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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18 (일) 12:23
분 류 히브리서
첨부#1 2015_히브리서4강-1(이인구).hwp (53KB) (Down: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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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히브리서 제4강] 우리의 큰 대제사장 예수님
2015년 히브리서 제4강                                                              이인구

우리의 큰 대제사장 예수님

말씀: 히브리서 4:14-5:10
요절: 히브리서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브리서 저자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천사보다 우월하시고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들보다 우월하신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을 큰 대제사장(Great high priest)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고 유일한 대제사장이란 의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왜 예수님이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지 배우고 우리를 동정하시는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요, 백성들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죄 사함을 위한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대제사장의 제사를 통해 백성들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큰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모형이요 예수님이 온전한 대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그전에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림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떤 점에서 큰 대제사장이 되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승천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4장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승천하셨다는 말은 원문에 하늘들을 통과(관통)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땅위에서 하늘들을 통과해서 가는 것은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히고 길이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죄의 장벽을 허무시고 길을 개척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범죄이후 제사제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을 통해 그들의 중보의 제사와 희생제물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것은 일 년에 한번 있는 대 속죄일에만 가능했고 더구나 대제사장들의 죄 때문에 그 길도 자주 막혔습니다. 특히 예수님당시에는 죄악되고 정치적인 제사장들의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제사 때문에 그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심으로 하나님께 나갈 길을 여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영적인 고속도로가 뚫린 것입니다. 신자들은 그 길에 들어서기 위해 구약 때와 같은 복잡한 절차 없이 오직 믿음의 하이패스를 통해 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승천은 그의 신적 영광과 권위를 나타냅니다. 그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승천하심으로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롬 8;34)
  1b를 보십시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믿는 도리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불완전한 대제사장의 제사나 세상진리를 붙잡지 말고 승천하신 큰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이루신 복음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굳게 잡는 것은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구조밧줄을 던져주었을 때 젖 먹던 힘을 다하여 그 밧줄을 단단히 붙드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의 밧줄을 굳게 붙잡지 않을 때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붙들지 않을 때 영적생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동정하시기 때문에 큰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의 다리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필요하지만 또한 연약한 인간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대개 높은 사람의 아들은 높은 곳에서만 놀아봤기 때문에 낮은 자의 약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최근 크게 흥행한 베테랑이라는 영화에서 한 대기업회장 아들이 나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이뤄놓은 물질과 권력으로 높은 곳에 앉아 하룻밤 유흥비로 몇 천만원을 쓰는 사람인데 한 노동자가 몇 달 동안 못 받은 임금 420만원 때문에 아들과 함께 시위하는 것을 보며 어이없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상했다는 이유로 어린 아들 앞에서 그를 폭행하며 맷 값으로 몇 천만원을 던져줍니다.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은 안나스와 가야바였습니다. 안나스는 자신의 대제사장 임기가 끝난 후에도 자신의 아들과 사위 가야바를 차례로 대제사장으로 세우면서 유대의 실질적인 최고 실세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와 정치적으로 결탁한 이들로서 하나님의 뜻엔 관심 없고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위해 연약한 백성들을 이용하고 착취했습니다. 로마 황제 흉내를 내며 높은 상석에서 힘과 권력을 누리며 백성들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백성들을 위해 섬기고 희생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시기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동정하시고 또 공감하십니다.
  최근에 많이 이슈가 되는 말 중 하나가 공감입니다. 공감이 안되면 소통이 되지 않고 그때 많은 갈등과 문제가 시작됩니다. 세상의 많은 갈등과 다툼의 원인을 찾으면 결국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고 그것은 서로간의 공감이 부족한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다른 사람과 감정을 교류하며 살아갑니다. 엄마는 아이가 아프면 함께 아파하고 사랑하는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내일처럼 기쁩니다. 사랑으로 공감한다면 상대방이 아프다고 하면 “어디가 아파? 아파서 힘들겠구나?” 하며 공감하지만 공감이 되지 않으면 “아프면 약 먹어. 심하면 병원가고.” 영혼 없는 말을 던져버립니다. 공감이 되지 않으면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겨도 무덤덤하거나 심지어 기분이 나쁜 경우도 있습니다. 가까이 있고 자주 본다고 해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고통은 공감하겠는데 아버지의 아픔을 공감하기 어렵고 broken family에서 빗나가는 청소년들은 이해하지만 중2되는 내 자식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받으면 자신이 이해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나 처한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도전하고자 하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것은 진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깊이 공감해주심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십니다.
