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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4-14 (일) 10:53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마가복음_제5강-1.hwp (100KB) (D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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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5강]열둘을 세우셨으니
2024년 마가복음 제5강                                                         오정훈
열둘을 세우셨으니
말씀/ 마가복음 3:7-35
요절/ 마가복음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흔히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구름처럼 따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보잘 것 없는 열둘을 택하사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새 이스라엘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부족하고 자격 없는 저희를 부르사 함께 하게 하시므로 새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이 시간 열 둘을 세우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고 예수님과 함께 하므로 예수님을 닮은 제자요 주님의 참된 가족들로 굳게 설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저들은 급기야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모의를 아시고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셨습니다(7). 8절을 보십시오. 열광하는 큰 무리가 갈릴리를 비롯하여 유대와 예루살렘, 유대 남쪽 이두매, 유대 동쪽 요단 강 건너편, 갈릴리 북서쪽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나왔습니다. 이방인들까지 포함된 엄청난 무리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신 큰 일, 곧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시며 한 손 마른 자를 낫게 하신 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려고 에워싸밀고 난리를 쳤습니다. ‘에워싸 밀다’는 말은 '에피핍테인'으로 ‘마구 밀쳐대다’, '덮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얼마나 밀어댔는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작은 배를 준비시켜야할 정도였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더러운 귀신들도 예수님을 볼 때마다 그 앞에 쓰러지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부르짖었습니다. 이런 말들은 예수님의 인기를 높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도록 반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그런 식으로 자신이 누구든지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는 삶을 통해 또 그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박해가 최고조에 이르고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은 열광적인 팬덤을 뒤로 하시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은 자신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의 부르심은 예수님의 주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나의 필요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또 누가 하라고 시켜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임이나 조직의 필요에 의해<와! 저렇게 재미있고 말 잘하고 붙임성 좋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필요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함바나바 목자님 재미있잖아요? 재미있어서 예수님이 부르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본인이 허리가 아파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씀공부하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됐다고 하니까 약간 운명적으로 들리네요. 어쨌든> 예수님이 먼저 택하시고 불러주셔야 합니다. 부르심은 오로지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원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미 그 사람의 장점이나 단점, 연약함을 알고도 원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르고 뽑았으면 나중에 실망하고 취소할 수 있는데 이미 알고도 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나 실패가 없습니다(롬11:29). 한마디로 부르심은 은혜입니다.  
14,1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은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열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즉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세우셨다’는 말은 ‘에포이에센(ἐποίησεν)’으로, 창세기에서 ‘창조하다’는 단어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열둘을 부르신 사건은 새 이스라엘의 창조이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열 둘을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무리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에게 왔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떠납니다. <뜨내기> 그런 사람들과 달리 열둘은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현장이나 혹은 쉬거나 주무실 때에도 24시간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삶 속에서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사역을 통해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목자의 심정과 열정을 배우고, 예수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인교육 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째로 자기 마음의 새 가죽부대에 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제자양성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첫째가는 덕목입니다. 복음역사를 섬기다 보면 양들이나 역사를 바라보기 쉽습니다. 일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르신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므로 예수님을 배우고 닮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현재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고자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세상과 함께 하고 인터넷 유투브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바쁘다는 생각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 예수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늘 마음으로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뜻을 섬기는 것이며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닮은 사도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보내사 전도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도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1:15). 앞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세상에 오신 목적이 전도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1:38).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과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원하실 때에도 전도를 우선 순위에 놓으시고 이것을 놓치지 않고자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사역의 핵심은 전도로서 이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선포하는 말씀역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사람의 심령와 폐부를 찔러 쪼갤 수 있는 깊이 있는 말씀의 종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요즘 창세기 특공대를 마친 학생 동역자들이 전도에 힘쓰고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이 종들을 통해 캠퍼스 가운데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나오는 역사가 충만케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로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복음을 전할 때 귀신들이 강하게 저항합니다. 결국 귀신(악한 영)과의 싸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많은 지식과 세속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귀신 앞에서 무능하였습니다. 귀신을 제압하는 영적인 권능은 오로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제자들도 무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9:18). 이 시대 귀신, 악한 영은 쾌락(술 마약 게임) 물질주의를 통해 역사하고 있습니다. 