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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1-12 (일) 10:48
분 류 느헤미야
첨부#1 2023년_느헤미야__제1강-1.hwp (90KB) (Down: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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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느헤미야 1강]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2023년 느헤미야 1강                                                        최동진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말씀/ 느헤미야 1장-3장
요절/ 느헤미야 1:5 “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느헤미야서는 에스라서에 이어 예루살렘 성벽 재건(1-7장)과 영적 부흥운동(8-13장)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10장과 느헤미야서1장 사이에는 13년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에스라의 개혁 이후 몇 번 성벽 재건 사업을 시도했지만 총독으로 세움 받은 자들은 사리사욕을 취하는 데에 급급하였고(5:15) 사마리아 등 다른 민족들의 방해가 극심하여 성벽은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왕이 예루살렘 성벽 공사 중지를 명령한 조서도 여전히 그 효력이 유효한 상태였습니다. 이때 바사 고위 공직자요 평신도였던 느헤미야가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고 귀환자들의 영적 갱신을 이끌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으며 어떻게 무너진 성읍을 다시 건축할 수 있었습니까? 이런 리더쉽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되돌아보고 회개함으로 무너진 하나님의 성벽을 다시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느헤미야의 기도 (1:1-11)
  1절을 보십시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느헤미야’는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포로 3세로 태어났습니다. 아닥사스다왕 제이십년은 BC 445년으로서 BC51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지 7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기슬르월’은 오늘날 11월이나 12월에 해당합니다. 느헤미야는 11절 말씀대로 술관원으로서 수산궁에 있었습니다. 수산궁은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로서 왕들이 겨울철에 머물던 곳이었습니다. 술관원은 왕의 술상에 오르는 술에 독이 있는지 여부를 살피는 사람으로서 왕의 특별한 신임을 받는 고관이 맡았습니다. 당시 왕들에 대한 독살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술관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는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고위공직자로서 페르시아제국의 영광을 직접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포로민의 아들로 태어나 페르시야 제국의 고위공직자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호의호식하며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 때 그의 형제들 중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의 동행과 함께 유다로부터 도착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으로서 이스라엘에게는 신앙과 삶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이방 땅에 살고 있을 때에도 그들의 마음은 항상 예루살렘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 재건을 위해 기도하며 이스라엘의 영광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예루살렘성은 BC586년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했습니다. 그러다가 BC 516년경에 예루살렘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이후 BC458년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 역사가 추진되다가 이방인들의 모함으로 아닥사스다 왕이 금지 명령을 내림으로 성벽재건역사는 중단되었습니다.(스4:23) 이때 이미 지어졌던 성벽은 다시 무너지고 성문들은 불탔으며 성전 주변에 사는 유다 동족들은 크게 능욕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짐으로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희망도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의 슬픔이 어떠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왕궁에 살면서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자리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겪는 어려움에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페르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예루살렘은 그에게 그저 먼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만 여겨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한다는 소식에 앉아서 울며 수일 동안 슬퍼하였습니다. 그의 슬픔은 단순히 자기 백성이 겪고 있는 환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가 훼파되고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환난 당하는 것으로 인해 그토록 슬퍼하였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관리였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더 강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고관으로서 누리는 현세적인 영광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을 더 사모하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절망과 슬픔을 딛고 일어나 하늘의 하나님께 나아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the great and awesome God)’이십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측근으로서 대제국을 다스리는 왕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시오,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으로서 주와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출애굽기 15장11절은 말합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awesome)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하나님은 어떤 점에서 크고 두려우신 분이십니까? 느헤미야는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합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지켜나가시는 하나님을 위대하고 두려우신 분으로 고백하고 그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는 먼저 예루살렘에서 당하고 있는 환난과 능욕의 원인을 하나님과의 언약을 깬 죄로 인한 문제로 보았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 뿐만 아니라 지금 억압 받는 상태에 있는 것도 단순히 불행하고 슬픈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백성들의 죄악을 심판하겠다고 하신 말씀의 성취로 인식하였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바벨론 포로기에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조상 잘못 만난 탓에 조상의 죄를 지고 이방 땅에서 태어난 피해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상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가 그랬던 것처럼(스9:6) 느헤미야도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했다고 고백하며 현재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자기들의 죄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자복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동시에 느헤미야는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회복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언약을 지키지 않아 심판을 받고 여러 나라로 흩어진 백성일지라도 돌이켜 하나님을 다시 찾으면 하나님도 그들을 다시 모으고 약속의 땅에 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신30:1-5) 여기서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는 말씀은 단순히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지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공동체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대로 이미 바벨론에서 돌아왔어도 