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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0-09 (월) 16:26
분 류 에스라
첨부#1 2023년_가을_에스라_제1강-1.hwp (93KB) (Down: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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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가을 에스라 1강]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2023년 가을 에스라 1강                                                             최동진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말씀 / 에스라 1장, 2장
요절 / 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에스라서는 역대하 마지막 부분에서 이어져 고레스원년(BC538년)부터 아닥사스다왕 32년(BC432년)까지 약 10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서가 1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바벨론으로부터 1, 2, 3차에 걸쳐 귀환한 이후에 대적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고 영적 개혁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 에스라는 7장에 등장하는데 1장에서 6장까지 다루고 있는 1차 포로귀환(BC538년)과 성전완공(BC516년)은 에스라의 2차포로귀환(BC458년)과는 각각 80년과 60년의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이는 광복 80주년, UBF개척 60주년을 맞는 시점에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들로서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오히려 낯선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왔는가? 지난 과거의 역사와 자신들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그 땅에서 사는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1차 포로귀환과 성전건축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돌아온 공동체는 어떤 사람들인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분명한 영적 방향을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마음을 감동시키신 하나님(1장)
  에스라, 느헤미야서의 중요한 주제는 성전건축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전건축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성전건축이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왕 고레스 원년은 BC538년으로서 고레스가 바사 왕이 된 원년이 아니고 바벨론을 점령하고 그 지역 전체를 통치하기 시작한 첫해를 의미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렸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하라 명하였습니다. 세속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은 고레스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렘25:11-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10) 저자가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עור)’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예레미야 51:1절 말씀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심령을 부추겨(עור)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있는 자를 치되”(렘51:1) 여기서 ‘심령을 부추긴다’는 말이 원어로는 ‘감동시킨다’는 말과 같은 단어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포로귀환과 성전 건축에 대한 예언은 이사야서에 더 많이 나타납니다. 이사야서 44:28절에는 구체적으로 ‘고레스’라는 이름까지 적시해 그를 통해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이사야44:28) 그런데도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셨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과 치열하게 싸운 선지자였습니다. 70년 포로생활을 예언했다가 백성들에게 욕을 먹고, 감옥에 갇히고 죽을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과 맺은 언약의 관계는 깨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려 하셨던 계획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전이 없어짐으로 하나님의 역사도 끝이 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fullfill)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건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보다 ‘새 일(new thing)’이라고 하였습니다.(사43:19) 새로운 일이란 전에 볼 수 없었던 일, 전보다 진일보한 일이고 upgrade된 역사입니다. 이것이 출바벨론에 대한 저자의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도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신 계획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신 새로운 일이 무엇입니까? 돌아온 포로공동체에 우상숭배가 완전히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의식과 형식중심에서 율법 중심의 유대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렘31:31-34)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은 바사왕의 조서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사왕의 조서는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는 도구이며 통로였습니다. 5장에서 바사 왕이 조서로 성전 건축을 중단시켰는데도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을 따라 유다 장로들이 성전 건축을 재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에스라가 2차 포로귀환 후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셨습니까? 과거 바벨론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통째로 끌려간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노동력을 본래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거기다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아낌 없이 지원까지 하는 것은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조서를 보면 고레스왕은 자기 힘으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제국의 왕들과는 달리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고레스의 인격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감동시키다(עור)’란 말은 휘젓다, 움직이게 하다, 깨운다는 의미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70년 만에 돌아오는 일이나 이런 그들을 다른 민족의 사람들을 기쁘게 지원한 일이나 모두 하나님이 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므로 일어난 역사였습니다.
