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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9-10 (일) 10:51
분 류 룻기
첨부#1 2023년_룻기_제1강-1.hwp (148KB) (Down: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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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룻기 제1강]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2023년 룻기 제 1 강                                                           전영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말씀 / 룻기 1:1-22요절 / 룻기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기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서 사사 시대에 살았던 아름다운 믿음의 여인 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룻기에는 타락한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방 여인이고 과부였던 룻의 순결한 믿음과 헌신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사사시대와 다를 바 없이 죄악이 만연하여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인애로서 그 구원역사를 줄기차게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같이 하나님의 인애를 깨닫고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받는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 나오미의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는 믿음과 룻의 믿음의 결단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 장 나오미의 회개와 결단(1-7)
1절을 보십시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이스라엘의 왕이 세워지기 이전 사사들이 활약하던 시기로,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부터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기 전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가증할 우상과 같은 죄악된 환경을 정복하지 못하고 되려 영향을 받았습니다. 어느새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열 두 지파들이 그저 각자 도생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썼습니다. 사21:25 말씀은 당시의 사람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줍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후반부를 보면 얼마나 분별없는 시대였는지 알 수 있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인이 첩을 얻고, 남색하려는 불량배들의 요구에 그 첩을 내어줬다가, 강간살해 당해 죽은 첩을 보고 복수심을 유발하려 12토막을 내어 각 지파에게 보내질 않나, 또 베냐민 지파는 자기 족속이라며 그 불량배들을 감싸려다 전쟁이 나서 멸족의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이런 시기에 찾아온 큰 흉년은 죄악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당시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 하는 한 사람이 살았는데, 그의 아내는 나오미라 하고, 슬하에 두 명의 아들 말론과 기룐을 두고 있었습니다. 엘리멜렉은 먹고 살기가 어려워지자 요단 강 건너편 모압 땅으로 건너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모압 땅이 어떤 곳입니까? 모압이라는 말은 “아버지의 소생” 이라는 뜻이고, 소돔이 멸망한 뒤 살아남은 롯과 그의 맏딸 사이에서 태어난 부정한 자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우상 그모스를 숭배하고 미신적인 행위가 성행하는 가증한 곳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풍요로움을 좇아 부정한 땅에 발을 들인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옮겨갈 때에 잠시동안 “거류” 할 목적으로 떠났다고 쓰여 있습니다. 모압으로 떠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는 몰라도 중요한 것은 결국 갔다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왕” 이라는 뜻인데,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머물지 못할 망정, 큰 흉년을 피해 가증스러운 모압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찾아 떠난 이들에게 모압은 잔인한 곳이었습니다. 3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낯선 이방 땅에서 가정을 이끌어야 할 가장이 덜컥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후 나오미는 남은 두 아들을 위하여 룻과 오르바라는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게 되었고,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동족도 아닌 이방 여인을 들이는 것을 보면, 잠시 흉년을 피해 모압에 거류하려던 명분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이 풍요로움과 안락함에 젖어 이방화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이 가정 가운데 두 번째 사건이 찾아옵니다. 5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뒤에 남았다는 표현은 생명을 부지하고 겨우 연명하는 처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떻게든 잘살아보려고 고향 땅을 뒤로하고 모압까지 왔는데, 남편 뿐 아니라 두 아들마저 잃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비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오미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고, 유다 땅에 큰 풍년이 들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마저 다 잃고 힘들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돌아보셨다는 말이 마치 딱한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돌아보셨다는 것처럼 여겨졌고, 이제 고향으로 가야겠다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힘들 때는 고향을 훌쩍 떠나 가더니만, 이제 남편도 자식도, 모든 것을 다 잃고 고향으로 돌아 오려니 염치없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다시 볼까 하는 자격지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일들을 살면서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내세울 체면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의 말과 행동을 다 아시고 생각까지 감찰하는 분이십니다. 내가 인간적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쓰임 받고자 하는 소망으로 결단할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이방 땅에 와서 실패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단은 나오미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일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결단이 있어야만 그녀의 삶에 새 역사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비록 언약의 땅을 떠났었지만 언약의 하나님은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풍년의 소식을 들었을 때,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나오미의 믿음에 대한 정의이고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입니다. 아무리 많이 실수하고 넘어져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 그러나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혼자서 끙끙 앓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왜 나를 힘들게 하시는가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때에는 오히려 갈급함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마11:12 “세례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2 장 룻의 믿음과 결단(8-22)
이제 나오미 본인은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를 했습니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곁에 남은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고맙게도 이들은 나오미를 따라 나섰습니다만, 모압 땅이 끝나는 요단 강까지 걸어오며 수없이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고향에 도착했을 때 남편과 자식들을 다 잃은 것도 모자라, 이방 며느리까지 데리고 오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수군대겠습니까?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떠난 것만 해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인데, 이방 며느리까지 맞았으니 그 정도가 더 심하지 않겠습니까? 폭싹 망해서 돌아왔으니 고소하다 여기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평가를 차치하더라도 고향 땅에서 며느리들이 겪게 될 일들이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고통은 나오미만 겪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잃은 고통을 함께 겪고 있는 며느리들이 애틋했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이런 상황을 원치 않았습니다.
