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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4-13 (일) 16:31
분 류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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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부활절 수양회 주제2강]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2014년 부활절 수양회 주제 2강                                                         오정훈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말씀: 마태복음 28:1-20
요절: 마태복음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어떤 시인은 4월을 가리켜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4월에 일어나 여러 혁명들로 인해 많은 사람의 목숨이 사라져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4월은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요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의 계절입니다. 인류역사를 변화시킨 놀라운 발명과 발견들이 있어 왔지만 죽은 자의 부활 곧 예수님의 부활만큼이나 우리 인간의 역사와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놀라운 사건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허무와 어둠이 지배하던 세상에 생명과 빛이 임하고 죽음에 짓눌린 우리 인생들에게 진정한 생명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부활의 현장에 나아가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므로 부활의 생명력을 충만히 덧입고 부활의 증인으로 굳게 서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1-15)
  1절을 보십시오. 안식 후 첫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등 몇 몇의 여인들이 무덤을 보려고 가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처참하게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지 사흘 되던 날로서 여인들에게 비통과 슬픔을 감출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시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아무런 죄도 없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으셨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여인들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릴 뿐이었습니다. 이제 이 예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몸에 향품이라도 발라 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새벽을 뚫고 무덤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는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큰 지진이 나고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굴려 그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아 있었습니다. 그 형상은 번개와 같고 옷은 눈 같이 희였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무서워서 수족이 마비되어 죽은 자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충격적인 모습을 통해 부활의 현장을 목격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예수님의 죽음을 이길만한 더 놀라운 방법으로 부활의 현장을 보여주심으로 극도의 슬픔에 빠져 있던 여인들에게 부활의 믿음을 심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번개와 같고 눈처럼 흰 옷을 입은 천사의 모습은 죽음을 조문하러 온 저승사자의 모습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는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지금까지는 군병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들이 무덤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또 여인들이 향품을 발라드릴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무덤은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굴려진 돌과 그 위에 앉아 있는 흰 옷 입은 천사의 모습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놀라운 부활의 현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자는 무덤을 지키는 군병들이 군대 불침번처럼 단 두 명이라서 둘 다 깜빡 졸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마27:66,67을 보면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에게 그들의 경비병으로 힘닿는 대로 지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군병의 수는 거의 100명에 육박했고 거기에는 빌라도의 인봉이 쳐져 있어서 아무도 감히 그 돌에 손을 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삼엄한 경비 속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는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일이요 그 어떤 인간의 권세로도 우리 주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아마 이 모습을 본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무서워서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5절입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여인들이 찾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선하고 의로우시며 사랑이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무기력하게 죽임 당하신 분이셨습니다. 악에게 패한 패배자요, 세상 권세 앞에 무기력하게 굴복당한 연약한 분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생각하면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 두려움이 엄습하였습니다. 진리가 불의에게 패하고 선이 악에게 진다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신자들마저도 알게 모르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도록 십자가 지고 고생하다가 그냥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수고하고 헌신하던 종들이 중한 질병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소천하는 경우 그런 생각에 더욱 시달리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 생각하면 힘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찾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말씀하시던 대로’라는 것은 말 그대로 말씀하시던 그대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설을 만들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11-15절에 나오는 것처럼 경비병들이 졸고 있을 때 제자들이 몰래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 도둑질설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신 것이 