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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9-17 (일) 10:53
분 류 룻기
첨부#1 2023년_룻기_제2강-1.hwp (85KB) (Down: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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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룻기 제2강]나의 하나님, 헷세드의 하나님
2023년 룻기 제2강                                                 권다니엘
                 나의 하나님, 헷세드의 하나님
멀씀 / 룻기 2:1-23
요절 / 룻기 2: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룻기는 사사기와 사무엘서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룻기의 배경이 사사기로서 가장 어두운 시대입니다. 배교와 무정부시대시요, 부도덕하고 강포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룻기와 같은 아름다운 스토리가 나왔습니다. 룻이 은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윗왕국의 서막이요, 종래에는 메시야 왕국이 도래하는 초석이 됩니다. 룻기의 메세지는 하나님의 은혜 (헤세드) 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의 은혜를 만나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회복이 됩니다. 우리는 ‘은혜’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회복과 승리가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은혜를 만나기 위해서, 오늘 세 인물이 각가 어떻게 했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 1 장 룻
1장은 파산, 슬픔, 좌절 그리고 절망입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나타납니다. 그 가능성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적 축복을 받고자 할 때 가져야 할 자세가 룻을 통해 오늘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주도적 열심
섭리라고 해서, 우리가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도적 열심이 필요합니다. 룻과 나오미가 모압 땅에서 완전히 파산하여 거지가 되어 다시 이스라엘로 왔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자칫 굶어 죽을 처지입니다. 이 때 룻이 나섭니다. 2절.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믿음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차가웠습니다. 없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는지는 몰랐습니다. 룻은 그 때 시어머니가 무책임하다면서 원망하고 이제라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 가정을 책임지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가지고 먼저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삶이 어려울 때,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되나 보자 혹은 왜 내가 나서냐하며 관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섭리적 축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도적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특징은 주로 원망하는 것입니다. 늘 누구 때문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남을 원망하고 핑계 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섭리적 축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내가 괜히 시어머니 따라와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 하나?” 그러나 룻은 후회도 원망도 하지 않고,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어찌하든 시어머니를 먹이고 가정을 회복하고자 주도적 열심을 냈습니다. 룻은 아직 하나님의 헤세드 은혜를 몰랐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헤세드 은혜입니다. 한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고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섭리적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주도적 열심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해도, 전도를 해도 열심을 드리고 헌신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섭리적 축복이 임합니다. 신명기 32장 10절,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독수리 어미는 잔인할 정도로 하늘 높이에서 자기 새끼를 땅으로 떨어뜨립니다. 독수리 새끼는 어떻게 엄마가 날 이렇게 취급하나 당황하고 원망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살고자 필사적으로 날개 짓을 합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점차 날개의 근육이 붙고 힘이 생겨 스스로 창공을 날게 됩니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종종 과도한 의존성이 있습니다. 엄마가 받아 주고 다 챙겨주겠지. 나이 서른 중을 넘어서도 엄마 집에서 등골 빼먹는 자식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젊음이 있음에도 날개 짓 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엄마의 마음이 찢어지겠죠. 힘들어도 날개 짓을 열심이 하다가 창공을 높이 날아야죠. 마찬가지로, 사랑의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실거야 하면서 가만있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룻이 젊은날 생과부 되고 집안이 풍지박산되어 거지꼴이 되었을 때, 과부 시어머니를 먹이고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자 주도적 열심으로 밖으로 나아간 것은 마치 새끼 독수리가 살고자 처절히 그리고 악착같이 날개짓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십니다. 날개짓하다가 힘에 부쳐 날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땅으로 수직낙하하면 또 어떻습니까?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안전히 받아주십니다. 우리가 주도적 열심으로 자꾸만 날개 짓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를 깨닫게 되고 화평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영원한 상급에 대한 영적 눈이 열려, 이 땅에서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룻이 마치 독수리 새끼의 모습입니다. 날지 못해도 악착같이 날개짓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에 근육이 생깁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할 때,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하기 보다는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심이 기도하세요. 심령으로 찬양 드리세요. 헌신을 해도 생명을 걸고 해 보세요. 룻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가 부어졌습니다. 룻은 젊어서부터 고난과 불행에 봉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마음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쓴 뿌리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깊은 내면입니다. 우리의 삶의 고난이나 불행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경륜적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뜻을 다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주도적 열심을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열심을 드리세요. 주님께 충성 다하세요.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둘째, 성실
7절.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냥 자기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매력은, 일이 작든 크든, 남이 알아주던 아니든, 주어진 일을 적당히 하지 않고 또한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실이요 세상적으로는 성공,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비결입니다.
셋째, 겸손
2절,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10절.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13절,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굉장한 겸손입니다. 롯은 겸손히 은혜를 구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파산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아름답고 복받을 내면입니다.