나오미는 요단 강가에 와서 두 며느리에게 각자의 고향으로,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했습니다. 8절과 9절을 보면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자신과 함께 고생하며 살길 바라지 않았고, 이들이 시어머니 걱정에서 벗어나 재혼해서 각자 자기 인생자기가 개척해나가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은 두 며느리가 그동안 자기 아들들과 자신에게 잘 해왔기 때문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습니다. 나중에 보아스가 룻을 보고 “저 소녀는 누구냐” 묻는데, 이를 볼 때 룻의 나이는 한참 젊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어린 며느리가 자길 따라와 남은 인생 희망도 없이 고생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떠나라 한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말 속에 진하게 배어 나오는 뜨거운 사랑을 느끼며, 두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과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서 극을 흥미롭게 끌고 가기 위해서 고부갈등이 많이 쓰이지 않습니까? 못된 시어머니가 도끼 눈을 뜨고 며느리에게 “저 물건” 이라 부른다거나, 이렇게 아들 일찍 죽은 것에 대해 제 남편을 잡아먹었다고 원망 한다거나, 죽어도 우리 집 귀신이 되라며 끝까지 내 옆에 남아 내 노후를 책임지라고 한다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딸과 같이 그들을 걱정하며 돌려보내려는 나오미의 사랑이 더욱더 뜨겁게 느껴집니다.
나오미의 만류에 대한 두 며느리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10절을 보면,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떠나라는 나오미의 말에 두 며느리는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할 차별과 천대, 구박을 감내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몹시 낮던 그 당시에, 남편이 없는 과부에게는 생계를 이어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이 두 며느리는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나 하는 것일까요? 이들 앞에 희망이 있기는 있습니까?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남편이 자식 없이 죽으면 남편의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가문의 대를 이었는데, 이를 “계대결혼법” 이라 합니다. 그런데 나오미에게 이미 죽은 말론과 기룐 외에 더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오미는 이미 나이가 많아 재혼하더라도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한발 더 양보해서 만약 낳는다 하더라도 그 아이들이 아들일지 어떻게 알며, 자랄 때까지 룻과 오르바가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계대결혼의 가능성도 없는 상황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한다면 남은 세월을 남편 없이 홀로 살아가야만 하는데, 너무나 큰 희생이었습니다.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나오미는 룻과 오르바가 그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진심을 다해 말렸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좆았더라.” 나오미의 강권 앞에 오르바는 헤어질 결심을 했는데, 룻은 붙좇을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룻을 바라보며 동서와 같이 떠나라 말했습니다. 신뢰하는 시어머니가 무려 세 번이나 떠나라 강권하니 마음이 흔들릴 법도 합니다. 그런데 룻의 결심이 무엇입니까? 요절 16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의 결단은 단호했습니다. 이는 의리나 인간적인 정에 의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시어머니를 따라갔을 때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고 철없이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나오미는 어쨌든 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룻 자신은 모압 족속으로서 유대인 총회에도 참석할 수 없고 사회적 냉대를 받으며 외톨이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함으로써, 어머니와 어머니의 백성과 생사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뜻을 섬기겠다고 믿음으로 결단했습니다. 룻은 성실하고 헌신적인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모압 땅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곳에서나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어머니를 죽기까지 따르겠다며 굳게 결심했습니다. 이를 위해 고난도 각오하고, 어머니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자신의 장래를 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연거푸 돌아가라며 강권하던 나오미도 며느리의 이런 굳건한 결심을 보고 더 이상 말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방 여인이었던 룻이 어떻게 이런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 어머니의 백성, 어머니의 하나님.” 룻이 했던 말을 보면 그녀가 시어머니 나오미의 성숙한 믿음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믿음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삶의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잘 드러납니다. 13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 가운데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분별한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 큰 흉년으로 징계하신 것과 같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떠나 부정한 땅 모압에 거류한 것에 대해 징계를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불행 앞에서 먼저 가버린 남편을 탓하거나, 연약한 아들 탓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냐며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고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변치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이런 시어머니를 보며 그 믿음을 존경하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배웠을 것입니다. 살아 역사하셔서 믿는 자에게 그 어떤 역경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공의로 죄인들을 징계하시나, 변함없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을 것입니다. 