아니고 너무나 가혹한 형벌로 기절을 하셨다가 정신이 드셔서 무덤에서 몰래 빠져나왔다는 기절설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그 많은 경비병들이 한꺼번에 졸수도 없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문을 닫고 숨어 있는데 시체를 훔쳐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을 이상하게 여긴 로마 군병이 확인사살을 위해 옆구리에 창을 찔러 모든 물과 피가 쏟아짐으로 예수님은 확실히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은 전부 부활을 부인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세 번이나 그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언급하셨고(16:21, 17:22, 20:19), 다윗도 그의 시편에서 다음과 같이 메시야의 부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은 부활의 현장 등을 보고 갖는 온갖 의심을 일시에 물리치는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그런 것을 따집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는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기록된 말씀을 모두 성취하는 삶이었습니다. 창3:15절에 기록된 대로 여자의 후손 곧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각기 제 길로 가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던 대로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시기 위해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무덤에 가보지도 못했고 예수님의 몸을 쌌던 세마포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부활하셨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CSI과학수사대가 투입되어도 이를 증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메시야이심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말씀에 기초한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때 우리의 부활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 <예수님은 우리 죽을 몸을 다시 살리시고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에 진정한 승리를 보장하여 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 전까지 죽음은 인류 위에 왕 노릇하여 왔습니다. 죽음은 폭군처럼 우리 인생을 지배하고 불현 듯 찾아와 그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 가버립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 땅에서의 소중한 삶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죽음권세 사로잡힌 인생은 삶의 허무에 시달립니다.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이렇게 하면 뭐하나 죽으면 끝인데? 열심히 일하다가도 죽으면 끝인데 뭣 하러 열심히 일하나 생각합니다. 그 끝이 죽음이라고 생각할 때 삶의 허무에 시달리고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합니다. 이는 불멸의 존재였던 인간이 사형을 언도받으면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 때문에 죽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조그만 병이라도 걸리면 무슨 죽을병이 아닌가 걱정하고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죽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 절망하고 말할 수 없는 상실감으로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매에는 장사 없듯이 죽음 앞에서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2차 대전의 영웅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역사가들이 말하기를 20세기 지도자 중에서 가장 자신감이 넘치고 겁이 없는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인도에서 그 사나운 파탄인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아프리카 수단에서는 310명의 기병으로 3천명이 넘는 회교도들을 물리쳤습니다. 남아공에서는 보어인들에게 붙잡혔다가 탈출했고 2차 대전 때는 그 무시무시한 독일의 폭격에도 무서워하지 않고 파이프 담배를 물고 다니며 영국민들을 격려하였습니다. 그는 평소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총에 맞고도 멀쩡한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다” 그는 이처럼 어떤 전투에서도 이길 자신감이 항상 흘러 넘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년이 되어 죽음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그 넘치던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게는 희망이 없다” 2차 대전의 영웅이었던 처칠도 죽음 앞에서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 권세 앞에 굴복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모든 인생들 위에 군림하던 죽음을 정복하시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셨습니다.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세상에 이보다 더 통쾌하고 기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치 9회 말 투아웃 풀 카운트에서 만루 홈런을 쳐서 역전승을 거두는 것과 같은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승리의 감격에 차서 죽음을 향해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죽음이 왕 노릇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실패와 패배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바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이 땅의 것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과 확신 가운데 죽음이 주는 허무와 두려움과 무기력을 이기고 이 땅에서 승리하는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를 주시는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천사는 여인들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빨리 달려갔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큰 기쁨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했습니다. 9절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친히 만나주시고 평강을 주셨습니다. “평안하냐?” 이는 천사의 메시지나 다른 사람의 간증을 통해서 부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온전한 부활의 믿음을 갖게 됨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천사가 준 명령을 다시 한 번 더 확인시켜주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10)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다시 갈릴리에서 보기를 원하십니다. 이 두 번째 부르심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부활하신 주님의 부르심이기에 첫 번과는 달리 제 제자들을 사도로 부르시고 제자 양성을 하는 직분을 맡기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두 번째 만남이 필요합니다.
