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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1-26 (일) 12:50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4_신년5강-1(오정훈).hwp (29KB) (Down: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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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년 제5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2014년 신년 제5강                                                                             오정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말씀/이사야40:1-31
요절/이사야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활기찬 인생, 힘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도 죄의 노예가 되어 또 무거운 인생의 짐들에 눌려 피곤하고 무기력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무겁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진정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려 주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넘치는 생명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므로 피곤을 이기고 독수리 같이 비상하는 삶, 생명력이 충만한 새해가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Ⅰ.위로의 하나님(1-12)
  1절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스라엘은 이제껏 바벨론 포로생활로 힘겹고 소망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 하시며 바벨론에서 해방되기 전에 먼저 위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위로는 남의 어려움을 깊이 이해하고 동정함으로 그것을 어루만져 잊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바나바가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그런 분이 한 분 있습니다. 이분에게 가면 약간의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 해결되지 않는 인생문제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의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무관심하신 것 같지만 우리의 죄로 인한 고통,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인한 고통에 깊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도록 위로하여 주십니다. 나의 영혼의 괴로움을 다 아시고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2절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그것은 그들의 노역의 때가 끝났고 벌을 배나 충분히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의 죄는 그들의 조상이 광야에 갓 나와서 지은 불신과 우상숭배의 죄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연단 받았고 가나안의 젖과 꿀이 흐르는 모든 축복을 누리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죄였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아 이방인의 포로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죄의식도 더욱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죄 값을 배나 치렀다고 말씀하시므로 그들이 절망과 자책에서 일어나도록 위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 인생을 영원히 벌하지 않으십니다. 주 예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께 대해 회개하기만 하면 아무리 몹쓸 죄를 지었더라도 죄 사함 주시고 다시 그 백성이요 자녀로서 따뜻하게 맞이해 주십니다. 때로 징계하시지만 결국은 다시 영접하여 주시고 자녀로 회복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3절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 말씀은 위로 받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준비시키라는 것이요 하나님이 즉시 역사하시도록 그 길을 곧게 하라는 것을 말합니다. 고대에는 왕들이 행차할 때 그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이런 일들을 하였습니다. 실제로 진시황은 순행을 위해 100km가 넘는 산과 골짜기를 다듬어 직선 길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제 바벨론에서 나올 때는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받기 위해 온전히 회개하므로 그 마음을 곧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을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열등감으로 패인 마음을 돋우고 교만으로 높아진 마음을 깎아서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임하십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는 죄인의 길이였지만 이제 하나님의 연단이 끝나면 하나님의 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광스러운 길이 되게 됩니다. 5절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불신하며 돌을 옮기지 못하고 있던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11:40)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회개하고 순종하므로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2014년 새해에는 회개하고 한마디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6절입니다. 하나님은 말하는 자의 소리 곧 이사야에게 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6b,7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여기서 풀과 꽃은 좁게는 바벨론의 화려한 문화문명 거기에 나타나는 세상 영광을 의미합니다. 유다가 바벨론에서 나오고자 할 때 바벨론 문명에 대한 동경 때문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고 그것이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들이 들의 풀과 꽃과 같다고 하심으로 그 영광이 잠깐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사막에는 봄이 되면 꽃이 활짝 피었다가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시록코)이 몰아치면 바로 그 꽃이 곧 시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세상영광이 그와 같습니다. 바벨론이 영원할 것 같고 그 화려함과 풍요로움이 영원할 것 같지만 잠깐입니다. 세상 문명 유행도 다 잠깐이고 인간의 아름다움도 젊어서 잠깐일 뿐입니다. 여호와의 입김이 몇 번 불고 나면 싱그럽고 아름답던 모습이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 외치라고 말씀합니다. 헛된 세상영광과 화려함에 속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붙들도록 큰 소리로 외치라 하십니다. 8절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새벽이슬을 머금은 풀도, 영롱하게 피어올랐던 꽃도 결국 시들어 버리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시대, 어떤 문제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는 들의 풀과 꽃처럼 사라질 인생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확신과 믿음이 있을 때 세상 화려함과 영광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므로 승리하는 삶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은 유다의 해방의 소식으로 그가 외쳐할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의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은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연단을 받고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들이 있는 바로 여기에 함께 하십니다. 