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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0-29 (일) 10:50
분 류 에스라
첨부#1 2023년_가을_에스라_제4강-1.hwp (127KB) (Down: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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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가을 에스라 4강]에스라의 결심
2023년 가을 에스라 4강                                                      이 종 하
에스라의 결심
말씀 / 에스라 7장, 8장
요절 / 에스라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오늘 말씀은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미래는 불확실하였고 백성들은 영적으로 정체된 상태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의 영적 회복을 위해 에스라 한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결심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잘 배우고 우리의 새로운 결심과 변화를 통하여 새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에스라의 결심

1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이 일 후’는 성전이 완공된 이후를 말합니다. 간단하게 적었지만 57년의 시간이 지난 시기로, 아닥사스다왕 통치 7년째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한 사람 에스라를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에스라’는 ‘아사랴’(여호와께서 도와주셨다)를 줄인 이름입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보내신 ‘도움’이었습니다. 먼저 그에 대한 족보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절 후반부에서 5절을 보십시오. 에스라는 광야 시대 초대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의 16대손이고(5), 다윗-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손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정통성 있는 제사장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제사를 주관하는 임무 외에 율법을 가르칠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를 볼 때 에스라는 자신의 계보를 통해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합법적이고 적절한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광야 공동체에 아론이 있었듯이, 현재 공동체에 에스라가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또한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 ‘익숙한’이란 ‘능통한’, ‘충분히 훈련받아 준비된’이라는 뜻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하고 가르치는 일을 충분히 훈련받아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학자’는 히브리어로 ‘소페르’인데, 본래 사전적 의미인 학문을 연구하는 자라기보다 각종 국가 업무를 담당하는 ‘서기관(scribe)’을 말합니다. 모든 정황을 고려할 때 그는 바사 제국에서 유대인 업무를 전담한 관리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에스라의 신분은 대제사장의 후손으로서 제사장인 동시에 바사 고위관리였습니다.

6절 전반부를 다시 보십시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아닥사스다왕 제 칠년 첫째 달 초하루(BC 458년 4월 8일)에 길을 떠나 다섯째 달 초하루(BC 458년 8월 4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에스라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다가 멸망한 후에 유다 사람들은 바벨론 제국의 여러 지역들에 흩어져 거주하였습니다. 당시 ‘바벨론' 인근의 평야지대인 닙불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에스라는 여기 출신으로 보입니다. 당시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은 100년 이상 지나자 바벨론에 완전히 적응하여 어떤 이들은 부유해졌고,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은 페르시아 궁정에서 높은 벼슬에 올랐습니다. 더 이상 다윗 왕국의 재건이 현실화될 수 없음을 깨닫자, 대부분 포로 당시 거주한 곳에 그대로 눌러 사는데 만족하였습니다. 에스라와 같이 올라온 사람들도 모두 바벨론에서 태어난 3, 4세들로, 사실상 바벨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상의 땅으로 이주한 것은, 이들에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분명한 믿음의 결단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에스라는 어떤 목적으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결심하였었더라’는 ‘마음을 다잡았다(set his heart)’는 말입니다. 그는 준비된 사람으로, 예루살렘에 오기 전에 이미 율법을 연구하고 영적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면, 그의 결심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연구하여

에스라는 율법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연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연구하다’는 ‘묻다, 찾다, 조사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율법에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계속 묻고 찾았습니다. 그의 찾는 방법은 토라, 즉 모세율법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으로 오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묻고 찾았을까요? 토라는 에스라 당시로부터 1000년 전에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라 때와 시대 상황이 다르고, 모압 평지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과, 바벨론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살다 돌아온 사람들은 처지도 달랐습니다. 1000년 전 모압 평지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지금 다윗 왕국이 무너지고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자신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듣고자 하였습니다. 왜 70년 바벨론 포로생활과 같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묻고자 하였습니다. 새로운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물음을 ‘모세의 율법’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시대에도 변함없이 율법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현재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연구하지 않으면 말씀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묻히고, 지식만 남게 될 것입니다. 지난 90년대가 다르고 현재 2023년이 다릅니다. 과거에 듣고 배운 말씀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에스라와 같이 끊임없이 말씀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준행하며

‘준행한다’는 것은 행동, 실천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율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쳐주는지 깨닫고 자신의 삶 속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진지하게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였습니다. 목자로서 백성들을 품고 섬기며 본을 보이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순종하여 체험한 믿음으로 백성들을 돕고, 영적 개혁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나중에 백성들의 이방인 통혼 문제가 드러났을 때 급하게 당사자들을 불러 감정적으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성전 앞에 나아가 엎드려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자복하며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많은 백성들이 그에게 모이고 크게 통곡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깨달았으면 순종하여 준행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내 속에 숨어있는, 합리화하고 있는 죄악과 우상, 물질주의와 인본주의를 회개하는 영적 개혁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공동체와 캠퍼스를 거룩하게 하는 개혁의 역사를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가르치기로

