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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2-31 (일) 14:09
분 류 느헤미야
첨부#1 2023년_느헤미야_제5강-1.hwp (90KB) (Dow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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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느헤미야 제5강]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2023년 느헤미야 제5강                                                         이 인구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말씀/느헤미야 11-13장
요절/느헤미야 13;30,31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오늘은 2023년의 마지막날입니다. 매년 마지막날 우리는 많은 감사제목과 함께 더 많은 아쉬운 기도제목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지금은 아쉬움속에도 내일 새로운 태양이 떠올라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한번 지나간 인생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지난 아시안 게임 남자 롤러스케이팅 결승전에서 우리나라 한 선수가 결승선을 앞두고 치명적인 행동을 하는 바람에 우승을 놓쳤습니다. 그는 결승선앞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만세 부르다 뒤따라오던 대만 선수에게 통한의 역전을 당했습니다. 신자의 인생경주에서도 천성길을 달리던 신자가 인생후반부 세상죄에 넘어져 신앙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한 후 백성들을 영적으로 개혁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반복되는 백성들의 죄악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개혁역사를 이어갔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끝까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느헤미야의 신앙을 배움으로 어두운 시대 하나님의 성벽을 쌓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성벽이 완성된 후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언약을 갱신한 후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할 백성들을 선출하였습니다.(11장) 과거 예루살렘은 죄때문에 침략을 당해 성전과 성벽이 무너져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개나 소나 드나드는 황량한 수치의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전에 이어 성벽이 건축됨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거룩한 성이 되어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살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침공때부터 150년 동안이나 페허였던 도시에 아직 삭막하고 편의시설같은 인프라가 없었고 무엇보다 예루살렘은 아직도 대적들이 노리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지도자는 빠른 정보로 좋은 것을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서 본을 보이고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남은 백성은 제비뽑아 십분의 일을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원해서나 혹은 다른 사람이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맡긴것입니다. 뽑힌 백성들은 자신들이 살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와야 했지만 자원하는 심정으로 기쁨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까이 살면서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캠퍼스 전도의 비젼가운데 우리모임으로 온 지도자들같은 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목자님들과 양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의 인도하심가운데 우리교회로 왔습니다. 내가 왜, 어쩌다가 이곳에 왔는가 의심하기보다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영접하고 자원하여 이 교회에서 캠퍼스를 위해 기도하며 전도하는 거룩한 제사장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2장을 보십시오.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정착시킨 느헤미야는 이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단을 작성함으로 그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성전제사와 예배를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90년 전 1차로 귀환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로부터 기록함으로 황량한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한 1세대의 성전 봉사자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하였습니다. 순수한 신앙으로 귀환한 그들로부터 느헤미야 시대까지 많은 성전봉사자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나갔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같이 대적들과 내통하여 하나님역사를 방해했던 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성전 봉사자들이 대적들의 수많은 방해와 위협에도 끊어지지 않고 신앙을 이어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가 세움을 받고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엘리사가 세움을 받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직분 역시 바벨론 포로기간 중에도 단절되지 않고 계승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역사에 쓰임받는 이들은 그의 인간적 능력이나 열심때문이 아닌 그를 택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여 하나님역사에 사용할 수 있는 분으로(마3;9) 부족한 이들을 택하여 하나님역사에 사용하심으로 열매맺고 축복받는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적으로 부족할지라도 혹은 잘나갈지라도 하나님역사에 쓰임받는 것을 감사하며 헌신해야 할것입니다.
