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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2-19 (일) 13:38
분 류 베드로전서
첨부#1 2023년_베드로전서_제4강-1.hwp (83KB) (Down: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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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베드로전서 제4강]양 무리의 본이 되라
2023년 베드로전서 제4강      최바울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 벧전 4:12-5:14
요절/ 벧전 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사도 베드로는 고난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왕같은 제사장답게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제 서신을 마무리하며 고난의 유익함과 고난의 때에도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겪게 되는 고난의 의미를 알고 그런 고난 가운데서도 양 무리의 본이 되어 양들을 섬기는 목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4:12-19)
 이 서신이 기록될 당시인 A.D. 64년경에는 네로황제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점차 커져 가고 있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네로황제가 기독교인들에게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맹수와 싸우도록 했으며 기독교인들을 나무에 매달아 몸에 불을 붙여 등불처럼 사용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살면 자질구레한 어려움은 겪어도 큰 고난만큼은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신자들 역시 작은 어려움도 겪고 큰 고난도 겪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하며 이상하게 여기고 슬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이것이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고난을 통해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이 같은 연단을 ‘불시험’이라고 했습니다. 불에 덴 것처럼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불시험이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불에 닿으면 아프기도 하지만 불순물이 녹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은 불순물들을 태워서 신자의 내면을 깨끗하게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고 말씀을 붙들고 투쟁하게 합니다. 알게 모르게 붙들고 살던 세상의 죽은 소망을 내려놓게 하고 대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붙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시험을 받을 때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자가 겪는 고난이 육체적, 물리적 고통만 있는 게 아닙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치욕(insult)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비방이나 모욕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 치욕을 당하면 이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교통법규를 어겨 딱지를 떼거나 시험시간에 부정행위를 하다가 걸려서 쫓겨나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선행을 하는데도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치욕을 받는다면 이는 복된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때문에 치욕을 당할 때 성령께서 우리 위에 머무시며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강건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16).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신자들이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증거입니다. 신자들에게 이미 심판이 시작되었다면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들의 결국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엄위합니다. 신자가 받는 심판은 연단을 위한 것이라면 불신자들이 마지막에 받을 심판은 멸망이요 지옥 형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끝까지 선을 행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온전한 구원을 주실 것을 바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신 것처럼 그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19)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매 장마다 고난을 언급하며 현재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 앞으로 고난 받을 성도들에게 마치 과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마음에 새기고 영접할 때까지 반복해서 가르치신 것처럼 고난의 의미를 반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에는 성도들을 연단 받게 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하는 선한 뜻이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40대부터 동안교회를 섬기며 마침내 매년 장년부만 천 명씩 늘어날 정도로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교회세습이 이슈화될 때 부임 10년이 되는 해에 동안교회 목사직을 내려놓고 남산 밑에서 조그마한 교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 교회도 10년이 지나 교인 수가 늘어나자 4개의 교회로 나누고 자신은 목회에서 은퇴한 후 재단을 설립해서 가난한 목회자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3년 전 폐암을 비롯한 3가지 암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항암치료 받느라 2번 졸도하고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평생 치열하게 목회를 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슬퍼하면서 하루를 암으로 시작하고 온종일 암을 묵상하며 지내다가 이사야서 40장1절 “내 백성을 위로하라” 말씀을 받고 현재는 자신과 같은 암환자들을 위해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라는 유투브 방송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질병이라는 고난을 통해 목회만 하면 성공했던 자신에 대한 자부심, 교만이 산산조각 깨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지 못하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고난은 유익합니다. 시편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고백했습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 나에게 주고자 하시는 유익이 있음을 믿고 인내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양 무리의 본이 되라(5:1-11)
 사도 베드로는 앞서 성도들에게 고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고난 받을 때에는 나도 힘들기 때문에 양들에게까지 관심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목자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먼저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사도로서가 아니라 함께 장로 된 자로서 권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장로는 교회 내에서 중요한 직분을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건 기본이고 교회 내 적절한 규칙들을 만들고 정책들을 결정하고 재정을 집행했습니다. 베드로는 함께 장로 된 자로서 그들이 누구보다 십자가를 많이 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고 합니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양 무리를 섬기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하십니다. 이는 가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자녀를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어떤 자세로 하라고 말씀합니까?
