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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2-17 (일) 12:36
분 류 로마서
첨부#1 2013로마서13강(최동진)-1.hwp (64KB) (Down: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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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로마서 제13강]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2013년 로마서 제13강                                                                     최동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말씀 / 로마서 10:1-21
요절 /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우리는 지난 주 9장 말씀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크신 긍휼을 기초로 구원 역사를 이루어나가심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전도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구원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한 우리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구원역사에 있어서 ‘절대 주권’과 ‘긍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구원받아야 할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역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믿음을 덧입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에 힘쓰므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생명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I.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1-13)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9장에서 배운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크신 긍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는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많은 특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동족들을 생각할 때 바울은 심히 안타까웠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열심은 올바른 지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불러내어 복의 근원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쓰시고자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이를 지키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내면성을 갖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곧 올바른 지식을 좇아 섬긴다는 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원대한 뜻과 소망을 영접하고 이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올바른 지식이 없이 그저 율법 조항을 지키는데 얽매어 본래의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의를 쌓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무서운 악을 행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을 가장 많이 핍박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한 사람들도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구원역사에서 열심은 아주 중요하지만 올바른 지식에 기초하지 않은 열심은 오히려 구원에 방해가 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절 말씀은 모세가 레위기18:5절에 기록한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음으로 구원을 얻고자 했습니다. 만일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하여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의 진노와 저주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얻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그 어떤 행위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기 위해 하늘까지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려는 인간의 노력도 필요 없고, 깊은 무저갱으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모셔 올리려는 노력도 필요가 없습니다.(6,7) 다만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신 구원을 믿을 때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의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구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안에 구원의 비밀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가까워 우리의 입에 있고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늘 듣고 보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을 심어주는 믿음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8절 말씀은 신명기30:14절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서 율법이 요구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에게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를 상기시켰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그렇습니다. 성경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딤후3:15)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지식만 가졌다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주는 구원의 길은 무엇입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9,10)”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첫째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두뇌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야고보서2:9절에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유일한 하나님이신 사실을 귀신같이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 역사를 위해 보내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머리로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둘째는, 무엇을 믿고 고백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행위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것은 바로 나의 죄 때문이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은 우리의 죄와 죽음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구원을 얻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알기로 작정하였다고 간증하였습니다.(고전2:2)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만이 인간의 근본문제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야시요, 우리의 왕의 왕 주의 주가 되심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섬길 나의 왕으로 시인하는 것이요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는 결단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것입니다. 당시는 황제 숭배 사상이 강요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의 황제 가이사를 ‘주’ 곧 ‘임금’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이때 만일 다른 사람을 ‘주'로 고백하거나 황제에게 그 같은 고백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죽음을 무릅쓰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믿으면 되었지 왜 꼭 이를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까?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믿음을 확정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믿는다 해도 입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정작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는 믿음과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고백에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치명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반석으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로 시인하기를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얽매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드러내놓고 분명하게 믿음생활하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거나 직장 상사들에게 미움 받고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실제로 분명하게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불편한 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32)” 가장 부끄러운 일은 마지막 심판 때에 주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복음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주님께 충성하고 경배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의 주가 되시고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세상에서도 때가 되면 높여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 주십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셔서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3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다시금 강조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신앙고백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조건으로 믿고 시인 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주가 되십니다. ‘주’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으로서 태초부터 계신 영존하시는 분이시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왕으로 오셔서 겸손과 온유, 사랑과 평화로 다스려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배하고 경배할 대상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은 최초의 기독교 신앙 고백이며 동시에 충분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신앙고백 할 때 우리는 거듭나게 되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죄사함을 받게 되어 우리를 짓누르던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서 담대하고 용기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구원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II.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여(14-21)
