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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2-25 (일) 10:57
분 류 디도서
첨부#1 2024년_디도서_제1강-1.hwp (147KB) (Dow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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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디도서 제1강]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책망하게 하라
2024년 디도서 제1강                                                            오정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책망하게 하라

말씀/ 디도서 1:1-16
요절/ 디도서 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교회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게 쓴 네 개의 편지(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중 하나입니다. 로마에서 1차 투옥 후 풀려난 AD 63-64년 즈음에 그레데에 있는 디도에게 보낸 편지로서 거짓 교사를 척결하며 교회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지침을 주는 목회서신입니다. 그레데 사람들은 거짓말쟁이, 악한 짐승,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로 묘사될 만큼 윤리 의식이 매우 낮고 유대인 할례파 신자들 중에는 무익하고 거짓된 교리인 유대인의 신화와 족보, 금욕주의를 가르치는 자들이 있어서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이단의 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먼저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장로들을 세워 저들을 바른 교훈으로 책망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도 강력한 세속주의 영향으로 경건의 능력은 약해지고 믿음이 무너지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요? 바울의 가르침대로 먼저 말씀의 가르침대로 행하므로 경건의 능력이 있는 영향력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거짓 진리가 난무하는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경건의 능력을 덧입은 영적 지도자로 굳게 서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믿음 위에 굳게 세우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2a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1,2a) 바울은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서로 잘 아는 사이였을텐데, 자기 소개를 길게 하는 것은 그만큼 그레데 교회 문제가 심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위해서인데 당시 그레데 교회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와 같은 율법을 행할 때 온전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이런 율법주의자들과 치열하게 싸웠고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심어왔습니다.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이란 ‘경건함에 이르게 하는’ 또는 ‘경건의 열매를 맺게 하는’ 진리의 지식을 뜻합니다. 바울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당시 그레데 교회에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 경건의 열매가 없는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신자의 소망은 영생입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영생의 소망보다 배만 위하는 그레데인들의 욕망에 편승하여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도록 이원주의를 가르쳤습니다. 이런 이단들을 향하여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증거하므로 신자들의 참된 소망은 영생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상에서 바울의 자기소개는 바울의 정체성인 동시에 디도의 정체성임을 말해주며, 디도에게 맡겨진 사명이 결코 작거나 하찮은 일이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곧 그레데 신자들의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진작시키기 위해 부르신 것임을 분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적지 않은 수고가 예상되는 그레데 사역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디도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2b,3절을 보십시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하는 그레데인들과 달리 하나님은 결코 거짓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 영생은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습니다. ‘자기 때에’란 '카이로스'로서 독생자를 보내사 복음을 계시하시고 구원역사를 시작할 적절한 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 곧 영생에 관한 말씀을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전도'는 '선포'란 의미로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영지주의나 율법의 준수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있었던 영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시공간이 제한된 이 세상에서, 한 개인의 삶 속에 성취되고 실현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바로 이 전도로서 영생의 말씀을 한 사람의 심령에 계속해서 심어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미련해 보이지만 어찌하든지 한 영혼을 구원하고 영생의 소망을 심령에 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과 뜻을 실현시키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4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자식이라도 다 똑같지 않은데 바울은 디도를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디도는 헬라인이고 바울은 유대인으로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디도는 바울로부터 ‘믿음’이라는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같은 믿음, 같은 스피릿을 가지고 함께 고난받으며 돕기 어려운 고린도 성도들, 또 그데레 성도들을 대신하여 도와주는 디도는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될 ‘나의 동역자’, ‘나의 참 아들’이었습니다.
