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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8-27 (일) 10:50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23강-1.hwp (80KB) (Down: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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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23강]로마로 가는 길에서
2023년 사도행전 제 23 강                                                         이 종 하
로마로 가는 길에서
말씀 / 사도행전 27:1-44
요절 / 사도행전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런 비전을 품고 3차전도 여행 후 예루살렘에 들러 구제헌금을 전해주고 로마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갔다가 유대인들의 고소로 인해 2년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믿음과 인내를 시험받았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광풍을 만나 배가 난파당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의 소망이 보이지 않아 절망하였습니다. 바울도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과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의 목자가 되어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당시 상황을 현재처럼 느낄 정도로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난파 중에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 갈등과 배신이 오가는 상황, 그 가운데 절치부심하는 바울 등. 오늘 말씀을 통해서 276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잘 관찰하고, 이들을 섬긴 목자 바울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I. 하나님을 믿노라(1-26)
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우리’라는 표현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를 포함하여 바울과 동행한 일행을 말합니다. 누가는 의사요 역사가로 로마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가 함께 하였는데, 그는 에베소에서 대소동이 있었을 때 가이오와 함께 붙잡혀 극장 안으로 끌려갔던 사람입니다(행19:29). 그 외 두기고, 디모데도 동행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솔 책임자는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였습니다.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하여 재판을 받으러 가는 신분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습니다. 비전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현실은 쇠사슬에 묶인 미결수의 상태였습니다. 이전 전도여행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그의 머릿속은 많은 생각이 교차하였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그는 더 하나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가이사랴에서 처음 탄 배는 소아시아 아드라뭇데노(Adramyttium)에서 출발하여, 아시아와 수리아 연안을 다니며,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배였습니다. 이 배를 타고 이튿날 110km 떨어진 시돈 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때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친절히 대하며 친구들에게 대접받도록 허락하였습니다. 바울은 백부장의 호의로 인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죄수를 잠시나마 풀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이 억울하게 고발을 당했고, 지난 2년간 가이사랴에서 억류당했던 바울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막상 보니 그의 신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백부장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잠시 자유를 얻어 시돈 성도들의 섬김을 받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배가 시돈을 떠나자 북서풍이 세차게 불어 항해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구브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로 우회하여 아시아 루기아주의 무라 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가는 애굽 선박으로 갈아탔습니다. 이 배는 곡물선으로, 많은 화물과, 276명 이상의 승객을 실을 수 있는 큰 배였습니다. 그러므로 지중해를 항해할 때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마파람도 능히 헤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습니다. 강한 바람 때문에 이 큰 배도 제대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앞 바다에 이르게 되었는데, 평소 순풍이 불면 무라에서 니도까지 하루면 이를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계속 바람이 강하므로 그레데 섬 북쪽을 지나는 직행노선을 포기하고 그레데 섬 동쪽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살모네 앞을 지나 작은 항구 미항이라는 곳에 겨우 도착하였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가이사랴를 출발해서 미항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시일이 걸렸습니다. 유대인의 절기인 대속죄일이 이미 지난 상태였습니다. 대속죄일은 유대인 종교력으로 7월 10일인데, 오늘날 9월 말에서 10월 초순경에 해당합니다. 당시 9월 중순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항해하기에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항해를 계속하는 것을 만류하였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바울은 하물과 배와 생명까지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항해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이미 풍부한 해상 여행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세 차례나 파선을 당하였습니다(고후11:25). 그리고 간과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당시는 나침판이 없어 날씨가 나빠 해나 별을 관측할 수 없을 경우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의 말은 바울의 말과 달랐습니다. 선장은 오랜 경험을 의지하였습니다. 선주는 곡물을 빨리 운반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일반승객에게 미항은 너무 좁고 황량하여 편안하게 지내기가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그들이 우선 가기로 한 인근의 뵈닉스 항구는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한 항만이 있어 배를 보호하는데 효과적인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 위락시설이 있어 승객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뵈닉스에서 겨울을 보내자는 의견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심상치 않음을 다들 느끼고 항해를 계속할지 여부에 대해 회의가 열렸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분명히 바울과 같은 의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떠나자는 편의 표가 많았습니다.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11). 그리고 떠났습니다.
