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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1-14 (일) 13:47
분 류 디모데후서
첨부#1 2024년_신년_3강-1.hwp (85KB) (Dow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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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신년 말씀 3강]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2024년 신년 말씀 3강                                                        최동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 / 디모데후서 4:1-22
요절 /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셋집에 가택연금 되었다가 풀려나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처형이 임박했음을 알았습니다. 디모데후서는 이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이면서 동시에 교회에 보내는 유언과 같은 편지입니다. 당시는 네로 황제의 박해가 극심했던 시기로서 복음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쉬웠습니다. 오늘날도 말씀을 전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씀 전파의 열정이 식고 복음 전파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디모데 뿐만 아니라 복음을 맡아 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소망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말씀전파자로서의 분명한 자세와 소망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1-5)
  1,2a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을 전파하라’ 바울은 엄숙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쟁터에서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돌격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권위로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처음 세상에 나타나심으로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 분이십니다.(딤후1:10) 다시 세상에 나타나실 때에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즉 모든 사람을 심판하러 오시는 최후의 심판장이 되십니다. 그런데 재판을 하려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는 법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전파는 예수님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모든 사람에게 그 법을 알리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2a)” 영어로는 “Preach the Word!” 로서 ‘그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는 앞서 3장에서 언급한 성경을 가리킵니다.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배워서 알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으며,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그 말씀입니다.(딤후3:15-17) ‘전파한다’는 말은 ‘큰 소리로 선포하다’, ‘알리다’, ‘고지하다’의 의미입니다. 보통 말할 때는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 반응이 어떤지를 보면서 얘기합니다. 그러나 선포는 듣는 사람의 반응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캠퍼스에서 말씀을 전하면 어떤 학생들은 왜 듣고 싶지 않은 말씀을 일방적으로 전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느냐고 따집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서 선포하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인정하고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감수해야 합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든지 안듣든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의 몫이고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전파는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자립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양들을 얻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닙니다. 말씀 전파는 장차 임할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반드시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 오셨고 재판하기 위해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판은 원치 않는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에 모든 사람은 선악간에 그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고후5:10) 이는 모든 사람이 직면해야 하는 절대적인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나이가 연소했기 때문에(딤전4:12)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때 권위가 안선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자격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디모데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 전파는 시니어 목자나 사모님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수 목자라고 말씀을 전파할 수 있는 권위가 더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전파할 권위를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과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이는 단순히 권면이 아닙니다. 바울을 통해 엄히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영접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파할 때 어떤 자세로 전해야 합니까? 2b절을 보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첫째,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라는 말씀은 “기회가 주어지든지 주어지지 않든지, 조건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n season and out of season’입니다. 말씀을 전파하고자 할 때 좋은 때나 나쁜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전파에는 계절이 따로 없습니다. 상황이나 형편에 상관없이 언제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런 절대적인 자세와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을 전파할 때 놀라운 구원 역사가 일어나고 새 역사가 창조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갇혀있는 최악의 형편 가운데에서도 간수들을 양으로 삼아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로 말씀을 전하며 복음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비록 바울의 몸은 매여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매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힘쓰라’는 것은 영어로는 ‘be prepared’로서 경각심을 가지고 준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늘 준비하고 있다가 언제든지 누구에게라도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데에 있어서 주변 환경이나 시대 상황보다 전파하는 사람이 준비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디모데는 지금은 말씀을 전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현실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3:1-5절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나타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울은 말세를 고통하는 때(difficult times)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기 좋은 시절이 오기를 바라지만 말세는 항상 어려운 시기입니다. 요즘 캠퍼스 상황을 보면 네게브 사막과 같이 삭막합니다. 복음을 수용할 환경이 젼혀 안되어 있습니다. 보안 요원들까지 동원하여 전도를 못하게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시는 사모님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말씀을 전하기 좋을 때는 없었습니다.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 시기에도 말씀 전파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연일 최루탄이 터지는 캠퍼스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씀의 씨를 뿌렸을 때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최근에는 지난 3년여 기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대면 예배도 금지되고 현장에서 전도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복음 역사는 완전히 망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라인을 통해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2022년 세계선교보고 때에는 오지에 있는 선교사님들까지 온라인을 통해 참석할 수 있었고 전 세계 곳곳에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함으로 풍성한 은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말씀 전할 좋은 때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준비되어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각 사람에 맞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2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이 말씀은 경책하며(correct), 경계하며(rebuke), 권하라(encourage)는 세 개의 명령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는 말씀을 전할 때 듣기 좋은 말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잘 못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경책함으로 바른 길로 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죄를 뼈져리게 느끼고 회개하도록 꾸짖고 책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연약한 자들은 따뜻한 위로의 말로 권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각 사람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인격적으로 전파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심을 다해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양들이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진지하게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반발하기도 하고 대적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잘 따라오던 양이 어느 순간 전화를 차단하고 연락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양들을 섬기려면 속이 타들어가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조급한 마음에 감정과 혈기로 다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복음을 영접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조급함을 버리고 오래 참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영어로는 ‘great patience’ 혹은 ‘all patience’입니다. 적당히 참으면 안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참으며 위대한 인내를 해야 합니다.
