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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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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1-06 (일) 12:36
분 류 베드로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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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드로전서 제6강] 양 무리의 본이 되라

 2016년 베드로전서 제6강                                                             고영훈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 베드로전서 4:12-5:14
 요절/ 베드로전서 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오늘 말씀은 베드로 전서 마지막 말씀인데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고난의 의미와 가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면 끝까지 참아 내고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신앙 공동체에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영적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좋은 영향력을 끼칠 때 양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목자 직분을 감당해야 하는 장로들에게 어떻게 목자 생활을 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잘 배워 모임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양 무리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잘 섬기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자의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I. 그리스도인으로 받는 고난(4:12-19)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12-16) 12,13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베드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이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면 베드로는 고난을 왜 불 시험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불은 뜨겁지만 불순물이 많은 금강석을 더욱 순수한 금이 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난은 불처럼 뜨겁고 힘들지만 우리의 믿음을 연단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고 이를 통해 순수하게 하고 강하게 합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땅까지 낮아지는 고난, 배척 받는 고난, 버림받으신 고난 등등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신자의 삶의 목표는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자신의 죄로 생고생하고 세상에서 고난 받았던 자들인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나 같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하다니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부활의 영광,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그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고난을 견딘 신자들에게도 큰 영광과 상급이 있습니다. 로마서 8:18은 말씀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사도 베드로도 이전에는 고난에 대한 철학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말씀하실 때 이를 만류하다가 예수님께 심하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앙이 성숙해져서 고난의 의미를 잘 알게 되었고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 다윗, 다니엘 등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종들은 예외 없이 다 불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세상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들을 복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insult)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치욕은 인격적인 모욕을 말합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고난을 당해도 힘들지만 인격적인 모욕을 당할 때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까마득한 후배로부터 치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관악 센타의 어떤 스텝 목자님은 캠퍼스에 가서 전도하는데 벤치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 째려보면서 ‘저리 꺼져’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스무살도 더 어린 여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자기 귀를 의심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그러자 그 여학생은 더 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한국말 못 알아들어, 저리 꺼져’ 그 목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도 학생시절 예수 믿기 전에는 고려대에서 유명한 혈기 왕성한 운동권 출신이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때 죄 없이 침 뱉음을 당하시고 뺨을 맞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오히려 치욕을 통해 예수님을 배우게 되어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했으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광에도 이를 것입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그들 위에 계시며 고난당하는 신자들과 함께 하고 평강을 주십니다.
  그러나 받지 말아야 할 고난도 있습니다. 15절을 보면 살인, 도둑질, 악행, 남의 일을 간섭하면 고난이 있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런 고난은 죄로 인한 고난이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고난은 죄로 인해 잘못해서 받는 고난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런 고난을 받게 된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고난 받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다윗이 쓴 위대한 시편들은 고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읊어졌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일용할 양식을 보다가 경희 사모님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모임에 1983년도부터 나오게 되었으니 경희 사모님이 지금까지 어떤 고난 가운데 지내셨는지 산 증인이라 자부 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기도하시다가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본인의 마음을 시로 표현하셨습니다. 제목은 ‘낙엽’입니다.
“겹겹이 쌓인 낙엽이 포근함과 따뜻함을 주네.
이 전에 바랜 색깔로 힘없이 뒹굴어 떨어지는 낙엽은 인생무상의 파편이 되어 가슴에 아련히 번지는 슬픔이었네.
시련을 겪은 나의 마음 낙엽을 보는 눈도 바뀌었네. 더 이상 나뭇가지에 붙어 있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서글픈 삶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소명 다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온 대견스럽고 용감한 삶이었네.
또 이렇게 밑거름으로 삭혀져 다음 해 생명의 역사를 준비하려고 값진 한 해 살이를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그대 낙엽이여! 오랜만에 본 손님처럼 반갑네.
쌓였던 낙엽이 성깔부리며 몰아치는 거센 바람에 여기저기 흩어지고 날아가 자리를 잡네. 마치 제 각기 사는 인생들의 모습처럼 어디서나 다양한 삶을 보여주시는 주님!
나 또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자기 소명 다하고 이름다운 색깔의 낙엽 되어 새 생명 잉태하는 밑거름되리. 아름다운 그대 낙엽이여!”