5절입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남은 일을 정리하고’라는 말씀은 전에 성경에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거짓 교사들이 난무하여 교회가 혼란 상태에 있었던 것(10,11)과 교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에 걸맞는 행위를 보이지 않는(16) 상황을 살피고 영적인 질서를 잡아 개혁을 마무리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각 성에 장로를 세우라 명하였습니다. 이 ‘명하다’는 ‘διατάσσω’(디아타쏘)는 권위적인 명령을 나타내는 강한 단어로 글라우디아 황제가 모든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을 때 쓰인 단어고(행18:2), 광야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가 본 양식대로 장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을 때 쓰인 단어입니다(행7:44). 바울이 디도에게 준 가이드 라인을 지켜서 장로를 세우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디도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로는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6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장로는 우선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법률적 용어로 ‘붙잡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도덕적 신앙적으로 법률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말합니다. 장로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책잡힐만한 일을 하지 않은 바른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은 혼인 관계에서 자신의 배우자에게 충실할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아내를 버리거나 혹은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방종하고 타락한 삶을 사는 자녀를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들을 둔 자라야 합니다. 장로를 세우는데 이처럼 가정생활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가정생활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돌보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더 큰 교회 공동체를 제대로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딤전3:5)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장로가 자신의 가정을 신앙으로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또한 교회도 잘 다스리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7절은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20:17,28절을 보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대하여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라고 한 것을 보면 장로와 감독은 다른 직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감독’(overseer, supervisor)은 ‘장로’라는 직분의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감독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이는 남의 의견은 배제한 채 자기 생각과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는 교만과 자기애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감독에게 합당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는 (급발진) ‘성질이 급하여 참지 못하고 쉽게 화내는 것’으로 장로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함과 관대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잠 16:32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는 문자적 의미는 '술에 지나치게 빠지지 말아야 한다' 는 뜻으로 사도 바울은 엡 5:18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취한다’는 건 과도하거나 중독된 상태로서 오늘날 알코올이 아니더라도 유투브나 SNS 등에 과도하게 빠지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구타하지 아니하며’ 문자적 의미는 '때리는 사람'으로 여기서는 무엇에든지 싸울 듯한 태도 혹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호전적인 행동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레데에 손버릇이 나쁜 사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술만 마시면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고 밥상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죄악된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당시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악명이 높았던 그레데인의 악평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8절은 감독이 적극적으로 맺어야 할 성품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이는 ‘나그네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초대 교회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숙박 시설이 충분하지 못하여 여행 중인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기본 덕목이었습니다. 특히 전도자들이 갖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곳곳으로 다니면서 전도하였는데 이런 순회 설교자들을 자기 집에 기꺼이 맞아들여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감독에게 필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집을 개방하여 양들과 함께 공동생활하며 섬기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의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선행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선한 일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 시대 당시 소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선을 사랑한다는 자체를 명예로 여겼습니다. ‘신중한’ 것은 절제되고 질서있게 살기 위해 욕망이나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self-controled)을 가리킵니다. ‘의로우며 거룩한’ 것은 누가복음 1장 75절에서 ‘성결과 의’로 표현되었고, 짝을 이루어 등장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어그러진 마음을 갖지 않고 감사하며 믿음을 지키고 다윗처럼 사람들에게 의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절제하는’ 앞의 신중한 보다 더 강한 표현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모든 욕망과 자신의 죄성까지도 억제하는 고도로 훈련된 상태(disciplined)를 의미합니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9a) 앞에서 나온 것들은 에베소의 감독과 집사들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대부분 겹치는데 그레데 교회의 감독에게 더 요구되는 자질에는 특별히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그대로 지킨다’는 것은 꽉 붙드는 것으로 '철두철미하게 준수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곧 장로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거룩한 진리와 정통을 사수해야 할 뿐 아니라 몸소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야 함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바른 교훈’(sound doctrine)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으로 권면하고 책망할 수 있는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집에서 아버지가 스마트폰 그만 보고 책 좀 보고 공부해라 말할 수 있는 권위가 어디서 나올까요? 