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6-05 (일) 09:53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13강-1.hwp (142KB) (Down:36)
ㆍ추천: 0  ㆍ조회: 370      
IP: 211.xxx.102
[2022년 누가복음 제13강]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2022년 누가복음 제13강                                                               김요나단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 누가복음 8:40-56
요절: 누가복음 8: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오늘의 말씀은 두 가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12해를 혈루증 앓던 여자가 고침을 받았고 둘째, 야이로의 12살된 딸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습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믿음 있는 사람을 매우 기뻐하시고, 믿음의 사람을 넘치게 축복하시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믿음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모든 부정적인 생각, 근심, 두려움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축복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I.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40-48)
 예수님은 거라사에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후 가버나움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큰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특히 야이로가 간절히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며 환영하는 곳에는 반드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경성센터도 모두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매 주일예배에, 새벽기도에, 철야기도에, 매번 말씀 공부마다 그냥 오지 않고, 예수님을 기다리고 환영하는 마음으로 모이길 기도합니다. 이곳에 예수님께서 치유와 기적의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41,42절을 보십시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회당장의 직분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유대 사회는 회당 중심의 사회로 대부분의 주요 활동은 회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대 제사장이 운영하던 성전과는 달리 회당은 지역공동체가 운영하던 평신도 기관이었다고 합니다.) 백성들 사이의 여러 가지 분쟁도 회당에서 해결하였기 때문에 회당장은 판사와 같은 권한을 가지고 회당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주재하고 지역사회를 이끌어갔습니다. 회당에서 예배도 섬기고 성경공부도 인도하고, 때론 지역의 덕망 높은 사람을 찾아서 메신저로 세우기도 하는, 한마디로 야이로는 지역사회의 유지요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중병에 걸려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12살이면 이제 재롱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가장 예쁘고 귀여운 나이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딸을 들쳐업고 유명한 병원들을 전전했지만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병세만 심각해져 죽음이 임박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달려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주님, 제 집에 좀 와주세요. 제 딸이 죽어갑니다." 단순히 간청한 것이 아니고 발 앞에 엎드린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간절히 예수님을 기다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발아래 엎드리는 것은 권위에 순복하는 자세입니다. 자신이 비천한 자라고 낮추는 행위입니다. 회당장이 서민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모든 체면과 권위를 버렸습니다. 오자마자 저절로 몸이 엎드려졌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보통은 어머니들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데 야이로는 보통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은 목자의 마음에 비할 수 있습니다. 경성센터의 목자님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기를 기도합니다. 양을 1:1로 인도하고 양들을 여름수양회에 초청하기 위해 머리를 숙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주님 앞에 엎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길 기도합니다.

 엎드린 야이로에게서 간절함을 보신 예수님은 그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43, 44절을 보십시오. 길을 가시던 중 한 여자가 조용히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을 혈루 증으로 고통하고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마가복음 5:26절은 이 여인의 고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초기에는 그녀도 병을 고쳐보고자 전국의 유명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다니며 온갖 신약과 값비싼 약은 다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 노력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점점 상태는 악화되어갔고 재산도 다 고갈되어갔습니다. 병색이 가득한 얼굴만큼이나 그녀의 내면도 피폐해져갔습니다. 무엇보다 여인에게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 율법이 규정한 병이었습니다. 레위기 15:1-12에 따르면 이 부정한 질병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만지는 것은 의자든, 침대든 무엇이든 모두 부정하게 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혈루증은 하나님의 저주로 여겨졌습니다. 이 병자는 이웃과 가까이 하거나 교제도 할 수 없었으며 더욱이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홀로 생활하고, 혼자 밥먹고, 혼자 자고, 살아 있지만 죽은 자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께 나아간 자들은 나병 환자든 중풍 병자든 어떤 병자도 낫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아났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어떻게든지 이 예수님께 다가가서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올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주받은 병자가 어찌 거룩하신 예수님과 접촉하겠습니까? 율법대로라면 예수님도 부정한 자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예수님 주위로 수많은 군중이 에워싸고 있는데 아픈 몸으로 어떻게 뚫고 지나가겠습니까? 그와 터치되는 모든 사람이 부정하게 될 것입니다. 양심상 못할 짓입니다. 들키는 날에는 분명히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낫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과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믿음으로 사람 사이를 뚫고 지나가 기어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 여인에게서 우리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매너와 다릅니다. (여러분 착한 사람이 좋은 신자입니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여자의 행동은 사람들의 눈에는 무례하고 위협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모든 열등감과 자책감,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저희 경성센터의 모든 목자님들이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금은 무례하더라도 조금 세련되지 못해도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사역을 섬기시기를 기도합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주 예수의 옷을 만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그토록 여인을 괴롭히던 병이 즉시 사라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으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신체접촉이 있었겠지만 기적은 한사람에게만 일어났습니다. 왜죠? 48절에서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따르지만 진실로 믿고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일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서도 모든 사람이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큰 복을 받습니다.

