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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1-07 (일) 10:53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신년_2강-1.hwp (131KB) (D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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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신년 말씀 2강]하나님을 믿으라
2024년 신년 말씀 2강                                                          이 종 하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 / 마가복음 11:20-25
요절 / 마가복음 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024년 새해 첫 주일,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고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시간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잘 깨닫고, 이를 통해 기도와 용서의 능력을 덧입어서 올 한해 산이 옮겨지는 믿음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 장, 하나님을 믿으라(Have faith in God)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가장 먼저 성전으로 가셨습니다(11). 성전에서 모든 것을 둘러보셨을 때 날이 이미 저물어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로 향하셨습니다. 이튿날 베다니에서 나오실 때, 시장하셔서 멀리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서 보셨는데, 잎사귀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14). 그리고 성전에 가셔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15~18). 다음 날 아침 지나갈 때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20). 완전히 자란 나무가 하루 만에 뿌리까지 마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그렇게 된 것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베드로는 하루 전 말씀이 생각이 나서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하며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과 그 나무가 뿌리째 마른 사건 사이에 예수님이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무화과나무 사건이 성전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에서 포도나무와 함께 가장 중요한 과실수로, 보통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본문에서는 성전을 가리킵니다.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은 나무가 더 이상 필요한 물이나 영양분을 땅에서 흡수할 수 없는 상태 즉 나무의 형태는 있으나 속은 타죽은 상태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상태가 이처럼 겉은 화려하나 속은 완전히 말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을 인용하십니다.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라는 예레미야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성전의 기능을 상실한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게 파괴될 것을 예언하면서 한 말씀입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 이사야 56장 7절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아의 고난 이후 예루살렘의 회복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은 성전 정화를 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동시에 새로운 성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놀라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어떠합니까? 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으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막 8:31, 9:9, 10:33). 그러나 제자들은 그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마르는 사건을 통하여 그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던 제자들에게 드디어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에서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하신 말씀을 제자들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14). 다음 날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며 들은 말씀을 생각하고 기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공생애 동안 하나님을 믿으셨습니다. 23절에서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을 보면, 온 마음을 다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죽음의 잔을 주실 때에도 하나님을 믿으셨고(막 14:36), 저주받은 십자가에 버림받으셨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으셨으며(막14:34), 죽으시기 직전에도 하나님을 믿으셨습니다(눅 23:46). 한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섬기는 동안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셨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자신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들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소망하셨습니다(요 14:12).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무엇을 믿기를 바라셨을까요? 지금까지 제자들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던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믿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역사를 완성하실 것을 믿고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전능하시고 신실하셔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고향 사람들, 종교지도자들, 제자들로부터 배척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변두리 시골 출신의 가난한 목수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으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막9:23). 따라서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따르고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를 이루시는 조건임을 깨우쳐 줍니다.
우리는 본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시며 구원역사에 초대하시는 것은 큰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은 단지 불신을 회개하라고 책망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좀처럼 믿지 못하고 실패를 자주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부르시는 놀라운 은혜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온통 물질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본 야구선수인 오타니 쇼헤이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0년 7억 달러(한화 9000억원)라는 계약을 하여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명품백을 선호하는데, 브랜드에 따라 계급이 있어서 어떤 백을 가지고 다니느냐에 따라 서열화한다고 합니다. 또한 의대 열풍이 부는 것도 안정되고 평생 많은 수입을 갖게 될 것이라는 환상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많은 돈을 벌고 난 뒤 어떻게 살 것인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또 온통 화려하고 보기에 좋은 것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온 나라가 오늘 말씀의 성전과 같이 겉만 화려할 뿐 속을 들여다 보면 썩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영적인 관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새해 말씀으로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 시대를 직시하고 섬기도록 하기 위함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세상에 자주 무기력을 느낍니다. 