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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4-07 (일) 10:53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부활절_제2강-1.hwp (143KB) (Down:16)
ㆍ추천: 0  ㆍ조회: 164      
IP: 211.xxx.102
[2024년 부활절 메시지]그가 살아나셨다
2024년 부활절 메시지                                                      최동진
그가 살아나셨다
말씀/ 마가복음 16:1-20
요절/ 마가복음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가장 놀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한 가르침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개념은 누구도 이해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놀라움의 절정이었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들인 여자들은 “그가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몹시 놀라고 떨며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소식은 큰 기쁨 이전에 놀라움과 떨림과 무서움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활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오라”(1:17)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신 마지막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떻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이 시간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통해 실제적인 부활의 믿음을 덧입고 우리 모두가 부활의 산 증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그가 살아나셨다(1-13)
  1,2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 날이었습니다.(14:42) 그래서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발라 드릴 겨를도 없이 서둘러 바위 속에 판 무덤에 장사지내고 돌을 굴려 무덤 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예수님께 바르기 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실제 목격한 자들이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15:40,41a) 하나님의 아들이 악한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정권에 의해 무력하게 십자가에 처형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현장에는 “가만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주나 보자”(15:36) 하면서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예수님이 행하셨던 많은 기적들을 떠올리며 그런 기적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부터 따르고 섬기던 자들로서(15:41),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내는 자리에까지 함께 있던 사람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15:47)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감으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왜 당시 법정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는 여자들을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여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문에서 돌을 굴려주리요”(3)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조금도 기대하거나 믿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끝까지 충성스럽게 섬긴 이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돌을 굴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돌이 이미 굴려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덤에 들어갔을 때는 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무덤 안은 어두웠을텐데 여자들이 ‘흰 옷’입은 모습을 분별한 것을 보면 아마도 빛이 날 정도로 옷이 희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눈처럼 흰 옷 입은 천사’(마28:2)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이 본 청년은 천사였습니다. 여자들은 무덤 속에서 예수님의 죽은 시체 대신에 흰 옷 입은 천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본 여자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더 큰 ‘놀라움’이었습니다.
  청년은 놀라는 여자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청년은 먼저 놀라지 말라고 하며 여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왜 놀라지 말라고 하였을까요?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충분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여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들의 생각 속에 오로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은 여자들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6b)” ‘그가 살아나셨다’ 헬라어로 에게르쎄(ἠγέρθη)인데 이는 수동태로서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일으켜 살리신 것입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것과 시신을 무덤에 장사하는 것까지 다 지켜보았는데 청년은 “그가 살아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나셨다’ 이 한마디는 여자들이 기억하고 있고 예상했던 모든 결과를 단번에 뒤집었습니다. 이 말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이고 장엄한 말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의 핵심이고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귀신과 질병을 다스리고 치료해주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심으로 자연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신 부활의 주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음을 이겨낸 기적적인 사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무리들로 인해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어쩔수 없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고자 적극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 영원한 심판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파하시고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고난과 죽음의 길은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통한 궁극적인 승리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동일한 부활의 보증이 되어주십니다.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습니다. 이는 당시 로마 박해 아래 있는 신자들이 끝까지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사자 밥이 되는 잔혹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부활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또 어떤 절망적인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예수님을 죽음의 자리에서 일으켜주신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들에게는 일어나지 못할 자리가 없습니다. 또 어떤 손해와 핍박도 견디며 예수님이 가신 섬김과 희생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이에게 진정한 승리의 기쁜 소식이며 진정한 소망이 됨을 믿습니다. 우리도 부활의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함으로 어둠과 슬픔과 운명의 자리에서 일어나 부활의 새 생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청년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언했습니까? 먼저 예수님의 시신을 두었던 곳에 아무 것도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낼 때 어디 두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습니다(15:47) 시신을 안치한지 대략 36시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을 마치시고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28)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만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들의 제자의 삶은 실패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을 처음 만난 곳으로 초청하시어 그들이 제자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십니다. 처음 제자를 부르신 분도 예수님이시오,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부르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제자들한테 빨리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여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가? 8절을 보십시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그들은 몹시 놀라 떨면서 무덤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무서워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여자들이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의 기록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입니까? 이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워서 덜덜 떨며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은 ‘놀라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제자들에게 가서 이 소식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이는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드러났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청년의 말은 여자들의 이해와 감각을 완전히 뛰어넘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을 한 것입니다. 놀라운 감정이 너무 커지면 무서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드러났을 때 정신이 나갈 정도로 놀랐습니다.(1:22) 사람을 가장 놀랍고 두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반응은 출애굽기에서 시내산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떠올리게 합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출19:16-18)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은 그 자체로 사람을 두렵고 공포에 떨게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임재하신 사건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로마서 1장4절은 말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밝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이 땅에서 가르치신 교훈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절대적인 진리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여자들의 반응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시작하신 복음이 그의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음을 놀라움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록이 당시 박해 받는 신자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까? 