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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25 (일) 12:35
분 류 히브리서
첨부#1 2015_히브리서5강-1(오정훈).hwp (54KB) (Down: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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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히브리서 제5강]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2015년 히브리서 제5강                                                                    오정훈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말씀/히브리서 5:11-6:20
요절/히브리서 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길을 가다 보면 장롱면허10년차 혹은 3시간째 직진 중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운행하는 차들을 보게 됩니다. 다 초보들입니다. 이런 차 뒤에 따라가면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확 추월하고 싶어집니다. 본인들도 얼마나 답답할까요? 아마 본인들도 그런 초보에서 벗어나 한 손으로 운전하는 완숙한 경지에 이르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보에 머물러 있으면 안되고 성장하여 완전한 데로 나가야 합니다. 완전한 데로 나갈 때 신앙생활의 맛을 알게 되고 열매 맺는 기쁨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영적 성장, 성숙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나는 어떤 점에서 성장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는가? 배우고 결단하길 기도합니다.

1.완전한 데로 나아가라(5:11-6:3)
  5:11을 보십시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저자는 5장에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멜기세덱에 대해 좀 더 말하고 싶었지만 히브리 성도들이 수준이 안되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듣는 것이 둔하므로’ 이는 머리가 나빠서 말끼를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닫는데 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진리를 설명해주어도 알 수 있는 사람과 알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5:12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때가 오래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경력이 오래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믿음을 가진지 아마 30년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JBF 아이들도 자신의 신앙연수가 BBF때부터 합쳐서 10년이 넘는다고 말합니다. 십년 넘었으면 그 값어치를 하는 것일까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히브리 성도들도 성경선생이 되어야 마땅했지만 선생은 고사하고 하나님 말씀의 초보에 대해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 큰 어른이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다시 기저귀나 차고 젖병을 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저자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히브리 성도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젖은 빨아서 삼키기만 하면 되는 원초적이고 초보적인 음식입니다. 이런 젖을 먹는 자는 어린아이 곧 유아로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입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은 머리로는 들었으나 실제 순종해보지 않으므로 그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반면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입니다. 맛있고 영양분이 많은 음식들은 대개 단단합니다. 돼지족발 꼬리곰탕 LA갈비 전부다 단단하고 조금은 질깁니다. 이런 단단한 음식 속에 담겨진 영양분은 젖에 담긴 영양분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지각 곧 강인한 치아를 사용해서 잘근잘근 씹어 먹을 때 그 깊은 맛을 은미하게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영양분을 얻게 됩니다. 단단한 음식은 의의 말씀 곧 기독교 복음의 초보에서 나아가 영적으로 성숙한 말씀을 의미합니다. 부르심, 하나님의 소망, 고난을 통한 영광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의 지각, 곧 이성과 감성과 영성을 모두 사용하여 잘근잘근 씹어서 은미하고 묵상하면 말씀의 깊은 맛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떻게 이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지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말씀 앞에 연단을 받게 되면 무엇이 하나님 편에서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선악을 분별하는 자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달짝지근한 젖이 맛이 없게 되고 좀 단단하고 질기지만 씹을수록 맛이 우러나는 하나님 말씀에서 맛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젖을 떼고 조금씩 목자님이 씹어서 주시는 말씀을 먹는 이유식 단계를 지나 스스로 말씀을 씹어 먹는 장성한 자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목자님이 이제 소감을 짧게 써도 된다고 해서 반 페이지짜리 정말 짧은 소감을 쓸 것이 아니라 좀 깊이 있게 써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깊이 소화하고 순종하므로 말씀을 체험하는 연단 받는 훈련(self-training)을 받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 시대 우리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단단한 음식, 곧 하나님 말씀을 모든 지각을 이용해서 깊이 있게 먹으므로 말씀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성장을 위해 어떻게 하라고 권면합니까? 다 같이 6:1,2을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세상 모든 것에 초보 곧 기초가 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바이엘이라는 교본으로 보통 배운다고 합니다. 저도 공보의 때 혼자서 바이엘 상을 독파하고 바이엘 하에 도전하였는데 두 손으로 치는 것의 한계에 걸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기본이 안 되면 더 나갈 수 없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무엇입니까?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 이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가장 중요한 진리요 기초입니다. 이것이 분명하고 확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초보에만 머물러 있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히브리 성도들의 문제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머물러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현상유지도 못하고 오히려 믿음이 퇴보하여 옛날로 돌아가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교훈에 관한 터를 다시 닦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집을 지을 때도 기초공사는 한번 하지 두 번하지 않습니다. 일단 기초공사가 끝나면 벽채를 세우고 지붕을 얹어서 집을 완성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 성도들도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완전함, 성숙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과 예수님을 닮은 인격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13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였습니다. 