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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02 (일) 13:02
분 류 베드로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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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드로전서 제1강] 산 소망
 2016년 베드로전서 제1강                                                              한아브라함

산 소망

말씀/ 베드로전서 1:1-12
요절/ 베드로전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의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가 쓴 서신입니다. 베드로전서가 쓰여 진 다음 해에 A.D. 64년에는 네로 황제의 대대적인 박해로 사도 베드로를 포함한 많은 성도들이 순교 당합니다. A.D. 70년에는 로마의 침공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길고 긴 고난의 터널이 시작되기 직전에 주께서 사도 베드로의 마음을 감동 시켜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는 위로의 메시지, 소망의 메시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외적인 박해나 어려움은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풍요롭고 편하죠. 이 시대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이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절대 진리가 부정되고 사사기 시대와 같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입니다. 물질주의, 쾌락주의, 실리주의 우상을 섬기고 교회가 영향을 받아 복음신앙보다는 기복 신앙이 대세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상실한 맛 잃은 소금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보다 순수복음 신앙을 지키기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를 한마디로 진단해보면 진단명은 ‘잘못된 소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망이 땅에 속하였습니다. 소망이 병든 시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붙들어야 할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시금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신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흩어진 나그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그네”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저는 박목월 시인의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정처 없이 유랑해야 하는 나그네의 고독과 쓸쓸함이 담긴 시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나그네는 그런 나그네가 아닙니다. 흩어진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흩어진”이란 말은 열매를 얻을 목적으로 씨앗을 뿌리듯이 흩어지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도 사도행전 7장까지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모여서 열심히 성경공부 했지만 어찌하든지 함께 있고자, 붙어있고자 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이 핍박을 통해서 흩으셨습니다. 불씨가 모여 있다가 사방에 흩어지자 복음의 불길이 사방에 퍼져서 활활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여서 열심히 성경공부하며 교제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흩어져서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고향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본향을 사모하고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삽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산다면 나그네가 아닌 것이죠. 2절을 보십시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흩어진 나그네이지만 또한 “택함 받은” 나그네 입니다. 회사에서 직원 한 명을 뽑는데도 많은 절차를 거쳐서 얼마나 신중하게 뽑습니까?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학창 시절 성실했는지, 자기 소개서를 통해서 우리 회사에 맞는지 뽑아놓고도 혹시 잘못 뽑은 것은 아닌지 인턴기간 지켜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은 오직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 편에서는 은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2절을 다시 보십시오. 성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계획하심으로 택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내가 구원받도록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어느 날 내 마음 가운데 역사하셔서 내 마음의 문을 여시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역으로 오직 은혜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내가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 택하심의 은혜입니까? 택함 받았기에 우리는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고난 받는 성도들이여 얼마나 힘듭니까? 조금만 더 참읍시다. 곧 좋은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첫 마디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가 이를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세상으로 도망간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너무나 죄악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긍휼은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자를 심판치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신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배은망덕하고 교만하고 무지합니까?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보배 피를 흘려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죽음 권세를 파하시고 승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를 믿는 자는 거듭나게 됩니다. 거듭난 자에게 임한 은혜가 무엇입니까? 바로 산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왜 산 소망이라고 했을까요? 소망문제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단테는 지옥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 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누구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희망은 삶에 이르는 약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희망이 없으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주는 소망은 죽은 소망이요 헛된 소망입니다. 세상 소망을 참 소망으로 알고 온 생애를 바쳐 쟁취했는데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폐렴 걸린 어린 아이가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으면 자기가 살 것이라고 스스로 믿고 소망을 갖습니다. 아랫집 화가 할아버지는 이를 알고 잎새가 떨어지지 않도록 그림을 그려 놓습니다. 아이는 희망을 갖고 폐렴을 이겨내지만 정작 할아버지는 폐렴에 걸려 죽습니다.  이 소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지는 몰라도 잎새는 죽은 소망입니다. 