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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1-26 (일) 10:54
분 류 느헤미야
첨부#1 2023년_느헤미야_제2강-1.hwp (97KB) (Down: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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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느헤미야 제2강]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2023년 느헤미야 제2강                                                        오정훈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말씀/ 느헤미야 4,5장
요절/ 느헤미야 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은 성벽 건축 과정에서 부딪히는 외적, 내적 어려움이 무엇이며 지도자 느헤미야는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가를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에서 느헤미야는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기억해달라는 기도로 끝내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나의 선행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기억하므로 이 시대 영적 성벽을 세우는데 따르는 외적, 내적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종들로 귀하게 쓰임 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4장)
4:1절을 보십시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이름만 들어도 기분 나쁜 인물 산발랏이 또 나옵니다. 그는 유다 사람들이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비웃었습니다. 그냥 비웃으면 됐지 왜 크게 분노한 것일까요?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큰 분노 속에는 절망과 두려움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산발랏은 유대인들이 성을 건축한다고 하자 콧방귀를 끼며 비웃었는데,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조직적으로 진행되자 잘못하면 성벽이 중건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두려움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2,3절입니다.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산발랏은 유다 사람들을 미약하다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사람 수도 적도 힘도 없고 정말 볼품없는 이 유다 사람들이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이처럼 큰 규모의 공사를 마치기란 턱도 없다는 것입니다. 불에 탄 돌은 돌에 있던 습기가 말라 석회암에 불과하기 때문에 건축재료로 쓸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죽은 돌을 흙무더기에서 꺼내도 아무 쓸모없어 다시 일으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비야는 그들이 쌓는 그런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거라고 비웃었습니다. 여기서 돌은 사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벧전2:4,5). 특히 ‘불탄 돌’은 유다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예루살렘 성이 불탈 때 유다 사람의 희망도 불탔고, 생기도 메말라버렸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죽은 사람들과 같이 된 것입니다. 대적들은 건축 재료도 쓸모 없을 뿐 아니라, 유다 사람들도 미약하고 쓸모없다고 업신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산발랏은 이 말을 건축하는 자 앞에서 하였는데 이는 마치 앗수르 군대장관 랍사게가 유다 백성들에게 절망감과 불신을 심기 위해 그들 듣는 앞에서 히스기야 왕과 유다를 모욕한 것과 비슷합니다(왕하18:28-35). 유다인의 기를 죽이고 스스로 작게 여겨서 그만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4,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대적들의 말을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혈과 육의 싸움을 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나아가 부르짖었습니다. 자신들이 업신여김 당하는 것을 들어달라 간구하였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단순히 저주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힘입어 끝까지 성벽재건역사를 마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지도자는 문제가 생기면 기도해야 합니다. 같이 흥분하든지 낙담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믿음의 싸움을 감당했을 때 성벽건축역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백성들이 대적들의 말에 요동하지 않고 성벽 건축에 마음을 들였을 때 성이 모두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대적들이 비웃고 조롱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적들은 비웃고 조롱하는 첫번째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협박하고 위협을 가하고자 하였습니다. 7,8절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아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여기서 ‘중수’는 ‘아루카’(repairing)라는 단어로, 상처가 치유되고(healing) 상처 위로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벽 중수뿐 아니라 유다 백성들이 회복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대적들은 심히 분노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다 사람들을 치고 요란케 하겠다고 위협을 가하였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대적들이 위협하자 유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10절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대적들의 위협하는 말을 들은 유다 백성들은 더이상 성을 건축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두려움으로 힘이 빠져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또 원수들의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성벽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대적들의 위협을 더 절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성벽역사를 중단하고 자기네한테로 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열 번이나 찾아온 걸 보면 그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성벽 건축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13절입니다. 백성을 그들의 종족을 따라 성벽 뒤에 있는 낮고 개방된 장소에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무장하게 하므로 적들로 하여금 전쟁에 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었습니다. 14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첫째로 느헤미야는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신7:21 말씀입니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느헤미야는 대적들에게 향해 있던 백성들의 주의와 시선을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께로 돌렸습니다. 대적들은 자꾸만 백성들의 시선과 관심을 자신들에게 집중시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선을 흩으려고 합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이 분산되고 멀어질 때 두려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미약하여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모습만 들어와서 주눅 들어 힘이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일수록 느헤미야처럼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며 애굽의 장자를 멸하신 크고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대적들의 조롱과 위협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결국 누구를 바라보는가, 누구를 기억하는가 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우리는 현재 일대일 통한 캠퍼스 제자양성의 역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 굉장히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나타내는 학생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우리는 아주 적은 수이고 반대하는 분위기가 커질 때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때 미약한 자신만 바라보지 않고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과 함께 하사 능히 대적들의 방해를 이기고 성벽재건 역사를 완성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느헤미야는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해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싸움이지만 동시에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건축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건 당장은 안전할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대적들에게 패하는 길입니다. 