믿음이란 위를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옵니다. 이 땅에 사는 인생이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진실로 살길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은혜 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왜요? 부끄럽거든요. 나는 부족하고 파산했음을 드러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거든요. 또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힘으로 살기 원합니다. “내 돈 주고 내가 먹지 뭐.” 은혜를 싫어하는 마음이요 자기 공로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간혹 “나는 자수성가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참 불경스런 말입니다. 세상에 자수성가한 사람 어디 있습니까?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구요?”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지, 내 힘으로 했다고요? 우리는 은혜 붙들어야 다시 일어서고 승리합니다. 룻은 은혜 구하는 것을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때 빈손으로 나가서 넘치도록 채워지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은혜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은혜는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겸손히 도움을 구하세요. 목자님께 겸손히 도움을 구하세요. 언제나 겸손한 모습으로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히브리 성경의 순서를 보면 룻기가 잠언 뒤에 있습니다. 잠언 마지막 장인 31:10절에서 묻습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리고 그 다음부터 현숙한 여인의 조건을 주욱 나열합니다. 한마디로 열심히 일하는 여인입니다. 그리고 결론이 30절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현숙한 여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이요 그 예가 바로 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주도적 열심과, 성실과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여인이요, 그 여인이 바로 룻이었고,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받아, 다윗왕가를 여는 초석이 되고, 메시야의 조상 대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과 저에게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제 2 장 보아스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에게는 만남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불장군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실망하였다하며 모든 관계를 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위해 교회에 보내시고, 함께 일할 동역자들을 보내주셔도 다 끊어 버립니다. 참으로 안타깝니다. “저 사람 왜 그리 어리석을까? 왜 축복의 파이프를 절단할까?” 뒤늦게 후회하지만 여전히 만남을 기피합니다. 룻을 보세요. 모압 이방여인이요 과부요 가난합니다. 외국 땅에서 멸시받고 천대받으며 앞길이 막막할 때 집안에 틀어 박혀 있기 쉽습니다. 아니면 콱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작은 끈을 홀대하지 않았을 때, 보아스와 같은 신앙적, 도덕적 인품이 있는 그리고 부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런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업 잘하는 비결이 따로 있나요? 많은 영혼을 추수하는 비결이 따로 있나요? 만남을 귀히 여기고 작은 관계라도 잘 살리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영혼을 구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룻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3절에, 룻이 ‘우연이’ 보아스의 밭에 갔다고 합니다. 4절에는 ‘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연인가요?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섭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입니다.
인생을 우연이라 말하는 것처럼 슬프고 무의미하고 마음 아픈 것이 없습니다. 내가 우연이 부모님 만나고, 우연이 이 학교에서 이 공부하다가 우연이 이 교회에 나오고, 우연이 이 직장에서 일하고, 우연이 이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우연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하면 얼마나 무의미합니까? 우리는 우연이라고 하지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는 필연입니다. 세상에 우연이 어디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손길이 고스란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 때를 돌아보면 실패요, 아픔으로 가득하여,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명품이요, 걸작품으로, 저 하늘에 영원토록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고 아름답게 조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로 바라보면 버릴 것 없습니다.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삶에서 격는 어려움, 아픔, 실패 그리고 난관은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완성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한 계획이 있음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룻의 삶이요, 룻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섭리적 인도하심입니다.
우리는 룻기를 통해 만남과 관계의 축복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는 두 남녀의 만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직업적 만남도 있습니다. 4절.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여기 주인과 종업원의 관계, 사장과 사원의 관계가 나옵니다. 사장 왈, “God be with you.” 이것을 축약한 것이 ‘good by.’ 이것이 초창기 영어 인사입니다. 사원들왈, “God bless you.” 참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갑질이나 을질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진실로 축복을 빕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사가 되어야 합니다. 갑을 관계에서 저런 아름다운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보아스의 인품이나 인격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보아스가 참으로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잘 맺는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자, 여기 보아스와 룻의 만남이 있습니다. 두 남녀의 만남입니다. 사실은 보아스가 룻을 보는 순간, 첫 눈에 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룻을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세심하게 돌보고 챙깁니다. 8절에서 보아스는 룻이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다른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합니다. 당시에 이삭줍기는 그야말로 홈리스들의 고된 생존 도구와 같았습니다. 더구나 여인의 이삭줍기는 성희롱과 같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이를 알고 룻을 보호합니다.
