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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0-01 (일) 10:51
분 류 룻기
첨부#1 2023년_룻기_제4강-1.hwp (125KB) (Down: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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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룻기 제4강]생명의 회복자
2023년 룻기 제4강                                                 박 기 호      
생명의 회복자
말씀/룻기 4:1-22
요절/룻기 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오늘은 룻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난 말씀을 통하여, 나오미는 흉년을 피해서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베들레헴의 모든 땅을 팔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모압 땅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나고 보니, 재산은 다 없어졌고, 남편이 죽고, 그 후에 두 아들도 죽고, 나오미와 그 며느리 룻만 남게 됩니다. 나오미와 룻에게 이제 남은 것은 깊은 절망과 마음의 상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절망적이고 낙심되는 상황에서 나오미와 룻은 어떻게 했습니까? 나오미와 룻은 이방 땅을 떠나서, 고향 땅 베들레헴에 다시 돌아옵니다. 이 시간, 이방 땅에서 베들레헴에 다시 돌아온 나오미와 룻,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준비하신 것이 무엇이며, 그 은혜와 섭리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적극적으로 기업을 무르고자 하는 보아스(1~12)
 먼저 1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 앉아 있을 때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갑니다. 우리는 룻기 3강을 통하여 ‘기업 무를 자’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기업 무를 자’는 친족이 가난하여 땅을 팔았을 때, 그 땅을 적절한 값을 치르고 다시 사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형제나 친족이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 그 형제의 과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주는 사람입니다. 나오미와 룻은 남편과 재산을 잃고 심한 곤궁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 무를 자’가 나타나 그 의무를 적극적으로 행한다면, 모든 곤궁과 어려움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나오미에게는 두 명의 ‘기업 무를 자’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기업 무를 자’는 오늘 1절에 나오는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아무개’이고, 두 번째 ‘기업 무를 자’는 ‘보아스’였습니다.
 2절을 보시면, 보아스는 증인으로 장로 10명을 초대하고, 첫 번째 기업 무를 자, 아무개와 함께 공식적으로 ‘기업 무를 자’를 결정하고자 합니다. 보아스는 아무개에게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다시 사서, 나오미의 기업을 물어줄 의향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이에 아무개는 엘리멜렉의 땅을 다시 사서,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가 되겠다고 쾌히 승낙합니다. 이 대답에 보아스는 이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상황임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5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보아스는 아무개에게 나오미의 기업만 무르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죽은 아들의 며느리, 이방 모압 여인, 룻의 기업도 물어야 함을 설명하여 줍니다.
 이 말을 들은 아무개는 깜짝 놀랍니다. “나오미도 부담스러운데, 모압 여인 룻은 또 모야? 보아스! 이 기업 니가 물어. 나 못해!”하고 기업 무르기를 포기해 버립니다. 아마도 아무개는 본인의 체면과 주변 이목을 생각할 때,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의 의무까지는 감당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이랑 아무 관계도 없는 이방 모압 여인, 룻까지는 그 값을 치르고 기업을 무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본문 6절 보시면, 다른 이유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6절에서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기업을 무르지 못하겠노라”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가 되는 것은 나오미가 자식 없이 죽으면 나오미의 땅도 취할 수 있는 어찌 보면 경제적 이득이 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에서 토지는 먼저 자녀에게 상속되었고, 자녀가 없으면 형제에게, 그 형제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상속되게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룻이 자녀를 낳는다면, 그 토지는 룻의 자녀에게 모두 넘어갈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기업 무를 자’가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에게는 아무 이득이 없는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기업 무를 자는 자신이 기업 무를 의사가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그의 신을 벗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신을 벗는 것은 계약을 확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오미와 룻은 큰 아픔을 안고 고향 땅에 돌아왔지만,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부터도 거절당하는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과 상처조차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은혜와 섭리가 있습니다. 9절을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이어서 10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아무개는 나오미와 룻의 기업에 대한 값을 치르기를 거절했지만, 보아스는 나오미뿐 아니라, 룻의 기업도 적극적으로 값을 치르고 물어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본인 기업에 아무 이득이 없었지만,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기꺼이 행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두 여인은 더 이상 가난하고 슬픈 과부가 아니고, 이제 이스라엘에서 축복받는 어머니와 며느리가 됩니다. 11절을 보시면, 사람들은 나오미와 룻이 라헬과 레아와 같이 많은 축복을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라헬과 레아처럼 많은 믿음의 후손들이 그 태에서 이어지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의 ‘기업 무를 자’로 적극적으로 그 값을 치르고 두 인생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허물 많은 우리를 위하여 값을 치르고, 기업을 물어줄 이는 누구입니까? 