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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4-28 (일) 10:52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마가복음_제7강-1.hwp (89KB) (Dow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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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7강]그가 누구이기에
2024년 마가복음 제7강                                                           고 영훈
그가 누구이기에
말씀/ 마가복음 4:35-5:20
요절/ 마가복음 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오늘 말씀에서부터 예수님은 무리들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제자 훈련을 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두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광풍을 잠잠케 하신 사건과 거라사 광인의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자연 세계 뿐 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까지도 통치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인생의 광풍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또 양들에게 역사하는 악한 영들도 믿음으로 쫓아 낼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가를 잘 깨닫고 예수님을 믿는 견고한 믿음의 종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광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35-41)
35절을 보십시오. 그 날 저물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여러 비유로 말씀을 가르치시고 피곤하시지만 바다 저편 이방 땅에서 복음을 듣지 못해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 때문에 해가 저물 때이지만 바다 저편으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배 타고 떠난다는 말에 M.T 가는 학생들 마냥 기뻐하며 즉각 배를 준비하였습니다. 때마침 바다 위로 불어오는 저녁 바람은 하루의 피곤을 씻어 주는 듯 그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했습니다. 바다 이편에서 저편으로 가는 것은 우리 인생의 항해에 비유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 항로를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예수님을 선장으로 모시고 목적지가 분명한 항해를 하기 때문에 안전한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는 도중 비바람이 몰아치고 배가 흔들리더라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므로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 항로에서 누구와 동행하는 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항상 함께 하셔서 우리를 친히 인도하시고 안전하게 인생 항로를 마치게 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입니다. 이 시간 우리 인생을 위험과 어려움에서 지키시며 하늘나라까지 무사히 이르게 하시는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37절을 보십시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조용하던 바다에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나더니 거세게 불어 닥치는 바람에 물결이 배에 부딪치며 배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 온 제자들이라도 이 광풍은 그들의 노력과 의지로 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배에 점점 물이 많이 들어오고 급기야 가라앉을 위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지중해 해면 보다 300미터나 낮은 데다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지형 상 특징 때문에 북쪽 헬몬산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와 남방의 아라비아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갈릴리 바다에서 충돌하면 큰 광풍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 항로에서도 이런 예기치 않는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전쟁의 광풍, 자연재해(지진, 태풍, 홍수, 화재,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 경제적인 광풍(I.M.F,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사업 부도, 파산 등), 질병의 광풍, 교통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같은 광풍이 발생합니다. 이런 광풍이 왜 일어나는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광풍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광풍은 사람들의 지식, 경험, 힘이나 기술 등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광풍을 통해 하나님 없이 교만하게 살아가는 인생들과 신자들을 연단하십니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자기의 능력을 믿고 자고하지만 광풍을 만나면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두 손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도움을 청합니다. 또한 세상의 헛된 소망을 훌훌 털어 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광풍은 우리를 깊고 넓은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고 정금과 같은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합니다. 광풍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영적인 사람으로 빚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광풍이 힘든 것이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며 적극적으로 믿음을 배우고자 해야 합니다.