 첫째로,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억지로 양을 친다’는 것은 장로의 체면이나 책임감 때문에 마지못해 양을 치는 것을 말합니다.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게임을 억지로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게임도 억지로 하면 하기 싫어지는데 억지로 양을 치면 얼마나 부담스럽고 하기가 싫어지겠습니까? 억지로 양을 칠 때에는 양이 바빠서 못 가겠다고 카톡을 보내오면 그렇게 마음이 가벼워질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목자 생활에 은혜와 기쁨이 있을 리 없습니다. 베드로는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고 명하십니다. 장로니까, 요회목자니까, 팀장이니까, 양 안 치면 눈치 보여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이 움직여서 소원을 가지고 부르심에 감사함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요즘 토요미팅을 보면서 같은 일이라도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과, 소원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열매를 맺는지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심령에 은혜와 감사와 기쁨이 있고 문제 앞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희들이 또 학생들이 봄학기 양들을 자원함으로 섬겨서 먼저 저희 마음에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더러운 이득을 위해 하지 말고 기꺼이 하라고 하십니다. 양을 돌보는 목적이 순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장로가 양을 치면 교회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는 양을 칠 때 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돈을 씁니다. 다만 돈이 목적은 아니더라도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할 때가 있습니다. 양을 많이 침으로써 장로로서 인정받고 자기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기 쉽습니다. 저처럼 동역자에게 칭찬받으려고 양을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득을 위해 양을 칠 때 이득이 되는 양만 치게 됩니다. 오랫동안 섬겼어도 한결같이 소망이 없어 보이는 양, 같은 죄로 자꾸 넘어지는 양, 내면문제 인생문제가 심각해 보이는 양들 말고 착한 양, 약속 잘 지키는 양, 은혜를 아는 양만 치게 됩니다. 선한 목자는 이득이 없더라도 양 자체를 귀하게 여깁니다. 내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의 하나뿐인 독생자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살려놓은 양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이득과 상관없이 작은 자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기꺼이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하나님께서 양들을 맡기실 때는 양들을 겸손과 온유로 잘 돌보도록 맡긴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는 자기에게 맡겨졌다고 해서 양을 주장하기 쉽습니다. ‘주장한다’는 것은 주인행세하며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목자는 양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요 기쁨을 돕고 믿음에 서도록 돕는 자라고 했습니다.(고후1:24). 그러므로 목자는 양이 예수님과의 사귐과 배움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야 하고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도울 수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카우보이는 소들을 몰 때 뒤에서 소리 지르며 채찍으로 위협합니다. 그런데 양들을 그렇게 다루면 겁을 먹은 양들은 주눅이 들어서 꼼짝도 안합니다. 양은 목자가 앞서가며 본을 보일 때 그대로 따라 하게 됩니다. 양들은 열 마디 옳은 소리 하는 목자보다 한번이라도 자기부인하며 본을 보이는 목자를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순종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높아지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만 하지 않으시고 친히 제자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겨 주심으로 섬기는 자가 얼마나 위대한가 본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본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365일 새벽을 깨우며 새벽기도의 본을 보여주시는 분이 계시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캠퍼스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본을 보여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온갖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순종의 본, 헌신의 본, 절대성의 본을 보이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양무리의 본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 중심, 우리 가족 중심으로 살고 싶은 본성을 부인하고 하나님 중심, 사명 중심, 양 중심으로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양 무리의 본이 될 수 있습니까? 양 무리의 본이 되려면 내가 먼저 예수님의 좋은 양이 되어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양에게 좋은 본이 되고자 하면 바리새인같이 양의 눈치를 보며 이중생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하면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양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을 존경하며 신앙생활의 좋은 본보기로 삼는 것은 그가 모범적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고 했습니다. 이는 바울 자신을 본받으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고린도 성도들도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생활, 양치는 생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생활, 남을 섬기는 생활 등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할 때 우리의 내면에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조각되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꼭 높은 자리에 있어야 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어려도 누군가의 눈에는 장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제 막 UBF로 올라온 형제자매님들도 JBF에게는 본이 될 수 있는 장로들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이 말씀은 캠퍼스 영혼들을 저희들에게 맡기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간절한 부탁이자 명령입니다. 그럼 우리가 양들에게 본이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양을 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순종을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치고 헌신을 가르치는 것으로 제자양성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주어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목자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양을 친다는 것, 제자양성 한다는 것, 목자로 산다는 것은 “Be examples!” 곧 “그건 이렇게 하는 거야” 양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는 것입니다. 가르친 후에 행하지 않고 보여주지 않을 때 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누룩이 되어 ‘저렇게 신앙생활 해도 되는구나’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왕 목자로 사는데 누룩이 아니라 좋은 본이 되기를 원합니다. 좋은 본이 되는 비결은 배우고 가르친 것을 그대로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사도들이 신앙생활 제자생활하려면 이렇게 하는거라고 본을 보여주는 사도행전 말씀이 저희들에게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잘 듣고 실제 삶속에서 행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좋은 본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자원함과 순수한 동기로 양을 치고 양무리의 본이 되는 생활을 하며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목자의 상급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좋은 양을 많이 얻는데 있지 않음을 깊이 영접하고 주님께서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며 확신 있는 목자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교회 내에 장로들과 더불어 젊은이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젊은이들에게 권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젊은이들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 순수하며 열정이 있기 때문에 교회 분위기를 활기차고 생명력 있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강하고 실패의 경험이 적어서 자만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연로한 장로들을 볼 때 우유부단하고, 생각이 굳어 있고,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시대, 아날로그 시대 사람들이기 때문에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을 연장자로 존경은 하지만 내 생각, 내 상식, 내 가치관과 맞지 않을 때에는 순종할 수 없다며 반발합니다. 