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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2-06 (일) 13:56
분 류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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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사야서 제15강]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이사가랴)
2011년 이사야서 제 15강                                                 이사가랴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

말씀/이사야 58, 59장
요절/이사야 59:16,17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오늘 말씀은 지난주 말씀인 이사야서 56장과 57장 말씀으로 시작된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는 말씀의 결론부분입니다. 본문 58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해야 할 대표적인 죄악으로 거짓 금식과 안식일의 풍조를 다루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59장에는 이스라엘의 죄악들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 속에 넓고도 깊숙이 뿌리내린 사악한 죄악들을 고발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이 스스로는 그 죄악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중재자가 없음을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친히 그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구속자 메시야를 보내시며, 회개하고 구속 주를 영접하는 자에게 영원한 언약을 약속하여 주십니다.

1)죄를 크게 외치라 (58장)
58장 1절을 보십시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1)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크게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목청껏 외치라고 하십니다. 나팔을 불 듯 놀랄 정도로 외치라고 하십니다. 외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죄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있었고 죄의식도 없어지고 무덤덤하였습니다. 그런대로 자기들은 잘하고 있다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죄를 깨우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크게 외쳐야 합니다. 목소리를 다하여 목이 쉴 정도로 죄를 깨우쳐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백성들에게 죄를 깨우치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이 크게 외치는 소리의 역할을 하자 많은 백성들이 나아와 죄를 자복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과 야곱의 집에 크게 외쳐 알려야 합니다.

이들의 허물과 죄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은 대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외적인 행위만을 볼 때는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규례를 경외함으로 준행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는 백성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과의 친교나 은혜로운 fellowship 그리고 성전에 오면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유익이나 종교적 행사들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주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는 백성들이라면 주님께 원망과 불평을 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께 어떤 불평과 원망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이처럼 열심히 금식하고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며 열심히 주를 섬기는데 왜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헌신을 열납하여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들은 그들의 헌신과 그들의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아니하는 것에 대하여 가인처럼 안색을 변하며 하나님께 분을 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금식을 받아주지 않으신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첫째, 그들은 올바른 자세로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3b를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그들은 금식하는 날에 하나님 앞에 애통하고 회개하며 마음을 쏟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락을 찾아 얻었습니다. 금식한다고 골방에 들어가 만화를 보거나 인터넷 게임을 즐겼는지도 모릅니다. 또 그들은 금식 일에도 탐욕을 추구하여 그 종이나 일꾼에게 온갖 일을 강요하였습니다.
둘째,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주먹질을 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금식하는 중에서 그들은 각자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하는데 자신의 죄는 간과하고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정죄함으로 서로 다툼과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는 서로 감정이 상하여 악한 주먹으로 서로를 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금식과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5)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펴고 앉아 금식한다고 해서 참된 금식이 아닙니다. 외적인 모양을 아무리 겸손히 표현하고 죄를 애통해하는 것처럼 슬픈 기색을 띤다고 해도 중심을 보시는 주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형식적인 금식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어떤 금식입니까? 6,7절을 보십시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첫째, 참된 금식은 자신의 영혼의 죄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가 따르지 않는다면 금식도 외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고 그런 자와 함께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사단의 속박에서 고통하고 신음하는 영혼들을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은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영혼의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준다는 뜻은 종에 관한 법에 기인합니다. 이스라엘이 동족을 종으로 산 경우에는 일곱째 해에는 풀어줘 자유인이 되게 해야 했습니다. (출21;2,신 15;12) 그런데 이들은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종이라고 무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은 죄인들이 지고 있는 모든 멍에의 줄을 끌러주는 것입니다. 죄와 사단의 권세 아래서 압제당하는 자의 모든 멍에를 꺾고 자유케 하여 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금식이 자신의 영혼만을 돌아보는데서 그치는 금식이 되고, 죄와 사단의 권세 아래서 고통하고 신음하는 영혼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금식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주린 자 빈민 벗은 자를 구제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궁핍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양식을 주고,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 들여 식물을 나눠 섬겨주며,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며, 또 골육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보고 섬기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입니다. 진정으로 구제가 필요한 자에게 구제의 손길을 펴고, 궁핍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축복하셨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으로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과 골육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못들은 체 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저도 금식을 하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년전 주일, 복음서 말씀에 은혜 받고 저녁 기도모임에 참가하기 위하여 저녁을 금식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분주하던 데서 식욕을 절제하여 여유롭게 기도하고 캠퍼스 심방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수일간 여름수양회까지 금식을 하면서 양들을 만나며 수양회에 초청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역사를 앞세우는 믿음을 체험하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비록 형편이 어려워도 열사람이 힘을 합치면 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저녁 시간을 아껴서 심방하고 기도하며 한 영혼을 살리는데 드려야겠습니다.