올해 성탄을 맞이하여 센타를 꾸미는데 예전같은 심미안을 가진 미대 목자님들이 없어 걱정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영광을 위한 소원과 열정을 가진 몇 자매님들을 택하여 놀라운 미적 감각을 주심으로 그 어느때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센타 성탄 장식을 꾸미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면 그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 해와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될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제 마침내 성벽봉헌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성벽은 BC 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함락으로 무너져 140년 동안 폐허로 방치되다가 BC 444년 하나님의 도우심가운데 단지 52일 만에 마침내 완공된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봉헌식을 위해 먼저 여러곳에 흩어진 레위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레위인들을 모집한 것은 감사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레위인중 찬양대와 각종 악기연주자들이 함께 감사의 노래를 하였습니다. 성벽봉헌식은 감사찬송하는 자의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위를 걸어가게 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 무리는 에스라를 선두로 우편으로 성벽을 돌고 다른 무리는 느헤미야를 선구로 그 반대편으로 성벽위를 돌아 한 곳에서 만나도록 하였는데 성벽위를 걸으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찬송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52일 만에 완공된 성벽을 부실공사라고 의심하는 이는 두려움으로 올라가지 못하겠지만 성벽건축역사를 직접 체험한 모든 백성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따라 성벽위를 걸으며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의 길이는 약 4km(높이10m)로 그 길이만으로는 중국의 만리장성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리장성과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예루살렘성벽은 세상을 지으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건축됐기 때문입니다. 성벽의 역할은 보호와 분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으로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림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43) 성벽 봉헌식의 key word는 감사와 즐거움(기쁨)입니다. 무엇 때문에 백성들이 이렇게 감사하고 기뻐합니까? 처음 성전의 기초가 놓였을 때 젊은 세대의 기쁨과 장년층(시니어)세대의 통곡이 혼재하였습니다.(스3;11,12) 젊은이들은 처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기쁨으로 즐거워했지만 장년세대는 과거 솔로몬의 웅장한 성전에 비해 초라한 성전기초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성벽봉헌식때 모든 이들이 다 기뻐하며 감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의 놀라운 지도력이나 백성들의 피땀흘린 노력으로 인한 인간적 성취감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함께 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때 얻을 때 감사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시온의 영광’이 회복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산으로 다윗이 그곳에 성을 건설한 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의 대명사로 예루살렘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무너진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의 수치요 심판이었습니다. 포로백성이 된 것도 고통이지만 더 큰 고통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고 보호도 인도하심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귀환했지만 70년 동안 이방땅 이방문화속에 살았던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무너진 신앙을 중건하기 위해서는 오랜(90년)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믿음의 지도자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통해 대적들의 집요한 방해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을 가졌을 때 마침내 52일 만에 성벽을 중건하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게 도와주셨습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성벽을 돌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매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자신들과 함께 하셔서 무너진 성벽을 중건하게 도와주심으로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의 찬송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는 과정입니다.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자는 문제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쁨의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만약 느헤미야서가 12장 성벽봉헌식으로 끝났다면 신앙으로 역경을 이겨낸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개혁과 회복의 해피엔딩 드라마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3장 다시 백성들의 죄악의 역사가 반복되므로 안타까운 다큐멘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악된 인간의 실존입니다.
13장 1절을 보십시오. 성벽 봉헌식날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모세의 책을 낭독하며 외적인 성벽중건역사이후 내적인 영적개혁을 이어나갔습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은 성경에서 시작하고 개혁의 기준도 언제나 성경입니다. 낭독된 말씀은 신명기 23장(3-5절)말씀으로 암몬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때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무당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가나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암몬과 모압족속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근친상간을 통해 얻은 후손들입니다. 완전 남도 아니고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애굽이나 바벨론민족도 아닌데 왜 분리하도록 하신 것입니까? 그들은 사돈의 팔촌같은 먼 친척뻘이지만 지독한 우상숭배자들로써 역사상 수없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실족시켰던 민족이고 당시에도 이스라엘 공동체에 스며들어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13장 이 말씀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왜 또다시 죄의 역사를 반복하는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떠나게 하는 세상의 죄와 분리하길 원하십니다. 성벽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 보호를 상징하면서 또한 세상죄와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무엇으로부터의 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분리인가가 중요합니다. 신자가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죄악된 세상과 분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벽완공 후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약속)을 갱신하도록 했고 백성들은 구체적으로 성전을 위해 첫열매와 십일조를 드리고 안식일을 지키고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하기로 맹세하며 도장까지 찍었습니다. 이 세가지는 세상에서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시키는 뚜렷한 기준이고 오직 신자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사랑, 인내, 감사등의 덕목은 가치있게 여기지며 존중받지만 성전을 위한 헌금을 어리석게 여기고, 안식일에도 일하는 사람을 성실하다 칭찬하며, 이방인과의 결혼을 개방적으로 생각합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에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그동안 함께했던 모압, 암몬 족속을 분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4절부터는 연도가 달라집니다. 성벽봉헌식을 마친 느헤미야는 그 후 12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유대의 총독으로 역사를 섬겼습니다.(BC 444-BC 432) 그리고 임기가 만료되어 페르시아 왕궁으로 돌아가 왕을 섬기고 1년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간절히 그리던 예루살렘에 돌아와 보니 백성들사이에 다시 과거의 죄악이 더욱 추악하게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과거 사마리아 총독인 산발랏과 함께 성벽건축을 집요하게 방해했고 느헤미야까지 죽이려 했던 대적 도비야가 성전의 큰 방을 차지하고 떵떵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암몬 사람으로 마땅히 쫓겨나야 됐지만 유다의 귀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자신뿐 아니라 그의 아들도 유다의 귀족과 결혼했고,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정치적 탐욕으로 그 지역에서 힘을 가진 도비야에게 하나님의 성전의 큰 방을 내주었습니다. 도비야가 차지한 방은 성전기구와 백성들의 첫열매와 십일조를 보관하는 방으로 도비야가 차지하면서 백성들의 첫열매와 십일조는 끊어지고 레위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성전을 버리고 자기 밭으로 도망갔습니다. 유대 지도자의 죄악은 순식간에 백성들에게도 파급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안식일에도 돈을 벌기 위해 포도주를 만들며 음식을 팔았고 이방인들도 안식일에 거침없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장사했습니다. 더욱 참람한 실상은 유다 사람들이 율법에서 금지한 암몬과 모압 여인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유다 말을 못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잠시 떠난 사이 백성들은 누룩같이 퍼진 죄악으로 선민으로의 정체성을 잃고 이방인들과 같이 되어갔습니다.