 11-15절을 보십시오. 여자들이 돌아가자 경비병 몇이 무덤에서 일어나 모든 일을 대제사장에게 알렸습니다. 그들은 장로들과 의논하여 군인들에게 돈을 주며 경비병들이 잘 때 제자들이 와서 훔쳐갔다고 거짓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군인들은 돈을 받고 시킨대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마태가 이 복음서를 쓰는 당시까지 유대에 널리 퍼질 정도로 먹혀 들어갔습니다. 사실 이 거짓말은 이 시대에도 두루 퍼져 사람들 마음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리도 힘이 있지만 거짓말도 상당히 파급효과가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진리를 방해하고 거짓말하는 자들은 더 열심히 거짓말을 하여 진리를 왜곡하고자 합니다. 다빈치코드 같은 영화를 통해 그렇듯하게 진실을 왜곡하여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증인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자들보다 더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복음 진리 특히 부활의 진리를 호도하고 왜곡하는 시대에 우리가 더 열심을 내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므로 이 복음이 어두움 가운데 영혼들에게 전파되는데 귀히 쓰임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라(16-20)
  16,17절을 보십시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주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의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영광스러운 분으로서 제자들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아직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죽은 자의 부활을 믿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이 과연 죽으시기 전 그 예수님이신가 의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분명하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을 상관하지 않으시고 놀라운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이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무엇입니까? 19,20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처음 부르시고 훈련하신 목적 곧 천하 만민의 구원역사를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이를 위해 제자들은 먼저 세상만민에게 가야 합니다. 사명의 땅 우리에게는 캠퍼스로 가야 합니다. 앉아서만 구원역사를 섬길 수 없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복음 역사는 이렇게 말씀에 순종해서 가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고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는 성경 말씀을 통해 죄를 회개시키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돕는 것을 가리킵니다. 세례요한도 이것을 위해 광야에서 죄 사함을 얻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이를 때 진정으로 제자 삼는 것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시민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더 시급하고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그간의 추억을 얘기하시거나 회포를 풀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한 가지 모든 족속에게 가서 제자를 삼고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간곡한 부탁이자 유언적인 지상명령입니다. 모든 복음서는 이 예수님의 유언적 지상명령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11년 전 안양대학교에서 엠티를 위해 온 관광버스가 운전자 미숙으로 인해 하교하던 학생들을 덮쳐 세 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중 한 여학생은 바퀴가 그 몸 위를 지나가는 바람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형체가 되어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UBF 안양센터 스탭목자 사모님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즉시 달려가서 그 여학생을 붙들고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신앙고백 시켰다고 합니다. 불과 몇 초 후면 죽게 되는데 그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저희가 부활신앙 가운데 복음 전파의 사명을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이 사명을 세상 끝 날까지 힘써 감당할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죽음권세에 짓눌려 어둡고 무기력하며 무의미한 인생을 살던 죄인을 찾아오시고 부활의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의지의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나 고2때 걸린 허리병으로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대학에만 오면 이 병도 고치고 멋진 인생을 살아볼 것이라 하였지만 병을 고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잠을 자고 나도 늘 피곤하다는 생각으로 저는 친구에게 대출을 부탁하고 11시까지 잠을 자고 오후나 돼서야 등교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신입생 때부터 하던 성경공부도 관두고 나름대로 살길을 알아보던 저는 당구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영등포에 있는 척추교정원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거기서 치료를 받으면서 몸이 조금씩 좋아지자 제 청춘에도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고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곳에 들이닥친 형사들에 의해 직원들이 다 체포되고 다음날 무허가 시술소로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며 인생의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90년 부활절 수양회에 초청하시고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느니라”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말씀이 강력하게 역사하여 제 마음에 부활에 대한 확신이 심겨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자 나도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알 수 없는 불안과 염려가 일순간에 사라지고 허무와 무기력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친구에게 대출을 부탁하는 대신 매일 6시 전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학교에 등교하므로 모범생으로 변화되게 되었습니다. 불면증 편두통이 사라지고 바싹 말랐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하고 어둡고 불만에 차있던 얼굴은 밝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석촌 호수 뒤에 살던  고3학생을 가르쳤는데 그 어머니는 저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한 달 가까이 집요하게 물어보아서 저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저의 삶을 어둠에서 빛으로, 무기력에서 생명으로, 무의미에서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삶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망권세에 짓눌려 평생 어둡고 무기력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다가 끝날 죄인을 만나주시고 부활의 생명력으로 충만케 하신 주님께 깊은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주님께 받은 은혜가 차고 넘치는데 입을 다물고 아무런 증거도 하지 않고 있었음을 깨닫고 이 시간 깊이 회개합니다. 부활의 믿음이 저를 변화시킨 것처럼 이 복음만이 죽을 영혼을 살리고 변화시킴을 믿고 부활의 복음을 힘써 증거하므로 캠퍼스 영혼들을 제자삼고 구원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므로 부활의 주, 승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저희가 이 예수님을 힘입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 패배와 실패 무기력을 이기고 생명력이 넘치는 승리의 인생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주님이 주신 유언적 명령에 순종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힘써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들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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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5강]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이사가.. 관리자 2011-02-06 2881
532 히브리서 [2016년 히브리서 제11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6-01-10 2880
531 사무엘상 [2011년 신년수양회 제1강]미스바의 영적 부흥(이인구) 관리자 2011-01-02 2877
530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1강]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관리자 2015-05-31 2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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