광풍 앞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다릅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런 와중에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광풍이 예수님의 귀에는 마치 자장가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어떠합니까? 제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다가 절망하고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들은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을 깨우며 자기들이 죽게 되었는데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원망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는 광풍 앞에서 제자들의 마음에 의심, 원망, 불신, 두려움의 광풍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광풍 가운데 그냥 두셨을까요? 이는 그들을 연단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큰 뜻을 두셨습니다. 그들이 지금은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지내고 있지만 장차는 전 세계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할 일꾼이 될 것을 믿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광풍을 견디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무관심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큰 소원을 두시고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광풍 훈련을 통하여 내면이 강해지고 믿음의 뿌리가 견고해지며 어떤 난관도 도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정예 용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 되시는지 모르고 또 광풍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원망 섞인 목소리이지만 절망 중에 주님께 나아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미친 듯이 날뛰던 바람과 바다가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여기서 “꾸짖고 잠잠하라”는 표현은 귀신을 내쫓으실 때 하시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1;24,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을 때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잠잠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광풍 이면에 사탄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피곤하여 주무시고 있는 사이에 광풍을 일으켜 인류 구속 역사를 파괴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배 안에는 구속 역사의 주인공인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결코 예수님이 타신 배를 파선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능히 바람과 바다도 잠잠케 하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시고 뭍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어떤 사탄의 세력도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잠잠하게 됩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광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을 향하여 책망하셨습니다. 이는 그들 내면 가운데 발생한 마음의 광풍을 잠잠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탄은 바다뿐 아니라 제자들 마음에 광풍을 일으켜 두려워 떨게 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원망하고 불신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능력이 없느냐, 또는 기술이 없느냐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이는 광풍 앞에서도 예수님의 사랑과 그의 권세를 믿는 믿음입니다. 보통 때는 믿지만 문제 앞에서는 불신하는 그런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라 문제 앞에서도 변함없이 믿는 살아 있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주무신다고 해서 그들을 안 도와주신다고 원망하는 것은 실제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르심 받은 제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가시며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하늘이 무너져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과 선한 주권과 섭리입니다. 이 믿음은 인생의 나침반이요, 닻과 같아서 나의 삶에 방향이 되고 어떤 역경에서도 지탱해 주는 힘이 됩니다. 우리는 능력 있는 성경 선생이요,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실전에서 믿음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실제 문제를 만나면 믿음을 배우고자 하기보다 상황 탓, 조건 탓을 하며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립니다. 이런 자세로는 항상 연약하고 한계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역경이나 환난은 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풍을 만날 때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원망할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적극적으로 광풍을 극복하는 산 믿음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믿음을 배운 자는 또 다른 광풍을 만날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4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제자들은 바람과 바다도 순종시키는 예수님의 권위에 완전히 압도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이 예수님에 대해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랍비)에서 창조주 하나님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자들이 현실의 문제 해결에 급급해 하지 않고 예수님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성장입니다. 우리도 어떤 사건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특히 환난이나 역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주로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음을 덧입을 수 있게 됩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광풍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광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요, 한마디 말씀으로 자연 세계를 다스리시는 권세자가 되심을 알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알게 될 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만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경멸하십니다(삼상2:30). 우리의 인생 항로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술도 필요하고, 세상사는 지혜와 경험도 필요하고, 물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광풍을 만날 때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항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권세를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절대적인 섭리와 주권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광풍을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희망찬 진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희망은 절망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들 앞에는 시퍼런 홍해가 가로 놓여 있었고, 뒤에서는 중무장한 애굽의 군대가 맹렬하게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이 때 지도자 모세는 백성들에게 믿음의 말을 하였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모세도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두려웠을 것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이 명령에 순종하여 바다를 향해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믿음으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심으로 마른 땅이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인생길을 갈 때 이런 홍해와 같은 장애물 앞에서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믿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도전하면 불가능한 가운데서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 우리 앞에 있는 홍해는 믿음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 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길을 내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섭리는 역경의 때라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탄이 내 속에서 속삭이는 거짓 소리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역경을 이기고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인생 항로를 끝까지 완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거라사 광인을 구원하신 예수님(5:1-20)
예수님께서 바다에서 광풍을 잠잠케 하신 후에 거라사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로마의 10개 도시인 데가볼리 중의 한 도시로 이방 땅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곧 머리가 헝클어지고 상처투성이요 벌거벗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마가는 그가 “더러운 귀신 들린 자”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귀신 들린 자의 특징이 어떠합니까?