어릴 때는 대개 유치합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지 못합니다. 제가 양이었을 때 목자님에게 사랑받으려고 별의별 짓을 다하고 난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또 장막에서도 별 일 아닌 것 가지고 싸우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꼭 밥을 먹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밥하는 것이 싫어서 식빵과 잼을 사다 놓고 사라져서 사람들의 분노를 사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심히도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서 점점 인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조금씩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 땅의 지체를 죽이고 위엣 것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사랑하고 한 양을 돕기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예수님을 배우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목자요 성경선생으로서 문제 많은 인생들을 섬기신 예수님을 배울 때 가능합니다. 이는 세상에서도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면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이 자녀를 낳고 키우는 수고와 헌신으로 인해 성숙함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또 양들을 돕다 보면 자기가 깨지는 아픔을 겪게 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인간적 혈기, 자기중심성 이런 것들이 하나씩 깨어져 나가게 됩니다. 의지와 성실이 바닥나고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을 의지하므로 깊은 믿음의 세계, 은혜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한 사람을 돕는 것은 그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완전한 데로 나가게 하는 아주 좋은 길입니다. 또한 인생의 해결되지 않는 여러 문제와 고난을 통해 성숙해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평소 찾지 않던 하나님을 찾게 되고 나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고자 고난도 주시고 시련도 주십니다. 이때 쓴 뿌리를 품지 말고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종하고자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속에서 아름다운 시편을 쓴 다윗처럼 성숙한 신앙,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이런 고난과 아픔을 통해 믿음이 성숙해지고 내면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변화되기 전 그 누구보다 자기중심적이고 심히 인간적인 자였습니다. 그는 장자권을 얻으려고 형과 싸우고 재산을 얻기 위해 외삼촌과 싸웠습니다. 그의 삶은 속임수와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드세디 드센 두 아내와 사기꾼 뺨치는 외삼촌을 통해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칠고 육신적이며 시기심에 사로잡힌 많은 아들들을 통해 그의 강한 자기를 깨뜨리셨습니다. 이로 인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내면이 깨지고 하나님 중심의 사람, 속이고 빼앗는데서 나누어주고 축복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의 신앙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계속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과 내면이 예수님의 닮은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6:3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이런 신앙의 성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말씀의 세계, 믿음의 세계, 예수님의 세계로 인도하시면 부족하지만 조금씩 성장하여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2.하나님의 확실한 약속(6:4-20)
1)배교의 무서운 결과와 그에 대한 경고(6:4-8)
6:4-8절에는 배교의 무서운 결과와 그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한번 말씀의 빛을 맛보고 거듭난 중생의 체험을 한 사람들일까요? 아닐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쨌든 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나 받으려고 일 년에 한두 번 교회에 나간 그런 사람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고서도 고의로 은혜를 저버리면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면 모를까 스스로의 힘으로는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에 드러내놓고 욕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7,8절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자가 심판 당함이 마땅함을 땅과 거기서 나는 열매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땅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인간’을, 자주 내리는 비는 ‘때를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합당한 채소는 ‘신앙생활에 합당한 열매’를 가리킵니다. 땅인 사람이 자주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비를 받아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받고 저주를 받아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고 맙니다. 아버지가 인터넷 강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노트북 사줬는데 그것으로 매일 게임만 열심히 하면 어떻게 될까요? 노트북을 박살내고 불살라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배교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게 어찌하든지 붙어만 있으면 무슨 열매를 맺어도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하나님의 확실한 약속(6:9-20)
6:9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큰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저자는 배교자들이 받을 무서운 심판에 대해서 좀 세게, 좀 무섭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남아 있던 히브리 성도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떠나지는 안았지만 박해에 대한 두려움과 옛 생활에 대한 미련으로 배교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도 이를 알고 다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함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혹 옛날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을지 모르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는 더 큰 좋은 것 곧 영원한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버리고 떠나면 끝이지만 끝까지 남아 있으면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말고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좋은 것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의로운 행위와 성도를 섬기고 지금도 섬기고 있는 사랑을 주께서 기억하고 계심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작은 수고와 헌신을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시고 다 기억하사 갚아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나의 수고와 헌신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오히려 헌신하느라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모든 수고와 헌신을 잊지 않으시고 갚아주시되 30,60,100배의 이자까지 쳐서 넘치도록 갚아주십니다. 