여전히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었으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리라는 믿음과 회복에 대한 소망으로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그는 자신의 모든 일이 형통하여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6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한다고 한 것을 보면 느헤미야가 오랜 세월 동안 주의 백성을 위해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 사람들과 도성의 어려운 형편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자신이 나설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왕 앞에 나서서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자 할 때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현재 왕의 술관원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가를 받아 친히 자신이 예루살렘 성 중건역사를 주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섬기는 왕이 아닥사스다이고 에스라의 성벽 중건 사역을 중단시킨 장본인임을 생각할 때 왕의 허락을 받아내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하심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늘에 사무쳐 마침내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한 맺힌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함으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고 크고 두려우신 주님 앞에 나아가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회복의 역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II. 수치를 당하지 말자 (2:1-3:32)
  2장1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니산월은 오늘날 양력으로 3월에 해당합니다. 하나니가 느헤미야에게 나아온 때가 기슬르월(11~12월)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느헤미야는 무려 4개월 동안 앉아서 이 한 가지 기도제목을 붙들고 울며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습니다. 느헤미야는 평소대로 왕 앞에 포도주를 드렸습니다. 술 맡은 관원은 왕이 마시는 술에 독이 들어있는지 검사 하는 임무 뿐만 아니라 왕의 기분을 쾌활하게 해주는 동료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그의 얼굴에 수심이 없었는데 그날은 그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왕이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도 예루살렘과 그곳에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면 수심이 있었지만 그 날에는 더욱이 표정관리가 안되어 힘들게 보였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은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에 근심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얼굴에 수심이 있다는 것은 왕에게 악하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비쳐져서 직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곧 왕에게 할 말을 생각하면 크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실되고 솔직하게 대답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라고 함으로써 조상의 무덤을 돌봐야하는 느헤미야의 책임감을 왕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아닥사스다왕은 느헤미야의 말에서 무언가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음을 느끼고 뜻밖에도 부드러운 말로 물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4a)”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신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묵도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그의 요청은 왕의 조치에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드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왕은 느헤미야의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왕은 놀랍게도 느헤미야의 요청을 좋게 여겼습니다.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요청하는 말을 어떻게 좋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자기가 내린 조서에 반기를 드는 악한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왕은 좋게 여기고 이 일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며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여행기간까지 정해서 알렸습니다(6b) 5장14절에 보면 장장 12년을 요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느헤미야는 왕에게 추가로 두 가지를 더 요구하였습니다. 왕이 좋게 여긴다면,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지역 총독들에게 가져갈 왕의 조서와 삼림 감독 아삽에게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개인적으로 들어갈 집(총독 관저)을 위해 쓸 재목을 주도록 조서를 내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런 담대함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느헤미야는 지난 넉 달동안 기도하면서 새로운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느꼈을 때 왕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히 구하였습니다. 왕은 놀랍게도 느헤미야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이었다고 고백합니다.(8b) 느헤미야는 앞서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1:11)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왕의 마음도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의 희망사항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오랜 시간 기도하다 보면 그 일을 이루기 위한 방향과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지속적인 기도는 지도자를 준비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주야로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을 만한 믿음의 종으로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확신을 덧입고 이 시대의 죄 문제에 도전하게 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사흘 동안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3개월의 긴 여정으로 지친 심신을 회복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마음에 주신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밤에 몇 사람과 함께 비밀리에 시찰을 나갔습니다. 이는 느헤미야의 모든 활동을 대적자들이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스라가 주도했던 성벽 재건이 대적들의 방해로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느헤미야의 야간 시찰은 예루살렘 성벽의 남서쪽과 남동쪽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밤에 ‘골짜기 문(Vally Gate)’으로 나가서 ‘용정(Dragon Spring)’을 지나 ‘분문(Dung Gate)’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에 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샘문(Fountain Gate)’과 ‘왕의 못(King’s Spring)’에 이르렀고 더 이상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어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돌아왔습니다. 철저하게 파괴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그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시찰을 마친 느헤미야는 유다지도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목적에 대해 말하고 그들을 격려하였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느헤미야의 말의 핵심은 ‘수치를 당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황폐해진 것을 영적인 수치로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영적으로 세계의 중심지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전파되는 곳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 모든 사람이 말씀을 배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올 비전을 보았습니다.