둘째,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하라(17-19)
  17,18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고난의 때에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은 구약의 성소를, 신약에서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성소(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고 하는 것은 구약의 예언입니다(렘25:29, 겔9:6, 말3:1-6). 그럼 신자에게 먼저 하시는 심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고난을 통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영원한 심판이 아니라 연단의 심판이요 구원을 위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고난의 심판을 통해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신자들도 극심한 고난으로 먼저 심판하시는데, 불순종한 자들의 마지막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복음을 거부하고 신자들을 핍박했던 자들을 용서치 않으십니다. 그들은 최후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의 타는 못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신자들이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 신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악하고 신자들을 미워한다고 해서 같이 악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이기려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자신의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신자들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시고 하늘의 영광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숨지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23:46) 우리는 극한 고난의 어려움 가운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미쁘신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길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가장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II. 장로들에게 주는 권면-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5:1-4)
  고난의 때에 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굳게 서서 고난 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믿음에 서도록 잘 도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 영적 지도자들인 장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일반적으로 장로는 나이가 많은 연장자를 의미하는데, 교회 내에서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자가 아니요, 중요한 직분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당시 장로들은 교회 내의 양들을 돌보는 목회 사역과, 행정적인 감독의 사역을 가지고 있어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고 영적 방향을 잡아 나가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함께 장로된 자라고 말함으로써 장로들의 영적 권위를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장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서 중요한 책임과 함께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 장로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베드로는 장로들의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일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과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하신 것을 목격한 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갈란다’하며 갈릴리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로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으로 어정쩡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그때부터 베드로는 본격적으로 양 치는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하였던 것처럼, 그도 똑같이 양들에게 여러 번 배신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양을 치다가 절망도 되고 낙심도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자신이 왜 양을 쳐야 하는가 회의가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의 말씀이었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말씀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그는 막상 양을 쳐 보니 예수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예수님께 얼마나 불순종했던 사람이었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경쟁심과 불성실이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기대가 얼마나 컸던 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양을 치는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 대한 순종을 배우게 되었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예수님의 은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양을 치는 생활을 통해 고난 많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그의 삶이 더욱 더 풍성하고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그 어떤 말보다도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고 제일 먼저 권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베드로의 권면을 받고 있는 장로들은 고난 속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자신 한 몸 감당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양을 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양들은 더 큰 어려움에 빠져 있기 때문에 목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목자들이 자신들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양을 치지 않으면 양들은 세상 속에서 유리방황하게 됩니다. 우리 목자님들도 각자가 양을 치기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양을 치려면 시간을 드려야 하고, 마음을 온통 양에게 쏟아야 하는데 직장일, 가정일로 너무 바쁩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소원 있는 양들이 많지 않고, 자신과 나이 차, 세대 차가 많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점만 생각하면 우리는 양을 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는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케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고자 할 때 다음 세 가지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로,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마지못해 하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데 사람들의 눈치,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고 권면합니다. ‘자원함’이란 자기 마음이 움직여서 소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일이라도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과, 소원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그 결과도 엄청나게 다릅니다. 억지로 하게 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열매도 좋지 않습니다. 반면에 자원함으로 하게 되면 심령에 은혜와 감사와 기쁨이 있게 되고 일에 능률이 올라서 선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할 때는 이런 어려움들이 몰려오더라도 적극적인 자세로 십자가를 지고자함으로 오히려 힘과 지혜를 덧입고 극복하게 됩니다. 양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영적으로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목자는 자기 마음에 자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자원함으로 한다고 해서 자기 열심에 기초해서 자기 나름대로 역사를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둘 다 잘못된 자세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장로들에게 두신 뜻을 말합니다(As God wants you to be). 내게 보내신 양들을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살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하고 찾으면 하나님이 목자를 통해 뜻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적으로 섬기게  됩니다.

둘째로,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해야 합니다. ‘더러운 이득’이란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명예심, 사람들의 인정이나 사사로운 욕심을 말합니다. 우리는 말씀공부를 가르치면서 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양을 많이 침으로써 목자로서 인정받고 자기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기 쉽습니다. 목적이 순수하지 않을 때 목자는 삯군과 같이 도움이 필요한 양 보다도 말 잘 듣는 좋은 양을 찾게 됩니다. 그러면 양의 내면 문제보다 외적인 모습에 더 연연하여 조급하게 푸쉬하게 됩니다. 목자는 양을 칠 때 사사로운 욕심을 부인하고 순수한 동기로 해야 합니다. ‘기꺼이’하라는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양을 치는 것은 돈 벌이 수단인 세상 직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감당하는 것이고 기꺼이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주장한다”는 것은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양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말합니다. 목자가 양들을 낮아져 섬기기보다 영적 권위에 의지해서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양들이 잘 따라올 것 같지만 오히려 반발하게 됩니다. 목자는 이처럼 주장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본이 된다”는 것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말보다도 목자가 먼저 행함으로 본을 보일 때 따라옵니다. 그런데 본을 보이려면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목자는 양들 앞에서는 말도 조심해야 하고 품행도 단정해야 합니다. 본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 하는 것만큼 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하고 훨씬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이렇게 본을 보일 때 양은 마음으로부터 목자를 존경하고 신뢰하며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을 보이기에 부족한 자인데 어떻게 양들의 본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앞서 가시는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누가 크냐하며 위대한 목자가 되고자 경쟁하는 제자들에게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위대한 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씀하시더라도 제자들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장 으뜸이 되시는 분이지만 친히 낮아져서 제자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본을 보이시므로 진정으로 위대함이 어떤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내가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라”하셨습니다(요13:14,15). 이처럼 본을 보이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교육입니다.