에스라의 최종 목표는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이 없고 말씀의 능력을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종교 혼합주의에 빠지고 혼혈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을 어렵게 완공한 후 환성을 질렀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가르칠 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영적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그는 이 가르치는 일을 결심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성경말씀은 교회 설교시간에나 듣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위안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었을 뿐 제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선생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에스라와 같은 결심으로 이 시대의 개혁을 위해 말씀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특히 미래 세대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은 말씀대로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각종 혼합주의로부터 구별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랍고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1절부터 26절까지 아닥사스다왕이 에스라에게 준 조서의 내용입니다. 귀환 허락(13,14), 성전 제사와 운영을 위한 국고 지원(15~23), 성전 사역자들에 대한 면세 조치(24), 그리고 에스라에 대한 사법권 부여(25,26)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귀환 허락

13절을 보십시오.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왕과 왕을 돕는 자문관들은 바사제국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에스라와 함께 가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것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허락한 것이었습니다. 또 자치를 허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통제된 고대 사회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의 배경에 당시 바사는 헬라와의 싸움에서 연속적으로 지고 있었고, 애굽의 반란이 시작된 때였습니다. 예루살렘 지역은 애굽과 연접해있는 소위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므로 이 지역의 주민들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제국의 이익에 필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에스라에게 임무를 맡기는데 하나님의 율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였습니다. 사실 이방인인 이들이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이전 에스라의 요청 문서나 또는 다른 유다사람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들의 본심은 예루살렘 백성을 살펴보아 문제가 있으면 보고하고 공동체를 잘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일을 영적인 눈으로 보면 다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127개 속주를 다스리는 대제국의 왕이, 망하여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미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특전을 베풀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을 주시고 이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 이스라엘의 귀환을 허락하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 성전 제사와 운영을 위한 지원

왕과 자문관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성심으로’ 은금을 드렸습니다. ‘성심으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라는 뜻입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의미를 가진 단어가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숨은 목적이 정치적이었지만 그들은 억지로 마지못해서 예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하나님께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주민에게서 받은 은과 금,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이 성전을 위해 바친 예물도 가져가도록 하였습니다. 그 돈으로 수소와 숫양과 어린 양 그리고 소제와 전제물을 사서 예루살렘 성전 제단 위에 바치도록 합니다. 또 성전 제사에 필요한 그릇도 내어 주었습니다.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현지 궁중창고에서 받아 가져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아닥사스다왕은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신속히 시행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은 백 달란트(약 3.4톤), 밀 백 고르(약 23,000리터), 포도주 백 밧(약 2,300리터), 기름 백 밧(약 2,300리터)까지 그리고 소금은 정량 없이 제공하도록 합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제국 왕실에 매년 지불하는 납세액이 350달란트였다고 하는데, 이 금액의 30%인, 약 100달란트에 해당하는 예물과 물품을, 에스라와, 그리고 그와 함께 귀환하는 백성들에게 주고자 하였습니다. 왕의 파격적인 지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 즉, 제사장,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 느디님 사람에게서 어떤 세금도 거두지 말도록 합니다. 또 에스라로 하여금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을 재판관과 법관으로 뽑아 재판을 담당하게 하고, 율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율법을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조서의 명령을 준행하지 않으면 가혹한 벌을 내릴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면 아닥사스다왕은 왜 이렇게까지 한 것입니까? 단순히 앞에서 말한 정치적인 이유로는 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주목해서 볼 것은 조서 내용에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성심으로 은금을 드리게 하고 있고, 제사 제물과 방식, 성전에서 일하는 자, 소요 물품 등을 적고 있습니다. 심지어 율법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다 출신 관리로부터 이스라엘 제사에 대해 도움을 받았을 수 있지만,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보호하심을 받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세속사에서 그의 부친 아하수에로 왕은 측근에게 시해를 당하였고, 당시 여러 차례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겉으로는 제국의 왕이었지만 내부와 외부의 적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조부 다리오 왕 때 다니엘의 사자굴 사건, 부친 아하수에로 왕 때 부림절 사건 등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백성을 보호하신 것을 잘 알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노예로 끌려와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이 유별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께 자신과 왕자들의 안위를 구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에스라는 이 일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27,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왕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으며,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주셨다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방 왕의 마음까지도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상황과 형편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속사의 관점에서 보면 아닥사스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서를 내린 것 같지만, 사실은 절대 주권자, 섭리의 하나님이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개혁하기에 적합하도록 이방 왕을 사용하시고, 모든 환경을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제 2장, 하나님의 선한 손

