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3-16 (일) 12:58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14_마태7강-1(한아브라함).hwp (29KB) (Down:377)
ㆍ추천: 0  ㆍ조회: 2670      
IP: 61.xxx.95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2014마태복음 제7강                                                                       한아브라함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말씀/ 마태복음 6:1-18
요절/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늘 말씀은 계속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입니다. 천국시민이 신앙생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신앙생활의 세 가지 중요한 행위인 구제 기도 금식을 예로 들어 의를 행하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하도록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십니다.

1. 제자의 은밀성(1-8,16-18)
1절은 오늘 본문에 대 전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주의하라고 당부하신 것을 보면 주의하지 않으면 실족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는 의로운 행위를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본받아 의를 행하는 생활입니다. 왜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기 쉬운 것일까요? 사람들은 옆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 앞에서 살기 쉽죠. 또한 사람에게는 누군가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은 본성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신이 나고 행복감을 느낍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괜히 섭섭해집니다. 은혜 받고 처음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순수하게 헌신하고자 결심합니다. 그런데 좀 하다보면 왠지 혼자 수고하는 것 같고 사람들이 도무지 알아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내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가 하며 섭섭해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살기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은 탄산음료와 같이 그때 잠깐 기분을 좋게 할 뿐입니다. 또다시 목마르게 됩니다. 이를 추구하면 사람들 앞에서 신앙 생활하는 나쁜 습관이 생기고 형식적이고 위선적이 됩니다. 하나님은 외식하는 자를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러면 외식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거지입니다. 신앙생활 오래한 사람일수록 외식하기 쉽습니다. 훌륭하고 모범적으로 보이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기꾼이나 간음한자로 발표된 것을 보고 우리는 놀랍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위선적인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외식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상이 없다하십니다. 땅에서 사람들에게 상을 받았으면 하늘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없다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하는 신앙생활에 참 기쁨과 은혜가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와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의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첫째 구제. 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구제를 먼저 예로 듭니다. 당시 구제할 때 사람들은 구제품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구제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는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물질을 내놓았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장학 사업이나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누가 얼마를 기부했다고 사진을 찍고 표창장을 줍니다. 이처럼 명예심을 자극하여 더 많은 기부를 하도록 자극합니다. 구제를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요 신앙생활에 중요한 덕목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로 도와주는 것,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영적인 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귀중한 시간과 진심을 드려서 말씀으로 형제를 돕는 것은 실질적인 자기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 육 간에 이 구제는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요. 그러나 나팔을 불지 말라 하십니다. 사실 수고한 후에 나팔을 불고 싶지요. “나 이런 사람이야.” 뻐기고 싶습니다. 나팔을 불면 더 이상 상이 없다고 하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십니다. 이는 은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십니다. 사람들은 구제나 헌금의 액수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은밀히 행하는 구제를 기뻐 받으시고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상을 주실까요? 모르죠.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상상할 수 없이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는 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 5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에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예수님 당시에 가장 열심히 기도하던 자들은 바리새인이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기도할 때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기 좋아했습니다. 기도시간이 되면 회당에 나와서 기도를 드렸고 혹시 길 가는 중에 그 기도시간이 되면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회당이나 거리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거룩하고 경건해 보입니까. 그래서 특별한 약속이나 일이 없는데도 기도시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거리로 나와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아무리 열심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 없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십니다. 어떤 형제님이 이 말씀에 은혜 받았습니다. 골방이 어딜까? 생각 하다가 기도실이 골방이다 결론내리고 꼭 기도실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데 코 골며 자는 것을 보았습니다. 골방은 어떤 곳입니까. 골방은 세상으로 향한 문이 닫히고 하나님께만 문이 열린 은밀한 곳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 하라는 것은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 은밀하게 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방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6절을 다시 보십시오.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기도할 때 두려운 것은 하나님이 지금 살아 계신지 아닌지 확신이 없고 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장님이요 귀머거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내 옆에 계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음소리 조차도 다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주 만 바라볼지라.”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쳐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 만 바라볼지라.”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위선이요 외식입니다. 사람 앞에서 사람을 의식하고 기도하는 것,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에서조차 외식한다면 자기 신앙심을 자랑하려 든다면 헛되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끼지 말아야 합니다. 은밀한 기도를 드린 사람으로 한나가 생각납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므로 슬프고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화내지도 않았습니다. 