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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2-05 (일) 12:46
분 류 야고보서
첨부#1 2012년_야고보서3강-1_최동진.hwp (27KB) (Down: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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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야고보서 제3강] 온전한 사람
2012년 야고보서 제 3 강                                                                   최 동 진

온전한 사람

말씀: 야고보서 3:1-18    
요절: 야고보서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는 날마다 많은 말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말을 안 하고는 살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더욱더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숙한 신자의 언어생활이 어떠해야 하는가 잘 배우고,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덧입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성숙한 신자의 언어생활 (1-12)

 1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당시 유대에서는 오늘날처럼 성경책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로 말씀을 들음으로써 여러 지식들을 습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생, 곧 가르치는 사람이 인기가 있었고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선생이 되기를 열망하였습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큰 특권이고 영광입니다. 그러나 저자 야고보는 그들에게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선생 된 자가 더 큰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큰 심판’이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가르치는 자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잘 가르침으로 배우는 자가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할 수도 있고, 잘 못 가르쳐서 영적으로 실족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잘 가르치면 더 큰 상을 받지만 잘 못 가르치면 엄한 벌을 받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대표적인 선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깨끗한 척 하면서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 하였지만 속은 탐욕과 방탕,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회칠한 무덤과 같다며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도 기독교 신자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는 이유 중 하나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는 성경 선생이라는 직분이 주는 명예를 즐기려하기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입으로 한 말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야고보는 선생이 되고자 하는 자가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말씀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는 말은 야고보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나 다 인간성이 연약하기 때문에 그것이 말의 실수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하루에 평균 2만5천 마디의 말을 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여자들은 좀더 많아서 하루 3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 말들을 1년동안 모으면 400쪽짜리 책 130권 분량이나 된다고 합니다. 요즈음에는 그것도 모자라서 하루종일 손가락을 움직여 카톡이나 페이스북으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실수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아차 하는 순간에 의도하지 않았던 엉뚱한 말이 튀어나와 곤란한 상황에 빠지곤 합니다. 아무리 조심하려 해도 우리 속에 있는 죄악되고 부패한 본성이 말에 묻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선생들은 말에 실수를 하기가 더 쉽습니다. 그래서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사람’ ‘perfect man' 즉 완벽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주로 하는 많은 이야기들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위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상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건을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고, 협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사람 이야기를 하기 좋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의 대화 속에서 다른 사람을 험담하곤 합니다. 참 다루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혀입니다. 말을 쏟아내는 혀가 모든 문제와 실수의 화근이 됩니다. 혀는 우리 신체 중에서 크기가 세치 정도 되며, 매우 부드러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과 영향력은 다른 어떤 신체부위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막강합니다. 말(言)은 온몸도 굴레 씌운다고 하였습니다. 굴레는 재갈과 함께 말(馬)을 부리기 위해 얽어매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힘이 넘치는 야생마도 재갈을 물리고 굴레를 씌우면 얌전하게 길들일 수 있습니다. 혀를 다스려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요, 곧 온몸에 굴레를 씌워 그 몸이 죄 짓는 도구로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배는 또 어떠합니까? 큰 배는 광풍이 불면 그 광풍이 부는 대로 밀려갑니다. 그러면 이런 배들이 어떻게 방향을 잡고 목적지를 행해 갈수 있는 것입니까? 배에는 아주 작은 키가 있어서 선장이 이를 뜻대로 조정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혀도 이와 같습니다. 말에 물린 재갈이 말을 제어하고 배에 달린 작은 키가 거대한 배를 조종하듯이, 세 치 밖에 안되는 사람의 혀는 우리의 삶에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작은 불은 ‘a small spark’입니다. 이것은 가스레인지를 켤 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반짝 튀어나오는 불티를 말합니다. 이 불티는 아주 작지만 큰 숲을 태울 수가 있고 거대한 산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파괴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큰 산불의 원인도 등산객이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나 어린 아이들의 사소한 불장난에서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혀는 곧 불입니다. 또한 혀는 몸이라는 큰 우주 속에 있는 작은 우주로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온 몸, 곧 전인격을 더럽히고  한 사람의 삶의 수레바퀴, 곧 전 인생을 태워버리기도 합니다. 그 사르는 불이 지옥불에서 나옵니다. 이 지옥불은 현세에 있어서는 사람의 혀에 깃들여 그 생을 파멸시키고, 내세에 있어서는 그 사람 전체를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혀 자체는 작고 보기에도 부드러워 보이지만 화재가 남긴 비참한 현장의 흔적과 같은 재앙과 상처와 비극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10장을 보면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는데 여로보암을 비롯한 북방 열 지파들이 르호보암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솔로몬 왕시대의  가혹한 통치를 조금 완화해 달라고 탄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 왕은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더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치리라”(10:14) 하며 폭언을 하였습니다. 이 한마디 말을 빌미로 하여 다윗의 통일 왕국은 깨어져 남북으로 갈라지는 비운을 맞게 되었습니다. 혀는 작지만 이처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커다란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이 미치는 심각한 결과를 생각하고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 벌레와 바다의 생물을 길들여 왔습니다. 돌고래를 길들여 쇼를 선보이기도 하고,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도 길들여서 서커스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인도에서는 거대한 코끼리를 길들여 교통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실로 사람이 길들이지 못할 피조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의 능력으로도 혀를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요, 통제 불가능한 기관입니다. 처음에는 덕담으로 대화를 시작했다가 말이 조금 진행되면 어느 틈에 나쁜 말, 저주하는 말, 욕하고 모함하고 비방하는 악담으로 변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심장을 찔러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부정확하고 근거 없는 비방 한마디가 아무런 통제 없이 인터넷과 각종 통신 매체를 통해 삽시간에 지구 반대편까지 퍼져나가 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그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리며, 심지어는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혀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습니까? 