고향 땅 모압에서 동족들이 섬기는 그모스 신과는 전혀 다름을 느꼈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그 삶을 통해 룻에게 믿음을 가르쳤던 좋은 성경선생이요 목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여인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얼 가르쳐 주고 계십니까? 첫째, 나오미의 변치 않는 굳건한 믿음과 선한 영향력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서도 여전히 선한 주권을 믿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고자 결단했습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며느리를 사랑하고 배려하고 기도해주는 성숙한 믿음으로 이방 여인이었던 룻이 변화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둘째, 룻의 충성심과 하나님께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통해 나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충성된 마음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하고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섭리에 일편단심으로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의 아름답고 절대적인 믿음은 맑은 거울이 되어 현재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비춰주고 있습니다. 상황과 형편을 볼 때 믿음을 지키기 힘들고, 믿음을 갖기 힘든 이들이, 믿음으로 결단하고 끝까지 그 믿음으로 살아내서 더욱 더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고난의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이 왜 중요한지 나오미와 그녀를 통해 믿음을 배운 룻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배워 이 시대의 나오미와 룻과 같이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히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편 나오미와 룻은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고향 베들레헴에 이르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남편과 아들없이 며느리와 둘이 돌아온 것을 보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크게 환영했습니다. 처음 고향 땅으로 돌아오려고 했을 때 나오미가 걱정했던 조롱과 경멸은 없었습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떠나더니 남편 죽고, 아들 다 죽고, 이방인 며느리 하나 데리고 거지꼴로 돌아오더니 꼴 좋다며 비웃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10여년 전에 떠난 나오미를 알아보고 환영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넉넉한 인심입니까? 하지만 이런 관심이 큰 불행을 지나온 나오미에게 달가울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홀로 된 마당에 웬만하면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나, 나이든 과부인 자신이 그나마 발붙이고 살려면 고향이 낫지 않겠습니까? 탕자의 비유에서 집 나간 둘째 아들도 결국 버티다, 버티다 주려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에 종이 될 각오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버지는 나를 받아주리라 하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나오미도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받아 주시리라.” 하나님은 다 망해 거지꼴이 되더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열렬히 환영하고 맞이하시는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나오미라는 이름은 “기쁨”이라는 뜻이고, 마라는 “쓰라림”을 가리킵니다. 고향을 떠날 때에는 풍족하게 가지고 나갔지만 돌아올 때는 알거지가 되어 돌아왔으니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처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을 징계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회개하는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에는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받은 고통과 슬픔의 흉터가 남아있었지만, 자신을 비우게 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 전능자의 뜻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오미를 어떻게 위로하셨습니까?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았지만 지금 나오미의 옆에는 두 아들보다 귀한 믿음의 여인 룻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과거는 흉년으로 시작했지만, 돌아왔을 때에는 추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인생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도우시고, 회개하여 순종했을 때 풍성한 인생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의 기간을 통해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좇고자 하는 확고부동한 신앙의 기초를 쌓게 하십니다.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오미의 삶에서 적지 않은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저 역시 인생의 흉년을 피해서 하나님을 떠났었던 시기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10살 때 아버지께서 고혈압으로 중풍을 맞고 쓰러져,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께서 고된 식당일로 내몰리셨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일년에 하루 이틀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밤 늦게 돌아와서는 통증으로 아파하시는 것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공부 외에는 방법이 없는 듯 보였고, 열심히 해서 어떻게 든 은혜를 갚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큰 희생으로 겨우 얻은 이 귀한 대학생활을 학업 외에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UBF에서 말씀공부를 시작했지만 인생 회복에 대한 간절함으로 인해 차일피일 말씀 공부를 미루다가 몇 달 뒤에는 결국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면서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었는데, 마지막으로 보려던 2010년도 시험을 크게 망치고 나서, 패배의식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희생을 내가 다 날려버렸구나.”