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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0-15 (일) 10:49
분 류 에스라
첨부#1 2023년_가을_에스라_제2강-1.hwp (146KB) (Down: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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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가을 에스라 2강]홀로 건축하리라
2023년 가을 에스라 2강                                                        오정훈
홀로 건축하리라
말씀/ 에스라 3장,4장
요절/ 에스라 4: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요즘은 흔히 퓨전시대라고 말합니다. 한식 같은데 중식인 음식이 있고 양식 같은데 한식인 음식이 있습니다. 사람 입맛에 따라 마구 섞어서 음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도 맛만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결코 섞여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일찍이 그것을 알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건축하리라 선언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선언으로 한 세기 동안 방해를 받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몸부림쳤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왜 우리가 세상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이 시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신앙의 순수성이 무엇인지 배우고 은혜받는 시간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예배를 회복한 이스라엘(3장)
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각자 성읍에 흩어져 살다가 일곱째 달에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일곱째 달은 나팔절(1일), 속죄일(10일), 초막절(15일-21일) 등 가장 성대한 절기들이 있는 달로서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일제히’란 말은 한 사람처럼(as one man) 이란 뜻으로 일사분란하게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움직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전 건축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마음이 감동되어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한 사람처럼 일사분란하게 예루살렘에 모인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도 세계선교보고대회 하고, 성탄연합예배 드릴 때에 일제히 모였습니다. 성서한국, 세계선교라는 한 가지 목표에 감동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축구나 회식 또 엠티를 간다고 하면 총알같이 모이는데 기도모임, 천로역정을 한다고 하면 일제히 모이지 않습니다. 모이는 건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주의 뜻을 이루는데 일제히 모여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섬기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 새”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를 필두로 제사장들이 전면에 나서서 제단을 만들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적인 일로 여겼습니다. 신명기 27장4-6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처음으로 한 일도 여호와께 제단을 쌓은 것이었고(창8:20),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이르러 처음으로 한 일도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제단을 쌓은 것이었습니다(창12:7,8).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대로’(2), '기록된 규례대로'(4)라는 표현을 볼 때, 최선을 다해 율법을 성실히 지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된 대로 다 지키기 쉽지 않은데 그러나 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지켰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사 드리기에 힘쓴 걸 보면, 예배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군대가면 이렇게 됩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유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5:12). 동시에 율법이 얼마나 소중한지, 율법을 지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로 치면 사명이 좀 부담스럽기는 해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깨달은 것과 같습니다. 포로기를 거치며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던 과거와 달리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은 비극처럼 보였지만, 구속사적인 흐름에서 본다면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곧 율법의 본질과 완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이요 성전 건물 자체보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3a,6a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그들은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마음이 감동되어서 돌아왔지만, '모든 나라 백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바로 성전건축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두려워하여'는 '두려웠기 때문에'(because of the fear)와 '두려웠지만(despite their fear)'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려웠지만 온 힘을 다해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서 성전건축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7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멍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에 집중했을 때, 두려워하던 데서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때 생깁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성전 건축을 시작한 시점을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이른 지 이 년'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그 땅에 돌아온 지 다음 해 둘째 달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성전 건축에 관심을 갖고 재료를 모으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둘째 해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건축 재료를 모으는 데 2년, 건축하는 데 5년(다리오 통치 2년부터 6년), 합하면 솔로몬 성전처럼 7년이 걸렸다는 데 초점을 두려고 하는 저자의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즉 새 성전 건축을 옛 성전 건축과 연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8, 9절을 보면, 레위인들이 성전 공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레위인은 25세부터 30세까지 견습을 하고(민8:24,25), 삼십 세부터 오십 세까지 성막 봉사에 참여하였습니다(민4:47, 대상23:3). 여기서는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이 성전 공사를 감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할 일은 많고 레위인들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20세 이상 헌신하는데 <나는 30살 까지는 좀 쉴거야 하지 말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성전기초가 놓였을 때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고, 레위 사람들은 찬양하였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실 뿐 아니라 다시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성전 지대를 놓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12,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첫 성전을 보았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성전 기초를 보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왜 대성통곡했을까요? 50여년 전에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B.C586) 이들은 어린 아이였거나 청소년으로 솔로몬 성전을 보았을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하였습니까? 첫 번째에 비해 두 번째 성전의 기초가 너무 볼품없고 초라하여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재벌 집 막내아들이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단칸방으로 쫓겨났을 때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그런 심정을 학개2:3 공동번역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이 예전에는 얼마나 영광스러웠더냐? 너희 가운데 그것을 본 사람이 더러 남아 있으리라. 그런데, 지금 이 성전은 어떠하냐? 너희의 눈에도 이 따위는 있으나 마나 하지 않느냐?󰡓 하나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포로기를 거치며 성전의 소중함과 성전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코로나를 거치며 흩어져야 했고, 만날 수 없게 되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모임', '만남'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전이 무너지면서 성전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며 예배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통곡했을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신 일을 기뻐하였고 율법에 기초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에 감격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이 하신 일들과 그리고 하실 일들을 기대하며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저자는 이것이 올바른 반응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과거의 영광에 대한 기억으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신입생 때는 같은 과에서 15명 정도가 여름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사진> 요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겨우 한 명 참석하면 과거를 회상하며 큰 기쁨을 갖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현재 하시는 일, 앞으로 이루실 새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시절에도 그랬고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셔서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수의 사람을 통해 행하시는 새 역사를 기뻐하고 이 역사에 적극 동참하는 종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학개서2:9은 말씀합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멘!