  그런데 로마황제의 아들보다 또 대기업회장 아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연약하고 죄악된 인간들의 연약함을 공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초라한 마굿간에서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셔서 냄새나는 말구유에 누이셨습니다. 무시 받는 촌 동네 갈릴리에서 평생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나 반대자들의 끊임없는 시기와 질투와 따돌림을 받으셨습니다. 또 십자가에서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치욕과 고통을 겪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피곤함 우리와 똑같은 목마름 우리와 똑같은 아픔과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우리를 깊이 공감하고 동정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자주 좌절과 낙심에 빠지는지 얼마나 자주 슬픔과 우울증에 빠지는지 우리 예수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직접 경험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이해하시고 동정하실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사탄의 시험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담 같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죄성을 이해할지 모르지만 도울 수는 없습니다. 도우려다 같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실 때 또 메시야 사역 중에도 인간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물질시험, 명예시험, 세상인기의 시험을 겪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다 물리치셨습니다. 사단의 유혹을 다 경험하셨기 때문에 시험에 빠져 갈등하는 우리를 이해하실 수 있고 또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탐욕과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지 아시고 얼마나 자주 분노와 미움에 사로잡히는지 아심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죄와 실수에 대하여 변호해주십니다. 승천하셨지만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돕고자 하십니다. 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큰 은혜가 되시는 것은 승천하시는 능력보다도 인간의 연약함을 깊이 공감하시는 사랑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 앞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보통 보좌는 왕이 앉아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왕이 심판하고 통치하고 벌하는 곳이 바로 보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좌를 두려워하고 가까이 하기 힘들어 합니다. 에스더는 황후였지만 황제에게 함부로 나아갈 수 없어서 민족이 멸망해 가는 것을 구하기 위해 삼일을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한 사람의 연약함을 아무리 깊이 공감해서 그를 도와주어도 그가 이미 저지른 죄악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 죄에 대한 심판이 정의요 공의입니다. 구약시대 때 대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 사함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어린양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후(전가시킨 후) 죽여 그 피를 뿌렸습니다. 그렇게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큰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오셔서 직접 자신의 피를 십자가 제단위에 뿌리셨습니다. 그 피는 짐승들의 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이기 때문에 어떤 추악한 인간의 반복되는 죄도 능히 사할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 앞에서는 어떤 나의 연약한 것, 추한 죄도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에 심판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가 되었고 따라서 우리는 그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in our time of need)는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나아가서 도움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연약하고 죄악된 우리를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위로, 격려하시고 때로는 충고하십니다. 때로는 갈 길을 열어주시고 때로는 앞장서서 인도해주십니다. 때로는 세미한 음성으로 속삭이시고 어떤 때는 강한 확신으로 우리의 심령을 붙들어주십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라도 일 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든지 큰 대제사장 예수님을 의지해서 언제든지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안 나와서 문제이지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누구든지 두 팔 벌리고 받아주십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는 분 한 번 만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어느 통치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만왕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도 38년된 병자도, 혈루증 앓는 여인도 세리나 창기도 심지어 십자가상의 강도까지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자 다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를 초청해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이 예수님으로 인해 어떤 죄인도 어떤 실패자나 루저도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평생 높은 곳의 황금보좌에 오르기 원하지만 예수님께선 모든 사람들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 십자가의 피로 은혜의 보좌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 값없이 주어지는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도 않고 무지하며 심지어 엄신여기기 까지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은 나가도 되고 안 나가도 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인생의 구원과 열매를 위해 반드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지 않을 때 세상의 미혹하는 죄악된 곳이나 히브리 성도들처럼 허무한 곳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본성에 거스리고 부담이 되더라도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하늘의 위로와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핏 값으로 이루신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사랑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회에서 연극을 준비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거할 곳을 찾지 못해 말구유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는 내용의 연극인데 교회에 많은 신도들이 연극배역을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마리아와 요셉을 뛰어난 연기 지망생이 맡게 됐는데 한 지능이 많이 떨어지는(정신지체장애자) 청년이 꼭 연극에 참여하고 싶다고 간청해 난처하게 됐습니다. 목사님이 오랫동안 갈등하던 차에 마침 요셉의 청을 거절하는 여관주인역이 없어 그를 맡겼습니다. 요셉의 방을 달라는 요청을 3번 “없어요.” 