우리도 캠퍼스를 떠나 집에만 있으면 편하고 안전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침륜에 빠져 패하는 길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대적하는 세력들이 많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게 진정으로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들을 위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으로 복음전파와 제자양성의 전투에서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싸우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최후의 승리를 얻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패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대적들은 자신들의 의도가 드러난 것을 알고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느헤미야의 리더쉽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지 않고 하나님께 나가 간절히 기도하고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싸우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도우사 대적의 계획을 폐하게 하였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십니다. 16-23절 보십시오. 그때부터 백성들은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건축을 감당하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은 절반이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로 무장하였습니다. 짐 나르는 사람들은 한 손으로 짐을 나르고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습니다. 건축하는 자는 두 손으로 일하되 허리에 칼을 찼습니다. 그리고 나팔 부는 자를 세웠습니다. 대적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잠시 건축을 중단하고 무력 방어에만 집중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건축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로서 하나님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건축을 감당한 유대인들을 배워 <한 손에 휴대폰만 들고 다니지 말고> 한 손에 말씀과 기도의 병기를 붙들고 이 시대 성벽재건에 쓰임받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0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느헤미야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리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느헤미야는 1000년 전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지금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시대와 상황을 초월한 절대적인 진리로 믿은 것입니다. 이처럼 지도자가 해야할 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는 것입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예루살렘 안에서 자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집으로 오가는 시간을 절약하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건축하는 상황에 있음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느헤미야와 그의 사람들은 다 옷을 벗지 않고 물 길으러 갈 때도 병기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군대의 5분대기조처럼 무장을 풀지 않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만 예루살렘에 자게 한 게 아니라 자신과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부터 솔선수범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불평하지 않고 성벽 건축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마음을 합할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하라(5장)
5:1-5절을 보면 유다 백성들 가운데 ‘큰 부르짖음’이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아내들까지 동참한 것으로 흉년과 고리대금으로 그 형제들의 삶을 더 고달프게 한 지도자들에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아마 남편들이 성벽 건축에 동원되어 아내들이 일하면서 가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거기에 흉년까지 겹쳐 너무 힘든 상황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살 양식이 없어 얻어서라도 먹고 살아야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잡혀서 곡식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밭과 포도원이 있지만 페르시아 제국에 과중한 세금을 내기 위해 땅과 포도원을 저당 잡히고 말았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높은 세금은 악명이 높았습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고레스와 캄비세스 시대에 20%에서 기원전 5세기 말에는 40%~50%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금모으기를 하든지 뭐를 해서라도 사람들을 도울 궁리를 해야 하는데 가진 자들은 이때다 싶어 밭과 포도원을 저당잡고 심지어 자녀들까지 돈으로 사서 종으로 삼는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행태를 보며 백성들은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은데” 자신들을 형제처럼 여기지 않는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말만 ‘형제님 자매님’ 할 뿐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벌한 남남과 같았습니다. 이로 인해 ‘형제 의식’이 중요한 이스라엘 공동체 핵심 가치가 무너질 위기가 온 것이었습니다. 이런 관계성의 파괴는 지금까지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진행해 온 성벽 건축을 중단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성벽을 건축하여 대적들로부터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의 성벽을 지어 형제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또한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나님 백성이란 자들이!> 그러나 곧바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깊이 생각했다’는 말은 ‘내 마음이 나를 다스렸다’(my heart reigns over me)는 의미로 분노의 감정 속에서 냉철하게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을 찾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7절의 ‘꾸짖어’라는 말은 법적인 소송을 진행한다(accuse)는 의미로 느헤미야는 대회를 열고, 귀족과 민장들에게 율법의 정신에 호소하였습니다. 율법은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레25:35-37) 가난하여 몸이 팔리더라도 종처럼 부리지 말고 제 7년이 되면 자유하게 하라고(신15:12-15)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가난한 형제들을 생각하지 않는 귀족들과 민장들의 행동이 대적 이방 사람에게 비방거리가 된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지금까지 이방인에게 팔린 이스라엘 백성을 찾기 위하여 힘을 다하였는데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고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훼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한 가지 결단을 제안하였습니다. 10,11절입니다. 그것은 이자 받기를 그치고 꾸어 준 것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꾸어준 돈이나 물건의 ‘백분의 일’을 이자로 받았는데, 이는 연간 약 12% 이자로 당시 최소 20%, 실제로는 그 이상으로 받았던 페르시아의 이자에 비하면 낮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마저 돌려주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느헤미야가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라고 하면서 자신도 이자 받고 돈을 꾸어 주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10) 자기는 문제없고 다른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하지 않고, 자기도 문제 있다고 고백하고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고 하며, 자기부터 모범을 보이기로 한 것입니다.