무기력 우울 불안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런 악한 영, 어둠의 세력과 싸움을 감당할 수 있는 권능을 덧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돕지 못해 쩔쩔매는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9:28)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귀신과의 싸움은 기도의 싸움이요 믿음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 받은 자들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때 악한 영을 분별하고 싸울 힘을 위로부터 덧입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 의식 가운데 기도에 힘쓰므로 어둠의 세력과 싸우고 이로부터 영혼을 구원하는 역사에 쓰임받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세우신 열둘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16-19절을 보십시오.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시몬' 베드로는 큰 소리나 칠 줄 알지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만큼 연약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이 임하였을 때 한 번의 설교로 3천여 명을 개종하게 하고(행 2:41),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므로 예수님의 소망대로 초대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야고보, 요한은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더하셨습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을 하늘의 불로 멸하려 했던 (눅 9:54) 그들의 과격하고 성급한 성격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안드레'는 '남자'라는 의미로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즉시 자기 형제 베드로를 전도할 만큼 단순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성경에 기초해 메시야를 증거할 만큼 성경에 해박한 사람이었으며 바돌로매는 톨마이(Tolmai)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나다나엘을 가리킵니다. 마태는 임마누엘의 사랑을 체험한 세리 레위이며 도마는 히브리어로는 '톰', 헬라어로는 '디두모'로 ‘쌍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여 못 자국난 손과 창자국난 허리를 만져봐야 믿겠다고 한 '의심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비교할 때 체구가 작거나, 그보다 젊고 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라 보입니다. 그의 아버지 알패오는 글로바와 동일 인물로 생각되어집니다. 다대오는 ’사랑스러운 아들‘이라는 뜻으로 누가복음에 나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를 가리킵니다.(눅 6:16). 가나안인 시몬은 '열심당원'이란 뜻의 '가나안인'의 아람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로마의 팔레스틴 통치를 극렬하게 반대하던 열심당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루살렘 서편에 있는 작은 마을 '케리오트 사람'으로 물욕에 사로잡혀 스승을 팔아먹는 행위를 함으로써 배반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상의 열둘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고 어부들이 많고 심지어 배반할 자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정말 예수님이 원하신 자들이었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새로운 조직이나 정권을 꾸릴 때는 가까운 친인척이나 똑똑하고 능력있는 인재들을 뽑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원하신 자들 속에는 친인척도 없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 사람들을 원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이 예수님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으려는 ‘새 가죽부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에게 나왔다가 더 이상 떡을 얻을 수 없게 되자 다 떠나버렸지만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6:68) 하며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서  소수 제자양성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제자를 키우는데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은 에너지와 힘이 요구되어 집니다. <우리나라 공군에서 파일럿 한명을 양성하는데 4년이 넘는 시간과 2억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이처럼 소수정예의 제자를 키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중집회를 통해 사람들을 키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함께 하며 배우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무리 신앙 속에 떠나버리게 되고 맙니다. 힘들어도 소수정예의 제자를 세우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열광적으로 따르는 ‘큰 무리’ 를 세력화하지 않으시고 대신 열둘을 택하여 키우시는 데 집중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로 택함 받았습니다. 우리가 나 한 사람을 부르신 주님의 소망을 붙들고 주님과 함께 하며 주님을 본받고 배우므로 주님을 닮은 주의 제자들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20-22절에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친족들과 서기관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잠깐 집에 들어가셔서 식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무리가 다시 모여들어 식사할 겨를도 없게 되었습니다. 보통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도 먹지 못하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병자들 입장에서는 밥도 먹지 못하시고 자신들을 돌보시는 예수님이야말로 참 목자요 참된 의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21절입니다.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붙잡으러’ 왔다. ‘붙잡다’(κρατέω,크라테오)는 말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대적들의 행동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14:46). 이것은 친족들의 태도가 대적자들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패 들고 멍에를 만들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밥도 제대로 안먹고 다른 일에 미쳐있으니 정말 미친게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가족도 돌아보지 않고 주와 복음역사에 헌신하면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뭐하는 짓이냐’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합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힘이 빠지고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회의가 들게 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믿고 따르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게 정상입니다. 세상에서도 뭔가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은 뭔가에 미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2:17) 말씀처럼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예수님도 하나님을 향해 미쳐있으니 그들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닙니다.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5:13) 사람들은 게임에 미치고 운동에 미치고 돈에 미쳐서 살아갑니다. 어차피 미쳐서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왕 미치는 거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미치고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데 미쳐서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들로 인정받는 종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혔다고 하고, 귀신의 왕의 도움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습니다. ‘바알세불’은 블레셋의 신 가운데 하나인 ‘바알 저붑’(파리들의 주인)을 가리키는 헬라어 음역으로 가나안 신의 명칭을 경멸적으로 변형시킨 굉장히 무시하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귀신의 왕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예수님의 사역을 아예 귀신의 사역으로 규정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상식적인 논리에 기초해서 대응하십니다. 23-26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한 나라든 가정이든 스스로 분쟁하면 콩가루가 되어 스스로 설 수 없고 망하게 되고 맙니다. 사탄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 분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그들의 억지 주장일 뿐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나는 역사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27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우주적인 통치체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더 강한 자’로 오신 예수님이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하고, 그의 소유를 빼앗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강한 자로 와서 허무와 불신 어둠과 죽음 권세로 인간을 지배하며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강한 자’ 예수님의 오심으로 사탄의 통치가 종식되고 예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성령의 역사인데 이를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28-30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예수님은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모든 잘못된 행위를 가리키고 ‘모든 모독하는 일’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욕설적인 말', '신성 모독' 하는 모든 말을 가리킵니다. 