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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서삼문
작성일 2011-10-16 (일) 12:41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26강-1.hwp (27KB) (Down: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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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26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2011년 누가복음 제 26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 누가복음 13:10-35
요절: 누가복음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작은 겨자씨로 시작하여 큰 나무로 자라고, 지극히 적은 누룩으로 시작하여 큰 영향력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 위해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시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Ⅰ. 하나님 나라의 비유(10-21)
  안식일에 예수님이 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였습니다. 18년 동안이나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이 그곳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힘들고 고달파도 기를 펴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살아야 살맛이 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18년 동안이나 한 번도 허리를 펴지 못하고 꼬부라진 인생을 살았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겠습니까? 그가 이렇게 살았던 것은 귀신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사 “여자여 네 병에서 놓였다” 말씀하시고 안수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의 꼬부라진 허리가 곧 펴지고 여인은 비로소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안수의 힘은 귀신을 쫓아내고 여인에게 참 자유를 주었습니다. 오늘날 캠퍼스 지성인들은 힘든 현실과 장래에 대한 염려로 허리가 꼬부라져 비전을 갖지 못하고 땅만 보고 살아갑니다. 학사들은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과중한 업무에 짓눌려 살아갑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운명귀신, 정욕귀신에 사로잡혀 주눅 들어 기를 펴지 못하고 꼬부라져 땅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하면 귀신이 쫓겨나고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로운 역사를 보고도 기뻐하지 못하고 분을 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장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분을 내며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며 일장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모든 것을 율법의 잣대로만 보았습니다. 그가 율법의 눈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은 안식일 법을 어긴 죄인이요 예수님을 통해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안식일 법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안식일 법의 근본정신을 모르고 율법 조항에 얽매어 사는 그들의 외식을 깨우쳐주시고자 그들도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는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15)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16) 예수님은 이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 하셨습니다. 이 여인도 본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자였는데 사탄에게 매어 이렇게 목마르고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구원하사 안식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사탄의 세력에서 놓임을 받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한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주시고 안식일에 대한 근본의미를 가르쳐주시자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였습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예수님은 왜 갑자기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한 여인을 고치시고 구원하심으로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이는 겨자씨를 심는 것 같은 역사입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이 씨를 밭에 심으면 3-8m나 되는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찾아와 그 가지에 앉아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 심령에 심겨진 하나님의 나라가 처음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후에는 엄청나게 크게 성장하여 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은 죽은 자와 방불한 자였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심겨졌을 때 크게 자라 그를 통해 하나님의 후손들이 하늘의 허다한 별과 해변에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게 되었습니다.(히11:12)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역시 연약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지만 이들 속에 복음의 씨가 심겨졌을 때 마침내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요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지금은 자기 한 몸 감당하기 힘든 부족한 자들이지만 그 심령에 복음이 심겨지면 크게 성장하여 힘든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한 자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 구원을 알리는 거목이 될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알 때 우리는 한 팀의 일대일 성경공부, 나 한 사람의 중보기도를 소망 가운데 감당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믿음으로 비전 가운데 섬길 수 있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같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겨자씨 비유가 외적 성장을 나타낸다면 누룩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내적인 변화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누룩은 적은 양이라도 내부로 침투하여 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복음이 심겨지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역사하여 전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사람을 열국의 아비로 변화시키고, 소심한 사람을 대범한 사람으로, 미움과 증오로 꼬부라진 사람을 사랑의 사도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라고 성장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역동적인 살아 있는 실체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씨가 땅에 심겨져야 하고 누룩을 떡 반죽에 넣어야 합니다. 이는 모두 자기희생과 헌신을 말해줍니다.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여 헌신하는 자는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고 후손들에게 큰 영적 유산을 남기는 영향력 있는 종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소망하며 이를 위해 겨자씨 한 알 같고 적은 누룩 같은 한 사람을 온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 한 사람이 변화되고 자라 큰 종이 되기까지 내 인생을 걸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El Camino UBF에 Moses Webster 목자가 있습니다. 그는 19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아주 잘 생긴 미국 학생입니다. 그러나 그가 6살 때에 부모님이 이혼하시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그에게 두려움을 심어 그의 기를 꺾어버렸습니다. 그는 삶이 이런 것이라면 자신은 어른이 되지 않겠다며 초등학교로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숙제를 해본 적이 없고, 모든 수업시간에는 잠만 잤습니다. 이런 그가 피싱되어 John Baik 선교사님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일대일을 2번 한 후부터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지를 시작하면 자기 시작하였다가 메시지가 끝나면 잠을 깨기를 2년 동안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John 선교사님은 이 한 사람을 돕고자 요한복음 11:40절,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말씀에 기초하여 그를 예배 사회자로 세웠습니다. 모세가 주일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지만 그는 영어를 읽을 줄 몰라 성경본문 교독을 할 때 청중들이 한 단어씩 불러주었고 그러면 그는 더듬거리며 읽었고, 청중들은 다음 절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난 다음 그는 창세기 특공대를 통하여 창세기 1:26, “우리가 우리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로 하여금 …정복하고 다스리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서 만들었으며, 개척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위대한 인생을 살도록 지음 받았음을 영접하고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어를 잘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던 그가 매주 18팀의 1:1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Sam형제를 목자로 세워주셨고, 멕시코 갱단의 Killer로 활동했던 양을 제자로 키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John Baik 선교사 한 사람 속에 믿음의 씨를 심어주셔서 변화되게 하셨고 이 종을 통해 한 사람 모세 형제에게 복음의 말씀을 심어 싹이 나고 자라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거목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나 한 사람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 한 사람을 통해 위대한 역사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한 개인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가정이 복음화 되고, 캠퍼스가 복음화 되고, 직장이 복음화 되고, 사회가 복음화 되고, 마침내 나라가 복음화 되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Ⅱ. 좁은 문, 넓은 문(22-35)
