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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3-17 (일) 10:50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마가복음_제2강-1.hwp (175KB)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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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2강]권위 있는 새 교훈
2024년 마가복음 제2강                                                 한아브라함
                     권위 있는 새 교훈
말씀 마가복음 1장 16절-45절,
요절 마가복음 1장 27절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 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께서 때가 차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천국 복음을 선포하신 후 드디어 이 땅에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제자를 부르시고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각종 병자들,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십니다. 이 중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실 때 사람들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줍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을 들어봅시다.

16절을 보십시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예수님이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복음 전할 사람, 즉 제자를 부르고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혼자서도 능히 하실 수 있지만 제자들 동역자들과 같이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먼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즉흥적으로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에 안드레가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께 왔었습니다. 즉 이들은 아는 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되자 이 둘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로 누구를 부르실 것인가 생각하고 관찰하신 끝에 부르신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첫 제자로 랍비가 아니고 명문대학 출신이 아니고 어부를 부르셨습니다. 자격보다는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너희는 사람을 낚아서 키우는 일을 할 거야. 그러면 그들은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될 거야. 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이지.‘ 예수님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영혼 구원, 그리고 제자 양성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직장을, 가정을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겠습니다. 내 삶을 드립니다. 사람 살리는 일에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18절 보십시오.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마가복음에는 곧 이라는 부사가 많이 나옵니다. 곧 즉시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기도해 보고요. 부모님과 상의해보고요. 졸업하고 취업한 다음에요’가 아니라 곧 입니다. 곧 예수를 따른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계산에 밝습니다. 주님은 계산하지 않는 사람, 단순한 사람, 열정적인사람, 소중한 일에 자신을 기꺼이 드리는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누구는 그물을 버려두고, 누구는 배를 포기하고, 누구는 가족들과 잠시 이별하고 예수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바르게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면 예수님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이는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배우는 삶,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삶, 목적을 바꾸는 삶입니다.
21절 보십시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심에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로라.‘ 21절부터 39절까지는 만 하루 동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을 부르신 후 한 첫 번째 영적인 전투였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역사의 시작은 신비한 기적이 아니라 가르침으로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같지 않았습니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율법적이었습니다. 율법으로 올가매었습니다.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줍니다. 구원을 줍니다. 실제적인 삶이 변화합니다.
23절에서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회당에 버젓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회당은 기도하는 곳, 말씀이 역사하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귀신이 역사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귀신이 존재합니까? 인공위성 타고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에 귀신이 어디 있냐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귀신은 존재합니다. 오늘날 귀신의 세력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의 최대 작전은 귀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입니다. 요즘 귀신들의 새로운 작전은 신세대 양들을 집중공략 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컴퓨터를 통해서 접근합니다. 신세대 영혼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들만 지배하면 머지않아 세상 전부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거짓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속입니다. 죄를 아름다운 것 인간적인 것으로 속입니다. 유혹합니다. 귀신은 더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더러운 생각을 하고 더러운 죄를 지으면 귀신이 귀신같이 알고 찾아옵니다. 귀신이 들어가면 내면이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고 어두워집니다. 비관적이 되죠. 그러나 귀신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예수입니다.마귀가 우리 자녀들에게 캠퍼스 양들에게 죄를 가르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예수를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의 사람이 되게 키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4절에서 귀신 들린 자가 소리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서기관들이 가르칠 때는 귀신들이 아무 미동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이 선포되자 귀신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귀신 들린 자는 예수를 싫어하고 성경 공부를 싫어하고, 교회에 오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제발 내버려 두라고 말합니다. 귀신은 예수님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귀신 들린 자는 예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를 따라다닌 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겨우 알았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만 알기만 한 것뿐입니다.