이 아이가 살기 위해서는 잎 새를 믿을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잎새의 병든 아이처럼 헛된 소망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물질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좋은 직장에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전력투구하며 준비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공시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며칠 전 치룬 9급 공무원 시험에 22만 명이 몰렸습니다. 또 내 집 마련의 꿈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자녀가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녀가 대신 이루어 주길 바라는 거죠. 자녀 교육에 올인합니다. 이런 소망의 결과는 항상 비참합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물질에 소망을 두고 돈 버는 데에 올인하였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재벌이 되었습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소망을 두고 자녀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녀들은 물질에 소망을 두고 서로 더 차지하려고 싸우다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허무하죠. 이처럼 세상 소망의 끝은 허무합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희망 고문”이란 말이 유행하는데요. 이루어지기 힘든 희망 때문에 더 괴로워진다는 거죠.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은 포기하는 게 더 낫다며 3포, 5포, 7포 세대.. 마지막,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7포 세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산 소망을 모르기 때문에 땅에 소망을 두고 땅에 코 박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이런 헛된 소망, 죽은 소망이 아닌 산 소망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산 소망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이라 했습니다. 세상 소망은 썩고, 더럽혀지고 쇠하여 집니다. 세상에서 쌓아놓은 부와 명예는 썩습니다. 한 순간에 썩어 없어집니다. 우리는 죄악되어서 원하던 원치 않던 죄로 오염되고 더렵혀진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쇠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20대의 여인이 미모를 자랑 하지만 나이가 60이 넘으면 거기서 거기입니다. 쇠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간직한 산 소망만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 산 소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계시록 20장 15절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는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고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생명책에는 쇼핑하다가 대박난 것 기록되지 않습니다. 내가 몇 평짜리 집에서 살았는지, 재산이 얼마였는지 하나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예수님의 보배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되는 권세를 덧입고 생명책에 이름이 당당히 기록되는 것입니다. 생명책 명단에 빠지면 조금 섭섭한 정도가 아니고 절망이요 끝장입니다. 원하던 대학의 합격자 명단에 들면 기뻐하죠. 본인 뿐 아니라 부모들도 기뻐하죠. 요즘은 전화자동응답으로 합격여부를 바로 알 수 있지만 전에는 운동장에 합격자 명단을 적어 놨습니다. ‘몇 번 아무개’ 제가 좀 상태가 안 좋으면 요즘도 악몽을 꿉니다. 의약관 복도에 재시자 명단이 발표됩니다. 여기도 내 이름이 있고 저기도 내 이름이 있습니다. 어떤 과목은 재시자 명단이 단 두 명인데 거기도 내 이름이 있습니다. “안돼 이건 악몽이야!” 소리 지르다 깨면 꿈입니다. “그래 나 지금 학생이 아니지, 나 전문의야 전문의!” 이처럼 시험 합격자 명단에 드는 것 재시자 명단에 빠지는 것은 좋기는 하지만 생명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거듭남으로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름만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 20장 12절은 말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고 또 행위도 기록될 것입니다. 내가 전도한 양들의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또한 내가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한 모든 것, 그리스도를 위하여 흘린 눈물, 주를 위하여 핍박 받은 것, 양들을 위하여 희생한 나의 진심과 젊음, 뜨겁게 찬송하고 기도했던 시간들이 다 기록될 것입니다. “아무개, 아무렇게 살다오다”하면 안 되겠죠. 또한 부활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42,43절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부활하신 예수님의 찬란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부활의 몸으로 사랑하는 예수님과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외모가 좀 안 받혀주는 것, 병약한 것, 머리가 나쁜 것,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은 아픔도 없고 질병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천국만큼 좋은 곳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취업, 결혼, 부자되는 것입니까? 천국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연소 농구 코치였던 박승일 선수가 있습니다. 농구 잘하고 또 잘생겨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루게릭병에 걸렸습니다. 점점 심해져 눈동자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 있는데 첫째는 천국에 가는 것이고, 둘째는 루게릭 요양병원을 지어서 루게릭 환자와 환자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처음 진단 받았을 때 의사는 남은 시간이 길어야 2,3년이라고 했지만 13년째 살아있습니다. 비록 눈동자만 움직이면서 자기 의사를 표시하고 있지만 밝고 기쁨이 넘칩니다. 왜 그럴까요?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구원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보호라는 말은 군사 용어입니다. 군인들이 든든히 지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리의 구원을 보존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의 구원을 빼앗아 가고자 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불신을 심습니다. 특히 고난 받을 때에 불신을 심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케 하여 믿음을 빼앗아 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굳게 믿을 때에 하나님은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러면 산 소망을 가진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 것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크게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삶입니다. 신앙생활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입니까? 기쁨입니다. 기쁨이 중요하죠. 스탠포드 의대의 윌리암 프라이 박사가 연구해서 발표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한 번 크게 웃으면 평상시 쓰지 않던 근육 230개가 움직이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로 오는 병이 70%로 이상이고 기쁨이 있으면 질병의 70%가 예방됩니다. 잠언 17장 22절은 말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시험을,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고난이 있죠?  