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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7-16 (일) 12:20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7년_누가복음24강-1(이사가랴).hwp (64KB) (Down: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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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24강]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2017년 누가복음 제24강                                                        이사가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말씀/ 누가복음 15:1-32
 요절/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려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잃어버린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 헤맨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에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옵니다. 여름수양회를 앞둔 우리도 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끝까지 믿음으로 섬기길 기도합니다.

  다같이 1,2절 읽겠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죄인들을 영접하고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에는 부정한 자나 죄인들과는 가까이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 지금까지 죄인들을 섬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식사를 같이하는 경우는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때마다 예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만 할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살리고자 오신 분입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죄인과 잃은 자를 찾으러 오신 분이심을 가르쳐주십니다.

첫째, 잃은 양의 비유(3-7)
  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양이라 표현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목자로 표현이 되곤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목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양의 특성은 온순하고 약합니다. 양은 어떤 악을 행하려고 의도하지 않습니다. 양들은 단지 어디에 목초가 풍부하고 신선한가만을 알뿐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양은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양은 동물이기에 선견지명이 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식과 본능만이 있을 뿐입니다. 양들에게서 책임감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양은 목초를 따라 멀어져갔고 무리에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목자는 그 양의 가치에 이의를 달지 않고 찾아 나서게 됩니다.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을 근처 목자에게 잠시 봐 달라 부탁하였습니다. 목자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자녀가 많다하여도 한 명, 한명이 다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만일 한 자녀가 소식이 없다면 만사를 제치고 자녀를 찾아 나설 것입니다. 반면에 삯군이라면 양 한 마리가 안보여도 ‘그 양은 고생 좀 해봐야 철이 들것이다’며 방치해 버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수를 위하여 소수가 희생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많은 양을 더 잘 돌보기위해서는 양 한 마리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의 이익을 앞세우는 공리주의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소수의 사람들은 무시되곤 합니다. 수년전 나온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 교수는 이런 점에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연구와 논리를 기록하며 과연 다수를 위한 것이 정의인가 분석하였습니다. 그의 결론은 정의는 사람들 간의 협의를 통하여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야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한 양을 찾기까지는 결코 쉴 수가 없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도록 찾기까지 찾아다닙니다. 이렇게  목자가 양을 찾으러 나서면 사실 남아있는 양들은 잠시 불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아 나도  혹시 길을 잃고 헤매이면 목자님께서 반드시 찾으러 올 것이구나’ 믿음을 갖고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은 남아있는 양에게도 장래 불안을 없애주는 확신과 소망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가 아니라면 그 양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어버릴 것입니다. 양을 잃었을 때는 이런 긴박성을 가지고 양들을 찾아나서야 하겠습니다.
  목자가 양을 찾으면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그 벗과 이웃을 불러서 함께 잔치를 하며 즐거워할 것입니다.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들 같이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는 사람 아흔아홉 명이 있다하여도 죄인 한 사람이 분명히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양은 죄인을 상징합니다. 이번 여름수양회에도 길을 잃고 헤매이는 죄인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길 기도합니다. 길 잃은 양은 애타게 목자를 기다리며 소리 내고 기다리는 죄인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이런 양은 목자가 연락만 해도 반갑게 맞이하며 수양회에 따라나서게 될 것을 믿습니다.