마 12:32에 의하면 인자, 곧 성자 예수님에 대해 말로 거역하는 죄까지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상에서 볼 때 자비로우신 하나님에 의하여 용서받지 못할 죄가 거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각종 치유 사역과 귀신을 내쫓는 사역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탄의 왕국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침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역사를 보는 자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성령의 역사를 보고도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비난하였습니다. 실로 이는 성령을 모독한 것으로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무서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더 강한 자’로 오셔서 ‘강한 자’ 사단을 결박하고 사로잡힌 영혼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거나 거역하지 않고 영접하고 회개하므로 그의 다스림 받는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친족들이 붙들어 오려고 해도 안되자 이번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그 동생들이 직접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온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밖에 서 있는 가족들과 예수님을 둘러 앉아있는 무리들이 대조되어 나옵니다. 이를 통해 누가 예수님의 진정한 가족인지 암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이 질문은 가족들이 들으면 <뭐라고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이냐고 어디서 애비 애미도 못 알아보고>굉장히 섭섭해하고 갈등을 불러일으킬만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는 다분히 예수님의 의도가 담긴 말씀입니다. 34,3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인간관계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계가 가족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형제, 자매, 어머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영적 가족관입니다. 지금 피를 나눈 가족을 바깥에 두시고 이 말씀을 하신데 이는 육신의 가족이 다 필요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 영적 혈연으로 맺혀진 가족이 중요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 주님을 배우고 따르기 위해 이런 영적 가족 중심의 삶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다보면 육신의 가족에게 소홀해져 내가 불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주도 고씨 집안 장손인 고영훈 목자님은 이 문제로 오랫동안 하나님의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영훈 목자님이 정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을 때 주안에서 많은 영적 가족을 얻었을 뿐 아니라 또 육신의 가족들과도 새로운 관계성 곧 하나님의 종이요 목자로서 인정받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셨습니다. 첫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가족을 버렸는데(1:18-20) 제자도에서 버려야 할 것도 가족이고, 다시 얻어야 하는 것도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나중에 성령을 받고서야 진정한 예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행1:14) 한 대기업 희장은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생활은 혈통에 기초한 가족 개념을 버려고 새로운 영적 가족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고 육신의 기족과도 제대로 된 관계를 정립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중심의 가족관을 확립하므로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며 배우는 주의 제자들이요 육신의 가족들에게도 인정받는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학생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저희 학년에는 의대,치대,한의대,약대,고대,광운대 12명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전부 다 대단하지도 특별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저는 까칠하고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러번 힘들어져 소망이 없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새벽까지 소감발표하며 사모님은 조시면서도 저희들의 죄문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책망하시므로 예수님을 배우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런 주의 종들의 섬김으로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배울 수 있었고 한 사람을 섬기는 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와 복음역사에 헌신할 때 어머니로부터 ‘미쳐도 보통 미친게 아니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매일 새벽을 깨워 기도할 때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시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든 형제들이 막내인 저에게 의논하는 목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제가 원한 것도 아니고 제가 능력 있어서도 된 것이 아닌데 오직 주님의 원하심으로 주님을 따르며 본받고 배우므로 영향력을 끼치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립니다. 제가 하나님의 소망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하기에 힘쓰므로 예수님을 더 깊이 배우고 예수님을 닮은 제자를 세우는 역사에 계속해서 쓰임받는 종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지금은 복음에 대한 저항과 무관심이 커져가는 시대입니다. 그럴수록 예수님을 닮은 소수의 제자들, 가장 친밀하고 끈끈한 가족관조차 새롭게 된 소수의 제자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려운 시대에 복음역사를 섬기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제자요 그런 제자들을 세우는 은혜의 사명에 충성하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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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시편 [2023년 추수감사절]반드시 기쁨으로 돌아오리로다 관리자 2023-11-19 434
32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3강]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관리자 2023-10-22 419
31 야고보서 [2024년 야고보서 제1강]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관리자 2024-01-21 418
30 룻기 [2023년 룻기 제1강]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관리자 2023-09-10 416
29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9강]둘씩 둘씩 보내시며 관리자 2024-05-12 410
28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1강]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관리자 2023-10-09 405
2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3강]로마로 가는 길에서 관리자 2023-08-27 405
26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3강]온전한 사람이 되어라.. 관리자 2024-02-04 401
25 룻기 [2023년 룻기 제4강]생명의 회복자 관리자 2023-10-01 398
24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관리자 2024-02-18 393
23 디도서 [2024년 디도서 제1강]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책망하게 하라 관리자 2024-02-25 385
2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3강]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24-03-24 382
21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관리자 2024-02-11 380
20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2강]참된 믿음 관리자 2024-01-28 363
19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1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24-05-26 361
1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4강]로마의 셋집에서 휴화산 2023-09-03 350
17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0강]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관리자 2024-05-19 343
16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4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관리자 2024-03-31 341
15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5강]열둘을 세우셨으니 관리자 2024-04-14 336
14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2강]권위 있는 새 교훈 관리자 2024-03-17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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