혀를 잘라 버릴 수도 없고 사람의 입에 짐승처럼 재갈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불필요한 말, 무익한 말, 해로운 말이 내 입에서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불로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이 하늘로부터 강하게 임한 오순절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불같이 사도들에게 임하자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혀를 다스릴 때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각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말은 너무나 유창하고 확신에 넘쳐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새 술에 취하여 말하는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과거에 감정적이고 불신의 말, 인간적인 말을 많이 했던 베드로가 담대히 일어나 성령께서 주시는 구원의 메시지를 힘차게 증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혀를 제어하시고 하늘로부터 오는 말씀을 하게 하십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어떤 사람은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다가도 그 입으로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분신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고 저주하기도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무화가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 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10대들의 대화는 거의 욕설로 채워져 있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일상 생활에서 욕이 없으면 대화가 어렵고, 심지어는 욕을 안하면 왕따가 된다고 합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소위 배웠다는 대학교수들이나 정치인들을 비롯한 어른들의 욕설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언어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 이상의 기능이 있습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나타냅니다.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45은 말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결국 사람은 자기 마음에 쌓은 것을 말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말, 사람을 살리는 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내면이 그렇게 변화되도록 늘 힘써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날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나의 마음의 샘에 성령의 부으심을 받음으로 성령의 샘물이 차고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나무에 접붙인바 된 가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덧입을 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말을 하게 됩니다(엡 4:23,24). 늘 말씀 보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 받음으로 내면의 악하고 죄악된 것을 회개하고, 복음적이고 선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2:2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선한 말씀을 듣고 선한 생각을 하고 영적인 일에 힘쓸 때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마음이 깨끗해지고 영적으로 될 때 그 마음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깨끗하고 영적인 말이 됩니다. 성숙한 신자는 이와 같이 그 마음이 날마다 성결케 되어 그 입으로 성결한 말, 거룩한 말을 하는 자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의 언어생활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자격 없는 자를 이 시대 성경 선생이요, 캠퍼스 목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죄로 죽어가는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성경선생의 직분은 참으로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선생으로서 절제된 언어를 쓰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말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본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입이 무겁고 말을 조심해서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집에서나 조금 편안한 자리에서는 말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인 말보다 세상적인 말을 많이 하고, 사람들을 판단하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이런 세속적인 모습들은 목자로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수 없었습니다. 또 조금 흥분하면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고 험한 말이 걷잡을 수 없이 나와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집에서 자녀들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거나 염려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기도해주고 영적으로 카운슬링 해주기보다 감정이 앞서서 말을 거칠게 하여 상처를 잘 줬습니다. 이는 제가 평소에 성령의 다스림 받는 생활을 잘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시대 성경선생으로 부르심 받았지만 영적 투쟁을 잘 감당하지 못함으로 혀를 제어하지 못하고 죄악된 본성대로 말하였던 것을 회개합니다. 제가 날마다 말씀 안에 거함으로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무엇보다도 혀를 잘 다스려서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나의 혀를 다스려 주심으로 죄로 죽어가는 캠퍼스 영혼들을 살리는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II. 위로부터 난 지혜 (13-18)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지혜와 총명은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혜와 총명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고보 선생은 그들에게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고 합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로서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나타나는 인격의 한 부분입니다. 영어로는 humility 겸손을 의미합니다. 곧,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은 겸손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는 삶을 삽니다. 겸손은 참된 지혜와 총명에서 나옵니다. 겸손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허리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한 겸손으로 꾸준히 선한 일을 함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그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었습니다. 시기는 이기적인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가인은 시기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였고, 사울왕도 시기심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툼은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사회 각 분야에서 파벌을 만들고 분열을 초래합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알지 못하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다 보면 때때로 과장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땅 위의 것 곧 세속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정욕 곧 인간의 육적인 욕망에 기초한 것입니다. 귀신에게 속한 것으로서 사탄에 의해 선동함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 곳에는 시기와 다툼이 있고 이에 따른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위로부터 난 지혜는 어떠합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위로부터 난 지혜, 곧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는 성결합니다. 부패하거나 오염되지 않았고 어떠한 악한 동기가 없습니다. 화평합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가져옵니다. 관용합니다. 용서하며 온유하고 자비롭습니다. 양순합니다. 교만하여 진리를 대적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순하여 하나님께 잘 순종합니다. 긍휼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곤경에 빠진 자들을 실제로 잘 도와줍니다. 그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 차별이나 위선이 없이 공평함과 신실함이 가득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맺고, 세상을 하나님과 화평하게 합니다.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여 많은 이들을 의로 돌아오게 하는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덧입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하였습니다.(잠9:10) 즉,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형통함이 있습니다. 하늘의 지혜가 우리의 인격과 삶을 채울 때 진정한 기쁨과 평화가 있고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때를 따라 많은 성령의 열매,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결론적으로, 성숙한 신자는 혀가 끼치는 심각한 결과를 알고 조심합니다. 그는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내면의 영적 성장을 위해 힘쓰는 자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받고 마음으로 순종함으로 하늘의 지혜를 덧입는 자입니다. 자기를 세우려고 하기보다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삶을 사는 가운데 끊임없이 의의 열매를 맺어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덧입고 혀를 잘 다스리는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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