2. 홀로 건축하리라(4장)
성전 건축 소식을 듣고 대적들이 와서 제안했습니다. 4장1,2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로 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정말 뻔뻔하기 그지 없습니다. 에살핫돈(B.C681-669)이 이리로 오게 한 것이 벌써 100년도 넘었는데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함께 건축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한다고 하자 괜히 방해하고 깽판치고 싶은 악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대적이요 믿는 자들의 훼방꾼들이었습니다. 사실 그 땅 백성들이 화합과 협력을 제안했을 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연합하면 물질적, 행정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성전건축도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전건축을 단순히 건물 짓는 걸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공동체(community)입니다. 건물이 없던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은 성소가 되셨습니다(겔17:16). 그러므로 공동체의 정체성, 공동체의 신앙이 성전 건축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며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홀로' 건축하리라‘ 선언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바사 왕 고레스가 유다와 베냐민 자손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했다는 정치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영적인 문제 곧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타락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은 왜 그 웅장했던 성전이 무너졌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백성으로 살지 않고, 이방인들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비롯한 지도자들은 거주민들의 도움이 비록 필요했지만,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혼합주의 신앙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순수한 신앙 위에 세워져야 하는 성전이 처음부터 세속주의, 혼합주의에 물들게 될 때, 성전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습니다. 돌아온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그 땅에 안전하게 정착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솔로몬 성전과 같은 웅장한 건물을 짓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영적인 정체성을 회복하고, 다윗 왕국을 통해 이루려고 하셨던 역사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홀로 성전을 건축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모습을 보고 너무 배타적이라고 비난합니다. 다른 종교하고 서로 포용하고 화합할 줄도 알아야지 독불장군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정체성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화합하는 것은 영적인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무조건적인 배타성은 배격해야 하지만 정체성 확립을 위한 배타성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도 사단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흐리고 세상과 섞이게 하려고 우는 사자처럼 두루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면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우리를 찾아와 세상 사람들과 적당히 섞여서 쉽고 편하게 신앙생활 하라고 속삭입니다. 사람들 분위기에 맞추어서 술도 좀 같이 마시고 일 년에 한두번 주일예배 빠지고 어디 놀러가도 괜찮다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한번이 두 번되고 두 번이 세 번되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에 섞이는 순간 우리 믿음은 무너지고 모든 것은 끝이 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단의 속삭임, 세상 사람들의 요구가 들려올 때 단호히 거절하고 홀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말씀 중심의 복음 신앙을 내면에 세워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한 믿음의 견고한 집을 짓고 주님이 가신 고난을 통한 영광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도 우리의 믿음은 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섬기는 순수 복음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때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요 말씀이 선포되는 집이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 한 분만을 경배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참된 예배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할 때 이스라엘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대적들이 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4-6절입니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그들은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했습니다. '손을 약하게 한다'는 것은 두렵게 하거나 낙담시켜서 건축하고 싶은 의욕이나 열정을 떨어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위협했을 수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시대부터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16년 동안 행정력을 동원하여 관리들에게 뇌물을 줘서 건축을 막았습니다. 고레스는 성전 건축 조서를 직접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을 중단시킨 걸 보면, 얼마나 교묘하고도 과감하게 방해공작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오랜 기간 방해 때문에 유다 백성들의 의욕은 떨어지고, 나중에 선지자들의 책망을 받는 것처럼 관심이 자기 집 사고 꾸미는 데로 많이 돌아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학생들의 반응이 부정적이고 학교에서 활동을 못하게 하여 이런 저런 이유로 제자양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점점 다른 데로 관심을 갖기 쉽게 됩니다. 어차피 제자양성 안 되는데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생각하게 됩니다. 집 사고 자녀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예 이쪽으로 관심을 돌려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때 더욱 깨어서 믿음의 투쟁을 감당해야 합니다.