  말세에 사람들의 특징이 어떠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 때에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기를 싫어합니다. 바르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건강한 가르침을 듣는 것을 힘들어하며 의도적으로 거부합니다. 이는 건강한 음식은 안좋아하고 불량식품을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건강한 가르침을 듣기보다 가려운 자기 귀를 만족시키려는 자기의 사욕을 따라 입맛에 맞는 선생을 많이 둡니다. ‘사욕’은 절제되지 않은 강한 욕망을 말합니다. 죄악된 욕망을 절제하려 하기보다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선생들을 찾아다닙니다. ‘많이 둔다’는 말은 accululate 쌓아둔다는 의미입니다. 요즈음은 유튜브가 대표적입니다. 인기있는 유튜버들은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연구해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영상들을 올리고 사람들은 자기의 구미에 맞는 말을 해주는 유튜버들을 찾아다닙니다. 또 유튜브는 알고리즘에 의해 연관된 컨텐츠를 계속 제공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영상을 보관함에 쌓아두고 보면서 욕망을 만족시킵니다. 한마디로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또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릅니다. 진지한 대화보다 부담없고 재미있는 농담을 좋아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힘들어하지만 웹툰이나 넷플릭스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면서 밤을 새웁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바른 교훈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가르칩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첫째, 모든 일에 신중해야 합니다.(keep your head in all situations) ‘신중하다’란 말은 절제하면서 균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으라는 말입니다. 오늘날은 선과 악, 의와 죄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그나마 도덕적, 윤리적인 선(line)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선을 너무 쉽게 넘고 죄를 짓습니다. 말씀 전파자는 이런 시대의 영향을 받아 영적으로 무뎌지면 안됩니다. 말씀에 기초한 분명한 영적인 가치관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합니다.(endure hardship)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어려움을 만날 때 담대하게 견뎌내는 것입니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으려는 시대에 말씀을 전하며 한 사람을 도우려면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피하거나 포기하면 안됩니다. 믿음으로 견뎌야 합니다. 견디는 것도 큰 믿음입니다.
셋째, 전도자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공동번역에는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그대의 사명을 완수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자는 바른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가려운 귀만 긁어주며 듣기 좋은 말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떡을 얻기 위해 나아온 무리들에게 영생의 양식인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병고침을 얻기 원하는 무리들에게 죄사함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현실문제 해결을 위해 몰려드는 무리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며 천국소망을 심으셨습니다. 오늘날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학생들은 과제를 완성하여 제출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합니다. 전도자들에게 있어서 뒤로 미룰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쁜 시대에 할 일이 많지만 복음증거자의 사명을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감당하며 전도자의 직무를 완수하기를 기도합니다.

II. 싸우고, 마치고, 지켰으니 (6-22)
  6-8절은 이 서신의 결론으로서 바울의 마지막 유언으로도 불립니다. 바울은 이제 머지 않아 로마 정부에 의해 참수당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일생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대사도가 로마의 감옥에서 무력하게 죽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허무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바울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간증을 통해 디모데가 전도자의 직무를 완성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전도자로서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첫째,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전제는 부어드리는 제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태워서 드릴 때 제물의 피는 제사장이 먹지 못하고 그릇에 모았다가 마지막으로 제단 아래에 전부 부어드렸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흘릴 순교의 피를 하나님의 제단에 마지막으로 부어드리는 제사로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에게 있는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생명의 마지막 피한방울까지도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드림으로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구원 역사를 완성하신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전도자의 직무에 전부 쏟아부을 수 있었다는 것이 바울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은혜로 여겨졌습니다.