(사2:3) 또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습니다(사56:7) 그런데 이런 본래의 정체성과 기능을 상실하고 대적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수치심을 느낍니까? 에덴에서 행복하게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을 때 처음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해도 내 안에 믿음의 성벽이 무너진 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삶은 수치스러운 삶입니다. 목자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 가치관대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다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느헤미야가 유다 지도자들에게 어떻게 이런 도전을 할 수 있었습니까? 페르시아 왕궁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의 손길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거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입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왕이 그를 좋게 여기고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도 그에게 큰 확신을 주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연설은 지난 10여년 동안 성벽 건축의 동력을 상실하고 주저하며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던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위로와 도전이 되었습니다. 식어버린 그들의 마음에 열정의 불을 댕겼습니다. 그들은 “일어나 건축하자”하며 모두 힘을 내어 선한 일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신자들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어 수많은 조롱과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교회를 외면하고 기존에 있던 청년들마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선교사 파송이나 제자 양성의 열기도 많이 식었습니다. 과거에는 천사도 흠모하는 목자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을 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겼는데 요즈음에는 그런 마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한국 교회 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만 그런게 아니니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문제는 이런 수치스러운 현실에 수치심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 시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고 진실되게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원과 열정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있을 것을 확신하고 우리도 일어나 무너진 믿음의 성벽을 재건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 하겠지 하며 미룰 일이 아니라 바로 내가 일어나 건축해야 할 일임을 영접하고 마음을 정하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재건해야 할 믿음의 성벽은 무엇입니까? 혼합주의, 세속주의의 세력에서 믿음을 지킬 복음신앙, 창조신앙, 주권신앙의 성벽을 재건해야 합니다. 말씀공부가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이 되어 하나님의 캠퍼스 개척의 사명을 감당하며 자기만족,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성벽이 재건되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일이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아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에게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느헤미야와 유다 지도자들의 말을 듣고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이는 과거 아닥사스다 왕이 사마리아 관원들의 참소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복구사업을 중지시켰던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닥사스다왕이 새롭게 허락했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느헤미야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시리라고 확신있게 대답하였습니다. 성벽 건축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은 이 일에 참여하거나 간섭할 아무런 자격도 명분도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 일에는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만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벽 재건 역사에 쓰임 받는 것은 큰 은혜요 특권입니다.
  3장에서는 예루살렘 성벽 건축의 진행 방식과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성벽 건축은 성벽 북쪽 양문에서부터 시작되어 반시계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이 양문과 이 지점의 성벽을 건축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이 먼저 재건 역사에 앞장서서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6-8절까지 보면 옛문부터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건축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과 향품장사 하나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높은 수입을 얻으며 안락하고 좋은 환경 속에 살면서 노동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들도 기쁨으로 고된 사역에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예루살렘 성벽부터 화덕 망대까지(9-11) 담당한 사람 중에는 예루살렘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자기 대신 일할 종을 고용할 수도 있었지만 직접 자신의 손으로 수고하였습니다. 하루밉의 아들 여다야는 자기 집과 마주한 성벽을 중축하였습니다.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열심을 내어 감당했습니다. 그 다음은 화덕망대부터 골짜기 문까지(12,13)는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 뿐만아니라 딸까지 동원하여 참여하였습니다. 이는 여성들도 이 역사에 헌신적으로 동참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에 분문, 샘문, 다윗성에서 내려오는 층계, 그 이후부터 군기고 맞은 편까지(14-19)는 주로 다스리는 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성전 봉사로 바쁜 레위 사람도 성벽 재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6절의 느디님 사람은 외국인으로 성전에서 봉사한 사람들입니다. 외국인들까지 하나님을 섬기고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는 백성들의 호응이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성벽 건축 역사에 동참하였습니다. 3장 본문에는 ‘그 다음에’라는 표현이 31회 반복되고 있습니다. 성벽공사는 한사람 그 다음 사람, 또 그 다음 사람이 각자 중수한 부분을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로마서 12장 4,5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각자 자리에서 한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할 때 무너진 하나님의 성벽이 다시 든든히 세워지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신자들이 조롱당하는 현실 가운데 영적으로 무뎌져서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 채 자기 일에만 열심을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시대의 문제를 나의 죄로 여기고 크고 두려우신 주님께 나아가 애통하며 기도함으로 믿음의 성벽을 세우는 역사에 앞장서서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성벽재건은 어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한 사람, 그 다음 사람, 또 그 다음 사람이 각자 맡은 부분을 중수하는데 충성할 때 하나님의 성벽이 재건되는 것임을 볼 때 우리 각자가 맡은 부분에서 충성하여 하나님의 영적 성벽 재건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한 사람은 전체의 하나님 역사에 대표이며 주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몸의 유기체가 되어 하나님의 공동체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하게 되고 시대를 섬길 힘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각자 맡은 영역에서 한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충성함으로 캠퍼스에 무너진 성벽이 다시 세워져서 모든 수치를 씻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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