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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1-27 (일) 10:50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2년_누가복음_제35강-1.hwp (412KB) (Down: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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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35강]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2022년 누가복음 제 35 강                                                      오정훈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말씀 / 누가복음 20:19-21:4
요절 / 누가복음 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종교지도자들의 2가지 질문과 예수님의 1가지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 나라에 대한 자세와 하나님께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앞에 죽은 자가 되지 않고 산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또 과부와 같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참된 경건과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20:19-40)
19,20절을 보십시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포도원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신 줄 알았지만 회개하지 않고 마음이 더 완악해져 오히려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21절입니다.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그들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달콤한 말로 예수님을 치켜세우며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의 간교한 질문이 무엇입니까? 22절입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유대인들은 BC 63년부터 로마의 통치를 받으며 해마다 세금을 바쳤습니다. 이 세금은 로마 황제에게 직접 내는 2데나리온의 인두세로 남자는 14세 이상, 여자 12-65세까지 반드시 로마 은전 데나리온으로 바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금은 이교신전을 유지하고 로마상류층의 사치생활에 이용되었습니다. 문제는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로마 황제를 인정한다는 의미였기에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심을 믿는 유대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지방 가믈라 요새 출신 유다는 인두세 납부 거부운동을 벌였고 이로써 열혈당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인두세를 내는 데나리온에는 황제를 신격화하는 글이 쓰여져 있어서 이 동전을 쓰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바치라’ 하시면 역시 세리들과 친하더니만 로마의 앞잡이였구나 비난받을 것이고 ‘바치지 말라’ 하시면 로마 정권에 저항하도록 선동하는 것이 되어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24절입니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동전 앞면에는 당시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 가이사(AD 14-37) 초상과 함께 “신(神)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황제”(신으로 추앙하는)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는 황태후 리비아의 좌상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이는 종교지도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으로 가이사의 권세를 인정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롬13:1). 예수님은 지상의 권력을 무조건 부인하는 과격한 혁명가도 아니시고, 무조건 충성하는 국가주의자도 아니십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시는 메시아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천국 백성인 동시에 세상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 땅의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특히 조세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교통법규도 잘 지키고 직장 생활도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그때 존경 받는 시민이 될 수 있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국가에 대한 의무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의무도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이 보실 때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로서 만물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첫 열매, 하루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데나리온에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듯이 우리의 마음과 몸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므로 우리의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코로나로 인해 바쳐도 그만 안 바쳐도 그만인 비대면 시대가 되었지만 보이지 않을수록 우리 몸과 마음을 힘써 하나님께 바쳐야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으로 힘든 시대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정치적인 질문을 하던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물러가자 이번에는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이 나와 종교적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사두개라는 말은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인 사독에게서 유래했는데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원의 핵심세력으로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귀족 계급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여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사도행전23:8). 그들은 영생이나 장차 올 심판, 사후의 세계를 인정치 않으므로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만 집착하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이는 신명기 25장5-10절에 나오는 수혼법(嫂婚法)으로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기업을 잇게 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이 수혼법을 기초로 해괴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29-33절을 보십시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으면 부활 때에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외경인 「토빗서」에 나오는 것으로 토빗의 친척인 아름답고 신앙이 깊은 사라는 수혼법에 기초해 일곱 번 결혼했으나 일곱 번 모두 신혼 첫날 밤에 남편이 죽고 맙니다. 이는 아스모데오라는 악귀가 역사하였기 때문인데 사라의 여종들은 사라가 기가 세서 남편들을 죽인다고 모욕하였습니다. 사라는 이런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므로 결국 토빗의 신실한 아들과 다시 결혼해서 살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고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면 하나님이 불행을 선으로 바꾸어주신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해괴한 이야기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런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34-3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 세상에 사는 우리는 늙고 죽기 때문에 종족을 보존하고 번식하기 위해서 장가가고 시집갑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는 천사와 같이 불멸의 존재가 되기 때문에 시집가고 장가갈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늙고 병들어 죽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닌 몸으로 부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부활을 현세의 연장으로 생각하여 만약 부활이 있다면 일곱 형제끼리 아내 쟁탈전의 비극이 벌어질 것이니 부활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현재 잘 먹고 잘 살면 되었지 부활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의 모토는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장차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고전15:42-44). 그때는 다시는 죄의 소욕에 지배당하지 않고 더 이상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썩어 없어질 우리 육체로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둘째로 그들은 성경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에는 부활이라는 말이 없다고 하여 부활의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인정하는 출애굽기에서 부활의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37절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이 말씀은 출3:15말씀으로 아브라함은 모세보다 4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고, 야곱의 하나님이었다”라고 말씀하셔야 할 것 같은데 모두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오래 전에 죽어 땅에 묻혔지만 부활하여 살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부활의 새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이 땅을 떠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는 그들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38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죽은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이 없기 때문에 조그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운명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능력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산 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이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살기 때문에 항상 살아 있습니다. 말이 살아 있고 눈빛도 살아 있고 행동도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살아계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삶 가운데 인격적으로 역사하시고 인도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살아계셨고 모세에게도 살아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믿는 자와 함께 하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이 하나님을 믿고 산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죽은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으셔서 또 나에게 소망을 끊으셔서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문제라 생각하고 죽은 자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언제나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와 함께 하셔서 승리를 주시고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았지만 100세가 될 때까지 그 약속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라의 경수도 끊어져 그는 죽은 자와 방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오히려 견고하여져서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b)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권능의 주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현실의 어려움과 한계로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건강문제 자녀문제 장래문제로 낙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능히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가 되어 하나님을 권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서기관의 외식과 과부의 참된 경건(20:41-21:4)