도저히 현재의 영적 실력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반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하였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믿은 후 비로소 사도행전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소망 없다고 판단하는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또 그런 이유로 불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다시금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초대교회를 세우시고 구원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이 시대 우리를 사용하셔서 UBF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캠퍼스미션을 이루고 계심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성전 지도자들과 같이 시류에 휩쓸려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잃어버릴지, 아니면 계속 구원역사에 쓰임받을 지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온전히 붙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주시도록 구하고,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 2 장, 산이 바다에 던져질 것을 믿으라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를 믿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여기서 ‘그대로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믿음대로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말씀을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뿌리까지 마르게 하셨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자신이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 같은 놀라운 일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산, 바다는 어디를 지칭할까요? 마가복음 저자는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과 말씀하시는 장소가 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11:12,20). 따라서 ‘이 산’은 구체적으로 성전이 있는 ‘성전산’(시온산)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는 성경에서 멸망의 장소를 상징합니다. 당시 성전산 꼭대기에서 보면 사해가 보였는데, 바다는 사해를 말씀하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면 성전이 있는 시온산이 죽음의 바다, 사해로 던져지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성전산이 사해바다에 던져지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한마디로 성전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겉만 그럴싸하고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음에도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였고, 이제 성전산에 대해 속마음을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전 건축을 시작한지 83년 만인 AD 63년에 완공된 헤롯 성전은 불과 7년 뒤인 AD 70년에 완전히 전소되어 파괴되었습니다. 탈무드에서 “평생에 성전을 본 적이 없다면 아름다운 건물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했던 그 성전이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성전의 돌과 돌 사이에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숨겨 두었다는 소문으로 인하여 병사들이 금과 은을 찾기 위해 성전의 돌 하나하나를 모두 파헤쳤는데, 이로써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눅 21:6).
한편 예수님이 산을 옮기는 말씀을 하신 것은 매우 놀랍습니다. 무화과나무가 하룻밤 사이 뿌리째 마른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는 광경은 당시 제자들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있는 장애물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자 할 때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모두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셨을 때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강도의 소굴된 옛 성전 대신 새 성전으로 세우시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셨습니다. 구원역사를 섬길 때 산 같은 장애물이 많이 있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이 바다에 던져질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1990년 소련은 철의 장막으로 한국 사람이 소련에 입국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불가능하였고,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심각한 국가범죄행위였습니다. 그러나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제안에 따라 전체 UBF지부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전심을 다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때 히말리야산 만큼 크게 느껴졌던 소련 선교의 문이 열리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005년 8월 26일 국민일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옛 소련에 대한 선교 사명을 가진 3명의 선교사들이 1990년 헝가리를 통해 소련에 들어갔다. 3일간 관광비자를 받은 이들은 무작정 모스크바의 한 대학을 찾아가 유학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이 바로 옛 소련에 파송된 첫 한인 선교사인 황제임스, 송어거스틴, 김베드로 선교사였다. 이들의 입국은 목숨을 건 것이었다. 수교 이후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는 이들의 활동을 바탕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 옛 소련지역(CIS) 7개국에 10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이마태오 목자는 올해 초 편입한 학교가 있는 진주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홍승재 목자님의 부활절 메시지에서 ‘반백 년 넘게 살면서, 유일하게 잘한 일은 하나님께 시간을 드린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서울에 와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니던 학교가 교직원 임금체불 문제로 갑자기 폐교되었습니다. 학교에 들어올 때, 분명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들어왔다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자, 인도하심이 맞는가 하며 불신이 생겼습니다. 올해 국시를 못 볼 수도 있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그는 올해 요절을 생각하였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지금 물 가운데 있고, 불 가운데 있지만, 저를 침몰시키지 않으시고, 타지 않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저를 건져 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김해에 있는 대학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주님 뜻이 아니면 멈추겠다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들어간 학교에서 다른 성향의 학과공부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또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적을 주시고자 하신다면 주실 것이고, 막으신다면 막으실 것이다 영접하였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편입동기 중 유일하게 전 과목에서 A+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올해 어려웠던 국시를 좋은 점수로 합격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옆에서 마태오 목자가 믿음으로 산을 옮기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분이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큰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어떻게 표현되기를 원하십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표현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음을 가진 신자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접속(access)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이 끊임없이 무릎 꿇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모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도 인간적으로는 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 이것은 산 같은 문제였습니다. 그때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 이 기도 제목을 붙들고 밤새 피땀을 흘리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셨습니다. 