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27 (일) 12:57
분 류 히브리서
첨부#1 2015_히브리서10강-1(오정훈).hwp (61KB) (Down:247)
ㆍ추천: 0  ㆍ조회: 2938      
IP: 61.xxx.95
[2015년 히브리서 제10강]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2015년 히브리서 제10강                                                              오정훈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말씀 / 히 11:1-22
요절 /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엊그제가 신년 초였던 것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볼 때 부족한 것도 많고 아쉬움도 많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셔서 많은 믿음의 체험을 하게 하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말씀이 새해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방향과 도전이 되는 말씀이 되길 기도합니다. 당시 히브리 성도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움과 박해를 많이 받아 계속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지 갈등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성도들을 위해 11장을 기록했습니다. ‘믿음장’으로 알려진 본문은 고난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 승리한 선진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이는 믿음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믿음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배우고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종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히브리서11장은 믿음의 정의로부터 시작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실상’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substance)를 말하며, ‘증거’는 그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evidence)을 말합니다. 이는 믿음이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객관적인 것임을 말해줍니다. 바라는 것은 미래에 속한 희망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믿음은 바로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신자의 소망이 지금 이루어져 손으로 만지고 있는 것과 같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는 것처럼 확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망원경으로 보면 망망대해에서 배가 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믿음이라는 망원경으로 보면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확실히 존재함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반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단지 막연한 기대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고대합니다. 그러다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망하고 크게 낙심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의 소망과 기대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히브리 성도들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처럼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도 보이지 않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잃고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선진들도 바로 이 믿음으로써 증거를 얻었습니다(2). 증거를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commended for).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면 학벌이 좋거나 능력이 있거나 얼굴이 잘 생기고 성격이 좋아야 합니다. 또한 말한 만큼 그에 합당한 결과물을 내어놓아야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운동을 좀 못하고 노래를 잘 못해도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인정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복된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이렇게 절대적으로 믿고 소망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믿음의 근거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말로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태초부터 말씀만 하시면 모든 것이 그대로 되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고 밤하늘을 무수히 비추는 수많은 별들이 생겨났습니다.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며 바다를 가르시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권능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조신앙은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창조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을 때 기적을 믿을 수 있고 변화의 역사를 믿을 수 있고 죽은 자의 부활과 천국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상황과 조건에 기초하지 않고 흔들릴 수 없는 창조신앙에 기초한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절부터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조상들의 믿음이 나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이는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보고 계시고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삶 전체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써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의 회개와 진심이 담긴 제사를 받으시므로 그가 더 나은 제사를 드렸음을 증언하여 주셨습니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도 죽임을 당했는데 아벨은 그 믿음으로써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결과가 나쁘더라도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이익이 없고 오히려 손해보고 빨리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향해 더 나은 제사,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날마다 아벨처럼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5) 창세기 5장을 보면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5:21-24).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그 시대 죄악의 물결을 거스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유다서14,15절은 아담의 칠 세손 에녹이 불경건하고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전파하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불신세상으로부터 고난 받고 날마다 죽음을 맛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기뻐하시고 엘리야와 더불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우는 특별한 은혜를 덧입게 하셨습니다.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아벨은 일찍 죽고 에녹은 안 죽었습니다. 누가 더 좋습니까? 두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달라 보이지만 하나님께 증거를 받았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짧고 굵게 살 것인가 가늘고 길게 오래 살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가 받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길고 오래 잘 먹고 잘 살아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람의 선한 행동, 착한 마음씨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돈과 능력과 권세가 있으면 누군가를 기쁘게 하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고 능력이 있고 마음씨가 착해도 그런 것들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오직 우리의 믿음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사실 사람들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변함없이 누군가 나를 믿고 신뢰해주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고 신뢰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고 기쁘시겠습니까?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가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계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없을 때 또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잘 믿어져서 탈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상황이 나빠지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나님이 계신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지만 먹을 것과 마실 물이 떨어지자 곧바로 ‘우리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신가?’