이는 다시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항상 여기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불신하고 버림으로 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뿐이지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있는 여기에 계십니다. 여기에 계셔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고 우리를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도록 도우십니다. 여기 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죄악된 세상 가운데 실족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여기에 계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강한 자로 임하셔서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강한 자로 임하셔서 그의 팔로 다스린다고 하시니까 이종격투기 선수처럼 말 안 들으면 이러 저리 차고 때리실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11).” 하나님은 분명 강한 분이시지만 그 택한 백성을 목자같이 품에 안으시고 젖먹이를 먹이듯 돌봐주십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알맞은 것으로 먹이고 가장 합당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다윗은 광야의 극한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이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확신가운데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가장 합당하게 인도하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이 하나님께 나의 장래를 맡기고 인도함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12-31)
첫째, 비길 수 없는 하나님(12-26)
12-26절은 비길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인간의 나약함과 우상의 무익함에 대조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세상에서 그 누구도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리고 뼘으로 하늘을 재며 티끌을 됫박으로 재어보고 산과 언덕을 저울로 재어볼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이를 하실 수 있는 분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영을 지도하고 그의 모사가 되어 줄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 감히 그와 더불어 의논하고 교훈하며 정의의 길, 지식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이 하나님께 5대양 6대주에 퍼져 있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에 불과하고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십니다. 요즘 강대국들은 서로 패권경쟁을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 힘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영토인 이어도까지 자신들의 방공망식별표시에 넣어 패권주의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개발한 극초음속기 마하 5, 초속 1.7km로 나는<한반도에서 하와이까지 1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비행체에 대응하기 위한 무인비행시스템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거기다 일본은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 우기며 우리나라를 넘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힘을 가진 강대국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나라야말로 통의 한 방울 물 같아 보일 뿐입니다. 미국은 인구가 이미 3억을 넘었고 중국은 14억이 넘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처럼 여길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땅이 아무리 넓고 그 속에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은 통의 물 한 방울과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처럼 여기십니다. 과거의 강대국이었던 애굽 바벨론 로마 등 그들은 한번 세게 튀긴 통 속의 물 한 방울처럼 역사에서 반짝하다가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이 센 나라 강대국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이런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크신 하나님께 레바논의 나무와 짐승은 번제로 드리기에도 부족합니다. 이 하나님은 그 무엇과도 도저히 비길 수 없는 분인데도 어리석은 인간은 우상을 만들어 금을 입히고 은사슬을 씌워서 하나님처럼 섬기고자 합니다. 우상을 흔들리지 않도록 세우면 자신의 삶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열심히 절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궁창을 의자 삼으시고 하늘을 차양 삼으시는 분으로 세상의 존귀한 자, 재판관들을 헛되게 하시는 진정한 권세자이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눈을 높이 들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권능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달라 보이고 하나님 백성이 얼마나 위대한가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통의 한 방울 물 같은 자신으로 인해 위축되고 존재감 없이 살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진정한 권능자가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인해 힘을 덧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사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둘째,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27-31)
  2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포로생활하면서 자신들의 힘든 사정에 하나님은 마음 쓰시지 않는다,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을 돌아보시는가’, ‘과연 도와주고자 하시는가’ 의심하고 원망하였습니다. 혹 알고 계시더라도 세상 만민의 송사와 어려움을 돌보시느라 자신들을 돌아보실 여유와 힘이 없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 문제 도와주시고 해결해주시느라 내 문제에는 신경도 안 써주시고 관심도 없으신 것이 아닌가 의심과 원망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피곤하지 않으시고 곤비치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피곤치 않으시고 곤비치 않으시다는 것은 인생들의 모든 문제들을 아시고 그들을 도우시는 일에 있어서 결코 지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도우려고 해도 진이 빠지고 쉽게 지칩니다. 그 사람의 문제가 무엇인지, 장래를 어떻게 도와야할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많은 인생들의 문제를 들으시고 도우시는데 명철이 부족하시거나 지치지 않으십니다. 이 영원하신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모를 때, 또 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자에게 피곤이 문제가 됩니다. 언제 피곤을 느낍니까? 갱년기에 접어들 때, 일이 예상대로 잘 안 풀릴 때,  현실이 어려워질 때 피로를 느낍니다. 그래서 혈기 왕성한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다 같이 31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세상성공과 물질이 아니라 ‘여호와께 희망을 두는 사람’, ‘여호와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여호와를 믿고 의지할 때 거기에 길과 희망이 있음을 확신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이 힘은 문제가 해결되어서 반짝 생기는 그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속적인 힘, 곧 성령의 능력, 성령충만함을 가리킵니다. 