처음에 우리는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파산자가 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내 몸과 마음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 불쌍한 신세로 전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허락하신 세상을 다스릴 권리가 상실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을 자격도 상실되었습니다. 뭘 받기는커녕 오히려 지옥 형벌이 예정된 자였습니다. 누구도 이런 우리 죄를 대신 감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는 아무 이득도 없고 손해만 보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우리 죄를 감당해 줄 만큼 우리를 사랑하는 이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값을 치를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값을 치를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분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세상 어떤 것도 우리 죄값을 치르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거절당하거나, 상처받은 경험이 있으신지요? 본문에 나온 아무개처럼, 누구든지 우리를 거절하고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부담스럽다고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부담스러운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피로 비싼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십자가 피로 그 값을 충분히 치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기업 무를 자’가 되십니다. 이것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절망의 구렁텅이 있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은 그의 피로 그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을 치른 우리의 육체는 이제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는 과거의 죄악된 내가 아니라, 이제 예수님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우리는 이제 매우 귀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된 내 육체를 이제 아무렇게나 사용하면 안 됩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고, 캠퍼스 역사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가치 있게 사용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피로 우리를 사시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 지위를 회복하게 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2. 내 인생의 회복자 하나님(13~22)
 이처럼 보아스는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는 나오미와 룻을 적극적으로 값을 치르고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13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여기서 룻이 아들을 낳았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룻이 기구한 여인이 된 이유는 그녀가 낯선 이방 땅에 와서 외롭게 살기 때문입니까? 빈털터리 거지가 되어 이삭을 주워 먹으며 살기 때문입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을 잃었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자녀는 기쁨의 근원, 복의 근원이며, 생명이 이어지는 원리였습니다. 대를 잇지 못한다면 생명이 이어질 수 없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가장 큰 아픔과 괴로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날마다 한숨짓고 괴로워하며 슬픔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없어서, 아무 낙이 없고, 미래도 소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룻과 나오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풍족한 곡식이 아닙니다. 멋진 큰 집도 아니고, 잘생긴 젊은 남편도 아닙니다. 룻과 나오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대를 이을 자녀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죠? 그래서,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죠?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지막에 준비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가장 소망하고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질 수 없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가장 아픈 부분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지치게 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이 평생 간절히 원하고 소망했지만 가질 수 없어서 고통스러워했던 바로 그 자녀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마지막에 준비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누군가 나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괴로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내 인생 문제를 아시고,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이십니다. 이 능력자 하나님이 나오미와 룻의 인생에 적극적 개입하셨을 때, 평생 그들을 옭아맨 질긴 족쇄와 무거운 멍에가 벗겨질 수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의 인생에 절망과 사망에서 희망과 생명으로 나아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14절을 보시면, 이 아들은 나오미와 룻뿐만 아니라, 가족과 그 이웃에게도 큰 기쁨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웃들은 나오미에게 하나님께서 나오미의 괴로움을 아시고, 기업 무를 자를 허락하신 은혜를 함께 기뻐하며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나오미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습니까? 과거 나오미는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15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아들이 나오미에게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다 같이 15절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이 아들은 보아스와 룻이 부부의 연을 맺어 생긴 단순한 생물학적 자녀 이상이었습니다. 이 아들은 나오미 집안의 기업을 잇고, 생명의 씨앗을 연결할 자입니다. 그리고, 이 아들의 후손을 통하여 다윗과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생명의 뿌리입니다. 이 아들로 말미암아 죽은 자와 같던 나오미와 룻의 인생에 다시 생명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 아들로 말미암아 나오미의 노년은 희망과 소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15절 후반부를 보시겠습니다. 또, 이 아들은 나오미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 룻이 낳은 아들입니다. 