 병이 나은 그 여자는 아마도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벅찬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고 간증을 하고 싶어도 부정한 병이라 드러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45절)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심으로 사라지던 그녀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여자는 더 이상 숨지 못하고 떨며 나아와 엎드려 그녀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말했습니다. 이제 그녀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부정한 자신이 몰래 한 일이 만 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 문제를 고의적으로 무리들 앞에서 폭로하셨을까요?

 첫째) 온전한 구원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치욕스러운 병이 아무도 모르게 치유되었는데 이제 조용히 사라져서 새 인생을 살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이 병 고침만 받고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치유, 즉 구원받기를 더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자기 입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모임은 소감이라는 부담스럽지만 귀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소감을 통해 내면의 문제, 치욕스러운 문제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은 누구나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는 곳에 구원의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다.

 둘째) 믿음의 역사를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믿음의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찾으십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다면 예수님은 항상 그것을 드러내셔서 사람들이 보고 그 믿음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여인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공회 앞에 드러내셔서 좋은 선례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여인의 믿음에 감동되신 예수님은 “딸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부정한 여인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며 그녀의 새 인생을 축복하셨습니다. 병 고침을 얻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48절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49-56)
 주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한 사람이 와서 고하였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이 소식 한마디에 야이로의 마음은 낙담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면 아무리 병세가 심각해도 희망을 가지련만, 이미 죽었다면 예수님이 오신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직 살아 있다면 응급처치를 하고 제세동기라도 써 볼텐데 골든타임도 지나버렸습니다.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사라지는 여인을 예수님이 붙잡지만 않았어도..... 예수님을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종의 한 마디가 야이로로 하여금 모든 믿음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사탄은 이 시대에도 항상 사람들의 한마디 말로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곤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한마디 말, 때로는 부모의 말, 교수님의 말, 때론 가장 친한 친구의 말을 통해 우리 마음에 염려를 심곤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렇게 쉽게 두려움에 빠지고 믿음을 잃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50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네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야이로의 마음에 믿음과 소망을 심고자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원래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즉,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51절을 보십시오.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신 후 예수님은 아이의 부모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통곡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권세 앞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망과 비탄에 잠기는 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함께 계시는데도 모두가 슬픔에 잠겨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52) 예수님은 그 딸의 죽음을 잠시 자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생명의 주인, 부활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는 죽음이라는 용어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그 곳에는 언제나 생명의 역사, 빛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이 믿지 않는 자들을 다 내보내시고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역사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치유의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자는 아이를 깨우듯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어났습니다. 이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아이는 잠에서 깨어난 후 기지개를 켜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 잘 잤다. 엄마 치킨 사줘" 예수님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그 부모가 놀라는 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절망의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이 절망의 순간에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예수님은 축복하시고 기적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경성센타의 메신저 중 한 축을 담당하시는 이인구 목자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위트 넘치는 문장과 주옥같은 비유를 잘 인용하시는 이 시대에 뛰어난 말씀의 종입니다. 이분이 30여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살아나신 것을 시니어 목자님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당시 의사들도 부정적으로 얘기할 때, 경희 사모님을 비롯한 저희 목자님들이 요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말씀을 붙들고 하루 세 번 중환자실에서 목자님들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분은 20일 만에 깨어나시고, 점차로 건강을 덧입으시고 지금과 같은 말씀의 종이요 제자양성가가 되셨습니다.