  여름수양회역사를 섬기면서 양들 초청하기 위한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선배의 권위로 양을 초청하여왔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참석한 소원이 없는 형제들은 수양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서 몰래 귀가해 버리곤 하였습니다. 어떤 양은 멀리 지방까지 가서 승용차에 태워 수양관으로 향했는데 신호대기에 멈춘 사이 내려서 가버리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삼척에 있는 양을 수양회 첫날저녁에  데려오기 위하여 수양관에서 승용차로 가서 중간지점인 원주에서 만나 참석하게도 하였습니다. 미국 엘까미노 개척하는 쟌 백선교사님도 양이었을 때 처음으로 선배의 초청으로 수양회에 갔지만 적응이 되지 않아 다음날 아침 몰래 돌아가고자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새벽에 자기를 초청한 목자님이 단상아래서 간절히 새벽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는 하루만 더 있어주고자 하다가 그날 울려 퍼진 바로 오늘 말씀 ‘눅15장 돌아온 탕자’ 말씀을 듣고는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우리모임에서도 학생 목자들 중심으로 캠퍼스 피싱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많은 초청의 역사가 일어나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풀타임 사모님들의 헌신과 수고로 양들 초청역사 일어나게 하시어 감사드립니다. 학사목자님들도 저녁시간 기도하며 수고하였습니다. 이제 이런 수고들의 결과로 양들이 살아나는 여름수양회 되길 기도합니다. 저는 jbf 교장으로 10여년 섬겨서인지 이번 수양회에서도 하나님께서 2세들인 백오병, 김한유 형제들을 보내시어 참석할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족하지만 2세들의 목자로 세우심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2세들 찾기까지 찾아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둘째,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8-10)
  8절을 읽겠습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드라크마는 헬라의 화폐로써 데나리온과 같은 단위입니다. 오늘날 일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므로 5-10만원 정도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당시에는 남편이 아내를 맞이할 때 아내에게 결혼예물로 열 드라크마를 줄에 끼어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선물로 받은 열 드라크마를 매우 소중히 여겨서 머리에 장식하여 두르고 시집을 가게 됩니다. 이렇게 구별된 열 드라크마는 강도나 도둑도 결혼예물로 알아채고 가져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는 늘 머리에 열 드라크마를 두르고 지내고 심지어 잘 때도 두르고 잘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지중지하는 열 드라크마 중 한 드라크마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보통의 드라크마이면 비용이 크지 않기에 몇 번 찾다가 안보이면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예물로 받은 드라크마이기에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온 집안을 대청소하며 부지런히 찾고 또 찾았습니다. 마침내 드라크마를 찾아 온전한 열 드라크마를 이루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이 어떠하였을까요?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하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잃은 드라크마를 찾으면 매우 기뻐하듯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더욱 기뻐할 것입니다. 드라크마는 잃어버린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양, 그래서 목자가 찾아야만이 만나게 되는 양입니다. 첫 번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은 음매하며 소리를 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주인이 찾아다녀야 하는 양입니다. 캠퍼스에 혼자 조용히 떨어져 자기 일만 하는 양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같은 양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런 양을 찾아야겠습니다. 현실이라는 어두움에 갇혀 있고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양들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사회는 SNS의 발달과 나 홀로 가족이 증가하면서 양들도 혼자서, 조용하게 지내는 분위기가 되고 있습니다. 카톡이나 문자를 받지 않고 통화도 되지 않으면 양들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최첨단 스마트폰과 초고속 인터넷이 발달하다보니 오히려 서로간의 직접적인 대화나 소통은 더 안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목자들이 관심의 등불을 켜고 겸손히 엎드려 이들을 찾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지금은 어두운 내면이지만 내일은 밝은 내면을 가질 수 있습니다. 포기치 않고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고 찾아 양들을 만나게 되길 기도합니다.