경쟁자 브닌나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애매히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조용히 나아가 모든 짐 내려놓고 마음을 쏟아놓았습니다. 그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중언부언하는 것은 의미 없는 말을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아름답게 미사여구로 꾸미는 것, 큰소리로 외치는 것은 중언부언하는 것입니다. 방언 기도하는 모임에 가보면 방언을 하고 싶은데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스텝이 다가와 말합니다. “랄랄라”를 빠르게 외치라고. 이런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때에 베스트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금식. 구약에서는 일 년에 한번 있는 대 속죄일에 금식했습니다. 국가적 재난이나 개인적으로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 금식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경건한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했습니다. 금식의 본래 의도는 육체의 소욕을 절제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식이 경건의 모습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자신이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얼굴을 흉하게 하고 인상을 썼습니다. 수염도 깍지 않고 피곤한 체 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에도 금식하는 것으로 영적으로 신령한 척 자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에는 교회 소개 전단지에 “40일 금식 기도한 불의 사자가 왔다.”라고 소개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은 금식 자체를 금하신 것이 아니고 금식 할 때 사람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음으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4절, 6절, 18절에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가장 은밀한 곳은 마음 속 중심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겉을 꾸미지만 제자들은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구제, 기도, 금식을 하되 순수한 마음으로 진실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의 생각과 동기까지 보시며 관찰하십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할 때 은밀하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상급만을 구할 때 순수해지고 은밀하게 선을 행하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밀히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상급을 넘치도록 받는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은밀,” “외식”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사람 앞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 분들을 영적으로 어리다며 판단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제 자신이 바로 외식하는 자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빛이 나는 것은 열심히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홀히 했습니다. 오늘처럼 메시지전하는 것은 마음 바쳐서 준비하고 소감이나 일용할 양식은 대충 쓸 때가 많았습니다. 교회 내에서는 영적인 척, 거룩한 척 하였지만 혼자 있을 때는 퍼졌습니다. 제가 사람 앞에서 신앙생활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하는 진실된 자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2.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9-15)
한국 크리스천들은 어떤 기도를 드릴까요? 한 신학생이 논문을 쓰기 위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어떤 기도를 드리나?  96%가 자녀진학, 사업, 건강 등의 자기를 위한 기도이고 4%가 신앙성장, 영적인 변화, 주님께 나아가기 위한 기도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보다 자기를 위한 기도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며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기도의 BEST example인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첫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9)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하기 전에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할 때 자녀 됨의 권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귀가 흔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녀 됨을 흔듭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자녀 됨을 들고 나아가면 응답이 있습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거나 기도 응답이 즉시 안 되면 마귀가 즉시 공격합니다. “나는 쓸모없는 놈, 무가치한 놈, 되는 일이 없는 놈”이란 절망감을 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은 말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녀가 와서 무엇을 해달라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해줍니다. 물론 아버지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 유학 간 지현이가 부탁하더라고요. “아빠 기도해주세요 이제 마지막 학기인데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 기도해줄게. 또 뭐 필요한 거 없니?” “한국에서 옷감을 사야 되요.” “그래, 사라. 얼마든지 사라.” 여러모로 부족한 육신의 아버지도 그럴진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우리의 기도를 기쁜 마음으로 들어주시는 전능자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바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둘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9)
이는 첫 번째 기도제목으로서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이십니다. 피조물로부터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합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욕심과 정욕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인생들로부터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공부를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양을 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할 때 행복할 것 같지만 불행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때 행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 행복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셋째, 나라가 임하시오며(10) 10절을 보십시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여 주옵소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려주시고 가정을 다스려주시고 캠퍼스를 다스려주시고 이 나라를 다스려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타락 이후 이세상은 사단이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통치하는 세상나라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부정부패, 미움과 전쟁, 질병과 기근 등의 문제로 가득 차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는 사랑과 평화, 공의와 풍요가 강같이 흐릅니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임하도록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부흥하고 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도하고 실제로 말씀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하나님나라가 바로 나에게, 우리 가정에, 캠퍼스에, 이 나라에 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영광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넷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11)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먹을 양식만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삶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버지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나 건강, 학과공부, 직장, 결혼, 자녀문제 등이 다 포함됩니다. 