8절부터 12절까지는 자기희생과 하나님을 사랑하여 금식한 이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을 실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까?

첫째,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8,10)
 8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빛에는 석양의 빛이 있고 새벽빛이 있습니다. 석양의 빛은 기울어져가는 빛이요 새벽빛은 어둠을 헤치고 찬란히 솟아오르는 빛입니다. 하나님은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새벽에 비치는 찬란한 빛같이 번영이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고통 하는 영혼들과 이웃을 돌아보고 섬기며, 구제하며 사랑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정신과 영혼과 육체에 급속한 치료가 일어나기 시작하며 강건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풍족한 물질과 시간과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직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이기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세리의 고독과 불안, 삶의 허무와 무의미, 불면증과 신경쇠약, 우울증 등으로 영육이 병들어갑니다. 그러나 죄와 사단의 권세아래 고통 하는 영혼들을 섬기며, 가난하고 빈궁한 이웃을 돌아보고 구제하는 헌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기 시작할 때 우리 영육의 질병들은 급속히 치료가 이루어지고 건강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사람의 인생에는 여호와의 번영과 영광이 뒤따라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9)
 9절을 보십시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스라엘은 열심히 금식하며 부르짖는데도 왜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지 않는가 원망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가 참된 금식을 한다면 네가 부를 때에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셋째,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1)
 11절을 보십시오. “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우리의 인생길은 광야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지몽매(無知蒙昧)하여 어떠한 길이 진정 지혜로운 길이요, 행복과 번영의 길이요, 생명의 길인 줄을 알지 못하고 죄의 길, 자기 길을 고집하여 가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주님께서 항상 인도하여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을 만족케 하여 주시며, 우리의 뼈를 견고하게 하여 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겠습니까? 뼈가 견고하고 튼튼할 때 인간이 건강하여 질수 있으며, 영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힘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물 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물 댄 동산과 물을 대지 못하는 동산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물 댄 동산에는 많은 초목들이 자라나 동산을 푸르게 뒤덮으며 각양 각종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과일 나무들은 철을 따라 맛있는 과일들을 풍성하게 맺게 될 것입니다. 그 동산에서 나비들은 춤추고 새들은 노래하며 짐승들은 자유롭게 풀을 뜯고 과일들을 풍족하게 먹으며 뛰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산에 물이 끊어지면 초목은 시들고 마를 것이며 꽃들은 다 지고 떨어질 것이며, 과일 나무들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하는 영혼들을 돌아보고 섬기고 사랑하며 구제하고 헌신할 때 우리의 인생은 물 댄 동산 같을 것입니다. 물 댄 동산같이 계속해서 섬기고 사랑하고 구제하고 헌신할 수 있는 모든 은혜가 위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될 것입니다. 그 인생은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입니다. 물이 풍성한 샘은 목마른 영혼들에게 생수를 공급하여 마시우게 합니다. 그 사람의 인생에는 하늘의 은혜와 축복의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서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같이 모든 축복과 은총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넷째, 영적으로 무너진 성을 재건하고 회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12)
 12절을 보십시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죄와 사단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과 육체를 파괴하며 무너지게 합니다. 우리의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과 교회와 사회를 파괴하며 무너지게 하며 황폐케 합니다. 죄와 사단이 하는 일은 오랫동안 닦아놓은 기초를 파괴하는 일이며, 땀 흘려 세워놓은 성을 무너지게 하는 일이며, 아름다운 성읍들을 황폐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아올리는 일이며, 무너진 성을 다시 보수하여 재건하는 일이며, 파괴된 길을 다시 수축하는 것이며,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금식을 하는 자들을 통해서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아올리며 무너진 성을 다시 쌓고 세우는 역사, 무너진 캠퍼스를 일으키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참된 금식을 하는 자에게 임할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임할 것을 약속하십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야말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며 섬기는 백성으로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사람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삶의 표지입니다. 그 인생의 우선순위(priority)와 소망이 무엇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날을 존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오락이나 정욕을 좇는 길을 행치 아니하고 자기 쾌락을 추구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안에서 참되고 진정한 즐거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람을 땅의 높은 곳에 올리시고 조상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번영과 축복과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2)스스로 구원하시는 하나님(59장)  