8장은 에스라의 귀환을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와 함께 올라온 사람들은, 제사장 비느하스와 게르솜 두 가문(2a), 다윗 계열의 왕족(2b), 그리고 일반인(3-14) 등이었습니다. 귀국한 사람들의 숫자는 남자 1513명, 여자와 어린 아이까지 합하면 약 5천 명쯤 되었습니다. 이는 1차로 귀환했던 42,360명보다 훨씬 적은 수입니다. 에스라는 출발 장소를 아하와 강가로 정하고 귀환자를 불러 모아 삼 일 동안 진을 치고 최종점검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16~20절을 보십시오. 에스라는 모든 지도자와 학자 2명을 당시 성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곳 족장 잇도의 도움으로 레위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레위 사람 38명이 참여하게 되고, 이들을 도울 느디님 사람 220명이 추가되었습니다. 원래 영적 의미가 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출발하고자 하였으나 이 일로 인해 10일이나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에스라가 이렇게까지 레위 사람들을 찾는 이유는 무엇입니가? 성전에서 필요한 노동력 때문입니까?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운반해야할 성전 예물 때문입니까? 물론 그런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레위 사람의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신 33:9). 다윗 시대 3만 8천 명의 레위 사람 중 6천 명이 율법을 가르치고 재판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대상 23:4). 느헤미야 8장에서도 레위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낭독된 율법을 일반 백성들에게 아람어로 풀어서 깨닫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느 8:40). 에스라는 누구보다 율법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예루살렘에 가는 목적도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데리고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레위 사람들은 왜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사사기 19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유랑하는 레위 사람이 나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던 레위 사람들도 이와 유사했을 것입니다. 아마 다른 직업으로 전환한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업을 접고 선뜻 나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의무감 때문에 광야길 1500km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38명이 나섰습니다. 1차 귀환 때 341명보다는 적은 소수였지만 이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에스라의 영적 개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이를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에스라는 예루살렘까지 평탄한 길을 위해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바사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사람이었습니다(7:6). 또 귀환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왕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전에 왕에게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에스라가 바벨론에 살면서 율법을 연구하며 찾고 만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가는 길 동안 도적을 막고 일행을 보호할 보병과 마병보다 더 큰 방패가 되시고, 보호자요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4~30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을 위해 드린 예물이 나옵니다. 은 650달란트(약 22톤), 금 100달란트(약 3.4톤), 모두 1,000다릭 무게의 금잔 20개(약 168kg), 금 같이 빛나는 놋 그릇 2개 등인데, 에스라는 일일이 정확하게 무게를 달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제사장들 앞에서 무게를 달기까지 삼가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라 일행이 이 예물들을 가지고 1500km를 갈 때 약탈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군대의 보호 없이 간다는 건 너무 무모하고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끝까지 하나님의 손을 믿었습니다. 실로, 살아 있는 위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장차 예루살렘에서 율법에 기초한 영적 공동체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31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에스라는 그 어려운 길을 기적같이 안전하게 지난 후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셨다고 간증합니다. 에스라는 율법의 말씀을 생생하게 체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감격과 확신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번제로 수송아지 열두 마리, 숫양 아흔여섯 마리, 어린 양 일흔일곱 마리, 그리고 속죄제로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대표하여 하나님께 드린 제사였습니다. 이로써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요즘 환자가 늘어 저는 진료 보는 날은 점심을 거의 굶어야 했습니다. 끝날 시간이 되면 배는 고프고 쉬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자로서 허튼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0월 둘째 주 토요일 저녁 집으로 운전하고 가면서 머릿속은 메시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저의 내면에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황급히 폰을 켜서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녹음하였습니다.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가져야 우리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세속사 대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고,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적인 눈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을 많이 보고 생각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제가 복잡한 국내 현실과 들려오는 전쟁 소식에 매여 있지 않고,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이 이루고 계시고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에스라와 같이 성경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는 일에 결심하고 구체적으로 도전하도록 하십니다. 제가 상황 탓, 건강 탓을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선하신 손으로 이루고 계신 캠퍼스미션에 쓰임 받는 큰 영광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삶의 개혁은 어느 한 시점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결심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신앙생활이 어떤 결심이 없이 흘러간다면 체험도 없고 열매도 없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 다니엘의 인생, 사도 베드로의 인생, 사도 바울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결심을 통해 위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에스라 한 사람의, 말씀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백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결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1968년부터 1977년 미국선교사로 나가시던 때까지 9년 동안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 성경 연구와 일용할 양식 집필에 절대적으로 헌신하셨습니다. 당시 광고만 들어도 그분의 가슴에 늘 불이 붙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에스라는 1차 포로귀환부터 약 60년이 지난 시점에 결심하였습니다. 우리 모임도 이제 60여 년이 지났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합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에게, 우리 공동체에, 캠퍼스에 영적 개혁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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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3강]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관리자 2023-10-22 253
19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2강]홀로 건축하리라 관리자 2023-10-15 252
1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3강]로마로 가는 길에서 관리자 2023-08-27 243
17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4강]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관리자 2023-12-10 238
16 룻기 [2023년 룻기 제1강]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관리자 2023-09-10 237
15 룻기 [2023년 룻기 제4강]생명의 회복자 관리자 2023-10-01 232
1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4강]로마의 셋집에서 휴화산 2023-09-03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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