신자들은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죽음보다 사람을 놀랍고 두렵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그보다 더 무섭고도 사람을 압도하는 소식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구원을 경험한 후에도 왜 계속해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실제로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때 죽음보다 더 ‘무서운’ 부활이 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음은 더 이상 신자들에게 최후의 적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죽음은 정복되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이제 죽음을 부활의 한 과정으로서 부활 소망으로 기꺼이 사망권세를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 교회공동체가 오랜 기간 거센 박해를 견딜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신 후 제일 먼저 누구에게 보이셨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이 날은 인류 역사에서 죽음 권세가 정복되고 새로운 시대가 개막된 역사적인 첫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녀를 자신의 부활의 최초의 증인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어떤 사건에서 처음 목격자의 진술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예상했던 대로 제자들은 마리아가 전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오던 길로 되돌아가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율법에서 증언의 확실성을 보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은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부활은 사람들이 기대하거나 쉽게 믿을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전한 부활의 증거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후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이들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부활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이들이 안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전한 말씀이 기초가 되어 후에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가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할 때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죽음의 세력에 지배당하며 무기력하고 허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바라봐야 합니다. 부활신앙이 있을 때 신자는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잠시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넘어질수 있고 삶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할 때 다시 일어나 결국 최후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이대민형제님은 겉모습은 준수한 청년이 아무런 열정 없이 무기력한 삶을 살다가 부활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지금은 누구보다도 말씀을 사모하고 찬양팀, 성가대, 회장단으로 앞장서서 역사를 섬기며 활기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신앙을 덧입음으로 죄와 죽음의 세력을 능히 물리치고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며 생명력 충만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제 2장,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4-20)
  1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완악한 마음은 전에 예수님을 고발해서 죽이려고 했던 종교지도자들의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3:5) 그들은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위가 있으며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사실에 있어서 제자들의 반응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 죽음은 실패라는 생각이 그들의 생각 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꾸짖으심으로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부서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하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버리고 부활의 소망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이 가신 고난과 죽음의 길,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의 결정체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중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15-18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부활의 소식을 반복해서 듣고도 믿지 않는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너무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부족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이 갖는 엄중한 무게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셨습니다.(롬1:16) 나아가 복음은 심판과 정죄를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재판장이 되십니다.(딤후4:1)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증명하는 초자연적인 사건들입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는 것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신 후 하늘로 올려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우편은 권위와 통치의 자리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완결되고 하늘에서의 새로운 사역에 들어가셨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예수님의 사역은 이제 예루살렘을 넘어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통해 계속됩니다. 그러나 복음역사는 제자들과 교회 공동체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특히 표적을 통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확증해주십니다. 이를 믿을 때 변함없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거 자기만을 위해 열심히 살던 자를 학창시절 찾아오사 “나를 따라오라”하심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며 캠퍼스에서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얼마 전부터 매주 토요일 혜경동역자와 캠퍼스 피싱을 나가고 있지만 복음을 들으려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부활절 메시지를 준비하고자 할 때 저의 마음에 큰 기쁨이나 감격도 없고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의료계 사태를 겪으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에 갇혀 부활의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수시로 뉴스를 검색하느라 말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가 살아나셨다” 말씀이 저의 심령에 임했을 때 죽음을 파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압도적인 권세가 느껴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더 이상 아무런 힘을 쓸 수도 없고 나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체적으로 깨달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서 나의 믿음 없음과 완악함을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저에게 소망을 끊지 않으시고 나를 통해 캠퍼스 구원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부활의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어려운 현실 앞에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는 제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믿음없음을 인정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박해받던 신자들은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일상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처음 들은 여자들 역시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죽음이 아닌 부활로 인한 놀라움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히 어떤 소식보다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소식이 기쁨을 넘어 얼마나 무섭고 놀라운 소식인지 깊이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이 부활의 소식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두렵게 하고 놀라게 하는 죽음 권세를 압도하는 권위로 우리 심령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부활의 증인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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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2강]권위 있는 새 교훈 관리자 2024-03-17 215
855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강]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관리자 2024-03-10 309
854 디도서 [2024년 디도서 제2강]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 관리자 2024-03-03 196
853 디도서 [2024년 디도서 제1강]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책망하게 하라 관리자 2024-02-25 220
852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관리자 2024-02-18 272
851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관리자 2024-02-11 234
850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3강]온전한 사람이 되어라.. 관리자 2024-02-04 230
849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2강]참된 믿음 관리자 2024-01-28 219
848 야고보서 [2024년 야고보서 제1강]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관리자 2024-01-21 265
847 디모데후서 [2024년 신년 말씀 3강]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관리자 2024-01-14 207
846 마가복음 [2024년 신년 말씀 2강]하나님을 믿으라 관리자 2024-01-07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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