여러분은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라는 내용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들이 떠난 이유는 미항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선장과 선주는 빨리 가야 이익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유익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내세운 것은 지식과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생명 보호를 내세웠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말대로 떠나지 않았다면 분명히 안전했을 것이고, 이후 떠나서 파선을 당했을 때도 바울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세상 지식과 경험에 따라 하도록 강요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믿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어떤 상황이든, 남든지, 떠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길이 외로운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는 것만이 자신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한 모두를 살릴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떠난 결과가 어떠합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항해에 적합한 남풍이 순하게 불 때 닻을 감아올리고 출발하였습니다. 선장과 선주는 자신들의 말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득의양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 배를 흔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북동풍을 뜻하는 ‘유라굴로(the Northeaster, Euroaquilo)’는 동풍을 의미하는 ‘유로스(euros)’와 북풍을 의미하는 ‘아쿠일로(aquilo)’의 합성어입니다. 이는 그레데 섬의 높은 산맥에서 불어오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었습니다. 이런 광풍이 북동쪽에서 몰아치면 아무리 큰 배라도 추풍낙엽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5-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바람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돛을 내리고, 가는 대로 물결에 배를 맡겼습니다. 그레데에서 남서쪽으로 37km쯤 떨어진 가우다라는 작은 섬의 남쪽을 지날 때 겨우 구명보트인 거루를 수습하여 끌어올리고, 배가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밧줄로 선체를 둘러 감았습니다. 그 바다에는 스르디스라는 광활한 모래톱이 펼쳐져 있었는데, 배가 여기에 걸리지 않도록 연장(see anchor)를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배는 계속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모두 애를 썼지만 너무 시달리자 결국 다음날 사공들이 짐을 풀어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장비마저 꺼내어 던졌습니다. 며칠째 해도 보지 못하고 달도 보지 못했습니다. 큰 풍랑은 계속되었습니다. 모두들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여망마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검푸른 바다 위에서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칠 때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선장의 지식과 경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의 무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선주는 화물도 잃고 배도 잃게 되었습니다. 이 한계적인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이 절망하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 하나님의 종 바울만이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니라” 지금까지 침묵하던 바울은 모든 상황을 주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배에 탄 사람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달려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적으로 바울을 신뢰할 때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사람들은 한 가닥 실낱같은 소망조차 없는 상황에서 식사할 의욕이 없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먼저 미항을 출발하기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그들을 책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대로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권고를 합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니라” ‘배는 이전에 예언한 것처럼 손상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은 아무런 손상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가운데 평안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평안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애굽의 군대가 쫓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되었다고 울며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하였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이 절망하고 있을 때 믿음을 갖고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 목자된 우리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요즘 많은 광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평안을 심고 구원의 소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23,24절 보십시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 즉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폭풍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나왔습니다. 사실 바울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흔들리는 바울의 마음을 붙들어주었습니다. 우리도 위기의 때, 두려움과 절망이 눈 앞을 가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1,5)”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장래 걱정을 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롬 8:28)”하시는 말씀을 붙들 때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을 믿게 됩니다. 이처럼 성경 곳곳에 있는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믿음이 온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다시 오뚜기와 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바울에게 어떤 말씀을 주고 계십니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하십니다. 이제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니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이사 앞에 선다’는 것은 반드시 살아서 로마까지 간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에 가서 무엇을 합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번 항해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고, 구원받은 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다시 붙들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사자는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바울 자신과 그리고 함께 한 275명을 맡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그들의 목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하였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목자로서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하며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 믿음에서 나오는 고백은 듣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하고 확신을 심습니다. 이 바울의 말은 14일째 되는 날에 실현되었습니다.
 
II. 마침내 다 구조되니라(27-44)
열나흘 째 되는 날 밤에 배가 이리저리 쫓겨가다가 어느 육지에 가까워졌습니다. 수심을 재어 보니 스무 길(36m) 정도 되었고, 조금 가서 다시 재보니 열다섯 길(27m) 정도로 점점 얕아졌습니다. 그대로 진행하면 배가 암초에 부딪힐 것을 염려하여 고물(배의 뒷부분)로 닻 4개를 내렸습니다. 닻을 내려놓은 것은 배를 멈추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사건이 생겼습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배의 앞부분)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았습니다. 바울이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몇몇 사공들은 이를 믿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백부장과 로마 군인들에게 알려주고, ‘만일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 경고하였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밧줄을 끊어 거룻배를 떼어버렸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날이 새자 바울은 사람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열나흘 동안이나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심한 폭풍으로 인해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고, 뱃멀미로 인해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몸과 마음 모두 녹초가 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이 보기에 이들이 무사히 살아남으려면 먼저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하며 강권을 합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이 먼저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떼어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 후 나머지 밀을 바다에 버려 할 수 있는 대로 배를 가볍게 하였습니다.