59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형식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의 갖는 오해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신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기만 하고 그 이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오해와 불만들이 많습니다. 일이 안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고 듣지 않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2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의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입니까? 3-8절까지는 이스라엘의 죄들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들은 거짓을 말하고 공의롭지 못하고 악행과 독사의 알을 품었습니다. 독사의 알을 품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악한 의도를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알을 품고 있길래 병아리가 나오겠거니 하고 좋아했는데 막상 부화된 것은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였습니다. 언젠가는 알에서 깨어나면서 숨겨둔 악이 드러나게 됩니다. 당장은 눈에 띄지 않아도 때가 되면 숨길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갈수록 그 악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발로 행악하고 손과 손가락으로 죄를 짓고 생각마저도 죄악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는 시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연단을 받고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있어야 하건만 여전히 죄악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기가 자신의 죄를 찾고 드러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사람들은 너무나 이해심이 많습니다. 또 합리화하고 변명도 잘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자기의도 있어서 작은 일이라도 잘 한 것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은 죄로 인한 고통이 어떠합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정의가 우리에게서 멀고 공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에 행하므로 우리가 맹인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었습니다. 맹인 같아 담을 더듬었습니다. 눈 없는 자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갈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절망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어두움가운데 버려두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고통을 당함으로 죄를 알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고통을 당하자 비로소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곰처럼 울부짖는 기도소리를 듣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기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들이 기도를 하였을 때 문제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12-15a절까지는 이들이 발견한 자신들의 죄입니다.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속였으며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데에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낳으니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속였습니다. 거짓말하였고 정의가 없고 공의가 없고 불성실하였습니다. 이들은 진실 되게 자신의 죄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가 없었고 구원의 길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중재자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스스로 구원을 베풀고자 하셨습니다. 15b,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 하나님은 죄인들의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감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살피시는 데서부터 문제는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울부짖는 기도를 살피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구원을 베풀고자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그 시대에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이는 장차 중재자로서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시고자 하는 예표가 됩니다.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중재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 문제를 아시고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의 전사로서 찾아 오셨습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의로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 하나님은 원수 대적 마귀 사단의 권세아래서 고통하고 슬퍼하며 절망하는 죄인들을 친히 구원하시고자 구원의 전사로 찾아오셔서 사단을 멸하십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마치 에베소서 6장에서 마귀와 싸우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은 전사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완전무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단과 싸워주십니다. 이는 우리에게는 완전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그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하십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시온에 구속자를 보내시고 복음의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하나님은 마침내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를 회개하고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고 구속 주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복음의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들에게 성령과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의 말씀을 보내어 주셔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게 하십니다. 이 언약은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죄를 회개하고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과 구원과 생명의 말씀이 임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역시도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말씀에 나오는 ‘독사의 알을 품는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겉으로는 기도도 하고 소감도 쓰고 하지만 마음에는 판단하고 정죄하는 독이 가득하였습니다. 말로 다른 사람들을 상처주기도 하였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내면성을 위해 더욱 기도하는 자가 되고자 소망합니다.

결론적으로, 구원역사의 시작은 죄를 회개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이때 하나님께서 친히 죄악 중에 고통하고 슬퍼하며 절망하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속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흑암과 사망의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헌신함으로 우리의 인생이 새벽같이 비치며, 물 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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