4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당시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혈통에서 나오는 인간 메시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다윗은 그의 시편(110:1)에서 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42,43절입니다.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앞의 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고 뒤의 주는 다윗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그 원수를 정복하실 때까지 그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다윗이 자기 자손에서 나올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른 것은, 그리스도가 단지 다윗의 혈통에서 난 인간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다윗을 초월하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곧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이로써 자신의 신성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죽이고자 해도 예수님이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메시야가 되심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이 예수님께 맞추어 인생의 집을 지어나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의 외식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45,46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풍채를 더하고 위세를 가장하기 위해서 긴 옷을 입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손을 들고 거룩한 척 기도하므로 사람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46절의 회당의 높은 자리란 회당의 토라 상자가 놓은 곳의 맞은 편 특별한 자리를 말하며 잔치의 윗자리는 잔치 주인의 옆자리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이렇게 특별대우 받으므로 사람들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서 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47절입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길게 기도하여 경건한 척 하였지만 실상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앙심 깊은 과부들을 속여 가산을 삼켰습니다. 첫째는 성전 관리 맡은 자들이 과부들이 성전에 바친 재산을 부당한 방법으로 가로채는 것이었고 둘째는 과부들의 환대를 악용하여 초청을 받아 지나치게 섬김 받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법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과부의 가산을 삼켰는데 예수님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십니다. 많이 알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일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고,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됩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받을 심판이 더 무겁고 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제자들은 더욱 겸손해야 하며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대조하여 멸시받던 과부의 헌금하는 모습을 통해서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2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부자들은 얼마나 헌금을 했을까요? 당시에는 지폐가 없었고 전부 다 동전이었으니 그 소리나 크기로 얼마나 헌금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부자들은 그들의 여유로운 가운데 적지 않게 헌금을 했을 것입니다. 반면 어떤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한 렙돈은 히브리 화폐 중에 가장 작은 단위로서 1/128 데나리온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품삯을 8-10만원 정도로 계산하면 두 렙돈은 10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500원 짜리 동전 두 개를 헌금함에 넣은 것인데 그 소리가 쨍그랑하고 날 때 과부는 부끄러움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과부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헌금하였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3,4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 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과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활비 (bivo")’는 ‘생명’, ‘생애’를 뜻합니다. 부자들은 넉넉한 가운데 넣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내기 쉬웠지만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이 전부였기 때문에 전부다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저녁 반찬을 위해서라도 한 렙돈만 드리고 한 렙돈은 남겨둘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자신의 모든 생명을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은 자기 생명을 바친 것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과 같고 사르밧 과부가 먹고 죽으려고 했던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을 엘리야에게 준 것과 같습니다(열상17:8-16). 두 렙돈에는 하나님께 대한 과부의 진심과 헌신이 담겨있습니다. 또 이렇게 생활비 전부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부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이니 이판사판이다 하고 하나님께 생활비 전부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친히 자신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드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드리는 것은 기뻐 받지 않으시고 감사와 기쁨으로 즐거이 드리는 것을 받으시고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우리도 이 과부처럼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과 진심이 담긴 아름다운 헌신을 드리므로 하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래 전에 어느 선교사님이 저에게 영원한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붙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청년의 열정으로 살고자 애를 써왔고 이날까지 그런 스피릿으로 살고자 투쟁하여 왔습니다. 고난 가운데 쉽게 절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왼쪽 고관절이 저리고 아프게 되자 심령이 많이 위축되고 힘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지만 축구를 하고 나면 허리가 불편해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열심히 기도한다고 저의 간구가 항상 응답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간구는 잘 들어주시면서 왜 저에게는 이러게 야박하신가 회의와 불신이 생겨났습니다. 떨어지는 낙엽과 머리 감을 때마다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서글픈 마음 금할 길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의 유일한 기쁨은 제가 집에 갈 때마다 공중제비를 돌며 저를 반겨주는 강아지와 제가 먹고 싶다는 것은 다 해주는 동역자 뿐이었습니다. 저는 주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죽은 자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살아있다 하십니다. 문제는 제가 믿음이 없어서 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과거에도 살아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믿는 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믿지 못해 죽은 자처럼 지내 왔던 것을 이 시간 회개합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다시 산 자가 되어 소망 가운데 기도하며 이 하나님을 몰라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믿음을 심어서 산 자가 되게 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소망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 소망 가운데 과부처럼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므로 그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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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강]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관리자 2023-03-05 189
79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강]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관리자 2023-02-26 200
798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4강]양 무리의 본이 되라 관리자 2023-02-19 178
797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3강]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라 관리자 2023-02-12 209
796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2강]왕 같은 제사장 관리자 2023-02-05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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