라고 하면 되는 간단한 연기인데 무사히 연습도 잘 마쳤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어 교회의 많은 청중들 앞에서 연극이 감동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요셉이 여관주인에게 간절하게 요청 했습니다. “거할 방 있나요?” “없어요.” “제 아내가 만삭인데 거처할 방을 구해 주세요” “없어요.” “이제 곧 출산할 것 같은데 누추하더라도 제발 오늘 밤만 눅을 방을 주세요.” 3번째 “없어요” 하면 무사히 그의 역할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요셉의 3번째의 요청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예수님! 좁고 더럽지만 제방으로 들어오세요.” 우리가 우리의 죄를 동정하고 공감하기 위해 이 땅위에 임마누엘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쁨으로 공감하며 받아들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온전한 순종의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5장 1-10절에서는 구약의 대제사장이 되기 위한 자격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이 왜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가 말해줍니다. 4절을 보면 대제사장은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순서)에 따라 태어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세워주신 멜기세덱의 반차에 따라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7,8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구약시대의 희생어린양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재물로 드리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예수님의 심한 통곡과 눈물은 영혼의 절규요 몸부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인생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동정하시기 위해서이고 또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위한 고난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역사를 이루는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선 택한 백성들에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써의 소원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본성대로 살던 사단의 노예백성들이 구원받았다 해도 육신의 본성을 부인하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돌이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운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수시로 육신의 본성에 넘어져서 실패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화려한 세상을 보며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다 망할 것 같아 하나님을 떠났다가 진짜 망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큰 대제사장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역사에 순종하기 위해 고난 받을 때 잠시 고통스럽지만 결국 승리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는 육신의 심한 고통과 눈물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해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결국 구원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예수님께 순종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순종을 통한 구원과 부활영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역사를 위해 고난 받고 순종할 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승리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순종을 요구하실 때 피해버립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자기 생각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축복이 비켜갑니다. 반면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 말씀을 붙들고 통곡하며 기도하는 이가 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때 예수님이 닦아 놓으신 영원한 구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얻습니다.
  육신의 본성을 부인하고 죄악된 세상과 거스려 사는 신앙생활 자체가 고난입니다. 매주 말씀공부하며 소감 쓰는 것도 힘든데 어떤 분들은 매일 새벽기도하며 완악한 양들의 죄와 싸우며 고난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영광을 위해 고난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망했다는 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순종을 통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가운데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축복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고난 받고 있을 때 원망하지 말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시며 십자가에 순종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그때 결국 하나님의 때에 승리의 날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죄악된 세상에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 소망을 따라 살수 없지만 우리 앞에서 본을 보여주신 큰 대제사장 예수님을 닮기 위해 애쓰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장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큰 대 제사장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사장으로 하나님과 양들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하기보다 세상과 센타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는 인본주의 신자로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겪게 되는 자기부인 자기십자가의 고난을 회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 그런 신앙생활이 지혜롭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양도 없고 말씀과 기도생활에도 소홀한 죄인에게 팀 역사를 맡겨주시고 메시지 훈련가운데 하나님영광을 위해 순종하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제가 하나님 역사에 매이며 섬기는 것이 큰 부담이요 고난이 되었지만 작은 순종을 통해 내면의 큰 기쁨을 누리게 도와주셨습니다. 팀 역사를 섬기면서 동역자들과 기쁨을 나누게 도와주셨고 메시지를 감당하면서도 먼저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고 직장문제와 자녀문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부족한 나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공감하시는 사랑을 체험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기쁨으로 예수님을 위한 고난에 순종함으로 받은 예수님의 공감하시는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제사장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동정하시는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고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시고 죽음의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큰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믿음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 예수님이 가신 순종의 길을 따라가므로 영원한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부활영광에 참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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