  2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각 성과 각 촌으로 다니시며 더욱 상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구원을 얻는 사람이 적으니이까?” 질문하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예수님이 그렇게 열심히 말씀을 전파하시는데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많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실 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또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일 때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따르고자 하는 자들이 부지기 수였습니다. 이런 예수님이라면 성서 이스라엘은 경한 일이요 온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을 날이 곧 도래하리라 비전에 불탔습니다. 그런데 정작 구원을 위해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자 밀물처럼 몰려왔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떠나가며 결국 남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역사를 지켜보며 적은 숫자만이 구원을 얻게 되는가 의심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창기나 세리 같이 공인된 죄인이 아니면 모두 구원받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회개치 않으면 망하리라’(13:5) ‘열매 없으면 찍으리라’(13:9) 하시며 구원을 얻을 자가 많지 않음을 시사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조금만 타협하여 양들의 눈높이로 수준을 낮추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이는 힘든 시대에 캠퍼스 개척역사를 섬기는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의 상급은 구원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얻도록 밤낮으로 수고하는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데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 길이 있다면 어떤 수고도 거리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수고한 만큼 남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잘 자라던 양도 정말 신앙성장을 위해 회개, 순종, 십자가, 사명 등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가르치면 부담스럽다고 떠나는 것을 보며 너무 절대적으로 복음을 가르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가?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양들에게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은 그에게 많다 적다 산술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보다 예수님은 현재 구원을 얻는 길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힘쓴다(Make every effort)는 것은 ‘모든 노력을 경주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운다’는 뜻입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면류관을 쟁취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3-6절에서 신자를 싸우는 군사, 경기하는 운동선수, 수고하는 농부에 비유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쉬운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힘드냐며 편안하고 쉽게 신앙생활 하는 곳을 찾아다니느라 고생합니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안전하게 생각합니다. 그 문에 들어가면 무엇인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고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 같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기 때문에 옳은 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하십니다. 왜 들어가기 쉽고 편안한 넓은 문을 외면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왜냐하면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좁은 문은 구원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를 볼 때 좁은 문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구원의 문이요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께서 가신 길을 믿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구원의 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복음의 원수들 앞에서 담대히 증거 하였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는 구원의 문은 좁지만 믿는 자에게 구원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예수님을 믿는다고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나가야 합니다.(빌2:12)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진리의 삶을 사는데 방해되는 자기속의 죄악된 세력을 버리고 거룩한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배우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이런 삶에는 생명이 있고 기쁨과 열매와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예수님을 따르는 자세가 어떠합니까?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전심전력 모든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죄인의 본성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므로 이 죄를 극복하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힘들지만 구원을 얻는 영광의 길입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익숙한 신앙생활을 하며 안주하기 쉬운 가운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순수한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구원의 문은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날에는 자기 원하는 데로 살며 인생을 즐기다가 죽기 전에 십자가의 강도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으면 되지 않느냐 하며 마치 구원을 자기 계획대로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구원의 문을 열어놓으셨을 때 믿음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문이 닫힌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뒤늦게 항변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당당하게 두드렸습니다.(26) 그러나 주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27) 주인이 볼 때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악을 행한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누가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게 됩니까? 29,30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이스라엘이냐 이방인이냐 상관없이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한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에 힘썼다는 자부심만 가지고 더 이상 영적 투쟁을 게을리 하면 나중 된 자의 부류에 떨어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31-35절에는 좁은 길을 앞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31) 헤롯은 예수님의 복음사역이 왕성할수록 의인 세례요한을 목 베어 죽인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눅9:7) 그래서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이 자신의 관할 구역인 갈릴리를 떠나주기를 바랐습니다. 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대한 시기심 때문에 그곳에서 빨리 떠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위협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쫓아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획이 어떠하였습니까? 3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하시며 그의 교활성을 지적하셨습니다. 헤롯이 어떤 악한 일을 행할지 모르지만 그의 위협을 개의치 않으시고 오늘과 내일은 구원역사를 섬기시고 제 삼일에는 구원역사를 완성하셔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가야 할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사명인의 자세를 배웁니다.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 가정의 핍박이나 세상 친구의 조롱이 있습니다. 이 길을 가면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사탄이 심는 두려움과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인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음을 알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데 헌신하고자 하는 분명한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34,35절은 끝까지 회개치 않고 멸망의 길을 가는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안타까운 탄식입니다. 예수님은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 함같이 예루살렘을 사랑의 품으로 모으려 하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배척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AD 70년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앞날을 내다보시며 탄식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데로 신앙생활을 하며 구원을 얻을 것으로 확신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즐기며 산 자들에게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너희는 쫓겨난다 하시는 말씀으로 구원을 얻는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경고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자기 부인도, 자기 십자가도 없이 오직 은혜와 위로와 축복만을 바라고 사는 신앙생활은 잘 못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힘들면 안하고 마음에 안 맞으면 안하고 자기 편리한데로 말씀에 절대 기준이 없이 자기가 기준이 되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이 말씀 앞에 우리가 회개하고 힘써서 예수님을 따르는 복된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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