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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8-06 (일) 10:13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20강-1.hwp (85KB) (Down: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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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20강]주를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2023년 사도행전 제20강                                                    고 영훈

            주를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말씀 / 사도행전 21:1-22:29
요절 / 사도행전 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사도행전 21장부터 28장 마지막까지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하기까지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까지 마친 후에 개척한 각 교회를 대표하는 7명을 통해서 이방교회에서 모금한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모 교회에 전달해주고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아 로마로 가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여기서 이방교회에서 모은 구제헌금을 각 교회를 대표하는 7명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 주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교회의 구제헌금을 받는다는 것은 바울의 이방인 사역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주 님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난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께 받은 이 사명을 감당하고자 죽을 것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바울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 사역자로서 담대한 바울의 자세를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21장)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만나서 고별 메시지를 전한 후에 바울은 배를 타고 고스-로도-
바다라를 거쳐서 중간 경유지인 두로에 상륙했습니다. 항해 일정에 따라서 7일간 머무는 동안 두로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 함께 지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곳에 있는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제자들의 만류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울 일행이 떠날 때가 되자 바닷가에서 그들 모두가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에 배에 올랐습니다. 바울 일행은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를 거쳐서 가이사랴에 이르러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물렀습니다. 빌립 집사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고 난 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다가 가이사랴에 정착해서 복음 역사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네 명의 딸이 있었는데 모두 예언하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10-12절을 보십시오.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메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빌립의 집에 여러 날 머물고 있을 때 유대로부터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가 내려왔습니다. 그는 15년 전에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여 예루살렘에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행11:27,28). 그의 예언대로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 통치 기간에 기근이 있어서 바울과 바나바가 구제헌금을 거두어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 그 일로 인해서 아가보는 선지자로서 명성을 얻었고 그의 예언은 신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그가 바울 일행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발을 잡아매었습니다. 그런 후에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이 이같이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누가를 비롯한 동행자들은 아가보의 실감나는 belt performance를 보고, 또 그의 예언을 듣고서는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습니다. 심지어 일행들이 울면서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그들의 당부로 인해서 바울의 마음이 상할 정도였습니다. 바울과 함께 한 사람들은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어찌하든지 바울이 고난 받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환난과 박해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절히 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바울을 비롯한 일행들에게 예루살렘에서 겪게 될 결박과 환난을 미리 알려주신 목적은 이와 같은 고난을 피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고난이 있기 때문에 마음준비를 하고 잘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역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장차 겪게 될 고난을 받아들이고 기도하면서 준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겪게 될 고난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찌하든지 예수님께서 고난 받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결국 고난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제자들은 고난이 닥치자마자 이를 감당 못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떤 자세를 가졌습니까? 1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습니다. 이미 바울은 성령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0장 22-24절 밀레도 고별 메시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앞으로 닥칠 고난에 대한 바울의 자세는 분명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또한 그 고난은 장차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주님의 종들은 힘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고난을 감당하고 인내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사명을 힘써 감당하고자 합니다. 심지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과 그의 일행에게는 전도자 빌립의 집이 겟세마네 동산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과 일행들은 빌립의 집에서 예루살렘에서 당할 결박과 환난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만일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결박과 환난을 당할 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장래에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수록 여러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걱정하고 회피하기 보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일꾼으로서 복음 역사를 위해서 헌신하며 고난조차도 기꺼이 감당하고자 하는 담대한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이 기꺼이 영접해주었습니다. 그 이튿날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를 만나러 갔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장로들도 모여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문안인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해서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야고보와 장로들은 많은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믿게 된 것과 이방인 교회가 보내준 구제 헌금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 후에 바울에 대해 유대인 신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 신자들이 수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여전히 율법에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례를 행하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복음의 본질을 완전히 깨달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행하지 말고 유대의 관습을 지키지 말도록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바울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유대인의 관습을 존중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섬기기 위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했습니다(행16:2,3). 바울 자신도 서원이 끝나자 겐그레아에서 율법에 따라서 머리를 잘랐습니다(18:18). 무교절도 준수했고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바쁘게 왔습니다(20:16). 다만 그가 가르친 것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진리뿐이었습니다(13:39).