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크게 흔들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시 42:5 말씀으로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후 목자님들의 인내의 사랑과 섬김의 수고를 통해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박이삭 목자님의 “포도나무” 메시지와 손태호 목자님의 “우리가 아는 한 가지”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겸비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많은 복을 내려 주시고, 취업의 홍해도 건너도록 도우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이 막상 취업을 하고 나니까, 생각보다 적은 급여가 아쉽게 느껴졌고 자꾸 물질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런 정도로는 부모님의 부양은커녕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신앙생활도 족쇄와 같이 느껴졌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몸도 마음도 다 지칠 무렵, 제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가 부담스러워 예배를 중단했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내 사정도 모르고 자꾸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며 나름대로의 살길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대로 해도 운명주의로 인한 회의감과 허무함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인애의 하나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정훈 목자님 심방을 통해 저를 여러 차례 위로하셨고, 고영훈 목자님과의 말씀공부를 통해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평강을 맛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 뜻을 따라 살고자 결단했을 때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치 나오미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추수할 시기가 찾아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가정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아들을 주시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는 삶의 기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제 안의 악한 본성으로 인해 삶의 두려움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찾고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압니다. 제가 저의 생각대로 살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누리는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자격없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죄인이 일생 하나님의 이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함으로 맡기신 일을 무익한 종과 같이 감당하는 자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나오미는 극심한 환난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징계로 여기며 담담히 받아들이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또한 룻은 그런 나오미의 믿음을 통해 어머니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그들을 돌아보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인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사시대와 같이 타락하여 믿음을 갖기 어려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대에도 나오미와 룻과 같은 사람을 통해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런 시대에 “나의 하나님”께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져,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임받는 빛나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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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 에스라 [2023년 에스라 5강]울며 기도하여 자복할 때에 관리자 2023-11-05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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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3강]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관리자 2023-10-22 292
834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2강]홀로 건축하리라 관리자 2023-10-15 308
833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1강]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관리자 2023-10-09 314
832 룻기 [2023년 룻기 제4강]생명의 회복자 관리자 2023-10-01 263
831 룻기 [2023년 룻기 제3강]기업 무를 자 관리자 2023-09-24 373
830 룻기 [2023년 룻기 제2강]나의 하나님, 헷세드의 하나님 관리자 2023-09-17 312
829 룻기 [2023년 룻기 제1강]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관리자 2023-09-10 263
82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4강]로마의 셋집에서 휴화산 2023-09-03 240
82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3강]로마로 가는 길에서 관리자 2023-08-27 269
82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2강]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관리자 2023-08-20 400
825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1강]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관리자 2023-08-13 587
82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0강]주를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관리자 2023-08-06 295
823 요한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특강]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관리자 2023-07-30 521
822 누가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관리자 2023-07-23 536
82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9강]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관리자 2023-07-16 602
82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8강]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관리자 2023-07-09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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