  우리가 양 무리의 좋은 본이 되려면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좋은 양이 되어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양에게 좋은 본이 되고자 하면 마치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하며 이중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 나가면 내가 부족하더라도 양들에게도 예수님을 본받도록 도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을 존경하며 신앙생활의 좋은 본으로 삼는 것은 그가 모범적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생활, 양치는 생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생활, 남을 섬기는 생활, 고난에 대한 자세 등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런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할 때 우리의 내면에는 조금씩 그리스도의 형상이 조각되고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목자가 먼저 예수님을 본받으며 앞장 서서 성장해 나갈 때 양들에게도 믿음의 영향력을 끼쳐 좋은 본이 됩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우리가 자원함으로 기꺼이 양을 치고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생활을 할 때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상급은 장차 목자장 되시는 주님께서 오실 때 주시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어떤 아픔과 손해 앞에서도 확신있고 흔들리지 않는 목자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I. 젊은 자들에게 주는 권면(5-7)
  젊은이들은 장로들과 더불어 교회의 두 축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젊은 자들에게 권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젊은 자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젊은 사람들은 아직 세상에 때 묻지 않아 순수하며, 비전이 있고, 젊은 패기와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이 있기 때문에 인생의 방향만 잘 잡으면 무한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존심과 혈기가 많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지나쳐서 자만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연로한 장로들을 볼 때 생각이 굳어 있고, 권위주의적이라 생각하고 장로들을 선배로서는 인정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들의 뜻에 순종하기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젊은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젊은이들이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질서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또한 합심해서 성령의 그릇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장로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더 근원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선배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내 마음에서 영적 질서가 파괴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젊은 날 내가 장로들에게 순종 할 때 후에 자신이 장로가 되었을 때 젊은 후배들도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적 질서가 유지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순종해야 합니까?
첫째,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장로에게 순종하고자 할 때 그저 나이가 많으니 어쩔 수 없어서 순종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겸손함으로 허리를 동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장로들은 젊은이들 앞서 인생을 살아온 선배들입니다. 그들은 우유부단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이 깊고, 생각이 굳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해서 믿음의 뿌리와 지혜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장로들보다 패기와 추진력이 있는 장점도 있지만 인생경험이 부족하고 신중함이 결여되어 방향을 잘 못 잡을 위험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지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는 솔로몬의 아들 젊은 르호보암 왕이 국가 정책을 정할 때 경험이 많은 노인들의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온 소년들의 말대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왕상12장). 르호보암의 친구들은 그의 부친 솔로몬왕이 새끼손가락이라면 르호보암은 허리라고 함으로 그의 교만을 부추겼습니다. 교만해진 르호보암은 자기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백성들을 학대하다가 민심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지혜입니다.
둘째, 젊은 자들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통제적 섭리 아래에서” 곧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에서”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낮추고 높이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주관하십니다. 뿐 만 아니라 장로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친절한 장로를 주시든지, 아니면 까다로운 장로를 주시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이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함으로 겸손훈련을 잘 받아 쓰실만한 자로 성장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고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둘째로,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젊은이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각종 염려에 시달리기가 쉽습니다.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다가도 문득 장래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이렇게 열심히 하다가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기가 쉽습니다. 염려는 무거운 짐이 되어 가능성 많은 젊은이들을 짓누릅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베드로는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돌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염려를 다 맡겨 버리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확신있게 살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V. 마귀를 대적하라(8-15)
  사도 베드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결론적으로 마귀와 싸울 것을 권면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고난의 때 마귀는 신자들을 넘어뜨리고자 먹잇감을 찾아 부르짖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 더욱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때 삶이 힘들다고 영적 나태에 빠져 무분별하게 살면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대적할 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심치 않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마귀와 싸워야 합니까? 우리는 나만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많은 믿음의 형제들이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알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잠깐이지만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은 영원합니다. 12-15절은 베드로의 마지막 인사입니다. 신실한 형제 실루아노는 이 편지를 대필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그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굳게 서도록 권면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평강이 그들에게 있기를 바라며 편지를 끝맺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고난에 대한 자세를 다시 확립하게 되었고 목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잘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번 아버지가 대장 내시경을 하시다가 대장암이 발견되는 사건을 접하며 잠간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왜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내게 이처럼 힘든 고난이 찾아올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영적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저에게 불 시험을 잘 통과하도록 하는 뜻이 있음이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저의 믿음을 더욱 더 견고케 하시고, 아버지 뿐만 아니라 제주도 불신 가족들에게도 복음이 증거되는 선한 뜻이 있음을 발견하고 감사드리며 마음으로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모임에서 시니어 목자요, 장로로서 양 무리들의 본이 되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제가 저의 의지와 노력으로 본이 되고자 한다면 피곤하고 얽매이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하지만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좋은 양이 되어 예수님을 날마다 본받는 삶을 열심히 살 때 젊은이들에게 좋은 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하여 기도생활에 힘쓰고 맡기신 양들을 말씀과 사랑으로 잘 섬겨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자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고난의 때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장로이신 목자님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양 무리들의 본이 되는 선한 목자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목자님들에게 순종하며 겸손한 주의 종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좋은 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근신하고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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