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비단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 잘하는 우리 인생들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구름이 가린다고 태양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 시련과 고난이 있다고 하나님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살아계셔서 당신을 변함없이 신뢰하고 의뢰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를 통해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믿음으로 찾는 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치사하게 상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냐고 비아냥거립니다. 신앙생활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해야지 뭔가 바라고 한다는 것은 치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보상문제는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합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믿음으로 살면서도 물질문제 건강문제 결혼문제 자녀교육문제 등을 해결받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손해의식, 비교의식, 불신, 원망으로 인해 속이 시끄럽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 다닐 때는 나보다 못한 사람이 사회에서 잘 나가는 것을 보면 속이 시끄러워집니다. 또 나보다 더 헌신하지 않고 충성하지 않은 것 같은데 빨리 목자로 세움 받는 것을 보면 속이 시끄러워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상은 이런 인간적이고 현세적인 상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그런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나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생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상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창15:1) 우리는 하나님 손에 들린 보따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사귐을 가질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을 얻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부어주십니다.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섬길 은혜를 주시고 고난을 견딜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얻을 때 실상 하나님 손에 있는 보따리가 다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살 때 세상에서 잠시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상으로 얻으므로 우리는 가장 수지맞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 길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가 살던 시대는 사람들이 육체가 되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심판이 임박한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노아는 홍수심판에 대한 경고하심을 받았습니다. 그 일은 120년 후에 일어날 일이었지만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였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의 차이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을 때 경외심을 갖는가 그렇지 않는가로 드러나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롯의 사위들처럼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고 심판을 자초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 그 집이 구원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노아로 인해 정죄를 받았고 노아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과 순종이 의와 심판의 기준이 된 것이었습니다. 노아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심판에 대한 경고를 경외심을 가지고 영접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의의 상속자들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8절부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의 기초요 과정이요 종착지이기 때문에 긴 부분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8) 노아의 믿음의 특징이 경외심이라면 8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신앙의 특징은 순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오직 말씀을 따라 나아간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어디 1박2일로 여행을 가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그곳의 머물 곳, 맛집, 주변관광지를 다 알아보고 출발합니다. 세상은 입시정보 취업정보 결혼정보 등 온갖 정보로 넘쳐납니다. 하다못해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도 가장 빠른 길을 알려준다는 김기사를 따라 가야지 함부로 아무길이나 들어섰다가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정든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인생의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은 누군가 나의 인생청사진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나의 인생을 함부로 맡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실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갔습니다. 요사이 보이스 피싱으로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보자 피해 방지 광고가 자주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의심나면 의심하세요. 의심이 안심입니다. 공익광고협의회” 하나님께는 의심이 안심이 아니고 믿음이 안심이고 순종이 안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선하시고 완전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남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거할 때 믿음으로 이방 땅에 거하는 것처럼 장막에 거했습니다. 장막이 좋은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뿐 아니라 아들과 손자, 삼 대에 걸쳐 장막 생활을 했습니다. 왜 약속의 땅에 좋은 집 짓고 살지 않았을까요? 가나안 고시텔의 전월세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318명의 가인을 거느린 아주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자식과 손자와 더불어 장막에 거한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지지리 고생하고 살았어도 자식들만큼은 고생시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못 먹고 못 입고 살았어도 자식만큼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식에게 영적인 유산을 남기지 않고 물질적인 풍요만을 남기면 오히려 자식을 망치고 타락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영적 장막에 거하며 말씀대로 사는 법,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사는 영적유산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2세, 3세들도 죄악된 세상에서 타락하지 않고 믿음의 자녀들로 계속해서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11절은 사라의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사라는 나이가 많아 폐경이 되었습니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제는 아이가 생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내년 이맘 때에 네게 아들이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는 재미없는 농담(노잼)하시는 것 같아 쓴 웃음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이를 아신 하나님은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책망하시고 그에게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나의 상황과 관계없이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사라는 이 신실하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놀랍게도 그는 나이 90세에 잉태하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끔 60이 넘은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지만 이미 폐경이 된 90이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다니요? 이는 오직 믿음으로 된 역사였습니다. 여기서 볼 때 믿음이란 말 그대로 의심없이 믿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렇게 하였고 그래서 죽은 자와 같은 그들을 통해 하늘의 허다한 별과 바다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나의 형편이 바쁜 직장 생활과 자녀양육 그리고 양들과의 큰 세대차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까? 십 수 년을 목자로 살았지만 제대로 된 한 사람을 세우지 못해서 빈 그물의 인생에서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는 자에게 잉태하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초라한 형편으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변함없이 믿음으로 많은 생명을 낳고 키우는 통로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당대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서운해 하지 않고 오히려 약속하신 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습니다. 요한복음 8:56은 말씀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조상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거하였습니다(창23:4, 47:9). 이는 그들의 고향이 따로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법입니다. 타향 땅인 가나안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이 나온 땅인 메소보다미아로 돌아가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나온 그곳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창24:6). 