39-41절을 보십시오. 날이 새자 육지가 눈에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땅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모래 해안으로 된 항만이 보이므로 가능하면 그곳에 배를 대고자 하였습니다.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올려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배가 두 물길이 만나는 곳에 있는 모래톱에 박히고 말았습니다. 뱃머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배 뒤쪽은 거센 파도에 부딪혀 부서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배가 손상을 입으리라고 한 바울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울에게 위기의 순간이 닥쳤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육지가 지척에 보이고 배가 부서져 가면서 군인들은 죄수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죄수들이 도망이라도 가면 자신들이 처벌받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을 포함한 죄수들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서 군인들의 계획을 막았습니다. 하나님이 백부장의 생각을 주관하시고 바울을 보호하신 것이었습니다. 대신에 백부장은 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명령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로 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였습니다. 저마다 죽기 살기로 애를 쓰며 육지에 상륙하였습니다. 마침내 배에 탄 276명의 사람들이 바울의 말대로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상에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생의 항해 속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교수 로랑스 드빌레르는 ‘인생을 제대로 배우려면 바다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늘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너무 심한 광풍으로 인하여 극도의 두려움과 절망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그 사랑하는 자, 고통 중에 있는 자녀와 함께 하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며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더 나아가 목자가 되어서 절망하는 사람들을 돕게 하십니다.
둘째, 믿음을 가진 목자 한 사람의 중요성입니다. 오늘 말씀의 알렉산드리아 배에 바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큰 참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배 안에 바울이 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평안을 얻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면서 섬겼습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목자 바울 한 사람으로 인해서 276명의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어떤 난파된 배든 그 배에 믿음을 가진 목자 한 사람이 있을 때 모두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난파된 가정에 믿음을 가진 목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가정이 구원을 받고, 난파된 사회에 믿음을 가진 목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회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날 캠퍼스 많은 지성인들은 난파선에 탄 이들과 같이 불안 속에 있습니다. 어떤 회사에 취업해야 할지, 취업이 된다면 장래는 보장되는지, 퇴직당하면 어떻게 될까 걱정합니다. 주식, 코인, 주택에 영끌 빚투를 하다 실패를 한 이들이 한 두명이 아닙니다. SNS속에서는 즐겁게 소통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보면서 처음에는 분노하다가 곧 이룬 것이 없는 자신에 대해 절망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래도 꿈꿀 수 없습니다. 누가 이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까? 이 시대 목자된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원인 분석이 중요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경제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로 보면 답이 없습니다. 말씀이 없는 것이 문제임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참된 위로와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주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어주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분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함없이 열심히 전할 때 캠퍼스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올 4월 초 퇴근하다가 넘어져 우측 손이 골절되었습니다. 그 순간 드는 생각이 ‘첫째, 일어난 어떤 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인정하자, 둘째, 감사제목을 찾자’였습니다. 응급실에서 골절된 뼈를 맞출 때, 수술을 앞두고 주사바늘에 찔릴 때 잠시 고통스러웠지만 그 외 대부분 시간 동안 마음이 평안하였습니다. 그리고 병가도 내지 않고 바로 환자 진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위기가 닥치면 불평과 두려움이 들고 원인 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담대하게 고난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몸은 힘들었으나 믿음으로 하는 법을 알게 하셨습니다. 특히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바울과 같은 목자가 되도록 하십니다. 제가 인생의 광풍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바라보고 구원을 얻기까지 끝까지 돕는 목자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이 시대는 분명히 난파된 배와 같은 상황입니다. 각종 유라굴로 광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목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임을, 그리고 우리를 불러 사용하고 계십니다.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있는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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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2강]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관리자 2023-08-20 400
825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1강]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관리자 2023-08-13 587
82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0강]주를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관리자 2023-08-06 295
823 요한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특강]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관리자 2023-07-30 521
822 누가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관리자 2023-07-23 536
82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9강]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관리자 2023-07-16 603
82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8강]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관리자 2023-07-09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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