이 새 힘을 얻는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되고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됩니다. 한마디로 독수리 같이 비상하는 멋진 삶을 살게 됩니다. 독수리는 어떤 동물입니까? 독수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새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동물입니다. 독수리는 한 두 번의 날갯짓만으로도 상승하여 공중의 기류를 타고 유유히 상공을 날아오릅니다. 폭풍이 거세면 거셀수록 기류를 타고 더 높이 날아올라 날짐승 중에서는 유일하게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태양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강력한 시력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스케일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반면 참새는 어떻습니까? 참새는 모이를 주어먹기 위해 항상 눈은 땅을 주시하며 낮은 곳을 날아다닙니다. 낮은 땅만 보며 다니기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결국 손쉬운 사냥감이 되고 맙니다. 이 참새의 모습은 땅만 쳐다보며 현실문제에 울고 웃는 우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물질문제 건강문제 직장문제 장래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늘 마음이 매여 있다가 문제가 좀 해결되면 반짝 힘이 나서 지내다가 이내 문제에 빠지면 힘을 잃고 절망합니다. 인생을 다 산사람처럼 깊은 한숨을 내시며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해하고 염려와 두려움에 빠집니다. 우리가 이런 무기력과 피곤에서 벗어나 새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을 앙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의 길이 있고 희망이 있음을 믿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려는 위대한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때 희망이 생기고 힘이 나서 독수리 같이 날개 치며 오르는 힘 있는 삶, 생명력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피싱하기 위해 캠퍼스를 오르내리고 일대일을 하기 위해 센터를 오르내려도 결코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않습니다. 날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해도 피곤하지 않고 주말마다 열심히 양을 섬겨도 곤비치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물질과 인생문제 해결을 통해 아기자기한 삶에 소망을 두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로 인해 일희일비하며 피곤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힘이 있고 스피릿이 충만한 삶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최근에 힘과 기쁨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랜만에 빚도 조금 갚고 통장에 잔고가 쌓여 매일 인터넷으로 쌓인 물질을 보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인터넷 뱅킹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아무도 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곤 하였습니다. 또 10년 넘었지만 별 볼일 없던 악기 연주에 조금씩 진보가 보이자 속으로 혼자 기뻐하며 신나했습니다. 거기다가 최근 중국의 마롱선수와 한국의 김택수 선수의 동영상을 보며 전진속공 드라이브를 남몰래 연마하여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격하여 모든 사람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홀로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라켓을 들고 연습하고 치과나 운전할 때도 연습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문대범 목자님과 짝을 이루어 김태진 위경민 조와 붙게 되었는데 되지도 않는 드라이브 공격으로 인해 10:3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자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악기도 당장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역시 한계에 부딪히자 힘이 빠졌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들 양육문제 물질문제 무엇보다 학생역사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생각하니 심령이 답답해졌습니다. 무엇하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복음역사를 앞장서서 섬겨야 하는데 부담스러운 생각으로 뒤로 물러나는 자신을 볼 때 피곤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면 집이 떠나갈 정도로 코를 골며 잤고 센타 기도실에서도 신현준 형제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코를 골며 자곤 하였습니다. 이 피곤의 정체는 단지 육신의 피곤인가 생각할 때 그렇지 않고 땅만 바라보는 삶, 문제 해결에 매인 삶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좀 몸이 피곤했어도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에 기초해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리고자 했을 때는 그렇게 피곤하고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유독 피곤함을 느끼는데 이는 내면의 무기력 비전 없는 삶 때문이었습니다. 비전 없는 저의 삶은 참새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집에서는 애들한테 치이고 치과에서는 환자한테 치이고 센터에서는 양들에게 치이고 쉼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탁구를 치지만 드라이브가 잘 걸리지 않아서 또 피곤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게 됨을 배웁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께 희망을 둘 때 거기에 길이 있고 모든 인생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주와 복음을 위해 치열하게 살지 않고 물질과 문제 해결을 통한 아기자기한 삶을 구하므로 피곤과 무기력 속에 지내던 것을 이 시간 깊이 회개하고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어 캠퍼스를 오르내리며 복음을 증거하고 주의 제자들을 양육하는 일에 열심을 낼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죄로 인해 피곤하고 지친 인생에게 그 징계와 연단의 의미를 알려주시므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또한 피곤과 무기력이 만연한 세상 가운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심으로 독수리와 같이 비상하는 힘 있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십니다. 새해에는 오직 이 하나님 한 분만을 앙망하므로 새 힘을 얻어 생명구원역사를 피곤치 않고 섬겨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한 해가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름아이콘 안녕하세요
2014-02-01 20:5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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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 마태복음 [2015년 성탄 메시지] 내 백성의 목자가 되리라 관리자 2015-12-20 2930
537 이사야 [2014년 신년 제5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1 관리자 2014-01-26 2927
536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4-06-22 2925
53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6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서삼문 2011-10-16 2923
534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5강]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이사가.. 관리자 2011-02-06 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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