이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믿음의 고백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을 통해 온 인류가 죄사함받고 구원받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 29절은 믿음과 기도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에게 산 같은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찾아오는 것은 불안과 염려뿐입니다. 이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성경말씀에서 믿음의 조상들이 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30장에서 다윗 일행이 시글락에 돌아왔을 때, 성읍은 불타 있었고, 처자식은 다 아멜렉에 사로잡혀간 상태였습니다. 너무 절망한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을 돌로 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말렉을 좇아가서 치고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기도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승리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올 한해 내 속에, 양들 속에 놀라운 구원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고 하나님이 산을 옮기시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도할 때 방해가 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이 말씀은 주기도문의 내용 중에서 우리를 위한 기도에 해당합니다(마 6:12, 눅 11:4).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하신 후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의 혐의를 감당하도록 하신 것은 그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는 이는 유대인들의 기도할 때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응답되는 기도는 경건한 자세도 필요하지만, 옆에 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온전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마 6:12). ‘혐의’는 헬라어 ‘카타’(κατά)로, 다른 사람을 반대하거나, 욕하고, 고발하고, 대적하고, 책망하는 태도를 말합니다(against in NIV). NLT 성경에서는 grudge 즉 사사로운 원한, 개인적 유감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의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갈등처럼 각자의 생각이 달라 동의하지 못하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용서하라’(ἀφίημι, 아피에미)는 말씀은 ‘잊어버리다’, ‘완전히 떠나가게하다’, ‘해방하다’, ‘놓아주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혐의를 용서하는 것은 상한 감정과 지나간 아픈 기억에 사로 잡히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분노, 아픔과 고통이 뒤범벅되지 않도록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한편 ‘허물’(παράπτωμα, 파랍토마)은 ‘옆에 떨어졌다’는 의미인데, 하나님이 계시하신 올바른 방식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혐의’라고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심각한 잘못’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혐의를 따지지 말고 용서하면 하나님도 이들의 죄를 넘어가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우리는 결코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 즉 약 7조원을 하나님께 빚진 사람에 비유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대조적으로, 우리 이웃이 우리에게 빚진 것은 백일 품삯에 해당하는 백 데나리온, 즉 약 1200만원 정도로 비유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빚을 탕감 받았는데 형제에게 작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유에서 주인은 그런 사람을 악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도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제자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일방적인 용서를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용서가 잘 되지 않는 이웃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혐의를 용서하도록 직접 말씀을 하신 것을 볼 때 나를 반대하고 비난하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큰 역사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나를 반대하는 한 사람의 혐의를 용서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 공동체가 이런 이유로 분열하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무조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용서가 되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애를 써야 하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고 그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힘을 빼앗기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올 한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담스럽고 속으로 미워하던 이웃을 용서하므로 기도와 믿음이 회복되어 산이 옮겨지는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이나 조건을 보지 않고 말씀대로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제자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 사도로 세우시고 사용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이웃을 무조건 용서하므로 거리낌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을 믿으므로 놀라운 능력의 역사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으로 메시지를 쓰고자 할 때 여러 번 시행착오를 하였습니다. 메시지 전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초조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응답은 제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성실로 버티는 교만이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묵상하는 가운데 저는 새벽기도 하는 것을 자기 의로 쌓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유투브를 완전히 끊은 것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환자 많이 보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세상명예에도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말씀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수 시간 동안 착잡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입으로 회개해도 우상과 같이 다시 붙들게 되는 고질적인 죄문제임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저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말씀을 주십니다. 저의 주홍 같은 죄를 예수님의 피로 단번에 용서하신 하나님을 믿도록 하십니다. 저의 성실을 가장한 교만이 아무리 산과 같을지라도 들리어 던져질 것을 제가 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도록 하십니다. 이 시간 저를 사랑하시고 지금껏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저를 지난 40년간 보호하셨습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을 믿으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불신의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것에 매이지 않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주님이 맡기신 말씀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임은 지난 60년간 믿음으로 전세계 90여 개국을 개척하는, 산이 옮겨지는 구원역사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올해에도 하나님을 믿고 간구하므로 성서한국과 세계선교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의 혐의를 용서하므로 기도의 능력이 회복되고, 순전한 믿음으로 간구하므로 경희대 캠퍼스에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는, 새로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임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숙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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