  14,1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에서 바울은 주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그 과정을 다섯 단계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찌”란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데, 이는 하나하나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믿어야 하고, 믿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듣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전파해야 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는 보내심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단계라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구원역사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구원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누군가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1:21)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엄히 명했습니다.(딤후4:2a)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말씀전파자를 통해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말씀을 전파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거짓 사상과 사이비 이론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다원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명목 하에 산 정상에 오르는 데 여러 길이 있듯이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자들 중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착하게 살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캠퍼스는 이미 이단들의 놀이터가 되어 순진한 학생들을 현혹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새 학기가 되면 이단들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에 우리를 캠퍼스 복음 전파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부르심 받은 우리가 입을 다물고 앉아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캠퍼스 양들은 점점 더 구원에서 멀어져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돌이켜 생명의 길로 가도록 돕는 것이 복음 전파자의 역할입니다. 미사일과 초음속 전투기와 항공모함과 각종 최첨단 무기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전쟁에서 최후의 깃발을 꽂는 것은 발로 뛰는 보병의 몫입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각종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21세기에도 구원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발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캠퍼스로 나아가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추운 날씨에 캠퍼스에 나아가는 것이 고통스럽고, 양들에게 배척당할 때 아픔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냄새나고 더럽고 무좀에 걸린 발이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캠퍼스로 나아갈 때 아름다운 발이 됩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복음을 전파한다고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데로 듣는 사람들이 다 복음을 영접한다면 얼마나 신바람 나겠습니까? 그러나 복음전파자가 아무리 힘 있게 말씀을 전하더라도 사람들이 다 복음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와 모든 전파자의 공통적인 아픔입니다. 지난주에는 구정 연휴 기간을 맞이하여 학사 목자님들이 1박2일로 기도와 전도와 제자양육의 3가지 주제를 가지고 심도 깊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전도 파트에 속하여 전도에 관해 평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전도란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서 구원받은 신자의 사명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유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20,21) 저도 이 말씀에 순종하여 매주 캠퍼스에 나아가고자 애를 쓰고 있지만 전도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관계성을 맺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큽니다. 양들이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 또한 전도하기 힘든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양들이 교회나 교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닫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 한 번 캠퍼스 나아가서 로또 당첨되듯이 양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또 당첨 확률을 100배 높이는 방법을 아십니까? 로또 100장을 사면됩니다. 확률적으로 볼 때 캠퍼스에 많이 나아가는 사람이 양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양을 많이 만나는 사람이 열매를 맺을 확률도 높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도 백번 찍으면 됩니다.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천 번 찍으면 됩니다. 실제로 유럽 선교사님들은 천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믿음으로 역사를 섬긴다고 합니다. 종로 센터에 어떤 목자님은 700번 전도를 했는데 한 사람도 일대일로 연결되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또 도전한다고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한두 번 거절당한다고 상처받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전도자에게 준비된 영혼을 맡기십니다. 계속해서 믿음으로 캠퍼스에 나아가다보면 하나님께서 언젠가 반드시 양을 붙여주실 거십니다. 제가 저의 내면에 있는 모든 불신과 두려움과 부정적인 생각을 회개하고 다만 믿음으로 캠퍼스에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봄 학기에는 평신도 목자님들이 앞장서서 캠퍼스에 나아감으로 복음전파자로서의 본을 보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를 복음전파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캠퍼스로 나아가 구원 역사를 힘써 섬기기는 가운데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구원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만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믿지 못했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못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18)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 넘치도록 베풀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먼저 그 말씀을 듣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또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 구원의 복된 소식이 직접 성취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확증되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핑계합니다.(19,20) 그러나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복음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미련한 백성 즉 이방인들도 복음의 비밀을 이해하고 영접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를 가진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은 근본 이유는 불순종과 완악함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시기심을 일으켜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하나님의 포기치 않는 사랑을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21)” 하나님은 집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랑의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희가 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캠퍼스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들고 캠퍼스로 나아가 복음전파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함으로 저희 가운데에 매주 300팀의 1:1과 학생 100팀의 1:1, 단대별 3명 제자양성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구원 역사는 말씀 전파를 통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복음 전파자들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종들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시고 구원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치 않으시고 끝까지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캠퍼스에 나아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 역사에 동참함으로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 맺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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