물론 그들은 항변할 것입니다. 암몬, 모압족속의 과거의 죄를 알고 있지만 70년의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 낯선 고향땅에서, 토박이로 살고 있는 그들과 원수처럼 지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고 남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죄는 현재도 천성을 향해 가면서 이 땅의 나그네로 사는 모든 신자들에게 부딪히는 실제적인 현실문제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때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에서 거북이가 느리지만 꾸준한 열심과 노력으로 결국 이긴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거북이로 태어난 이상 절대로 토끼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토끼가 방심해서 자야 되는데 요새 토끼는 약아서 타이머를 맞추고 자기 때문에 반전은 없습니다. 하지만 거북이는 땅이 아닌 강이나 바다에서 헤엄치며 사는 존재(파충류)입니다. 바다에서 토끼와의 경주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만약 거북이가 자신의 존재의미를 깨닫는다면 땅에서 어리석게 토끼와 경주하지 않고 바다에서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찬양하며 살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으로 세상이 아닌 장차 천성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땅에서 세상사람들과 경쟁해서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 그들이 죄악된 세상과 분리되지 못했을 때 하나님과 함께 할 수도 없었습니다.
신자가 세상과 분리되는 것은 세상과 원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출애굽시키신 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소망두시며 인도하셨습니다. 바로의 노예백성이었던 그들이 세상죄와 분리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때 제사장 나라가 되어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17;16,18) 신자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세상과 세상의 역사적 현실에서 고개를 돌려야 한다는 도피주의가 아닙니다. 신자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써 또 예수님의 제자로써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속에 존재하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하는 사명을 가집니다. 신자는 소금같은 존재지만 만약 소금이 오염되어 그 맛을 잃으면 존재가치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신자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세상을 움직이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성벽안에서 세상죄와 분리되고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죄악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한번 영적개혁을 통해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먼저 성전의 방을 더럽힌 도비야의 가구들을 모두 밖으로 던져버리고 다시 성전예배기구들을 들여놓았습니다. 성전을 버린 민장들을 꾸짖으며 도망간 레위인들을 다시 회복시키고 충직한 종들을 세워 백성들의 첫열매와 십일조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또 안식일을 범한 백성들을 꾸짖으며 안식일에 성문의 경비를 세워 장사를 금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방인과 결혼한 이들을 책망하며 그중 몇사람은 때리고 머리털을 뽑고 이방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맹세시켰습니다. 과거 솔로몬은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받은 왕이지만 그가 말년에 모압과 암몬등 이방여인들과 결혼하면서 온 나라가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고 그가 암몬여인(나아마)을 통해 얻은 르호보암이 왕이 된 후 나라는 분열되고 멸망의 길을 갔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성벽건축역사의 대적이었던 도비야뿐 아니라 산발랏과도 손을 잡아 자신의 손자를 산발랏의 딸과 결혼시켰습니다. 느헤미야는 역사적 죄악을 지적하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를 쫓아냈습니다.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때리고 머리털까지 뽑고 쫓아낸 느헤미아의 분노는 자신의 옷을 찢고 자기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은 에스라의 분노와는 다릅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감정대로 분노했다면 개혁은커녕 오히려 분열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거룩한 분노로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신것처럼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분노하며 개혁역사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느헤미야는 개혁역사를 이뤄나갈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14)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22)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31) 느헤미야가 중요한 영적개혁앞에서 외친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기도문은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는 느헤미야의 애타는 부르짖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벽을 쌓고 영적개혁을 하려는 느헤미야에게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1차 귀환자 스룹바벨과 동역했던 대제사장 예수아의 손자이자 느헤미야때의 대제사장으로 처음에는 성벽재건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협력했던 지도자였습니다.(느3;1) 하지만 성벽이 완공된 후 자신의 정치적 탐욕을 위해 대적 도비야에게 성전 큰 방을 주고 산발랏과 사돈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들의 죄악된 영향력을 방치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관리로 잠시 유대를 이끌었지만) 실제적인 지도자인 엘리아십의 악영향력으로 백성들사이에 순식간에 죄가 퍼졌고 모든 이들이 반대하는 개혁을 느헤미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믿음으로 쌓은 성벽이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행한 일을 감찰하시고 기억하시도록 간구하였습니다. 