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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9-24 (일) 10:48
분 류 룻기
첨부#1 2023년_룻기_제3강-1.hwp (103KB) (Down: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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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룻기 제3강]기업 무를 자
2023년 룻기 3강                                                                                임균택
                          기업 무를 자                      
말씀: 룻기 3:1-18
요절: 룻기 3: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이스라엘은 지금도 칠칠절에 밤샘공부 하는 전통이 있는데 치즈케이크 등을 먹으면서 구약의 룻기를 읽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 4장으로 된 룻기를 매년 들으면서 거의 암송을 합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과거의 죄나 실패로 하나님을 떠났다하더라도 다시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이 칠칠절은 맥추절이라고도 하며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이며 동시에 신약에서는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강림 날이 되기도 합니다. 룻기는 결국 이런 하나님이 이루시는 축복의 섭리 한 과정가운데 있습니다.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는 이 절기는 곧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하는 유월절 다음으로 끝까지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의 때에 룻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오미, 룻, 보아스 이들은 서로 돕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사랑과 믿음의 열매를 보여 줍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현악기들이 각자의 음색을 뽐내며 만들어내는 한편의 아름다운 사랑의 3중주곡과도 같습니다. 거기에는 룻의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 그리고 보아스의 기업무를자로서 은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된 사랑은 나보다 너를 향해 그리고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때 더욱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말씀은 이 룻기의 절정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룻이 보아스에게 청혼하는 부분입니다. 이 시간 룻과 보아스를 통해 이들의 믿음과 역사의식을 배워서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에  감사하며 그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귀한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1장, 나오미의 믿음과 룻의 순종

다같이 1절을 읽겠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보아스의 큰 호의로 룻은 보아스의 땅에서 많은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한편 룻을 통해 이런 보아스의 호의를 듣게 된 나오미는 이미 마음속에 보아스를 기업 무를 자로 낙점하였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고 난 나오미에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지혜였습니다. 지난날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향해 돌아가라 말했을 때는 정말 나오미의 인생에서 가장 불행하고 절망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나오미는 룻의 이삭 줍는 일을 통해 뭔지 모를 은혜로운 하나님의 섭리가 자라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풍성한 보리와 밀의 추수가 시작되고 여기저기서 콧노래를 부르며 할렐루야~ 행복해 하는 베들레헴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인생의 가장 비참한 시기를 겪고 있는 룻과 나오미에게도 임했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신들의 친족이므로 바로 기업 무를 자 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룻에게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안식은 곧 과부가 새 남편을 얻어 가정을 이룸으로 얻게 되는 행복과 안식을 의미합니다. 만약 나오미가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아들까지 잃어버리는 고통과 지독한 가난 속에 오직 룻을 의지하며 외로움을 이기고 살아왔기에 자신을 봉양하는 룻에게 재혼을 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비참한 처지에 있을 때 룻은 오르바와 달리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나오미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습니다. 이를 볼 때 나오미에 대한 룻의 사랑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룻이 있는 곳은 완전히 망해버린 집안에 어떤 미래도 찾아 볼 수 없는 절망만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를 따라 가겠다고 결단한 룻은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인 모압 족으로 받아야 할 냉대를 감수하면서 베들레헴까지 와야 했습니다. 또한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이삭줍기라도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도대체 그런 힘과 의지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육체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일사각오를 통해 얻어지는 정신적인 강인함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룻은 유교적으로 볼 때도 지조와 절개를 지닌 열녀 그 자체였습니다. 나오미는 이런 룻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자신에 대한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나오미는 동지섣달 긴긴밤을 독수공방해야 하는 과부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과부는 고아, 나그네와 함께 가장 소외당하고 불쌍한 자들로 여겨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신명기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말씀으로 이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볼때 앞길이 구만리 같은 룻이 감당할 그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저주받은 운명 같은 삶을 더 이상 룻에게도 살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미는 마라같은 쓰디쓴 인생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자신을 봉양하는 룻을 위해 그 사랑을 되돌려 주려 한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삭줍기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반드시 있을것이라는 나오미의 믿음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베풀 때 그 베품은 반드시 더 큰 은혜가 되어 되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곧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잠언13: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자의 길은 험하니라" 마태복음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성경은 이렇게 주는 자, 은혜를 베푸는 자가 복이 있다 말합니다. 그리하여 복은 더 큰 복을 부르고 악은 더 큰 악을 부르게 됩니다. 룻이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남편이 아니라 시어머니를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그 절개를 보인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바라보며 인내와 헌신적인 수고, 사랑으로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섬겨 나간 것입니다. 이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았고 더 큰 은혜로 보답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인생 역시 이런 주고받는 관계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받는 자가 복된 것이 아니고 바로 주는 자가 복되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그 역사를 섬기며 바치는 모든 헌신과 수고를 결코 헛되이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좆는 인생은 헛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수고하는 인생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적인 축복을 주시고 기쁨과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가 말씀의 은혜 안에서 역사를 섬기며 누구에게라도 베풀고 나누는 주는 자의 인생이 되어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2-3절을 보십시오.