셋째, 돌아온 탕자의 비유(11-32)
  어떤 사랑이 풍성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맏아들은 성실하고 모범적이었지만 둘째는 자기 생각과 주장이 분명하고 자유분방하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어느날 둘째가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유산을 당겨서 달라는 요청은 들어주기 어려운 요청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살림을 각각 나눠주었습니다. 왜 아버지는 둘째에게 유산을 미리 나누어 준 것일까요? 둘째를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인격적으로 두 아들들을 사랑하였습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자유로운 기질을 가진 둘째는 이제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아버지 집을 떠나고자 결단하고는 재물을 모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나만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야호 외치며 신바람 나게 떠났습니다. 먼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입니다. 더 이상 훈련이 없는 곳, 자기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거기서 둘째는 허랑방탕하였습니다. 신나게 먹고 마시고 놀고 시간을 낭비하였습니다. 영적으로도 낭비하고야 말았습니다. 처음엔 자유요 즐거움이었지만 그런 시간이 결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4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는 겉보기엔 잘 나가는 것 같지만 다 없어지는 시기, 궁핍의 시기가 오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을 결코 부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시기가 되니 친구들도 다 떠나고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가서 그 나라 백성에게 붙여 살았습니다. 그것도 돼지 치는 일용직 노동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너무 배가고파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지만 이마저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정말 돼지보다도 못한 인생으로 전락하고야말았습니다.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죽는구나”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양식이 풍족한 품꾼들이 많은 아버지 집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침이면 양식발표 하느라 모여 있는 형제, 자매들의 모임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녁이면 팀별로  모여서 기도하고 교제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선하였습니다. 토요미팅에 나오는 맛있는 스파게티, 고급스런 식사를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였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받은 많은 섬김과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버지 집을 생각하니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그 동안은 나를 억압하고 늦잠도 못 자게하고 소감 쓰라고 괴롭히는 것 같았는데 그 모든 게 아버지의 관심이고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여기서 주려죽는구나..” 둘째는 장탄식하였습니다. 이러다가 자기는 심판이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죄인으로서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뿌리치고 나온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19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둘째는 이제 돌아가고자 결단하였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돌아가자 결심하였습니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여 자기가 깨어지는 고난을 통하여 둘째는 비로소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둘째가 집을 나가고 죄를 지은 것은 문제였지만 한 가지 훌륭한 점은 이런 중에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자 결단한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작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인 것입니다.
  20a절을 보십시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그는 믿음으로 돼지우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믿음으로 죄악과 절망과 수치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회개란 이처럼 온전한 삶의 방향을 뜻합니다. 그가 믿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그를 어떻게 맞이해주셨습니까?20b절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우니” 아버지는 둘째가 거지가 되고 굶주려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는데도 멀리서부터 둘째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달려가 목을 안고 얼굴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둘째야”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 자체를 감사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둘째는 터벅터벅 걸어왔지만 아버지는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아버지가 집 나간 아들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영접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을 결코 잊지 않고 기다리십니다.
  21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하나” 둘째는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진심을 드러내었습니다. 나쁜 친구들이 나를 이렇게 하였다며 핑계대지 않았습니다. 돼지치기 집 주인이 나빴다고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진실되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래도 둘째는 양심이 살아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를 아들로 인정하고자 합니다. 22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누더기를 벗기고 좋은 옷으로 입혔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워서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신발도 신게 해서 종들과 구별하고 아들로서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합니다. 이는 최고의 대접입니다. 돼지보다 못한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최고급 송아지요리를 먹게 되었습니다. 24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아들 자체를 기뻐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동안 둘째를 죽은 것으로 여기고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둘째를 보내고 아버지는 하루도 마음 편히 보낼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오늘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온 식구들과 더불어 즐거워하였습니다. 잔치는 용서의 은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날 매우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맏아들이었습니다.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서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는 종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는 종으로부터 동생이 살아 돌아온 소식을 듣고는 노하여 집에 들어가고자 아니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권하였습니다. 그러자 맏아들의 항변이 무엇입니까? 29,30절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일이 없더니..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맏아들은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둘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성실맨이었습니다. 그의 말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버지 마음의 고통과 기쁨을 전혀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동생을 불쌍히 여기지 못하는 이기적인 자였습니다. 먼 나라에서 죽다가 살아난 동생을 뜨겁게 환영하질 못하고 조목조목 정죄하고 판단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염소새끼하나 얻으려는 마음은 삯군의 심정입니다. 이에 대한 아버지의 답변이 무엇인가요? 31절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알아야했습니다. 아버지의 것이 언젠가는 다 자기 것이 될 것도 알아야했습니다. 이미 둘째가 유산을 분배받았기에 이제 아버지의 남은 재산은 첫째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첫째는 내면이 좁았습니다. 일은 열심히 하였는데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성이 없는 맏아들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시오 선한 목자이십니다. 지금도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들을 찾도록 찾으시기 위해 먼저 우리를 찾아주시고 우리를 이들에게로 보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을 품고 잃어버린 자를 찾도록 찾아 아버지께로 인도하여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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