  마음이 감동하면 기쁨이 있어 자발적이 됩니다. 출애굽 당시 애굽왕 바로는 마지못해 억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냈지만 고레스는 기쁨 가운데 자발적으로 보냈습니다! 광야의 성소도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들을 통해 지어졌습니다.(출35:21, 36:2) 솔로몬 성전도 성령에 감동된 사람 다윗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포로기 이후 성전건축이 이방 왕에 의해 시작된 것은 새로운 역사입니다. 다윗이 시작했고 솔로몬이 완성한 성전을 이방왕의 마음이 감동해서 다시 짓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통해 성전은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심으로 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는 성격이 좀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사56:7) 저자는 세상 모든 나라를 고레스에게 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이방 왕조차 그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그의 종으로 혹은 목자로 쓰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의 주관자가 되셔서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뜨리기도 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마음이 감동된 고레스는 돌아가는 백성들을 어떻게 지원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고레스왕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그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주도록 하였습니다. 거기다 그들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예물을 기쁨으로 드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정착지원금과 성전건축헌금까지 지원받게 한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세속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은 페르시아 제국 안에 있는 여러 민족의 귀환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귀환은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세속 역사를 움직여서 이루신 역사입니다. 이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에 따라 모든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 중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함으로 올라간 사건이 가장 중요했던 것과 같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일어났습니까? 포로로 잡혀온 모든 사람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들은 주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정황으로 볼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태어나 바벨론 땅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던 2세들로서 바벨론은 그들에게 익숙한 고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반면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는 낯선 땅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그곳에서 이방인처럼 새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가는 길도 멀고 험했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건축할 마음은 1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으시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온 세상의 주인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새로운 역사를 이어갈 희망과 비전이 생겼습니다. 그럴 때 현실의 어려움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이기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변함없는 사랑과 소망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믿음이 생길 때 마음이 감동됩니다. 마음이 감동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희생하고 기쁨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감동적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만 감동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이는 출애굽 당시의 상황을 연상시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출12:35,36) 그런데 출애굽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빨리 떠나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주었지만 출바벨론 때에는 기쁘게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에도 역사하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백성들이 이방인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면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과거 바벨론 강변에서 앉아서 울며 사로잡은 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시137:1-3) 그러나 이제는 그들을 위해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너무나 기쁘고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여 혀에는 찬양이 넘쳐흘렀습니다.(시126:1-3)  고레스왕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7-11절을 보십시오.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 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 그 수는 금 접시가 서른 개요 은 접시가 천 개요 칼이 스물아홉 개요 금 대접이 서른 개요 그보다 못한 은 대접이 사백열 개요 그 밖의 그릇이 천 개이니 금, 은 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 성전 그릇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가져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신이 자기 신에게 패배한 것이고 이스라엘을 그들의 신에게서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이 성전 그릇들을 전부 돌려주었습니다. 이는 바벨론왕이 빼앗아간 것을 고레스왕이 돌려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잠시 바벨론 왕에게 잠시 맡겨두셨던 것을 되찾아오게 하신 것입니다.(렘27:22) 이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나아가 성전 파괴로 단절된 것처럼 보였던 예배가 회복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자는 예루살렘 귀환을 제2의 출애굽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 깨지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포로귀환명령은 감격적인 사건이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1500km나 되는 먼 길을 걸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땅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자들이 낯선 환경에서 성전을 건축하고 정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동기와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시라는 믿음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 출애굽과 같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 이스라엘 국기는 청색 줄 두 개와 별 하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두 줄은 유프라테스강과 나일강을, 별은 다윗의 방패를 의미합니다. 이는 나일강을 건넌 출애굽사건과 유프라테스강을 건넌 출바벨론 사건이 이스라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이상에서 포로귀환과 성전건축은 표면적으로는 바사왕 고레스의 정책의 결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바사 왕 고레스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이루신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감동된 자들을 통해 감동적인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캠퍼스 영혼들을 살려서 영적 지도자로 세우시고자 60여년 전 고 Dr. Samuel Lee 선교사님과 마더 배리 선교사님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힘든 시국 가운데서 방황하는 학생들을 1:1 말씀공부로 돕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받은 후 마음이 감동되어 물불을 안 가리고 캠퍼스 개척을 위해 목자로 살고자 결단하고 양들을 위해 희생하여 섬김으로 광주로부터 시작하여 서울 각 대학교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으로 감동을 받고 서독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 선교사로 헌신된 종들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오대양 육대주 곳곳에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을 이루시고자 하나님은 그의 뜻에 순종하고자 감동된 자를 통해 친히 그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를 위해 목자로 살고자 감동된 마음으로 결단하고 헌신하여 구원역사를 섬기는 귀한 하나님의 종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코로나와 경제불황과 많은 생명의 위협을 주는 두려움의 세력 앞에서 움츠러들므로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말씀으로 감동시키시고 말씀대로 살도록 격려해주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를 변함없이 소망 가운데 키우시는 하나님께 감동되어 이 시대 고레스와 같은 회복의 역사의 주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I. 성전건축을 위해 돌아온 사람들(2장)