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한편 나오미는 이 인생의 쇼생크같은 현실을 탈출한 대담한 계획을 룻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오늘밤에 운명처럼 그 보아스가 바로 보리를 까불러 온다는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타작 법은 보리 단을 직경 30미터의 평평한 원형 타작마당에 펴놓은 후 도리깨로 골고루 조심스럽게 두들겨 보리나 밀을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낟알에 섞인 지푸라기나 쭉정이들을 날려 보내기 위해 바람에 까불리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여름은 낮에는 바람이 별로 없고 저녁 5시 이후가 되어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타작일은 오후 늦게 시작해서 밤까지 해야 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또한 당시는 악이 횡행하는 시대로 수많은 이웃의 약탈자들이 이 풍성한 수확기를 노리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타작이 끝나갈 무렵 그동안 수고한 모든 일꾼들을 위해 주인이 연회를 베풀고 나서 그 곡식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게 나오미는 보아스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 나올 것이라 알려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모든 퍼즐들이 너무나 오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런 배경 하에 나오미는 믿음으로 룻에게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며 의복을 입어 신부로서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가능한 한 예쁘게 단장하여 보아스의 눈에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해 보아스의 신부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타작마당에 내려가 보아스가 먹고 마시기를 다하고 그가 잠잘 곳을 준비할 때 그것을 확인한 후 그에게 절대 보이지 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다같이 4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룻에 대한 나오미의 이런 지시는 계획치고는 너무나 파격적이다 못해 황당해 보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관습이라고 하지만 과부가 밤에 남의 타작마당에 나간다는 것도 이상하고 한 술 더 떠 잠자는 외간남자에게 가서 잠을 잔다?? 이건 도저히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오미가 고엘제도를 알고 보아스에게 자신과 룻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리수확기를 통해 이미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모든 호의와 관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미 마음으로 깊이 끌리고 있음을 안 것입니다. 룻 역시 이런 보아스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알고 보아스에게 기업무를 자가 되어주기를 바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었습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 및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돕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이 고엘은 "친족", “기업무를 자”를 의미합니다. 한편 이 고엘은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첫째, 너무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 가까운 친족이 이를 대신 사주어야 했습니다. 둘째는 노예가 되었을 때 돈을 주고 그를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세째는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남편의 형제들이 과부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그 가문의 이름을 따라 대를 잇는 일입니다. 넷째는 친척이 죽었을 때 복수할 책임이 있었으며 다섯 번 째는 범죄하였을 때 그 죄 값을 대신 치를 의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고엘을 행할 기업 무를 자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친족이어야 하고 둘째는 능력있는 자여야 하며 세째는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보아스는 당시 베들레헴의 유력한 사람으로 엘리멜렉의 친족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또한 룻을 위해 많은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나오미는 이 모든 것을 통해 그가 기업무를 자임을 알고 이 밤에 룻을 타작마당에 보내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의 발끝에 눕게함으로 모든 걸 맡긴다는 복종과 전적인 신뢰의 표현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주님의 발아래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고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과도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라는 말입니다. 나오미는 이 위험한 계획가운데 바로 보아스가 반드시 옳은 일을 하리라는 것을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다같이 5절을 읽겠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이런 나오미의 지시에 대해 룻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어머니의 말씀에 절대순종 하였습니다.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아가 오늘은 바람이 잘 부는구나. 그러니 이불호청이나 뜯어서 말리자꾸나" 이때 며느리가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어머니 이런 날엔 미세 먼지가 잔뜩 날라 와 많이 묻고 해서 안돼요" 또 시어머니가 말합니다."아가 그럼 묵은 된장이나 손질해 놓아야 겠구나" 그때 며느리가 또 대답합니다. "어머니 그거 곰팡이 나서 다 버렸어요 아우 냄새도 심해서 옷이랑 온 방에 배고 ,이제 그런거 담그지 말고 조금씩 사다먹어요" // 사소하지만 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이 없을 때 갈등과 대립, 논쟁이 생기게 되고 어떤 일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에서 순종은 믿음의 외적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많은 성경말씀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이를 순종하여 온전히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룻 역시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황당하고 다소 위험한 제안에 대해 어떤 일말의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명령대로 다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룻에게 이미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다는 룻의 고백처럼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크고 은밀한 일을 이루시는 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순종의 믿음,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게 해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도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2장, 보아스의 믿음과 가치관

다같이 9절을 읽으시겠습니다.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보아스는 밤중에 인기척에 놀라 몸을 일으켰을 때 룻이 자기의 발치 끝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룻과 보아스의 대화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율법에 언급된 고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룻은 이 한밤중의 만남이  결코 가벼운 만남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룻은 자신을 보아스의 여종이라며 자신을 낮추고 옷자락을 펴 덮어달라고 보아스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옷자락을 펴서 덮는 행위는 곧 보아스의 보호를 받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곧 보아스를 향해 적극적인 결혼에 대한 의사표시를 한 것입니다. 룻은 이 말을 할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거절, 책망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그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온전히 인정하는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심정으로 기업무를자의 은혜를 간구한 것입니다.  