건강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자녀교육의 어려움, 요즘은 지진이나 전쟁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고난도 추가가 되었습니다. 목자로 성경선생으로 살고자 할 때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인내하고 희생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열매를 맺으면 고난도 아닙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고난이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산 소망은 모든 시험을 온전히 극복하게 합니다. 6,7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고난 자체로, 시험 자체로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근심하지만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시련을 통하여 금광석이 용광로에 들어가서 시련 후에 불순물이 다 타고 순도 100%의 금이 되어 나오듯이 고난을 통하여 순수한 믿음,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므로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닥쳐올 때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백했던 욥처럼 시련 후에 얻게 될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소망하고,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소망을 갖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잠깐이라 했습니다. 고난이 오는 이유는 나의 믿음이 정금 같은 명품신앙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고난을 체질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시련이 오지 않으면 내 속에 있는 교만, 위선, 거짓 등을 털어내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말씀을 통해서 진실되게 회개함으로도 가능하지만 인간이 죄악되다 보니 말씀을 잘 안 받아 들이고 변화되는데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련을 통해서는 단번에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오면, 시련 가운데 있으면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두번  째 이유는 사랑하는 예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모든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오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주님이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세 번 물어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입니까?  부족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만 있으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나는 부족하지만 부인 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사실 아닙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지극한 사랑으로 나를 안아 주시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과 일생 동행하는 삶을 삽니다. 이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신앙의 힘은 바로 이 기쁨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기쁨이 없으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노예처럼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는 천로역정의 율법씨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은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이요 마귀가 아무리 막아도 막을 수 없는 기쁨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까?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땅에 코 박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죽은 소망을 붙들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소망 문제를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결국은 영혼구원입니다. 최고의 가치는 영혼구원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만족을 더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육체의 병이 빨리 낫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잘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관심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영혼구원이 먼저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에 관하여 구약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겨우 깨닫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신령한 선지자 다니엘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고 계시를 받아서 조금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메시아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그 구원을 완성했기 때문에 힘써서 연구하고 살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란 말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감사하고 찬양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완성된 구원을 거저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소망문제를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어려워진 병원 환경으로 인해서 병원 일을 좀 더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도 나름 열심히 감당하였습니다. 말씀보고 기도하는 경건의 훈련도 게을리 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왠지 피곤하고 기쁨이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는 은근히 근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하여 땅에 속한 소망을 붙들고 땅에 코 박고 살고 있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산 소망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문제들은 여전히 있지만 감사와 기쁨이 충만케 되었습니다. 제가 하늘 소망을 붙들고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일생 사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고 소망은 삶에 이르는 약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핍박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인 산 소망을 갖도록 권면 했습니다. 절망의 시대, 죽은 소망을 붙들고 사는 이 시대에 사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산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십시오. 우리가 사도 베드로의 충고에 귀 기울이고 산 소망을 붙들고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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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20강]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관리자 2015-08-02 3134
59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7강] 약속의 땅에 거주한 이삭 관리자 2019-07-07 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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