22-24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것이라” 수만 명의 유대인 신자들은 아직 구약의 관습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바울로 인해 시험에 들고 바울의 이방인 사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야고보는 많은 유대인 신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나실인 서원을 마치는 4명의 결례의식 비용을 바울에게 지원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나실인 서원이란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이 특별히 서원을 하고 일정 기간 성전의 사역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실인 서원의 기간이 끝나면 머리를 깎으며 결례를 행하는데 이때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한 사람당 드리는 제물은 1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 1년  된 어린 암양 한 마리, 흠 없는 숫양 한 마리 이렇게 3마리의 양을 바쳐야 했고, 소제와 전제로 드리는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무교전병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제물의 양이 너무 많아서 가난한 나실인 서원자의 경우 이를 감당 못할 때 누가 대신 경비를 부담하는 것을 경건한 행위로 간주했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양만해도 12마리로서 큰 부담이 되는 액수입니다. 바울이 이런 일을 한다면 유대인 신자들은 그가 율법을 지키며 유대인의 생활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26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야고보의 권면을 깊이 존중하고 모든 제안을 다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여러모로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수만 명의 유대인 신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죽였습니다. 큰 비용을 치르고 결례에 참여하므로 자신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유대인 선교에 대한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린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9,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바울이 죽을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에 온 목적이 수많은 유대인들을 구원하고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와 장로들이 제시한 방법은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로 인해서 결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바울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을 성전에 데려와서 더럽혔다고 소리쳤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로마 군대의 최고 사령관인 천부장이 급히 군인들을 거느리고 달려 나오자 바울 치기를 그쳤습니다. 천부장과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들의 위협에서 바울을 보호해주었습니다. 바울은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인들에게 들려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찌하든지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할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오순절 기간이라 유대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유대인 군중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에게 헬라어로 백성에게 말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천부장이 허락하자 바울은 계단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말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II.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바울(22:1-29)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에게 에워싸여 매 맞고 곤욕을 치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매우 부드러운 어조로 침착하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부형들아” “Brothers and fathers" 바울은 유대인들을 아버지와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가 죽는다 해도 이들이 다 구원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명하고 있습니다(롬9:3). 바울의 변론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나는 과정,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떻게 이방인에게로 보내심을 받게 되었는가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먼저 그는 자신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서 예루살렘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 있는 바리새파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을 유대교를 혼란케 하는 이단의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각 집에 들어가서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심지어는 다메섹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제사장에게 체포영장을 받아서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런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다메섹에 가까이 가고 있을 때에 오정쯤 되었는데 하늘로부터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는 태양보다 더 밝은 빛으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이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아시고 그가 예수님을 박해하는 죄까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므로 지금까지의 자기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지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렵고 어찌할 줄을 몰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예수님은 이 때 바울을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10-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를 다메섹으로 인도하시고 아나니아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도 흠이 없는 온전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아나니아를 통해 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바울의 회심이 유대인들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아나니아는 계속하여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증거하였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인”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목적은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15). 그 후부터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두신 뜻대로 가는 곳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주저하지 말고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죄를 씻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듣고 즉시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거듭난 신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회심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했는데 황홀한 중에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18).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바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이는 자신이 과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데에 앞장섰던 것을 예루살렘 유대인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을 영접 못할 이유도 없고 자기가 그들을 피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예루살렘에 남아서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 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또 다시 명령하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이유가 유대인들이 그가 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박해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변론을 통해서 바울은 자신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의 은혜가 그 심령에 너무나 분명하고 감격적으로 살아있어 낱낱이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간증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메시지와 동시에 소망의 메시지를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 모른 채 과거 자신과 똑 같이 율법에 매여 죄 가운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구원하고 새 삶을 살게 하신 주님을 그들도 만나므로 모두 다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앞장서서 박해하였던 자를 구원하여 주신 다메섹 기적의 체험이야말로 유대인들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간증이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바울의 간증을 청종하던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에게 보내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의 말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들의 심기가 몹시 불편해진 것이었습니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방인들은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는 우월의식과 오랫동안 하나님을 예배하며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왔다는 의로운 심정 때문에 이방인도 자기들과 동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복음 진리를 전하는 바울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선민의식과 자기 의로 인한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천부장은 바울의 변명으로 잘 해결될 것 같았던 상황이 갑자기 더 악화되자 군사들에게 당장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령하고는 채찍질하며 심문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히자 천부장이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인에게는 정당한 재판에 의해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채찍질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후부터 바울은 로마 시민 신분에 맞는 대우를 받게 되었고 결국에는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로마에 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주님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과거 젊었을 때는 건강하여 어디 한 군데 아픈 곳 없이 주님의 역사를 잘 섬기며 지내왔는데 최근에는 건강했던 몸이 약해져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한 달 전에는 왼쪽 서혜부(사타구니)에 탈장이 생겨 고통 받다가 수술을 받게 되었고 지금도 회복 중에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자신을 보며 여러 한계적인 생각이 들고 이제는 주님의 역사도 몸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적당히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울이 복음 사역자로서 고난을 적극 감당하며 죽을 것도 각오하는 담대한 자세를 통해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하여 여러 한계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주님께서 제게 맡기신 사명들을 힘써 감당하므로 실제 삶에서 부활의 산 믿음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성령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주님께 받은 사명 때문에 결박과 환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 받고 죽으셨지만 이를 통해서 구원의 길이 열린 것처럼 무모하게 보이는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통해서 장차 복음 역사에 큰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현재 각자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가운데 복음 역사를 섬기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나를 구원하시고 캠퍼스 복음역사에 사명인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어떤 역경가운데서도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 섬기므로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승리하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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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누가복음 [2023년 성탄 말씀 제1강]은혜를 받은 자 관리자 2023-12-17 425
842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4강]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관리자 2023-12-10 421
841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3강]하나님께서 이루셨다 관리자 2023-12-03 381
840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2강]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관리자 2023-11-26 444
839 시편 [2023년 추수감사절]반드시 기쁨으로 돌아오리로다 관리자 2023-11-19 293
838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1강]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관리자 2023-11-12 380
837 에스라 [2023년 에스라 5강]울며 기도하여 자복할 때에 관리자 2023-11-05 663
836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4강]에스라의 결심 관리자 2023-10-29 474
835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3강]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관리자 2023-10-22 317
834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2강]홀로 건축하리라 관리자 2023-10-15 378
833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1강]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관리자 2023-10-09 339
832 룻기 [2023년 룻기 제4강]생명의 회복자 관리자 2023-10-01 286
831 룻기 [2023년 룻기 제3강]기업 무를 자 관리자 2023-09-24 412
830 룻기 [2023년 룻기 제2강]나의 하나님, 헷세드의 하나님 관리자 2023-09-17 341
829 룻기 [2023년 룻기 제1강]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관리자 2023-09-10 289
82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4강]로마의 셋집에서 휴화산 2023-09-03 265
82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3강]로마로 가는 길에서 관리자 2023-08-27 300
82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2강]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관리자 2023-08-20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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