25~26절에서 예수님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그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27절 보십시오. 예수님의 권세는 귀신도 순종합니다. 천지 만물이 삼라만상이 예수의 권세에 순종합니다.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을 명한 즉 순종하는 도다.’ 두 문장 사이에 'even' '심지어'가 있습니다. 앞에서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의 권위에 놀랐는데, 이번에는 예수의 권위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복음은 권위 있는 새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이 임했을 때 거라사 군대귀신이 쫒겨 나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이 쫒겨 나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섬기는 아름다운인생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저항과 박해가 따르겠지만 계속해서 전하면 귀신들이 떠나가고 예수를 믿는 역사가 충만히 일어날 것입니다. 한 사람을 말씀으로 살리는 역사가 중요합니다. 한 사람을 사망에서 건져낼 때 그 여파가 큽니다. 그런데 귀신이 나가려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싸움의 대상이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의지하여 끝까지 싸워서 건져내고 살려내면 그 영향력이 큽니다. 이처럼 힘들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권세를 믿고 계속해서 전하면 결국 귀신은 쫓겨나가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새 교훈의 놀라운 권세를 믿고 확신 있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귀신이 나간 후에 그곳을 비워두면 나갔던 귀신이 친구들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귀신이 나간 후에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귀신이 얼씬하지 못하죠. 28절에서 예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 전 지역에 퍼져나갔습니다. 경희대 외대를 넘어 전 세계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퍼져 나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길 기도합니다.
29절 보십시오. 주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후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회당에서 나오셨습니다. 시몬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안식일 예배에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예배가 끝난 후에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심방 가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 보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가 복음을 보면 중한 열병 high fever라고 했습니다. 단순한 감기 몸살로 열이 나는 것이 아니라 39도에서 40도의 열이 펄펄 끓는 중한 열병이었습니다. 39도에서 40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이는 심각합니다. 입원 치료 받아야 합니다. 31절 보십시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은 왜 말씀으로 고쳐주시지 않고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을까요? 손을 만져주시는 그 순간 그녀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질병은 한 번 낳았다가 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일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손과 발로 주를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수종 들기 시작했습니다. 장모는 열병이 낫자 그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예수와 제자들을 음식으로 섬겼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따르자 베드로의 가정 문제도 친히 도와주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나와 내 집이 은혜받고 구원받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저물어 해질 때까지, 즉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기다렸습니다. 모든 병자, 온 동네,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 많은 귀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병든 인류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는 죄로 인해 망가진 세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딜 가나 아픈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전염병, 전쟁,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요즘은 각종 정신병 환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병자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외롭고 고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K-팝 트로트를 들으며 K-드라마를 보며, 형제들은 K-축구를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손 홍민을 영웅으로 만들고 그가 활약하는 축구를 보며 위로를 받고자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는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아플 때 진정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주님은 고통 받는 세상에 오셔서 아픈 자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몸소 겪으시며 아픈 자들의 위로자요 치유 자가 되십니다. 밤늦게까지 모든 병자들, 귀신 들린 자들을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35절 보십시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밤늦게까지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늦잠을 주무실 것 같은데, 다음 날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는 한적한 곳에 가서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어딜 가나 병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잘 되는 병원은 한 두 곳뿐입니다. 사람들은 가면 의사를 금방 볼 수 있는 한산한 병원을 가지 않고 1시간 이상씩 기다리더라도 꼭 그 병원을 갑니다. 잘 되는 병원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비결이 있기 마련입니다.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습니다. 많은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 고치시고 귀신 쫓아내시고, 나중에는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다 이루실수 있을까요?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늘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새 힘을 덧입으셨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지혜를 얻으셨습니다. 종교 개혁을 이룬 마르틴 루터는 ‘나는 너무 바빠서 기도 한다’라고 했습니다. 무디도 빌 하이벨스 목사님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쁘면 급하면 기도를 빼먹고 급한 일부터 하기 쉽습니다. 바쁠수록 기도해야하죠. 주님은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기도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기도 없이 살 수 있을까요? 기도는 타락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 즉 아침 첫 시간은 세상의 영향력이 나를 지배하기 전을 말합니다. 첫 시간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아침 첫 시간에 핸드폰으로 손이 간다면  침실에서 벌떡 일어나 기도처로 갑시다. 그분께 엎드립시다. 첫 시간 기도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우리의 삶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승리할 것입니다. 이 경건한 습관을 자녀에게 물려준 사람은 최고의 유산을 물려준 것입니다.