자신이 먼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성경읽기에 힘쓸 때 그렇게 말할 권위와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님이 한 말입니다.> 감독 자신이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 앞에서 언급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그렇게 말할 권위와 효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도 말하기를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시행되며, 자신의 몸가짐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論語 子路編)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뒤에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로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모습과 대조가 됩니다.(16). 이로 보건대 결국 이 시대 문제는 우리가 미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말씀이 없고 말씀대로 산 성령의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신실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 사랑과 거룩함, 의의 열매가 맺혀 빛을 발할 수 있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나는 미쁘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고 있습니까?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실하게 소감쓰고 회개하고 결단하고 있습니까? 많은 말씀이 아니더라도 한마디 말씀에라도 깊이 있게 순종하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세상을 향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참된 신자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0절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불순종하는 것은 단순히 말을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rebellious 곧 '반항적인' 뜻으로 고라의 무리가 모세에게 대적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헛된 말을 하고 속이는 자’란, 별 시덥지도 않은 것을 대단한 것처럼 얘기해서 사람을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뒤에서 ‘할례파’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14절에 나오는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Jewish myths)와 3장 9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족보를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은 거짓 교사들의 두 가지 폐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하나는,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는 잘못된 동기로 가르쳤고, 또 하나는 가르쳐서는 안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침으로 모든 가정들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무너뜨린다’는 말은 뒤엎어놓는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정해주신 가정생활의 질서를 뒤집어서 믿음의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12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이 말은 BC 600년 경에 살았던 그리스 7대 현인 중 한 명인 에피메니데스가 한 말로 그는 그레데 사람들을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로 평가하였습니다: 헬라인들은 ‘거짓말하다’는 단어를 그레데 사람들의 민족성을 따와서 ‘Κρητίζω’(크레티조)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레데화하다'라는 뜻으로 마치 ‘Corinthians’라는 말이 고린도 사회의 음란한 문화를 대변하는 것과 같이 그레데인의 특성 중 하나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것이었음을 나타내 줍니다. '악한 짐승'이란 저들의 포악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희생시켰음을 의미합니다.(보험사기로 남편을 두 명이나 죽인 아내)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란 저들의 쾌락주의적 성향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우스는 “욕심과 탐욕은 그레데의 토양에 너무나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이익을 추구해도 결코 치욕을 당하지 않는 유일한 민족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그레데 교회가 속한 사회의 영적 토양은 좋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디도는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they must be silenced). ‘막는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 불순종하고 믿음과 무관한 헛소리 또 믿음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어떤 이단사설도 교회에서 말하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엄히 꾸짖어야 합니다. ‘엄히’는 ‘심하게’, ‘날카롭게’, ‘거칠게’라는 의미로 신약성경 (고후13:10)에서 한 번만 쓰인 단어입니다. 좋게좋게 얘기해서는 듣지 않기 때문에 엄히 꾸짖어서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소리지르고 막 싸우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진리의 싸움이요 믿음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단지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여 믿음이 온전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현재 그들은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에서 떠난 사람들의 명령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는 딤전 1:4에 나오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어떤 신이 세상에 내려와서 어떤 성을 세웠다느니, 또 어떤 여자와 혼인하여 어떤 가문을 세웠다는 허황된 이야기입니다. 끝없는 족보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족보를 유명한 조상들에게까지 억지로 연결시키던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봤자 아무도 모르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이란 의식적이고 도덕적인 정결을 주장하는 금욕주의를 의미합니다. 1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된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딤전4:5) 그러나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을 먹으면 안되다고 주장하는 금욕주의자들은 스스로 정결하다가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그 내면을 씻음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마음과 양심은 이미 더러워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식물을 금하고 결혼하지 않고 나 혼자 살아도 그들의 삶에는 진리의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경건함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경건의 열매를 맺은 장로와 감독들을 세워서 그들을 아주 거칠고 세게 한 방 먹이라고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병든 믿음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삶은 '악취가 날 정도'로 가증스럽고 위선적이었습니다. 