7-10절에는 고발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데 주동자인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를 비롯해 여려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존귀한 왕 오스납발은 에살핫돈의 뒤를 이은 앗수르바니팔(B.C668-627)로 추정되어집니다. 페르시아 관료들과 주변 민족들이 합세하여 예루살렘 성읍 건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건축하는 데 앞집 뒷집 옆집 사방 주민들이 합세해서 끊임없이 민원을 넣는 형세입니다. 방해하고 고발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초기에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한 이유였습니다.(3:3). 그들은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 그리고 아닥사스다왕 때 조서를 올려서 왕에게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했습니다. 왜 성전 완공 이후 시기인 아하수에로왕과 아닥사스다왕 통치기에 있었던 성벽 건축 방해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성전 건축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성전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아하스에로왕과 아닥사스다왕 시기에 있었던 백성들의 영적 개혁과 성벽 건축까지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레스로부터 아닥사스다왕까지 기간을 총 합하면 거의 100년 가까이 되는데 (고레스 B.C559-529 /캄비세스 B.C 529-523 / 수메르디스 B.C 523-522 / 다리오1세 B.C 522-486 / 아하수에로 B.C 486-464 / 아닥사스다 B.C 464-424) 이는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았던 70년보다 더 긴 시간입니다. 70년 포로생활 버티는 것도 중요했지만, 한 세기에 걸쳐서 지속된 성전 건축 방해를 견뎌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유다 사람을 고발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12-16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은 패역하고(rebellious) 악한(wicked) 성읍으로(12) 이 성읍을 건축하면 조공, 관세, 통행세를 바치지 않아 왕에게 손해가 될 거라고 말합니다(13). 역사적으로 항상 반역하고 폭동을 일으켰고, 예루살렘이 무너진 이유도 그 때문이며(15) 결과적으로 왕의 영토가 없어질 거라고 합니다(16). 대적들의 조서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이고 악의적입니다. 무엇보다 반역과 폭동 때문에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세속사적인 견해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린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닥사스다왕은 대적들이 조서에 담은 정치적인 선동을 대부분 받아들여, 공사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 년까지 중단되니라.” 저자는 다시 바사 왕 다리오 때까지 중단된 성전 건축 방해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5절과 24절 사이에 후대에 있었던 성읍과 성벽 건축을 방해한 사건들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전 건축이 얼마나 지속적이면서도 가혹한 방해를 받았는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전 건축을 위해 감동해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왜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성전과 성읍 건축이 지연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이 험할지라도,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을 섬기는 순수한 신앙 위에 세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빨리 회복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되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적들의 방해와 위협 앞에 혼합주의 신앙과 싸우게 하시고, 건물만 짓지 않고,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순수한 신앙에 굳게 서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도 이런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믿음을 방해하고 위협하는 사단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순수 복음 신앙 위에 굳게 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과거의 영광에 빠져 현재의 역사를 작게 여기고 세상과 적당히 섞여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얼마나 학생들이 많았는가 지금은 겨우 한 명에 목을 거는 역사가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해도 쉽게 남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 세 명이 다 있는 날에는 거실에서 텐트치고 자는 막내를 보며 방이 하나 더 있는 곳으로 이사가야 한다는 동역자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거센 세상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앞에 하나님도 이제는 어쩌실 수 없다 생각하고 맛있는 것이나 먹고 좋은 경치 구경하며 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지난주 제자수양회 천로역정을 통해 여전히 살아계셔서 사람들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능력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리허설 할 때보다 150% 믿음으로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죄악된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새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제가 과거의 영광에 빠져 하나님을 불신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하며 세상과 섞여 살던 것을 이 시간 깊이 회개합니다. 여전히 살아계셔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세상과 섞이지 않는 복음 신앙을 굳게 세우고 이 하나님 한 분만을 경배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이 시대에도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가 세상과 섞여서 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이 들어올수록 우리는 더욱 단호하게 물리치고 홀로 성전을 짓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순수복음신앙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진정으로 승리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순수 복음신앙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로 인해 기뻐하고 하나님을 감사와 기쁨으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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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4강]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관리자 2023-12-10 630
4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7강]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관리자 2023-07-02 624
46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2강]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관리자 2023-11-26 612
45 누가복음 [2023년 성탄 말씀 제1강]은혜를 받은 자 관리자 2023-12-17 590
44 마가복음 [2024년 신년 말씀 2강]하나님을 믿으라 관리자 2024-01-07 585
43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5강]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관리자 2023-12-31 574
42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2강]홀로 건축하리라 관리자 2023-10-15 539
41 룻기 [2023년 룻기 제3강]기업 무를 자 관리자 2023-09-24 536
40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3강]하나님께서 이루셨다 관리자 2023-12-03 535
3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2강]이방의 빛 바울 관리자 2023-05-28 532
38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1강]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관리자 2023-11-12 515
37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강]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관리자 2024-03-10 510
3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0강]주를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관리자 2023-08-06 493
35 룻기 [2023년 룻기 제2강]나의 하나님, 헷세드의 하나님 관리자 2023-09-17 479
3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관리자 2023-06-25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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