9절에서는 남자들이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구내식당에 준비된 물을 먹도록 배려해 줍니다. 14절에서는 친히 룻을 식사에 초대하고 초라는 특별 양념으로 대접하고 족히 먹도록 합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보아스가 룻을 위해 곡식 다발을 일부러 흘리게 하여 룻이 줍게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모압출신의 이방여인이요, 과부요, 패가망신한 집안 출신임을 알았습니다. 당시 모압은 유대인이 상종치 않는 저주받은 민족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의 뼈대 있는 가문이요, 그 지방의 유지요 부자인 보아스는 이방인이요, 과부요, 파산자인 한 여인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거나 차별하거나 혹은 무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섬세하고도 따뜻하게 룻을 살피고 배려하고 보호하고 격려하고 먹이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었습니다. 룻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를 보고 체험하고 감격하여 땅에 엎드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는 보아스에게서 하나님의 헤세드를 봅니다. ‘헤세드’는 번역하기 쉬운 단어가 아닙니다. 인자, 인애, 사랑, 은혜, 친절, 자비. 변치 않는 사랑. 반드시 이루어내시는 사랑. 무한대한 사랑. 이것이 룻기의 주제요, 룻기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입니다. 이 은혜를 만나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고 회복됩니다.
예레미야애가 3: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우리는 전염병, 전쟁, 기근, 경제적 불황 속에서도, 물질주의와 성공주의가 덮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리고 간교하고 악랄한 사단이 지배하는 불신앙 시대 가운데서도 결코 진멸되지 않습니다. 왜요?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며 나를 변하지 않게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실패하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하거나 아프신 분이 있습니까? 나는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나는 인생에 아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나이는 먹어가고 양들은 없고, 해 놓은 것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여기 하나님의 변치 않는 헤세드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결코 진멸되지 않습니다. 이 헤세드의 사랑이 여러분과 저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룻기 2장에서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은 ‘흘리는’ 은혜로 나옵니다. 레위기 23:22절. “너희는 곡식을 추수할 때 구석구석 다 베지 말며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서 내버려 두어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신명기 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 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 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은 너무 악착같이 살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자의 윤리는 흘리는 것입니다. 그냥 떨어뜨리세요. 옷 어디에 두고 왔으면, 찾지 말고 누군가 입도록 놔두세요. 백화점이나 고급 명품점에서는 좀 깍더라도, 시장가서 콩나물 값을 깍지 마세요. 웬만하면 좀 넉넉히 주고, 남 배려해주세요. 일주일에 몇만원 정도는 아무 이유 없이 가난하고 필요한 사람을 위해 주고 섬기는 것도 좋습니다. 이것이 은혜가 흐르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 다 부자가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흘리고 다니는 부자 되세요. 보아스에게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마찬가지로 은혜는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세상에 죄로 인해서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인간은 가인과 같이 유리방황하다가 종래에 죽음과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은혜의 보좌로부터 이 땅위에 은혜를 흘리셨습니다. 그 은혜중의 은혜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입니다. 그 분이 저 영원으로부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 땅에  오셔서 인자가 되었습니다. 무명인으로 사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의 흘리신 피가 우리 인생들에게 은혜입니다. 그 피가 우리 인생의 죽을 몸, 아픈 몸에 흐르면서,  우리의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고, 혼돈스럽고 무의미하고 슬픈 마음이 온전케 되고, 병든 몸이 강건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가 은혜중의 은혜요,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로부터 아래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 피를 바라보고, 이 피에 적시면, 누구도 살아납니다. 여러분은 이 피에 여러분의 영과, 마음과 육신을 잠가 보셨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흐르는 예수님의 피의 은혜로 죄를 사함받고 용서받고 하나님 나라를 보셨습니까?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모르면 아무도 자신을 크리스챤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체험하면, 하나님의 자녀와 같이 흘리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알뜰하게 살면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리 말하지 않습니다. 받은바 은혜를 흘리십시요. 소감을 쓸 때, 받은바 은혜만 간증하기보다 흘린 은혜를 나누어 보세요. 정말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 내 가정이 회복되고, 양들이 살아나고, 교회가 부흥하고 또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 UBF 사역을 지금껏 귀히 쓰신 것은 우리 사역이 ‘흘리는’ 사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혜가 교회 안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자꾸만 밖으로 흘리고 더 나아가 세계 전역으로 흘리고 있기에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고 축복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 경성 센터 역시 끊임없이 흘리는 사역을 하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한 것을 봅니다. 그 흘리는 은혜가 여기 경희대로부터 해서 서울과 한국 땅과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가기에 참으로 아름답고, 벤쿠버 땅의 저에게도 전해져서 지금껏 선교사명을 감당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의 말이 참 따뜻하고 고맙습니다. 파산하고 실패한 이방 과부에게, 보아스는 “이 땅에서 고난이 많겠지만 천국에서 큰 상급이 있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이라도, 지금 여호와께서 너를 보호하시고 네게 상주시기를 원한다고 위로하고 축복했습니다. 그의 말이 룻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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