이는 그 양심이 굳어져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행하지도 않는 불순종하는 삶으로 인한 것입니다. ‘모든 선한 일을 버린다’는 말은 본래 표준 무게에 이르지 못하는 위조 주화나 전쟁터에서 도망하는 비겁한 병사를 나타낼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일을 도모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당한 자들이기 때문에 선을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나타난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란 것입니다(딤후 3:5).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경계함으로써 그레데 교인들로 하여금 이런 자들에게 미혹됨이 없이 돌이킬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재갈을 물리고, 무엇으로 책망해야 하는 것입니까? 앞에서 언급한 ‘바른 교훈’과 ‘바른 삶’으로 책망해야 합니다. 9절에서 영적 지도자들이 미쁜 말씀의 가르침에 헌신하라고 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래전부터 감독자가 깨어서 양떼를 살펴야지 뭐하고 있냐는 책망을 사모님으로부터 자주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정신이 퍼뜩 들어서 정신을 차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 50 중반이 넘자 외람되게도 감독자에 준하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30년이 더 된 옷을 입고 짐짓 경건하고 공손한 척 다녔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센터 까뻬에는 출입을 금하고 접촉을 줄이므로 신비주의 컨셉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경건한 척한다고 내면이 경건해지고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만 위하는 그레데인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 빠져 인터넷 유투브에 취해서 지냈습니다. 이를 끊고 경건의 투쟁을 하고자 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님의 인터뷰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운동만 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집에 들어가면 휴대폰을 내려놓고 티브도 보지 않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본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자식에게 책 읽고 공부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새해에는 성경읽기에 힘쓰고자 방향잡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집에서나 직장에서 계속해서 성경읽기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만에 성경의 1/3을 읽게 되자 큰 승리를 체험하게 되었고 때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 회개와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끊고자 하던 유투브 숏영상은 자연스럽게 보지 않게 되었고 조금씩 무너져가던 복음진리가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다시 힘이 생기고 분별력이 생겨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힘써 해야할 일은 미쁘신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므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겉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그에 맞는 행위와 삶이 없었음을 깊이 회개하고 미쁘신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하므로 본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진리가 무너져가는 이 시대 바른 교훈으로 사람들을 책망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세우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으로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는 그레데 교회를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은 바른 교훈을 그대로 지키는 경건의 열매를 가진 영적 지도자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세속주의가 심화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바른 믿음과 삶을 가진 목자들을 키우고 세우는 일이 더욱더 중요해졌습니다. 아울러 바울이 명령한 영적 지도자의 기준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울 사람이 없다고 하여 기준을 낮추는 것이 맞을까요? 목자로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수준을 낮출 것인가요? 이 시대는 세속주의를 향해 날카로운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제대로 된 영적 지도자들이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향 평준화하지 않고 바울이 명령한 영적 지도자의 기준에 맞는 사람들로 성장하여 교회공동체를 지키고 바른 교훈과 삶을 가진 목자들을 세우는데 귀하게 쓰임 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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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3강]로마로 가는 길에서 관리자 2023-08-27 406
27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1강]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관리자 2023-10-09 405
26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3강]온전한 사람이 되어라.. 관리자 2024-02-04 401
25 룻기 [2023년 룻기 제4강]생명의 회복자 관리자 2023-10-01 398
24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5강]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관리자 2024-02-18 393
23 디도서 [2024년 디도서 제1강]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책망하게 하라 관리자 2024-02-25 386
2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3강]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24-03-24 382
21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4강]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관리자 2024-02-11 380
20 야고보서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2강]참된 믿음 관리자 2024-01-28 363
19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1강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관리자 2024-05-26 361
1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4강]로마의 셋집에서 휴화산 2023-09-03 350
17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0강]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관리자 2024-05-19 343
16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4강]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관리자 2024-03-31 341
15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5강]열둘을 세우셨으니 관리자 2024-04-14 336
14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2강]권위 있는 새 교훈 관리자 2024-03-17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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