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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1-09 (일) 14:02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1년_이사야서_11강(오정훈)-1.hwp (28KB) (Down: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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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사야서 제11강]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오정훈)
2011년 이사야서 제 11 강                                                     오정훈

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이사야서43:1-21
요절/이사야서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1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희망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막상 한 해가 지나가고 보면 별로 새로운 일이 없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신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예전 일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놀라운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이요 완전한 회복을 나타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므로 새 일을 기대하고 새 일에 도전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두려워하지 말라(1-13)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이제까지 징계하시는 분이시오, 심판자로서 그들에게 임하셨지만 이제는 본래 그들을 지으시고 창조하신 분으로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아버지가 자식의 잘못에 대해서 혹독하고 무서운 심판자로 임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는 자로서 대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1-7절 사이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도대체 무엇이 두려움이었길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희망찬 소식이며 기쁨의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은 그들에게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2절에서 그것을 인정하고 계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요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물과 불은 위험을 나타내며 장애물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바벨론을 나와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는 물과 같은 위험과 불과 같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에스라서 8:22,31을 보면 그들이 바벨론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대적들이 길에서 매복을 하고 있는 등 많은 어려움들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자 에스라는 평탄한 길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할 정도였습니다.(스8:21) 그러나 이렇게 험난하고 어려운 여정가운데도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b절을 보십시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구속하셨다는 것은 노예상태에서 값을 주고 사신 것을 말하며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콕 찍으셔서 택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터넷에서 쇼핑할 때 장바구니에 담기, 찜하기 이런 항목이 있는데 이는 내가 먼저 이 물건을 사겠다고 찍어놓으므로 다른 사람이 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콕 찍어서 특별히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이스라엘은 바벨론 왕의 것도 아니고 이름 없이 떠도는 집시들도 아니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 하나님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물 가운데 지날 때도 물이 침몰하지 못하고 불 가운데 지날 때도 불꽃이 사르지도 못합니다. 물 가운데 지나면서 물에 빠지지 않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더욱이 불 가운데 지나면서 불에 그슬리지 않는 것은 차력사들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물에 침몰당하지 않고 불꽃에 타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사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런던의 큰 길 사거리에서 갑자기 요란스러운 교통정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얀 장갑을 낀 교통 순경이 매우 근엄한 표정으로 오가는 모든 차량과 사람들을 정지키시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여왕께서 행차하셨나보다’ 생각하고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도 차를 멈추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여왕의 행렬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행렬은 여왕의 행차가 아닌 오리들의 행렬이었습니다. 어미 오리가 일곱 마리의 새끼 오리들을 데리고 찻길의 한 가운데로 아장아장 걷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교통 순경은 이 오리들이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모든 차량과 행인들을 정지시키고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인간도 위험한 교통 상황 속에서 오리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고자 하는데 하물며 우리를 택하사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그 백성에 대해서 보호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사 모든 장애물과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세상은 광야와 같고 위험과 장애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지만 바로 천국에 이를 수 없고 반드시 이 광야를 지나가야 합니다. 죄악의 강물이 넘실거리는 세상을 지나야 하고 때로는 불시련이 있는 인생의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죄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중한 질병, 사고 등의 불시련을 만나게 되면 과연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이 들어오게 됩니다. 특히 죄에 약한 어린 사람들을 보면 과연 끝까지 믿음의 순례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가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속자는 여전히 살아계시고 우리와 늘 함께 하시므로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붙들 때 새해에도 죄의 강물이 넘실거리고 불시련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와 같은 세상을 믿음으로 능히 지나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사 보호하심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이는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제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항상 그냥 값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속죄제물의 값비싼 희생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도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고 바벨론에서 나올 때도 애굽과 구스 스바를 속죄제물로 주시므로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 고레스가 애굽 정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돌려보내 예루살렘 성을 재건케 하고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B.C 527년 애굽을 정복해버리므로 성취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같은 거대한 나라를 희생제물로 써서라도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들과 돌아오는 길에 어떻게 함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들과 함께 하사 그들을 보호하시고 반드시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는 열방과 민족을 희생해서라도 구속할 만큼 보배롭고 존귀히 여기는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5-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을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셔서 동서남북에 흩어진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기 때문입니다. 