에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자가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양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물러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부르심 받은 자가 어떻게 싸우느냐 하는 것은 양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가오는 여름수양회 준비를 이런 전투적인 자세로 감당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비시디아 안디옥 개척(13-52)
  13절을 보십시오. 바울 일행은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가 돌아간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삼촌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그냥 여행 가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다가 바보에서 엘루마 사건에 충격을 받고 두려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은 바울 일행을 낙심시켰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전도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내륙 깊숙이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회당장은 바울 일행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전할 수 있는 준비된 유능한 전도인이요 성경선생이었습니다. 16-41절까지는 사도 바울의 메시지입니다. 그 대상은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17-21절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광야에서 저희의 범죄함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 후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다가 그들이 왕을 구하자 사울을 40년간 그들에게 왕으로 주신 뒤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22b)" 하나님께서 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까? 이는 사울의 인본주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예보다 자신의 명예를 중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임의로 행동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한번도 하지 않은 데서 잘 나타납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습니다. 자신의 왕권에 집착하며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함으로 하나님이 더 이상 사울을 쓰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자인가를 잘 알았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왕이요, 전쟁에서는 용맹스러운 장군이요, 시인이요, 음악가로서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재능이 훌륭한 자였지만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했습니다. 그는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겸손은 매사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잘 나타납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 역사를 섬기는 것,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교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심히 기뻐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자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자들을 찾으십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불러주셨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잘 찾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가 되십니다.(24,25) 하나님은 이 구원의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선지자들의 말을 외웠지만 그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으나 이 또한 성경을 응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에는 많은 증인들과 성경의 증거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잘 알고 있는 구약의 말씀을 배경으로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 이뤄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편 2:7절과 이사야서 55:3,4절, 시편 16:10절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특히 시편 16:10절에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한 다윗의 예언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근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 예언을 한 다윗은 그 시대를 섬기다가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메시지의 결론으로 예수님을 통한 사죄의 은혜를 증거합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자 많은 투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완전을 요구하는 율법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은 율법을 지킴으로 완전하게 되고자 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력함과 연약함만 발견할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학대하고 또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그와는 거리가 먼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수양으로 자아 완성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에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좀먹고 있는 죄의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죄의 세력이 너무나 강하여 우리는 늘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내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역사하는 죄의 세력을 멸할 수 있습니까? 3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보시겠습니다.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예수님을 영접할 때만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의 연약함과 숨은 죄악을 단순히 고백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이것이 사죄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을지라도 그 때마다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는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까다롭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믿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놀라고 망하게 됩니다.(41)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와 구약의 말씀을 기초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사죄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대 철학자요 사상가이지만 순수하게 복음만을 증거했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많은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방 세계에서 복음 역사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적 배경, 도덕적 수준, 사람들의 인생 철학 등 다양한 것을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지성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철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멋있게 말씀을 잘 포장해야 잘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방 세계에도 복음 역사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 세계 사람들도 모두 한결같이 죄인이며, 죄 문제는 율법이나 인간의 노력, 세상 학문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듣기 원하는 것은 순수복음입니다. 철학이나 인간의 사상은 들을 때는 새롭고 귀를 즐겁게 해 줄지는 모르지만 영혼에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며 조금 지나면 곧 싫증을 느끼게 되고 피곤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순수복음은 죄로 말미암아 지치고 피곤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줍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이방 선교에 크게 쓰시는 사람은 바울과 같이 순수복음을 잘 알고 절대적으로 믿고 단순히 전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수 복음을 믿고 전파하는 말씀의 종들로 빚으시고 귀하게 써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말씀을 듣고자 모일만큼 큰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마음 가운데 시기심이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동족들을 불쌍히 여기고 상한 마음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했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뿐만 아니라 비방까지 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낙심이 컸겠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이들의 비방에 말려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그들은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로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유대인들에게 먼저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처음 전도여행 보내실 때에 이방인에게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도록 하셨습니다.(마10:5) 그러나 그들은 이 귀한 복음의 말씀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습니다. 영생을 얻을 기회를 주었지만 이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기회는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이사야서 49장 6절 말씀에 기초해서 이방 개척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해도 마음이 완악한 백성들이 말씀을 안 받아들이자 이사야는 헛되이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며 깊은 절망과 무력함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이사야에게, 야곱의 집을 일으키는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요 그로 이방의 빛을 삼아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49:6) 바울은 자기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의 빛으로 보내셨을까요? 이방 세계의 특징은 어둡다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에는 복음의 빛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이방 세계 사람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 인생의 의미와 목적도 모른 체 방황합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해도 참 만족이 없이 곤고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무엇보다도 이방 세계는 복음을 몰라 구원을 모르고 여전히 어두운 죄의 밤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런 어두움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어 더욱 어두울 뿐입니다. 다만 외부에서 빛이 임할 때만이 어두움은 물러나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복음의 빛이 필요하고 빛의 사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방 세계에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믿음의 사람들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기만 하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두신 크신 소원을 영접함으로 새 힘과 비전을 덧입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였습니다. 율법으로 인해 죄의식에 짓눌려 살던 이들이 사죄의 복음, 은혜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듣자 살아나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날에도 캠퍼스에 복음의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진리의 빛이 없을 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모른 체 이 땅에서 조금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경쟁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열심히 달리며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지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진리의 말씀을 전해줌으로 구원의 길로 인도할 성경선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어둡고 소망 없는 이 시대에 저를 캠퍼스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택하시고 특별히 가대 캠퍼스에 진리의 빛을 비추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양들을 찾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하나님의 생명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양 한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번번이 거절당하면서 캠퍼스에 나아가고자 하는 소원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여러 가지 바쁜 일을 핑계로 캠퍼스에 나아가는 일을 게을리 하였습니다. 그러나 캠퍼스에 나아가지 않고는 하나님이 영생을 주기로 작정된 양을 만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말씀의 빛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제가 날마다 말씀을 새롭게 영접함으로 내 안에 있는 불신과 두려움과 안일과 이기심의 모든 어둠의 요소를 물리치고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믿음으로 캠퍼스에 나아가 말씀의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어둠 가운데 방황하는 양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오늘 날 저희 모임을 이방의 빛으로 쓰셔서 한국과 미국, 러시아와 유럽, 중남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 세계 캠퍼스 가운데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놀라운 생명 구원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말세의 시대에 저희를 통해 복음의 빛을 비추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영접하고 땅 끝까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이방의 빛으로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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