첫째로, 그는 무덤에 거처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가정과 사회를 떠나 더불어 살 수 없는 무덤을 거처로 삼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정과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견디다 못해 무덤까지 왔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내면 문제로 대인 기피증이 생겨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그랬을까요? 어쨌든 이 사람이 가정과 사회를 떠나 아무도 없는 무덤에서 거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내면은 무덤과 같이 죽음의 요소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로, 자제력을 상실하였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사람들은 그가 미쳐 날뛰며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쇠사슬과 고랑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괴력을 발휘하여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습니다. 힘으로는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귀신은 그를 아무도 없는 무덤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곳은 법도, 까다로운 규범도, 제도도, 관습도 없었습니다. 옷을 입지 않아도,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참 자유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자유 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쇠사슬보다 더 강한 귀신이 그를 사로잡아 노예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로, 그는 자해하고 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그는 무덤과 산을 뛰어다니며 세상을 저주하는 온갖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답답한 내면을 주체할 수 없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래도 내면의 욕구불만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돌로 자기 몸을 자해하였습니다. 귀신은 사람의 내면에 욕구불만을 불러일으키고 또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자학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귀신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가 왜 이처럼 몹쓸 폐인이 되었을까요? 사회 심리 학자들은 사람의 행동 양식을 그 사람의 성격과,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과, 그 시대의 문화라는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이 거라사 광인도 데가볼리 지방의 음란하고 육신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헬라와 로마의 퇴폐적인 문화를 즐기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의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이렇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사람의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죄의식을 경감시키기 위해 죄를 합리화시키거나, 다른 것에 핑계를 대거나, 아니면 약물 투여로 치료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이렇게 못쓰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그 내면에 역사하는 귀신의 세력 때문입니다. 사람이 연약할 때 병균이 침입하여 병을 일으키듯이 영혼이 약해질 때 귀신이 들어와 지배하게 됩니다. 사람의 영혼을 약하게 하는 것은 인간 조건이나 주위 환경이 아니라 그 속에 역사하는 죄로 인한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는 청지기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영육 간에 건강한 삶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불행하게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유롭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더 이상 존재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죄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지 않을 때 중립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사울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의 지배를 받았을 때는 겸손하고 훌륭한 왕이었으나 그가 왕이 된 후 교만해져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 악령이 그를 지배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면 자연히 사람들과도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사탄의 지배를 받아 사탄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사탄은 이런 사람 속에 역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부담스럽게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학대하게 합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거라사 광인도 무덤 사이에서 자신을 학대하며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실상 구원을 애타게 바라는 영혼의 절규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외면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보시는 순간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를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첫째,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6-8)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는 순간 그 속에 귀신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간파하시고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자 그는 달려와 예수님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그는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관계성 맺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는 그 속에 있는 귀신 때문에 분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도우실 때 이 사람과 귀신을 분리하여 보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여기서 “그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영적 존재요, 말씀을 사랑하고 진리대로 살고자 하는 본래의 자아를 말합니다. 그런데 귀신이 그 사람 안에 들어가서 인격을 파괴시키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영적인 소원을 앗아가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을 도울 때 그 사람과 그 사람 안의 귀신을 분리해서 볼 줄 아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혈과 육의 무모한 싸움을 하지 않고 기도와 진리의 말씀으로 영적인 싸움을 하며 잘 도울 수가 있습니다.