월용할 양식이나 년용할 양식을 구하지 않고 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하셨을까요. 너무 많은 것이 우리에게 있으면 주님을 바라보지 않기 쉽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어렵습니다. 나의 작은 필요가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것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순간이라도 함께하시고 힘을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사오니 저를 붙들어 주소서’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내일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기 쉽습니다. 불안해하다가 실족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내일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내일은 나에게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내일 나의 건강은 어떨까요? 모르죠. 하나님께 오늘 일용할 양식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늘을 기쁨으로 사십시오.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다섯 째,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12)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육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 양식이 필요하듯이 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죄 사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죄에 빠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기도가 막히고 은혜의 통로가 막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죄 사함을 간구하기 위해서는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라 하십니다. 14-15절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인간 갈등이 별거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섭섭해 합니다. 원망하게 됩니다.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됩니다. 상처로 남습니다.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면 결국 내가 마음의 병을 얻게 됩니다.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상대방은 멀쩡한데 내가 먼저 파괴됩니다. 그리고 미운 감정은 파급력이 있어서 공동체의 하나 됨을 파괴합니다. 성령의 그릇이 깨짐으로 수고하여도 열매를 맺기 어렵게 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역사가 됩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나 자신이 완전하지 못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하고 적극적으로 용납하고 용서하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죄 사함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 됨의 축복을 보너스로 주실 것입니다.
여섯 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13) 우리는 거듭나 새 사람이 되었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불씨가 있습니다. 음란의 불씨, 욕심의 불씨, 분노의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악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죄를 가까이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죄의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죄의 불이 타오를 수 있습니다. 한번 불이 붙으면 끄기 어렵습니다. 나를 다 태워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나의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로 나와 내 가족, 내 양들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가 많았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은 구원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잘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변화되질 않는가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제 기도제목부터 바꾸어 보고자 주기도문의 기도를 몸에 익히고자 방향 잡았습니다.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나님나라가 임하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종이 될 수 있도록 먼저 기도하며 그런 종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주기도문에는 신앙생활의 목적과 방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자주 묵상하고 주기도문대로 기도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할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께서 갚으십니다. 구제와 기도에 힘쓰되 은밀히 행하는 믿음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사람 앞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삶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숙한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94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강]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관리자 2013-03-24 2672
593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6강] 섬기러 오신 예수님 관리자 2012-07-01 2672
592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2672
591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7강]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관리자 2014-03-16 2670
590 누가복음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3강 리스닝 2010-04-01 2670
589 느헤미야 [2011년제자수양회 제2강]위기를 극복한 지도자 느헤미야- 노아자.. 리스닝 2011-06-13 2669
588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1강] 이 말을 하였으니 관리자 2012-05-27 2668
587 야고보서 [2010년야고보서제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리스닝 2010-09-05 2665
586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5강]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관리자 2011-10-09 2663
58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리스닝 2010-05-02 2663
584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7강]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관리자 2011-07-24 2657
583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1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2-05-20 2655
582 시편 [2011년 추수감사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관리자 2011-11-27 2655
581 이사야 [2010년 이사야서 제7강]한 왕의 통치와 성령 강림 관리자 2010-11-07 2655
580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 제12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고영훈 휴화산 2010-01-14 2655
579 신명기 [2014년 신명기 제1강] 올라가서 차지하라 관리자 2014-09-14 2654
578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13강]죄사함과 사랑 관리자 2011-06-26 2649
577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제7강]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관리자 2012-04-29 2647
576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7강]열매를 맺으려면 리스닝 2010-06-27 2646
575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4강] 영생을 얻으려면 관리자 2014-07-20 2644
12345678910,,,39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