흩어진 백성들을 모은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때만이 가능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흩어진 백성들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불러 모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이 심겨진 사람은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모으시면 반드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이 두 번 성취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첫 번은 바로 이 예언대로 바벨론 유수되어 각지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귀환한 것이며 또 한번은 1948년 액스더스호를 타고 영국에서 돌아온 일단의 유대인들에 의해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졌을 때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이 약속이 성취되면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처럼 주께서 마지막 날 공중에 임하시면 그 천사들을 보내사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백성들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그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을 증인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이는 영적 무지와 무감각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눈으로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그들을 쓰시기 위해 이끌어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열방들도 소환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열방이 모였고 민족들이 운집하였는데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보일 자가 없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기념비적인 사건을 가리키고 ‘이전 일’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권능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들려 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스라엘만이 이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이스라엘은 지극히 못난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유일한 족속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오,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 권능의 주이심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증거해야 할 것은 여호와 외에는 전에도 후에도 신이 없다는 것과 여호와만이 참된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특별한 능력이나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는데는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의 은혜가 확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받은 은혜를 증거할 때 가장 힘 있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새학기에도 내가 깨달은 한마디 말씀이 가장 힘이 있음을 믿고 이 은혜를 힘써 증거하므로 소경되고 귀머거리 된 백성들을 이끌어내는 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14-21)
14-21일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하시기 위해서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이는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던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은 최고의 강대국으로 결코 망하지 않는 나라라 여겨졌습니다. 그 도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하나로 여길 정도로 초인적 지혜로 지어졌고 신비한 공중정원이 있었으며 성벽이 얼마나 두터운지 성벽 위에서 사두마차 두 대가 서로 마주 보고 달려도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견고하고 강력한 바벨론도 하나님께서 바사의 고레스를 보내시므로 내분으로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멸망이 임하자 바벨론의 귀족들은 파티를 하고 있던 배를 타고 급히 도망쳐야 했습니다.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왕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이는 출애굽 당시 홍해를 가르시고 바다 가운데 길을 내사 그 백성을 첩경으로 인도하시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를 시퍼런 홍해에 수장시킨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과거의 일만 해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가나안의 모든 거민들은 이 소문을 듣고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전 일은 기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새 역사를 이루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것입니다. 광야와 사막의 특징은 길이 없고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 새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입니까? 일차적으로 이 새 일은 여호와께서 바사왕 고레스를 통해 B.C 539년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선민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시키는 사건을 가리킵니다. 보통 해방을 하고 독립을 하려면 독립투사가 필요합니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 같은 분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분이 도시락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쏘아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 바사왕 고레스를 감동시키셔서 아무 조건 없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게 하셨습니다. 거기다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도록 아낌없이 물자를 제공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서 44:28을 보면 이런 고레스를 ‘내 목자’라고 하였고 45:1을 보면 ‘여호와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번도 성경공부 해 본 적 없는 이방인인 고레스가 기름받음을 받은 자, 메시야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는 그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새 일에 대한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사7:14)” 메시야의 동정녀 탄생. 이것은 정말 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동정녀가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까? 이는 인류역사 속에 한 번도 없었던 새 일인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몸이 찢기시고 피 흘려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로서 그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구약시대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 매번 짐승을 잡아 죽이고 그 피를 뿌려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완전한 새로운 역사입니다. 이 역사가 너무나 신비해서 사도바울은 외쳤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 안에 예수님의 영이 들어와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두려움 많던 제자들도 오순절 성령께서 불같이 강림하시자 담대한 말씀의 종요, 복음의 투사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또 마지막 날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는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새 일의 연속입니다. 그 새 일이 지금 우리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구태의연하게 과거의 일을 반복하신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새롭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면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내어 그 택한 백성을 마시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승냥이와 타조는 거칠고 난폭하며 은혜를 쉽게 까먹어버리는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그들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행하신 놀라운 구원역사로 인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은 그 지으신 백성을 통해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십니다. 하나님으로서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으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이 시간을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50년간 저희 모임을 쓰셔서 15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것도 자비량선교사로 나가서 그 나라 말로 그 나라 지성인들을 성경으로 가르쳐 이제는 다른 나라로 파송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고 계십니다. 이는 광야에 길을 나고 사막에 강을 생기는 것과 같은 새로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센터만 해도 70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어 전 세계 각지에서 캠퍼스 지성인들을 믿어 순종케 하는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는 남아 있는 자가 1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에 비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임전체를 통해서도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가운데도 놀라운 새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천수원 목자님은 군대 훈련 중 11m에서 떨어진 이후 발병한 강직성 척수염으로 오랜 동안 고통 받았습니다. 이분은 점점 굳어가는 몸으로 인해 늘 누워서 지내야 했습니다. 세수하는 것도 어렵고 걷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심방을 가서 옆에 30분 동안 앉아 있어도 사람이 있는 줄 모를 정도로 쓰러져 있곤 하였습니다. 한번 밖으로 나올려면 최소 1시간정도 걸렸고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저는 센타 정문에 나와서 이 분이 오나 안오나 자주 봐야 했습니다. 이 분은 실로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분의 인생 가운데 놀라운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자와 방불하던 그의 몸을 부활의 권능으로 일으키시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라면 앞장서서 역사를 섬기는 충성스러운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굳어가는 몸에 새 힘을 주심으로 이제 걷는 것은 경한 일이요 가볍고 능숙한 솜씨로 자전거를 타며 복음역사를 힘 있게 섬기고 있습니다. 이 분의 인생 가운데 놀라운 새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하나님은 이제 새로운 50년이 시작되는 새해에 저희를 통해 새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고레스 같은 사람을 쓰셔서 양들이 한꺼번에 나오게 하는 역사를 이루실지 아니면 새롭게 시작된 팀별로  확실한 제자들을 세우실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새 일을 기대하며 새 일에 도전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또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힘 있게 증거하므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새해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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