둘째, 네 이름이 무엇이냐(9-17)
9절을 보십시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예수님이 그에게 이렇게 이름을 물으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와 전 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물으신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본래 어떤 자였는데 지금 이렇게 되었는지 본래 자아를 찾도록 돕기 위해 하신 질문입니다. 거라사 광인은 귀신 들려 본래의 자아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가 무덤 사이에서 소리 지르며 제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 속에 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이지 본래 그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 이름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이름은 귀신 때문에 숨겨져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질문하시므로 그의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본래 이름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들은 그는 예수님 앞에 귀신 들린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였습니다. “...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군대”란 “레기온” 즉, 로마 군인 약 6000명으로 구성된 군단을 말합니다. 이를 볼 때 이 사람 속에 6000마리의 떼 귀신이 역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대답은 그가 그 동안 자아를 상실하고 귀신의 세력 때문에 얼마나 고통 받았는가를 고백한 것입니다. 그의 고백으로 인해 정체가 탄로 난 귀신들은 더 이상 그 사람 속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귀신들은 돼지 떼에게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귀신들은 즉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들이 일제히 비탈로 내리 달아 바다에 빠져 몰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귀신들의 간청을 허락하시고 돼지 떼 2000마리를 희생시키셨나요? 이는 한 사람을 귀신의 세력에서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시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2000마리의 돼지 가격은 요즘 시세로 약 8억원 정도 합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한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려 쓸모없이 된 이 사람도 천하보다 귀하게 여겨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구원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결과 귀신 들렸던 자가 정신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단정히 옷을 입고 이발과 면도도 하고 환하게 웃으며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자 아주 미남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강한 귀신에 사로 잡혀 폐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이 임할 때 귀신이 쫓겨나고 아름답고 건강한 새 모습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보고도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들은 한 몹쓸 영혼이 구원 받고 온전해진 것으로 기뻐하기보다 돼지 2000마리를 잃게 된 것에 충격을 받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물질주의에 눈이 어두워 메시아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셋째, 주께서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18-20)
18절을 보십시오. 이제 정신이 온전해진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더 깊이 배우고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이처럼 악령이 쫓겨나게 되면 영적인 소원이 생겨서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자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간청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사명을 주십니다. 1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동안 그에게 집과 사회는 그를 속박하고 스트레스를 주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변화된 그에게는 그의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가 가족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그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고 불쌍히 여기셨는가를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훌륭한 전도 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성경지식보다 나에게 행하신 큰일을 잘 깨닫고, 어떻게 불쌍히 여기신 것을 기억하며 이를 간증하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의 모든 죄의 값을 치르시므로 내가 정신이 온전한 자가 되고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가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제목이 되고 또한 이를 끝까지 감당할 힘이 됨을 믿습니다.

저는 불신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대학 시절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저의 인생 항로에 선장으로 모시고 지금까지 예수님과 함께 안전한 항해를 하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은 저의 인생길 가운데 크고 작은 광풍 속에서 믿음을 배우게 하시고 더욱 더 예수님을 깊이 알아 가게 하셨습니다. 작년에 저는 건강 문제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작년 6월 경 왼쪽 서혜부 탈장으로 수술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경에 성탄 1강 “은혜를 받은 자” 말씀을 준비하던 중 오른쪽 배가 너무 아파 지금껏 겪어 보지 못했던 심한 통증으로 집에서 떼굴떼굴 구르며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이 심한 통증은 몇날 며칠 반복하며 저를 심히도 괴롭게 했습니다. 저는 이 와중에도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귀한 성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를 전하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공격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들에게 기도 요청을 드리고 저도 간절히 기도하며 메시지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비천한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게 하여 주신 그 놀라운 사랑과 섭리에 감격하여서 눈물로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병원을 찾아가서 진찰 결과 요로 결석으로 판명되어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건강하였던 청춘이 다 지나가고 점점 육신이 약해져 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제 마음에도 광풍이 불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지금까지 저와 동행하여 주신 예수님이 저에게 어떤 분이 되시는지 깨닫고 깊이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창조주이시며, 저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 인도하여 주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제가 앞으로 남은 제 인생 가운데 더욱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떤 인생의 광풍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내며, 캠퍼스의 사탄에게 눌려 있는 도움이 필요한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목자요, 사명인의 삶을 잘 감당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광풍을 잠잠케 하시고, 거라사 광인의 군대 귀신도 쫓아내셨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초월적인 권세를 행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인생의 광풍도 잠잠케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내면에 역사하는 어떤 더러운 귀신도 쫓아내시고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힘써 전함으로 어두움에 사로잡힌 자들을 구원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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