36 37절 보십시오. 늦잠자고 일어난 시몬과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말했습니다. ‘주님 모든 사람들이 주를 찾습니다. 여기서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지금 예수를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38절 보십시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주님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하십니다. 제자들은 못내 아쉬웠을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요청을 거절하시고 제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즉 예수의 가버나움에서의 핵심 사역은 전도였습니다.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요즘 교회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성공과 축복의 메시지,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가 많습니다. 초신 자 어린 양들에게는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한 다’는 메시지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현실 문제를 도와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믿는 자에게 따라오는 부수적인 축복입니다. 예수를 믿고 현실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만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진짜 복음은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그래서 공생애 시작하실 때에 주님은 때가 차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하시고 또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복음 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생명 살리는 일에 목숨 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0절 보십시오. ‘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꿇어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나병은 전에는 문둥병이라 불리었고, 지금은 한센 씨 병이라고 불리웁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문둥병자 거지들이 동네를 배회했습니다. 갈귀 손, 고름 범벅에 뭉개진 얼굴로 동냥을 오면 너무나 무서워 무조건 뭔가를 주어서 빨리 보내야 했습니다. 보기도 흉하지만 전염될까 봐 더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나병에 걸리면 부정하게 취급되어 공동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 환자는 예수께로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께로 올 수 있었을까요? 율법에 따르면 스스로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면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예수께로 나아올 수 있었을까요?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는 예수의 치유 능력을 믿었습니다. 병도 낳을 뿐만 아니라 부정하게 된 자신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께 나오게 한 것입니다. 나병이 무서운 것은 전염성 때문입니다. 죄도 전염성이 빠릅니다. 나병은 죄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가 창궐 했을 때 세상이 취한 방법은 분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깨끗한 자, 더러운 자를 분리시킵니다.
요즘도 더럽다고 생각되는 자들에게는 돌을 던집니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대형교회 목사들이 주된 표적입니다. 누구라도 잘못 걸리면 죄인이라고 찍어 누르고 공개 비판하고 죽이고 내어 쫓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공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자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영어로는 ‘compassion’ 즉 아픔을 공유한다는 뜻이죠. 헬라어로는 ‘스플랑크니조마이’ 즉 내장이 창자가 찢어질 듯한 아픔을 겪으며 공감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플 때 어미가 더 큰 고통을 겪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썩고 문드러진 손을 잡으셨습니다. 예수의 긍휼의 마음이 행동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나병 환자의 모든 아픔을 주님이 가져가셨습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나병 환자같이 되어버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더러움을 우리의 고통을 대신 가져가셨습니다. 이 시대는 병든 세상, 병든 죄인들을 향하여 아파하는 긍휼의 마음을 가진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불쌍히 여깁시다.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죄로 죽어가는 그들의 손을 잡아줍시다. 예수께로 인도합시다.
43 44절 보십시오. 주님은 나음 받은 그를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왜 이렇게 강하게 경고하시며 보내셨을까요? 나병 환자를 가까이 하고 만지신 것은 어찌 됫건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그 어떤 질병을 고치신 것과 나병을 고친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치유 사역이 과도하게 부각되지 않도록, 영혼 구원의 사역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병만 낳으면 일시적인 것입니다. 문제 해결 받으면 일시적인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적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영혼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도록 하시므로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도록 도우셨습니다.
45절 보십시오. 깨끗하게 된 사람은 주님의 강력한 경고를 듣지 않고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습니다. ‘이거 비밀이야. 절대 말하면 안 돼. 너만 알아야 돼.’ 더 빨리 퍼졌습니다. 그 결과 주님이 더 이상 그곳에서 사역을 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에 앞서 죄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먼저 배워야 하겠습니다. 저는 과거 지독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였습니다.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자로서 인생을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자였습니다. 시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 이런 자도 예수 믿고 구원받고, 권위 있는 주님의 새 교훈을 통해서 변화되고 성장하였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돕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목자요 말씀증거자로 쓰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제가 권위 있는 주님의 새 교훈을 잘 연구하고 전하는 자로 쓰임 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파괴 되고 찢어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인생을 온전히 회복시키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을 영접합시다. 주 안에서 회복됩시다. 그리고 생명 살리는 역사를 섬기는 종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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