귀족과 민장들이 느헤미야의 말대로 빚 때문에 가져온 재산과 자녀들을 돌려보내고, 이자를 안받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공동체를 위해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제사장들을 불러서 그들 앞에서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옷자락을 털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와 같이 그들의 집과 산업을 털어버리실 거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회중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한 것은 느헤미야의 요구가 실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물질적인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율법에 기초한 형제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14,15,17,18절을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유다의 ‘총독’으로 부임했다는 사실과 재임 기간이 12년이었다는 사실이 처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정부가 임명한 총독으로서 페르시아 제국이 거둔 세금에서 정당한 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법적으로 보장된 정당한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총독의 녹봉도 결국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그 땅 유다 백성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아가 그전까지 총독과 그의 종자들이 양식, 포도주, 은 사십 세겔(한 세겔은 노동자 4일 품삯으로, 40세겔은 노동자 다섯 달 치 품삯이었다.)을 변사또 같이 착취하고 백성을 압제하는 나쁜 관행을 거부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이고 백성의 부역이 중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6절입니다.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서는 땅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만 생기면 땅과 집을 사러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종자들도 특권의식 갖지 않고 백성들과 더불어 건축 역사에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또 총독이기 때문에 그의 상에서 먹는 사람들이 많고, 외교관례 상 이방 사람들을 대접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식비나 의전비를 다 자기 돈으로 충당했습니다. 매일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습니다. 솔로몬의 영화로운 식탁(소 열 마리 양 백 마리)에 비할 바가 되지 않지만 그는 진심을 다해 백성을 섬겼습니다. 여기에 많은 물질이 들어감에도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한 것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9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느헤미야는 백성을 위해 한 일을 기억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행동이 백성들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못 받았기 때문일까요? 혹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보시고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상을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변함없이 느헤미야처럼 하나님께 헌신하는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교회도 이런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 모임도 큰 센터가 있는가 하면 작은 센터도 있고 자립이 안되어 투잡을 해야 하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 때는 보배합을 드려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는 모임을 서로 살피고 돕는 역사가 충만했는데 요즘은 나만 아니면 돼 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점점 더 형제의식이 약해져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좀더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에 예민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헌신한들 느헤미야처럼 하루에 소 한 마리 양 여섯 마리까지 헌신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헌신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회개하고 느헤미야처럼 서로 돌아보고 헌신하기에 힘쓰므로 성전건물만 아니라 견고한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점점 무너져가는 영적 성벽과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위협 앞에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에 캠퍼스에 갔다가 자기한테 말 걸지 말라고 크게 소리 지르는 어떤 형제를 만난 후에는 캠퍼스에 나가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위협과 조롱 냉대를 생각하면 더 이상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손에 붙들고 있어야 하는 기도와 말씀의 병기를 놓치고 대신 한 손에는 늘 휴대폰이 들고 다니며 세상 정욕에 빠져 지냈습니다. 마음은 점점 이기적이 되어 어렵고 힘든 형제들을 돌아보고 섬기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얼마하지도 않는 일에 대해 주께서 기억하시고 필요한 은혜주셔야 된다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시대가 어려울수록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캠퍼스 성벽재건을 위한 믿음의 싸움을 감당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느헤미야의 때에 살아 역사하신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사람들의 조롱과 위협에도 능히 영적 성벽을 쌓도록 도우시고 계십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시 한 손에는 기도와 말씀의 병기를 들고 일대일 제자양성을 통한 캠퍼스 성벽재건역사에 힘쓰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저의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보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형제들을 돌아보고 느헤미야처럼 힘써 섬기므로 이 시대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는 종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할 때 대적들의 조롱과 위협을 이기고 영적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관심으로 이웃과 형제공동체를 돌아보므로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보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점점 영성이 떨어지는 시대에 기도와 말씀에 기초한 영적 성벽을 세우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임으로 계속해서 쓰임받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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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8강]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24-05-05 230
86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7강]그가 누구이기에 관리자 2024-04-28 229
861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6강]하나님 나라의 비밀 관리자 2024-04-21 226
860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5강]열둘을 세우셨으니 관리자 2024-04-14 297
859 마가복음 [2024년 부활절 메시지]그가 살아나셨다 관리자 2024-04-07 259
858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4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관리자 2024-03-31 301
857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3강]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24-03-24 333
856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2강]권위 있는 새 교훈 관리자 2024-03-17 318
855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강]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관리자 2024-03-10 463
854 디도서 [2024년 디도서 제2강]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 관리자 2024-03-03 293
853 디도서 [2024년 디도서 제1강]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책망하게 하라 관리자 2024-02-25 344
852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관리자 2024-02-18 374
851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관리자 2024-02-11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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