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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2-04 (일) 10:47
분 류 야고보서
첨부#1 2024년_야고보서_제3강-1.hwp (72KB) (Down:9)
ㆍ추천: 0  ㆍ조회: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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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3강]온전한 사람이 되어라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3강                                 문대범
                      온전한 사람이 되어라
말씀:야고보서 3:1-18
요절: 야고보서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지난 말씀에서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참 믿음임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행하는 믿음 중 언어생활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신자의 행동에 있어 말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동물은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소통을 한다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말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반면 말은 행동보다 쉽기 때문에 실수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은 말에 대한 해악이 많음을 엄중히 경고하고 신자로서 어떠한 언어생활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언어의 내용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1-12)
 
 1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영어 성경에는 선생이 되다라는 것이 “presume to be teachers”라고 나와 있습니다. Presume은 근거가 없이 추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자신이 스스로 선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배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선생이지만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온전치 못한 자들이므로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을 알라고 합니다. 선생은 영향력이 있는 자리로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생과 목자는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생명을 살린다는 면에서 특히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말로 사람을 실족하게 하고 생명을 죽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은 반어적 표현으로 영광스러운 직분인 만큼 두렵고 떨림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2절에서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도 실수가 많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 곧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혀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온몸을 제어할 수 있고 자신의 인생도 통제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말을 절제하고 꼭 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일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3절과 4절에서 사람의 말을 ‘말의 재갈’과 ‘배의 키’에 비유합니다. 말의 재갈은 말의 입에 물리는 작은 금속막대입니다. 이 작은 금속막대로 힘이 쎈 경주마도 길들입니다. 배의 키도 작지만 큰 배를 움직입니다. 얼마 전 타이타닉호의 5배 크기에 7600명이 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이 운항을 시작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큰 배도 작은 키로 그 방향을 조절합니다. 혀는 작은 부분이지만 온몸을 제어하며 그 영향력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을 위대한 전도자가 되게 하신 분은 그분 할머니의 말 한마디였다고 합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는 어렸을 때 주위 사람들이 문제아로 여길만큼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너는 똑똑해, 너는 말을 잘해, 장차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어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거야” 했다고 합니다. 이 한마디가 어린 빌리그래함의 마음에 꽂혀 그를 위대한 설교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말 한마디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를 잘못해 큰 화를 당하게 된 경우는 르호보암의 예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12장에 르호보암은 장로들의 말을 무시하고 교만하고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자신은 쫓겨나고 이스라엘은 분열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반면에 말 한마디를 잘해서 큰 축복을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딸의 귀신을 쫓아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자존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예수님께 겸손과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자는 감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믿음의 말을 하고 지혜로운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여자는 믿음의 말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인정받고 딸에게서 귀신이 쫓겨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고보는 말의 무서움을 또한 불에 비유합니다. 6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혀가 온 인생을 지옥에 빠뜨릴 수 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무서운 혀를 다스릴 수 있단 말입니까? 침묵은 금이라는 말처럼 일평생 침묵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말 실수를 안 하기 위해 때로는 침묵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돌 때 6일간 침묵하게 하셨고, 불신의 말을 한 사가랴에게 벙어리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특히 불신의 말을 싫어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먼저 혀의 위력을 알고 다스리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신자는 혀로써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또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귀한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언어는 3B 언어가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3B는 비난, 비판, 불평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3C라고 하기도 합니다. Criticize, Condemn and Complain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면 안됩니다. 적극적으로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요즘 세상에는 말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하는 법에 대한 책들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책들이 약간의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대화법 중에 유머를 잘 사용하라, 스몰 토크를 해라, 공감을 해라, 상대방에게 관심 갖고 열린 질문을 해라 등등의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유머욕심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직장상사에게 찍혀서 고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몰 토크를 하다가 정작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변죽만 울리기도 합니다. 영혼 없는 공감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도리어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다 제 경험에서 나온 예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방법적인 것보다 더욱 중요한 핵심을 가르쳐 줍니다. 11절과 12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말은 샘에서 나오는 물과 같고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와 같다고 합니다.샘이 맑으면 맑은 물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풍성하게 맺힙니다. 이는 말을 다스리려면 먼저 내면을 잘 다스려야 함을 말해줍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언어생활을 보면 온갖 지혜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물을 좀 달라” 하시며 겸손하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스몰 토크로 선물 이야기를 하며 여인의 관심을 끄셨습니다. 