그러나 반발심은 죄의 속성으로서 결국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반발심은 가인과 같이 하나님의 주권을 복종치 않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젊은이들에게는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젊은이들이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질서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또한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순종하지 않을 때 성령의 그릇이 깨져 교회는 사단의 훼방거리가 되고 생명 구원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순종할 수 있습니까? 먼저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그저 나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깊은 인생 경륜을 가진 것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장로들은 젊은이들 앞서 먼저 인생을 살아온 선배들입니다. 젊은이는 늙어본 적이 없지만 장로들은 젊어본 적이 있습니다. 장로들이 우유부단한 것 같지만 생각이 깊은 것이고, 생각이 굳어 있는 것 같지만 갖가지 인생 풍파를 겪으며 믿음의 중심이 견고해진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젊은이들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를 낮추고 높이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장로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친절한 장로를 주시든지, 아니면 까다로운 장로를 주시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이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함으로 겸손훈련을 잘 받아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젊은이들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젊은이들은 능력이 많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각종 염려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열심히 주의 일을 하다가도 문득 장래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이렇게 열심히 하다가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베드로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돌봐 주시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내 조건과 형편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심리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도전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염려의 짐을 지고 무기력하게 살지 않고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젊은이는 근신하며 깨어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마귀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를 유혹하고 핍박해서 죄에 넘어뜨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좀 쉬고 싶은데 마귀는 연중무휴 쉬지도 않습니다.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무리에서 이탈하여 혼자 돌아다니는 먹이감을 노립니다.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린 자, 불평불만이 가득한 자, 교만한 자,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을 잘 하는 자, 회의하고 불신하는 자, 세상 욕심이 많은 자를 노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자기를 살피고 대적 마귀의 역사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한시라도 방심하면 마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기 때문에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간교하고 강하여서 우리의 힘과 지혜로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는 오직 믿음으로 대적할 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심치 않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12-15절은 베드로의 마지막 인사입니다. 신실한 형제 실루아노는 이 편지를 대필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그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굳게 서도록 권면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바라며 편지를 끝맺고 있습니다.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려고 하니 많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때 나이나 외모는 장로의 길에 들어섰으나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전혀 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픈 동역자를 핑계로 이번 메시지의 간증은 고난을 주제로 써볼까 생각하던 차에 제임스 목자님께서 이번 말씀의 간증은 요절 말씀에 기초해서 쓰라고 하트와 함께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양무리의 본이 되라”는 요절 말씀을 심히 괴로운 심정으로 깊이 묵상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 말씀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이유가 그동안의 삶이 양 무리의 본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양 무리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어서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양 무리의 본이 되려면 말씀을 가르칠 뿐 아니라 가르친 말씀대로 먼저 행해야합니다. 그런데 저는 가르치는 것만 하고자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댔지만 가르치는 것은 편하고 앞서 행하는 것은 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이제 막 평신도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양으로 맡기셨습니다. 이 분들은 목자인 저에게 순종하고 영적으로 근신하며 깨어있고자 투쟁하는 꽤 괜찮은 젊은이들입니다. 그런데 목자인 제가 앞서 행하지 않고 입으로만 목자노릇을 하려고 하면 이들도 저처럼 입으로 목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되고 저는 본이 아니라 누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주부터 동역자의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면 사단은 저의 마음에 ‘본이 될 때 되더라도 고난의 불시험이 끝난 후부터 하는게 좋지 않겠는가’하며 다음으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 가운데서도 목자는 양을 치며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제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도하시고 양들을 섬기셨던 선한 목자 예수님을 본받아 힘써 새벽기도와 캠퍼스 전도의 본을 보이며 앞서 행하는 목자가 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가운데 장로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양 무리들의 좋은 본이 되는 선한 목자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장로들에게 순종하며 겸손한 주의 종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고난 가운데도 양들을 섬기는 목자가 되어서 장차 주님이 주시는 승리의 면류관을 얻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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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7강]예수님을 따라 순교한 스데반 관리자 2023-04-23 142
808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생)]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89
807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사)]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104
806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말씀 제1강(학생팀)]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99
805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1강]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109
80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 관리자 2023-04-02 163
80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5강]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관리자 2023-03-26 165
80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4강]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관리자 2023-03-19 180
80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3강]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관리자 2023-03-12 192
80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강]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관리자 2023-03-05 192
79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강]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관리자 2023-02-26 202
798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4강]양 무리의 본이 되라 관리자 2023-02-19 182
797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3강]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라 관리자 2023-02-12 211
796 베드로전서 [2023년 베드로전서 제2강]왕 같은 제사장 관리자 2023-02-05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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