둘째,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떠난다는 말은 원어적으로는 정박장에 매여있는 배를 풀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 풀려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감옥에서 세상으로 풀려나기를 바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풀려나서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depature’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새로운 여정으로 보았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죽음은 잠시 이별의 아픔이 있지만 더 기쁜 만남을 위해 주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현재 슬픔보다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말씀은 바울의 과거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로마 공화국 말기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7년 폰토스의 파르나케스2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로마 시민과 원로원에 보낸 승전보에 이렇게 썼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싸웠노라, 마쳤노라, 지켰노라” 이는 일생 믿음의 싸움을 싸워서 승리한 바울의 승리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는 죄와 사탄과 끊임없이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하고도 고귀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그는 믿음의 경주에서 골인 지점까지 쉬지 않고 전 구간을 완주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유혹이나 핍박이 있어도 결코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는 이런 삶을 산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마지막날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씌워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볼 때 죽음 앞에서도 슬퍼하고 절망하기보다 소망에 불탔습니다. 그의 모습은 힘들고 치열했던 싸움을 마치고 이제는 승리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는 개선장군과 같았습니다. 이 면류관은 바울 뿐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이는 바울과 같은 부르심을 가지고 같은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디모데의 미래이고 오늘날 전도자로 살아가는 충성스러운 신자들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사명에 충성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대 말씀 맡은 자로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며 전도자의 직무를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디모데가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데마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바울이 옥중서신을 기록할 때만 해도 바울을 도왔던 자인데(골4:14)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고향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레스게와 디도는 주님의 일을 위해 각각 갈라디아와 달마디아로 갔습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냈습니다. 현재 누가만 바울의 곁에서 고독한 병상생활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디모데를 위로하며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외로움 속에서 디모데를 통해 힘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는 바울의 첫 번째 선교여행 때 중도에 바울을 떠났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회개하고 돌아와 복음역사에 귀한 동역자가 되었고 마가복음을 집필하였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바울에게서 한 사람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데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믿음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옆에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천국에 이르는 그 날까지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디모데가 오는 길에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온 겉옷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옥중에서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구약성경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옥중에서 순교를 앞둔 시점에도 성경 읽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역사를 방해하며 해를 많이 끼친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를 주의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주께서 그 행한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을 믿고 주님께 맡겼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첫 재판 받을 때 곁에서 변호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고 다 그를 버리렸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내면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이 열매로 맺혀져 있었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이 끝까지 말씀 전파자의 길을 갈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시면서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하셔서 그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사자의 입은 극심한 고난이나 위기의 순간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여러번 그를 돌로 쳐서 죽이려 하였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 거친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고 멜리데섬에서는 뱀에게 물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늘 그와 함께 하심으로 모든 고난에서 지켜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로마황제는 그를 처형할지라도 주님은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천국으로 가서 새 삶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의 앞에는 천국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영광스러운 미래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사명을 감당하는 자와 늘 함께 하시며 어떤 위협에서도 보호해주시고 살려주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장차 우리 앞에 펼쳐질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성경선생이요 전도자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9-2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전도여행 중 헌신적으로 협조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와 오네시보로를 잊지 않고 문안했습니다.(행18:18,19) 바울은 세계 선교라는 큰 일을 섬기면서도 동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보였습니다. 바울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양들을 살피며 문안함으로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제가 오래전 가대개척역사를 시작하던 초창기 때에 요절로 붙들었던 말씀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매주 한번씩 병원 진료후 가대캠퍼스를 심방하여 사람들이 듣든지 안듣든지 말씀을 전하며 캠퍼스에 기도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캠퍼스 환경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이 식고 병원을 경희대 가까이로 이전한 후에는 가대 캠퍼스에 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캠퍼스 학생들에게 다가가 말씀을 전하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가 많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는 코로나 거리두기도 풀리고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전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전도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디모데후서4장5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말씀을 요절로 붙들었습니다. 몇 번 혜경동역자와 함께 경희대캠퍼스에 올라가봤지만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양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을 핑계로 캠퍼스에 올라가는 일을 뒤로 미루다보니 캠퍼스에 거의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두 번째 받으시고 건강도 안좋으신데 날마다 새벽기도를 드리시고 병상에서도 온라인으로 선교사들을 말씀으로 섬기시며 온 힘을 다해 말씀과 기도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서제임스목자님을 보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힘들어도 상황 탓, 나이 탓, 건강을 탓하며 전도자의 사명을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부담없고 실현 가능한 말씀을 요절로 잡고자 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디모데후서 4장5절 말씀을 다시 붙들었습니다. 캠퍼스에 올라가 말씀을 전하는 것이 고난처럼 느껴지지만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전파 사명에 힘쓰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참수를 앞두고 있었지만 조금도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의 길을 마치고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을 소망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도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말씀 전파는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의로운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 캠퍼스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준엄하게 명령하십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저희가 말세의 시대에 사람들이 듣든지 안듣든지 예수님께서 주신 권위에 의지하여 복음 전파 사명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소망함으로 이 땅에서 고난을 감당하며 전도자의 사명에 충성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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