 2장은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갔다”로 시작해서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로 끝남으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정착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실제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 건축 역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이들 11명은 돌아온 사람들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느헤미야는 후에 등장하는 느헤미야서의 저자인 느헤미야와는 동명이인입니다. 모르드개는 베벨론의 신 마르둑에서 기원한 바벨론식 이름으로 에스더의 삼촌도 모르드개라 불리웠습니다.(에2:7) 3절부터 35절은 일반 백성들인데 먼저 3-20절은 계보를 아는 사람들로서 조상의 이름으로 구분하였고 21-35절은 조상의 고향을 아는 사람들로서 출신지를 별로 구분하였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페르시아 땅에서 태어났지만 예전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속해 있는 조상들의 땅을 출신지로 보고 있습니다. 36-39절에 언급된 이름은 제사장들로서 여다야, 임멜, 바스훌, 하림 자손 등 네 개의 가문만 소개되어 있는데 그 수의 합은 4,289명으로 1차 귀환 때 돌아온 사람들의 1/10에 해당하는 큰 규모였습니다. 반면 40-42절에 기록된 레위인의 수는 341명으로서 제사장의 1/10에도 못미치는 적은 수였습니다. 이는 다윗시대에 레위인들이 38,000명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대상23:3) 에스라가 인도했던 2차 귀환 때에는 레위인들이 없어서 출발을 늦추면서까지 찾았지만 38명만 돌아왔습니다.(스8:15-20) 본래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위해 선별된 자들로서 각자의 재능에 따라 문지기로, 찬양대원으로, 그리고 그 외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함으로 성전 맡은 자로서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제사장 가문에 비하면 성전봉사라는 고된 임무가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 중의 상당수가 포로기간 중에 보다 편한 생활을 찾아 그 직무를 포기하고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성전의 핵심 역할을 맡은 제사장들에 비해 레위인들은 위치도 애매하고 힘들게 일해도 별로 드러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별로 감동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의 도움이 없이는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고 성전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레위인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봉사자로 부르심 받은 우리들이 이 시대의 레위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자 맡은 역할과 능력은 다르지만 성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자부심을 가지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43절-58절에는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디님’은 ‘주어진 자들(those tho were donated)’이란 뜻으로서 성전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들(temple servant)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성전의 일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상당수가 히브리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이방인들로서 비천한 대우를 받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다로 돌아가도 성전에서 막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 번 알게 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함께 귀환하였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신분과 직무에 상관 없이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 했던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신하들은 솔로몬이 가나안 땅에 남아있던 원주민을 종으로 삼아 역군으로 부렸는데 솔로몬 신하의 자손은 이들의 후손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도 거기서 역군으로 종사하다가 포로 귀환 때 함께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이들 역시 느디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낮은 지위를 원망하지 않고 주를 위한 일에 기쁨으로 헌신한 자들이었습니다. 59-63절에는 계보가 불분명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출신 종족과 성분이 불확실했지만 돌아오는 사람들의 공동체체에서 배제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사장 중에서 계보에서 이름을 찾지 못한 자들은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 직분을 행하지는 못하게 하였습니다.(62) 이는 계보를 기록한 목적이 단순히 인구조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함임을 나타냅니다. 온 회중의 합계는 42,360명이었습니다. 돌아온 사람들을 한 사람 단위로 계수하고 있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모두가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시 레위지파를 제외한 장정만 603,550명이 돌아왔던 것에 비하면 훨씬 적은 숫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이 감동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려운 현실만 보지 않고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요즘처럼 전도와 제자양성이 어려운 시대에도 자원하여 목자로 살겠다고 결단한 소수의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잇는 사람들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려워도 이렇게 마음이 감동된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들은 진정으로 ’남은 자들‘이었으며 이들이야 말로 새 역사의 주역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65-67절은 그들이 데리고 나온 종들과 재산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68,69절에서 어떤 족장들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예물을 드리되 기쁨으로 힘자라는대로 드렸습니다. 금이 61,000다릭이며 은이 5,000마네요 제사장 옷이 백 벌이었습니다. 1다릭은 황소 한 마리의 가치에 해당하는데 61,000다릭이라 하면 황소 61,000마리의 값에 해당합니다. 1마네는 60세겔인데 1세겔이 노동자 한 달 봉급이었으므로 5년치 봉급에 해당합니다. 5,000마네를 드렸다는 것은 25,000명의 연봉을 드린 것으로 엄청난 액수입니다.
  70절을 보십시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돌아온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다는 것은 언약의 중요한 요소인 땅을 그들에게 주었다는 것이고 이는 언약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옛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고 언약의 땅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는 감동의 역사라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병원 경영의 어려움으로 폐업까지 해야 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먼 곳에서 새롭게 시작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영육간에 저의 삶은 망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말씀을 더욱 굳게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구했을 때 가까운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내 인생을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산 것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의 능력이나 노력이나 의지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캠퍼스 현실을 생각하면 저와 모임의 미래가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의 세력이 강하게 다스리고 있는 이 시대에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자기의 삶을 드려 헌신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귀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마음에 감동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심으로 인해 감사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제가 날마다 깨어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에 마음이 감동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모임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역사에 대한 소망과 기대 가운데 맡기신 일에 충성하며 이 시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바벨론 포로귀환과 성전 건축은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들을 통해 새 일을 이루십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예배가 회복되는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대 제사장이요 레위인들로서 성령에 마음이 감동되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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