이 며느리, 룻이 얼마나 귀한 며느리입니까? 룻에게는 고향 땅에 남아서 젊은 모압 남자와 재혼하는 쉽고 편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방 땅에서 궁핍한 과부로 남아, 이삭을 주우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인생의 넓은 길을 버리고, 험난한 좁은 길을 선택한 귀한 며느리, 룻입니다. 이 아들은 그냥 주어진 아이가 아닙니다. 늙고 힘없는 나오미를 끝까지 돌본 룻의 위대한 섬김과 룻을 거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값을 치른 보아스의 희생이 함께 만들어 낸 귀한 열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맞아떨어지도록 미리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나오미와 룻이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은혜가 찾아왔습니까? 이 축복은 나오미와 룻이 절망과 낙심에도 하나님을 소망하며 베들레헴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나오미와 룻이 이방 땅에 머물러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이방 땅으로 온 것을 평생 후회하며, 현재의 초라한 모습을 불평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 없는 미래를 염려하며 마치 죽은 자와 같은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또, 나오미와 룻은 보아스에게 나아가 적극적으로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하여 준비하신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나아가야 합니까? 우리의 ‘기업 무를 자’는 예수닙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큰 은혜와 섭리를 이미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면, 그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동문조차도 다가가지 않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서는 내 죄값을 대신 치르신 예수님을 통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절망과 낙심이 있더라도, 원망과 한탄 가운데 살 이유가 없습니다. 고난은 징벌이 아닙니다. 고난은 예수님께 나아갈 기회입니다.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내 생명의 회복자,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이 생명이 넘치는 삶입니다. 이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나아감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섭리를 온전히 누리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부터 일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많은 빚과 어머니, 동생의 심한 우울증은 평생 저를 옭아매는 족쇄와 같았습니다. 제 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평화가 없었습니다. 본과 4학년을 마치고 센터를 떠나서 자유롭게 살아보고자, 이방 모압 땅과 같은 아산병원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생활이 자유롭고,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뭔가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에서 즐기고 세상 자매들을 만나도 큰 위로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세상 자매들은, 제가 우리 집에 빚이 많고, 아버지, 동생을 부양하여야 하며, 질병 가운데 있는 가족들을 돌보아야 함을 고백하면, 깜짝 놀라 모두 다 저를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희생하여서 제 인생의 짐을 같이 지어줄 사람은 없었고, 이것이 제 마음에 상처가 되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과 전임의가 끝나갈 30대 후반에, 이러한 저를 고향 땅 베들레헴과 같은 센터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딱 맞는 귀한 동역자를 허락하시고, 저희 가정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동역자는 제가 앞으로 같이 져야 할 인생의 무거운 짐에 대하여 털어놨을 때조차, 그건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함께 동역하며, 부모님과 동생을 돌보고, 가족을 부양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동생은 마음에 상처가 많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사람입니다. 긴 섬김과 인내의 시간 동안 어머니와 동생은 마음이 열렸고, 우울증에서 많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심한 우울증으로 5년 이상 집에서 밖으로 나가지도 않던 동생이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저희 집으로 출퇴근하면서 저희 가정을 도와주고, 파킨슨 환자요, 암 환자인 아버지도 함께 돌보는 귀한 동역자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격 없고 능력 없는 저를 틈틈이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결혼 13년을 돌아볼 때, 저와 동역자에게는 저희 가족들로 인하여 여러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땐 어떻게 살았나 싶도록 진저리치게 힘들게 느껴졌던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웠던 매 순간,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항상 자기를 의지하던 죄인이 최종적으로 의지하였던 것은 이 예수님이었습니다. 매번 바닥까지 절망하다가, 결국 이 예수님을 돌아보고, 그로 말미암아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회복자입니다. 하나님은 제 인생의 고난을 통하여, 제가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돕고 계십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 어떤 것보다도 단단하고 의지할 만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이 예수님은 내 인생의 진정한 회복자가 되십니다. 인생 가운데 여러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저에게 가장 좋은 길을 준비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제가 남은 인생을 통하여,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하여 기초하여, 캠퍼스 영혼을 살리고 먹이는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값을 치르시고 나오미와 룻을 구원하셨습니다. 실패한 인생 같았던 나오미와 룻의 인생을 극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평생 그토록 원했던 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와 룻에게 보아스를 보내 주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내 인생의 회복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무거운 인생의 짐이 있더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기회를 통하여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돕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귀한 섭리와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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