이 저금리 시대에 이 얼마나 고배당수익을 올리는 삶입니까? 그러므로 이 공정하신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삶임을 믿습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렇게 수고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끝까지, 우리의 소망이 성취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왕 하는 것 끝을 봐야합니다. 완주해야 영광이 있고 또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과 같은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22:17에서 아브라함에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4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여기서 하나님은 복과 번성이라는 말을 두 번씩 반복하시므로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성취되는데 자그마치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15절은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은 정말 오래 참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 25년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16,17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어떤 일의 확실함을 나타내기 위해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합니다.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맹세하기도 하며 그보다 더 확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맹세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않음을 보이시기 위해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이성적으로 믿기 어렵고 하나님의 약속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때 맹세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때가 되지 않아서 지연될 때 하나님은 맹세하심으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맹세로 약속을 보증하셨다는 것과 또한 하나님이 절대 거짓말 하실 수 없다는 이 두 가지 사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확실한가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고 오래 참음으로 마침내 약속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약속의 확실함이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여 주십니다. 앞에 있는 소망은 천국의 소망이요 영생의 소망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우상숭배의 땅인 갈대아 우르를 피하여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듯이 우리도 죄악된 세상을 피하여 하나님 나라로 소망 가운데 나가는 거룩한 순례자들입니다. 세상에는 성공을 통한 행복한 삶이란 소망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 소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고 모든 것이 절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세상은 온갖 죄로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죄악된 세상을 피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잡기 위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과 같아 견고하여 튼튼합니다. 닻은 앵커인데 배가 정박하여 내리면 바다 속 땅에 박혀 풍랑이 일어도 배가 흔들리거나 떠내려가지 않도록 견고하게 붙들어 줍니다. 때로 죽도록 헌신하고 충성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의 믿음과 헌신하는 삶이 손해 보는 삶, 장래가 없는 삶이 아니라 최후에 승리와 영광을 주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닻을 의지해서 흔들리거나 떠내려가지 말고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라 이 죄악된 세상을 피하여 휘장 안 곧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순례자의 삶을 끝까지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는 가끔 선교사님들이 본국에 들어와 저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흐뭇할 때가 많았습니다. “목자님 그대로시네요.” 나이를 안먹는다는 얘기죠. 젊게 사는 것 이것은 참으로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겉은 보이지 않게 늙어가고 있는데 (머리도 많이 새고 노안이 생겨 안경너머로 보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내면은 정말 말 그대로 ‘그대로’였습니다. 결혼하고 애들 낳고 키우느라 조금 철이 들었을 뿐이지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이었습니다. 탁구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쳤고 만약 일이 생겨서 못하게 되면 화가 나서 말을 하지 않거나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공부를 섬겨야 하는 것은 힘들어하여 자주 한숨을 쉬었습니다. 거기다가 여러 사람을 품고 섬겨야 하는데 조금만 스타일이 달라도 부담스러워 하였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좀 느긋해지고 관대해지고 성숙해질 줄 알았는데 남자는 나이 먹을수록 자기세계에 깊이 빠져들고 완고해진다고 하더니만 제가 그러하였습니다.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지내는 유치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영적정체에 빠져 있는 저에게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데로 나아가라 명령하십니다. 깊이 있는 믿음의 세계, 말씀의 세계, 예수님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명령하십니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지 않으면 정체되고 퇴보하게 되고 맙니다. 제가 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중심적 신앙을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 여러 사람을 품고 섬기는 성숙한 내면을 가진 자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이런 소원 가운데 맡기신 말씀의 십자가, 학생제자양성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감당하므로 깊은 말씀과 믿음의 세계, 섬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이제는 젖만 먹지 않고 지각을 이용해 단단한 음식을 먹음으로 깊은 말씀의 세계로 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배우므로 하나님의 중심의 사람, 어떤 사람도 품고 섬기는 성숙한 내면성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또한 약속의 말씀, 천국소망에 닻을 내리므로 죄악된 세상을 피하여 천국을 향해 가는 거룩한 순례자의 삶을 끝까지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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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20강]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15-08-02 3134
59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7강]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관리자 2019-07-07 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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