10절-11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자임을 이유로 자신의 청혼을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룻의 말에 보아스는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축복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룻은 결혼한 지 10년 즈음에 남편을 잃은 사람으로 비교적 젊은 여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육신의 안목을 좆아 행했다면 젊은 자를 더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이스라엘의 율법을 따라 엘리멜렉과 거의 동년배로서 40대중후반인 보아스라도 거부하지 않고 시어머니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룻에 대해 보아스는 여느 다른 여인과 달리 율법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남편의 기업을 잇기 위해 자신을 좆은 것에 대해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인애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처음 인애는 룻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시모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것이며 나중 인애는 시모를 잘 공경하고 육신의 정욕을 좆지 않고 시모의 명령과 율법에 온전히 순종한 것을 말합니다. 이어 보아스는 룻을 안심시킨 후 아무 조건없이 고엘의 의무와 더불어 룻의 청혼을 받아들이고자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현숙한 여자임을 성읍백성들이 다 안다 말함으로 룻의 이런 행위가 결코 부정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이 아님을 말하고 오히려  칭찬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현숙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일인데 힘/능력/부/재산등을 의미합니다. 주로 남성에 사용하는 말을 이렇게 여성에게 사용한 것은 그 내적인 면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즉 부지런하고 강인한 생활력으로 모든 집안일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여인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룻을 본사람들은 그녀가 믿음을 가지고 시모를 모시며 얼마나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한편 보아스는 룻의 요구 앞에서도 사사로운 욕심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재산을 지닌 보아스도 얼마든지 이 청혼 앞에 자기의 유익을 따라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룻의 상황은 기업을 무를 뿐 아니라 죽은 형제의 아내를 위해 계대결혼까지 해야 하는 이중의 고엘이 얽혀 있었습니다. 보아스의 재력으로 볼 때 기업은 무르는 것은 자기의 땅을 더 늘릴 수 있어 유익이 되겠지만 과부인 룻과 계대결혼까지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부유했던 보아스도 얼마든지 베들레헴의 소문난 중매쟁이에게 두둑하게 사례비를 줌으로 젊고 아리따운 여인을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이런 인간적인 계산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거룩함으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헛된 인간의 욕망이나 욕심보다 하나님의 공의, 인애와 긍휼, 지혜와 진리를 따라 살고자 했던 덕망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룻의 현숙함을 이미 보았고 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실로 보아스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보아스는 인간적인 생각을 뒤로하고 율법의 절차상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알고 오직 그 절차대로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룻에게 만약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기뻐함으로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책임을 반드시 이행하리라 약속하였습니다. 이어 보아스는 성문이 닫혀버린 한 밤 중에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롯을 위해 아침까지 누워있으라 배려해 주었습니다. 이로서 나오미의 룻을 위한 계획은 이제 모든 것이 보아스에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어머니 라합과 같은 믿음이 있었고 어떤 여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앞에 아름다운 여인인지를 알았습니다. 외모와 물질주의가 아니라 룻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헌신적인 사랑이 바로 그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보아스는 기업무를 자로서 모든 수고를 기꺼이 감당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절망과 외로움,고통스럽고도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야했던 두 과부 룻과 나오미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이런 믿음과 덕망있는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고 인생의 큰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다같이 14-15절을 보십시오.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보아스는 룻이 밤에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헛소문으로 퍼져 쓸데없이 부풀려지고 왜곡되어지는 것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이렇게 룻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보아스는 룻의 겉옷에 보리 여섯 되를 되어 주었습니다. 안식년 규례에 비추어 볼 때 6년은 노동과 수고의 기간이며 7년째는 안식과 자유의 때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를 볼 때 보아스는 여섯번 되어 줌으로 이제 룻의 수고와 고난의 세월이 다가고 곧 안식의 때가 오고 있음을 암시해준 것입니다. 또한 보리자루를 지게 함으로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니는 룻에게 생길 어떤 오해라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보아스는 모든 만남 가운데 축복의 말로 위로하고 은혜를 베풀고 배려하는 덕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룻기의 모든 은혜는 이 최종적인 보아스의 기업 무를 자로서의 역할이 없었다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기업무를 자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었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선민을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혈연공동체가 기본이 되던 시대상황속에서 고난과 부당한 피해를 당한 혈족을 위한 보상제도를 마련함으로 선민 이스라엘을 지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믿음으로 사는 우리를 또한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주신 말씀안에 거할 때 반석위에 지은 집이 되어 비가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한다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아래 거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믿음안에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인애와 은혜가 나타난 이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아스와 룻을 통해 장차 다윗이 태어나게 하시고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완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특히 보아스는 부패한 시대에도 율법을 따라 친족을 위해 물질적,정신적 희생을 감수한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함으로 최종적인 은혜의 완성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 라합을 통해 알게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보아스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이런 보아스를 통해 이 시대 캠퍼스 구원 역사가운데 양들을 위한 기업무를 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진정한 기업무를자 되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은혜 받은 자로서 감사함으로 구원역사를 감당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다같이 16절-17절을 보십시오.