느헤미야도 연약한 인간으로 모든 이들이 검은 것을 하얗다고 주장하는데 혼자 검은 것을 검다고 주장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또 그도 사단의 미혹가운데 분별력을 잃어 율법적이 되거나 세속적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며 자신을 기억하고 지켜주심으로 끝까지 하나님뜻대로 개혁을 이루도록 간구한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영적개혁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말씀묵상과 기도의 중요성은 모든 신자가 다 알지만 어떤 신자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적 개혁은 자신과의 싸움이고 자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죄악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붙들면서 성벽중건과 영적개혁이라는 위대한 하나님역사에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13장은 느헤미야서의 마지막일뿐 아니라 구약역사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슷한 시기 활동한 말라기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의 구약역사 마지막은 본장이며 그 후 신약성경이 기록될때까지 400년 동안 성경은 침묵합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에도 이스라엘은 죄악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속에서도 죄악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연단이 시작되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돌아오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살만해지면 다시 죄악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민족을 이루기 시작한 사사시대부터 반복된 죄악의 역사이자 인간의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E.H Karr는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현재를 통해(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진보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역사를 배움으로 우리는 현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 헤겔은 말했습니다. “인간은 역사를 쓰기는 하지만(배우지만)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합니다.” 역사를 통해 깨닫는것은 인간은 항상 과거와 같은 죄악과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안다고 말해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많은 이들이 자신을 파괴하는 죄악을 경험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똑같은 죄악에 빠집니다. 그 이유는 “모든것은 이미 일컬어졌으나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합니다.”(앙드레 지드) 느헤미야같은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증거했지만 사람들은 귀를 막거나 아니면 들어도 쉽게 망각함으로 똑같은 죄악의 역사를 반복합니다. 그럼 느헤미야의 애타는 기도와 고통스러운 개혁은 아무 쓸모가 없고 헛수고한 것입니까? 사람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을 비웃으면 안됩니다. 그는 지금 애통히 반성(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합니다. 비록 언제 다시 소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사람에게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반복되는 죄악속에서 다시 회개하고 개혁하는 많은 선지자와 신자들의 발자취를 통해 하나님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이요 축복이신 구원자 예수님을 말구유를 통해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벽안뿐 아니라 어느곳, 어느때든지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도하십니다.
올해 말씀공부했던 형제들이 하나둘씩 모임을 떠나고 둘째까지 대학에 들어간 후 오랜만에 얻는 자유라 생각하고 과거 친구들의 근황에 관심갖게 됐습니다. 그들이 외적으로 큰 문제없이 여유롭게 같이 어울려 인생을 즐기며 사는 모습을 보며 일생 걸어왔던 신앙길에서 고독과 상실감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의 무너져 가는 성벽을 깨닫게 됐습니다. 기적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에서 구원받고 또 예루살렘같은 캠퍼스에서 목자로 부르심의 사명까지 얻어 일생 하나님과 함께 하며 열매맺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안에서 살만해지면서 대제사장 엘리아십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보다 세상의 좋아보이는 열매를 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무너져가는 성벽을 중건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정체성을 찾고, 예루살렘같은 캠퍼스를 섬기며 인도하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끝까지 쓰임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반복되는 죄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끝까지 영적개혁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교수들이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는데 그 뜻은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입니다. 많은 이들이 눈앞의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엘리아십처럼 목적과 가치가 다른 이들과 야합하고 백성들처럼 각자도생하는 가치상실의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느헤미야의 개혁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가 어둡고 혼란한 시대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또 왕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성벽을 중건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개혁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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