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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1-28 (일) 10:44
분 류 야고보서
첨부#1 2024년_야고보서_제2강-1.hwp (72KB) (D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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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2강]참된 믿음
2024년 새해맞이 준비 특강 야고보서 2강                                    함바나바

참된 믿음
말씀: 야고보서 2:1-26
요절: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변질된 믿음이 교회 안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면서 많은 오해를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참된 교리가 신앙이 타락하면서 오히려 거짓 신앙을 은폐하는 은신처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참된 믿음을 이웃사랑과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배워서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긍휼을 행하는 참된 믿음(1-13)
1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먼저 야고보는 신자들을 영광의 주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주시지만 볼품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초라한 모습의 예수님이라도,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당시 성도들을 영광의 주를 믿는 영광스러운 형제들로 대하지 않고 사람을 차별하여 대했습니다. 차별하지 말라는 말씀은 옛 버전인 개역 한글판에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나옵니다. 외모로 취했다는 말은 사람을 빈부귀천에 따라 차별대우했다는 말입니다. 2절과 3절 말씀에서는 차별의 구체적인 예가 나옵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여기서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부자이면서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을 뜻합니다. 돈 있는 사람, 비싼 옷 입은 사람, 지위가 있는 사람, 좋은 마차를 타는 사람들은 대우받고, 돈 없고, 빽없고 지위가 없는 사람들은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물질주의와 권위주의의 세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신자들이 가난하였고 노예나 종 등 신분도 하층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차별이 심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차별이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구원의 은혜가 분명했고, 같은 주를 섬기는 한 가족이요 함께 부르심 받은 신앙공동체로서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누고 도와주며 함께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 변질되면서 세상의 악영향을 받아 같은 신자들끼리 차별대우하는 병폐가 생긴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너희끼리 곧 같은 신자들까지 차별대우하며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자는 악한 생각을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십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받도록 축복하여 주십니다.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도우십니다. 그런데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에서 부자는 당시 모든 기득권 계층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남용하여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였습니다. 특히 채권과 채무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더욱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법정에 세워 고소하거나 그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해 버리고 노예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핍박을 가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비방하는데 앞장서는 못된 자들이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계명을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의 가치는 그것에 얼마의 대가를 지불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형제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시고 우리를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셨습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는 온 천하보다 귀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상 권세자들과 같이 어려운 이웃을 업신여기고 자기들은 그 위에 군림하는 세상 모습이 된 것입니다.
9절에서 11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이들이 겉으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같아도 율법의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은 이 모든 법보다 최고의 법이요 모든 법을 포괄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괄시하는 것은 이웃 사랑의 법을 어기는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12절에서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자유의 율법은 바로 복음입니다. 곧 복음에 가르치신 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경외심을 가지고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권세를 부리며 거침없이 살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자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말하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말씀을 기억하고 가난한 이웃을 긍휼히 여겨 돌보고 이웃사랑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긴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죄인일지라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에게 긍휼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 없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과 긍휼입니다. 그러나 긍휼이 없는 자는 그 자신도 율법의 원리대로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히 죄 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고 수없이 반복해서 죄를 짓는 죄인들을 한이 없이 용서하시고 돌 봐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사 복된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까? 이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우리도 살아난 자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한없는 긍휼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긍휼을 베풀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긍휼을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긍휼없이 대하실 것입니다. 자기 문제에 얽매일수록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판단하고 부담스러워하고 무관심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내 형편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며 이웃을 돌아봅시다. 그러면 긍휼히 여길 자를 알게 될 것이며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 돈만 알던 삭개오의 죄를 기억해두었다가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이 겉모습은 죄악된 모습이지만 이들을 긍휼히 여기사 만나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신자들도 각박한 세상에 살면서 긍휼이 메마른 자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쩔수 없다 하며 변명할 수 없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않으면 나도 긍휼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자기중심적이 되고 이기적이 되어 무정한 마음으로 살던 것을 회개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기억하며 긍휼을 행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2장, 행함이 있는 참된 믿음 (14-26)
14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저자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유익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또한 그 믿음이 자신의 삶에도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이웃에게 유익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도 유익이 없다면 그런 믿음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15절과 16절 말씀에는 그 실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 자매들에게는 여러 가지 위로의 말만 하고 그치기보다는 그 몸에 쓸 것과 먹을 것을 주는 것이 더욱 유익합니다. 행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17).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전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뭔가 일어나기를 고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형제자매가 현재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데 말로만 방향 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이런 때는 그 몸에 쓸 것을 줘야 유익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유익을 주려면 자기를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행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이요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1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행함이 없는 믿음이 보여질 수 없고 행함만 있다고 그 믿음이 보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이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행하지 않는 믿음은 곧 귀신같은 믿음이라고 역설합니다. 이와 같이 행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 유익이 없고, 죽은 것이요, 허탄한 가짜 믿음입니다(20).
이제 야고보는 아브라함과 라합의 믿음을 통해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이 로마서에서 바울의 주장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상충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구원의 근거로서 행위에 대조되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야고보는 믿음을 전제한 상태에서 믿음의 증거로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은 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믿음은 창세기 22장에서 그가 독자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것으로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인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신뢰가 없었더라면 그는 이삭을 바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믿음과 행함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필연의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 말씀은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바치는 행위로 말미암아 창세기 15장 6절에서 의로 여기심을 받은 믿음이 이루어진 것으로써 누가 보더라도 확실히 증명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곧 행위는 믿음의 증거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으로까지 인정해주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24절에서 아브라함의 참된 믿음에 대해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야고보는 참된 믿음의 예로써 아브라함과는 여러면에서 다른 이방여인 라합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은 가나안 사람이었으나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역사하시는 상천 하지의 하나님께 대한 소문을 듣고, 하나님만이 참 신이요 나머지는 거짓된 우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라합이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는 지식만 있고 정탐꾼들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편에섰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구체적으로 정탐꾼이 살아 돌아가도록 섬기는 의를 행함으로 여리고 성 심판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2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것이 야고보서 2장의 결론입니다. 우리 몸에서 영혼이 떠나면 시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는다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 역시 죽은 것 즉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행함이 없는 가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들의 믿음이 행함이 없다면 사실은 믿음도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푸라기 서신이라는 오해를 감수해 가면서까지, 행함과 믿음은 떼려야 뗄 수 없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반복적으로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악용하여 학생시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센터에서 하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턴가는 심지어 소감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장사하라’ ‘내 양을 먹이라’ 말씀을 주셨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행함은 믿음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데, 헌신하고 싶지 않은 이기심 때문에 진리를 볼 수 있는 모든 눈이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이렇게 십자가를 회피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할 때, 저는 학과공부조차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로마서 특공대를 하면서 참된 믿음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로마서를 통해 이신칭의 교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행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의 행위는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여 섬기는 행위이므로 온전히 하나님 한 분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다시금 소감쓰는 것을 시작으로 학생회 회장단을 맡으면서 점차 하나씩 십자가를 져나갈 수 있는 힘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신기하게도 학과공부도 이전보다 더 능력있게 감당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린다는 기쁨이 제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예전에는 잘 놀다가도 불현 듯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허무감이나 불안감이 엄습하고는 하였는데 믿음으로 행하고부터는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거짓말처럼 그런 안 좋은 감정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행함의 믿음으로 사는 삶에 어려움도 따르지만, 그런 시련조차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죄인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려드리는 가운데 캠퍼스 제자양성역사 섬겨나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결론적으로, 행함은 참된 믿음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행함과 믿음은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됩니다. 행할 때, 믿음을 체험하고 믿음이 성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행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행함으로 나타나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가운데 믿음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살아 있는 믿음이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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