또한 남편이 없다는 사마리아 여인의 거짓말에도 책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깊게 공감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깨닫게 하시며 사마리아 여인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이 짧은 대화 속에 겸손과 스몰 토크, 깊은 공감과 같은 지혜로운 대화의 요소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은 사마리아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배울 때 단물, 곧 지혜로운 말을 하는 자들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서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 마음에 쌓은 것을 말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말, 사람을 살리는 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내면이 그렇게 변화되도록 늘 힘써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날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나의 마음의 샘에 성령의 부으심을 받음으로 성령의 샘물이 차고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나무에 접붙인바 된 가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덧입을 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말을 하게 됩니다(엡 4:23,24). 늘 말씀 보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 받음으로 내면의 악하고 죄악된 것을 회개하고, 복음적이고 선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2:2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선한 말씀을 듣고 선한 생각을 하고 영적인 일에 힘쓸 때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마음이 깨끗해지고 영적으로 될 때 그 마음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깨끗하고 영적인 말이 됩니다. 우리의 내면이 성령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영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반면 우리는 악한 세속적인 땅의 말만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위로부터 난 지혜(13-18)
 
 13절과 1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3.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3절은 스스로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 더 나아가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에 대한 경고입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는 그 지혜의 온유함으로 선한 행함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여지없이 악한 행함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죄를 감추며 선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15절에서는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곧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가 말로 나타나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을 만듭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기득권을 누리고자 하는 시기와 다툼으로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진리를 거스리는 악한 일을 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요 중의 가시나무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가사가 죄악된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시기와 다툼, 자랑, 거짓말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성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말만 하는 사람은 가시로 다른 사람을 찌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다 피를 흘리고 떠나가고 결국에는 외롭게 홀로 남게 됩니다.
  마지막 말씀인 17절과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위로부터 난 지혜와 땅 위의 지혜는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곧 하나님의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과 관용, 양순과 긍휼의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화평하게 하는 자들 peacemaker가 됩니다. 그 사람 자체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싸우던 사람들도 서로를 용서하고 화평하게 만듭니다.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게 합니다. 반면 세상에 속한 사람은 분쟁케 하는 자, 트러블메이커가 됩니다. 그가 가면 잘 지내던 사람들 가운데도 트러블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을 일컬어 촌철살인과 같은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말로써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사실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이는 결코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잘하는 말은 사람을 살리고 화평케 하는 말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을 심습니다. 그는 씨를 심듯이 화평을 심습니다. 그리고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의 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화평케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도 화평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로써 의의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고소하고자 세금 문제를 들고 나온 사람들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세상과 하나님께 모두 바치는 생활을 하도록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려와 모두가 여인에게 돌을 던져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심으로 간음한 여인도 살리시고 자기는 죄인인 줄 모르는 자들에게 죄인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난 지혜, 진리의 말씀으로 생명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세상적인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구별하는 방법은 공동체를 파괴하여 나누어지게 하느냐 아니면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세우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때로 어리석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우리는 과거 죄악된 본성대로 말하여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와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자신도 손해를 보는 후회 막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자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은 후 말이 많이 정화되고 순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죄악된 본성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말의 실수가 많고 언어생활에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말은 자기 마음의 표현입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하고 단물과 쓴 물을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입니다. 내면의 변화를 통해 말의 내용이 달라지게 됩니다. 미움, 시기, 다툼, 거짓의 말이 찬송과 감사, 겸손과 사랑의 말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말조심하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어 진리의 말씀이 충만하질 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peacemaker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복된 peacemaker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주일 메시지를 맡고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평소에 말 실수가 많은 자인데 말조심하라는 말씀으로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3장 11절 말씀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말씀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성령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에 집중하고자 방향 잡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거 촌철살인과 같은 말을 하고자 하는 자였습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제압하려고 하였습니다. 마음에는 교만과 시기와 미움이 가득하였고 이러한 말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 후 내면이 조금씩 변화되고 사랑과 인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트러블 메이커를 변화시키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목자의 인생이요 피스메이커의 인생을 살게 하신 주님께 감사 찬송드립니다. 그러나 아직도 말에 있어 실수가 많고 부족함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제가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말을 잘 다스려서 생명 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말을 잘 제어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로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또한 우리가 쓰는 말로 화평케 하는 의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 선생이요 목자로서 우리는 말하는 것에 신중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고, 우리가 영적인 언어생활을 통해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해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이로써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쓰임 받고 peacemaker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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