이는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본향이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알았기에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자신이 나온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생을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살면서도 결코 그 땅 사람들에게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궁극적인 소망이 하늘나라 본향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코스타리카 빠블로 박 선교사님은 선교사로서 많은 고난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자립의 어려움, 루디아 선교사님은 망막정맥폐쇄증으로 어려움을 받고 있고 두 아들도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이 가정에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한국으로 돌아올 법도 한데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들의 본향이 한국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는 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향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우리도 이 소망 가운데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이 땅에서 나그네요 외국인으로 분명한 정체성 가운데 거룩한 순례의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6b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세상에는 부끄러운 자식이 있는가 하면 자랑스러운 자식이 있다고들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도 항상 자랑스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당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변함없이 그 약속을 믿고 하늘 본향을 사모하며 나그네의 길을  간 이들을 하나님께서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가는 성도들을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소망 가운데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신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성은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아버지 집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 길을 마치면 돌아갈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입니다. 거기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았는지 한 해를 돌아볼 때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탁구를 배우는데 열심을 내었습니다. 특히 전진회전기술을 날카롭게 연마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하였습니다. 집에서도 병원일로 지치고 고단한 동역자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가끔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며 밥을 해서 애들 저녁을 먹이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믿음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한계적인 생각에 빠져 지냈습니다. 자신의 나이와 비사교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생각하니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전에는 양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전화번호를 따오곤 하였는데 전화번호는 고사하고 캠퍼스에 나가는 것마저도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옛말에 ‘한번 발을 잘못 디디니 갈수록 태산’이라고 한 것처럼 한번 믿음을 잃게 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자와 방불한 자가 되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사라의 잉태하는 믿음을 통해 큰 은혜 받게 도와주셨습니다. 비록 단산하여 자식을 낳을 수 없었지만 약속하신 이를 굳게 믿을 때 어떤 모양으로든지 잉태하고 사람을 키우는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신의 나이와 능력 성격에 매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이고 불신적인 마음을 회개하고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다시 캠퍼스에 나아가 한 사람을 낳고 키우는 역사에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새해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한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7-19절에는 아브라함의 이삭을 바치는 믿음이 나옵니다. 그는 시험을 받을 때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이삭을 바쳤습니다. 이는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시는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라도 제물로 바쳐진 이삭을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믿음이 그를 부활의 믿음에 까지 이르게 한 것이었습니다.
  20,21절은 이삭과 야곱의 축복하는 믿음이 나옵니다. 이삭은 죽기 전에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는데 야곱을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야곱에게 속아서 그렇게 된 것을 알았지만 에서가 울고 불고 난리를 쳐도 취소하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할 때 지팡이에 의지해야할 정도였지만 차자 에브라임에게 하나님의 뜻인 있음을 분별하고 손을 어긋나게 하여 에브라임을 더 크게 축복하였습니다. 이삭과 야곱 두 사람은 인간의 관습을 뛰어넘어 믿음으로 후손을 축복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22절에는 요셉의 임종시 믿음이 나옵니다. 그는 애굽에서 80년간 총리를 하였으므로 자신의 유해를 애굽현충원에 묻어줄 것을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자손들이 거기서 나올 것을 알고 자신의 뼈를 약속에 땅에 묻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는 화려한 애굽에서 생의 대부분을 살았지만 그의 소망은 여전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몹시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좋은 선물을 상으로 주십니다. 능력이 없고 외모가 딸리고 실력이 없어도 하나님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안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하고 나그네 길을 마친 후 영광에 들어가게 합니다. 우리가 믿음 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 믿음 있는 사람이 되어 새해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들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53 요한복음 [2010년여름수양회제1강]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리스닝 2010-07-25 2974
552 히브리서 [2016년 히브리서 제13강]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관리자 2016-01-24 2973
551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5강]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관리자 2014-08-03 2973
550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8강]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리스닝 2010-07-04 2970
549 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제3강] 온전한 사람 관리자 2012-02-05 2966
548 히브리서 [2015년 히브리서 제6강]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관리자 2015-11-01 2963
547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8강] 바벨탑 관리자 2013-05-12 2962
54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제18강]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 관리자 2019-07-14 2961
545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4강]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관리자 2017-07-16 2959
544 다니엘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2강] 뜻을 정한 다니엘 관리자 2015-08-23 2953
543 이사야 [2014년 신년 제7강] 이방인을 예물로 받으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4-02-23 2952
542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2강]이방의 빛으로 삼아 관리자 2011-01-16 2950
54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9강] 너는 복이 될지라 관리자 2013-05-19 2947
540 히브리서 [2016년 히브리서 제11강] 세상을 이기는 믿음 관리자 2016-01-10 2938
539 히브리서 [2015년 히브리서 제10강]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5-12-27 2938
538 마태복음 [2015년 성탄 메시지] 내 백성의 목자가 되리라 관리자 2015-12-20 2930
537 이사야 [2014년 신년 제5강]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1 관리자 2014-01-26 2926
536 마태복음 [2014년 마태복음 제20강] 마음을 깨끗하게 관리자 2014-06-22 2925
535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6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서삼문 2011-10-16 2923
534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5강]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이사가.. 관리자 2011-02-06 2919
1,,,11121314151617181920,,,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