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아침을 되기를 학수고대했던 나오미는 룻이 오자마자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룻은 보아스가 보리 여섯 되를 주었다 말하였습니다. 보아스가 이 보리여섯을 되어 준 것은 이미 인생의 고수들끼리 통하는 무언의 대화요 하나의 징표였습니다. 보아스 역시 이 모든 일이 나오미의 계획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나오미의 의사를 존중하여 룻의 청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다같이 18절을 읽으시겠습니다.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나오미는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자신들이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했으므로 그 결과를 겸손히 하나님께 의탁하였습니다. 보아스의 속마음을 알았기에 그가 최선을 다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섭리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룻에게 앉아 있으라. 기다리고 인내하라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도응답에 대해, 또 어떤 결과에 대해 속히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가만히 앉아 인내하며 그것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에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는 기다림은 고통과 불안,조급함의 연속이기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난 다음에는 믿음으로 그 일의 결과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이루시든 조급해 하지 않고 잠잠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순응할 줄도 알아야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성숙한 믿음입니다. 그리하여 나오미의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이 말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믿음의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안에서 기다림의 인내는 그들을 기다리게 하는 약속이 있음으로 자라기 시작한 씨앗처럼 우리에게 포기하지 않는 소망을 갖게 합니다. 믿는 자에게 그 소망은 곧 부활과 영생의 소망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기나긴 믿음의 도정에서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이  은혜를 기다리고 소망하며 오늘도 맡기신 사명들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믿는자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가슴 뛰게 했던 물리학도로서의 꿈을 내려놓고 늦은 나이에 경희한의대로 왔을 때 그 목적은 오직 하루에 약 한두 제 팔고 여유롭게 다시 물리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002년 입학할 때만 해도 세상은 웰빙천지라 개원만하면 정말 꽃길이 예비 된 그런 길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한의대를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목자님들을 통해 성경공부를 하며 말씀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졸업과 동시에 물질의 소망을 좇아 센터를 떠나게 되었고 제기동 근처 교회로 나가 성가대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금방 물질을 모을 것 같았던 소망은 사라지고 현실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온갖 건강기능식품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의계의 현실은 갈수록 암울하기만 했습니다.이 곳 역시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처럼 적당히 약한제 팔고자 했던 안일한 생각이 깨어지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그런 레드오션이 되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10년의 세월동안 통장은 여전히 마이너스, 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수양회때마다 찾아오시는 사모님을 통해 여전히 나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매년 경희사모님의 심방으로 여름수양회를 참석하고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10여년이 되어 결혼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헷갈리는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사모님의 권유로 센터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는 인생의 밑바닥인줄 알았던 현실에 또 지하가 있음을 알게 했습니다. 코로나 격리와 검사로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그야말로 완전히 망한 인생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에 불평과 원망,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주님은 센터에서 성가대를 섬기며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도록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말씀은 이런 자신의 현실 속에서 보아스와 같은 믿음이 필요함을 배우게 합니다. 현실이 어떠하든지 불평과 원망의 말보다 축복의 말,믿음의 말을 하며 현실을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또한 받은바 말씀의 은혜들을 양들에게 전하고 구원의 은혜를 나누는 삶이 진정으로 베푸는 삶이요 주는 자의 삶임을 알게 합니다. 무엇보다 어두운 시대일수록 세상으로 향했던 생각들을 돌이키고 보아스와 같이 믿음을 가진 동역자들과 교제를 나누며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앞에 아름다운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자신이 이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고 나아가야 겠습니다. 이를 통해 변함없이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하며 역사를 섬기는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헤세드의 은혜가 충만한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시고 기업무를 자의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은 곧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겸손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아래 거하고자 할 때 보아스와 같은 만남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희망과 기쁨, 축복이 가득한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를 통해 캠퍼스 사명가운데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변함없는 믿음으로 역사를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늘 함께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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