 (서제임스 목자님은 10년 전 브라질 수양회를 섬기러 가던 중 몸에 이상을 느끼시고 한국으로 급히 오시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목자님이 암 진단 받던 날 경희사모님이 아침 일용할 양식 말씀으로 바로 오늘 말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씀으로 큰 힘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이후 길고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저희 목자님들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항암치료과정의 고통을 잘 아실 겁니다. 고통의 순간 마다 제임스 목자님은 믿음을 지키고자, 말씀을 믿고자 성경 암송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껏 부활의 증인으로 새벽기도며, 철야기도며, 모든 말씀역사를 은혜가 넘치게 섬겨가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야이로 로부터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야이로는 절망에 빠지고 믿음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더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과 슬픔을 이겨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는 자신의 믿음을 견고히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기뻐하시고 그녀의 딸을 살리심으로써 그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학창시절 인생의 목적 없이 방황하던 저를 부르시고 사명인의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때마다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인도네시아를 사명의 땅으로 정하시고 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간 27년에 걸쳐 자카르타 한국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므로 시간활용이나 경제적으로나 안정되게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짜왕센타에서 오랫동안 양들을 섬기게 하셨고 부침은 있었으나 말씀역사를 중단 없이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2월 55세로 직장에서 정년 퇴직을 하였습니다. 사실 수년 전부터 퇴직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커피 사업이나 다른 아이템들을 찾아보고자 눈을 돌려 보기도 했지만 평생 교사 밖에 안 해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퇴직 즈음하여서 당혹스럽고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학업을 마치기까지 3년은 더 버텨야 하는데,,, 이제 겨우 내 나이 56세인데 뭘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짜왕 센타 역사도 바닥이 되어가는데 내가 인도네시아에 남을 수 있는 꼬투리를 찾을 수 있을지...., 온통 머리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퇴직 후 곧바로 하나님은 기간제로나마 근무할 수 있도록 한국에 자리를 마련하여 주시고 인도네시아 예배는 줌으로 섬기게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보너스를 얻은 기분입니다. 기막힌 타이밍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제 마음 가운데 아직 근심과 혼란스러움이 있습니다. 이번 선택이 잘한 선택을 한 건지, 때가 되면 대면예배로 전환해야 할텐데 어찌할 건지, 아직 변변한 열매를 거두지 못해서 짜왕센타의 중심이 되어줄 형제가 없는데 이런 상태가 오래갈 수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방향 잡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아득해지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저를 지금껏 가장 좋은 길로만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동안 짜왕센타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왔던 라마 목자가 힘들어지면서 공동체가 통째로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관계성을 회복해야 할텐테 꼬투리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구스 목자는 먼 곳에서 예배에 참석하기 쉽지 않았는데 줌 예배로 인해 오히려 신실해졌습니다. 현재 줌 예배를 아구스 목자를 중심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면예배로 전환할 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걱정스럽습니다. 야꿉 형제는 경희문센타 출신인 제이콥 선교사님 회사에서 일하는 형제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결혼하여 아이가 1명 있는데 줌 예배에 가족이 참석하며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는 없지만 “그냥 믿고 기도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제가 몇몇 그루터기 같은 이 형제들을 기도하며 말씀으로 섬기길 기도합니다. 이 시간 제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영어로는)Just believe, 그냥 믿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저를 이렇게 인도해 오신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그냥 믿고 형제들에게 때를 따라 먹을 것을 공급해주는 목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믿음으로 다가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여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놀랍게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킨 야이로를 기뻐하시고 그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이 믿음은 just believe “오직 믿는” “그냥 믿는” 믿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믿기만 하라, 그냥 믿어라 하면 믿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비웃으려고 합니다. 자신의 스펙과 능력만을 의지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진실된 믿음만이 우리 신자들에게 기적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우리 경성센타 목자님들 모두가 세상이 이기지 못할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8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6강]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관리자 2022-12-04 40
78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5강]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관리자 2022-11-27 92
785 시편 [2022년 추수감사절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관리자 2022-11-20 102
78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4강]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2-11-13 112
783 이사야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2강]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관리자 2022-11-06 85
782 이사야 [2022년 가을 제자수양회 제2강]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관리자 2022-11-06 75
781 로마서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1강]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관리자 2022-11-05 60
780 로마서 [2022년 가을 제자 수양회 제1강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관리자 2022-11-05 66
77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3강]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관리자 2022-10-30 104
77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2강]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관리자 2022-10-23 132
777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1강]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22-10-16 138
776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0강]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관리자 2022-10-09 170
775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9강]엎드리어 감사하니 관리자 2022-10-02 181
77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8강]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관리자 2022-09-25 195
773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7강]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 관리자 2022-09-18 179
772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6강]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관리자 2022-09-11 214
771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5강]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22-09-04 167
770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4강]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관리자 2022-08-28 215
76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3강]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22-08-22 206
768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22강]염려하지 말라 관리자 2022-08-14 202
12345678910,,,40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