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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2-26 (일) 12:29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2새학기_준비특강_이사야43장(이인구)-1.hwp (28KB) (Down: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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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학기 특강] 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
2012년 봄학기 특강                                                                       이 인구

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 이사야 43:1-21
요절-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봄이 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봄이 되면 새로운 기분으로 머리도 깎고 새롭게 집단장도 하며 새로운 삶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역사와 인생사가 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똑같이 반복되는 역사로 인해 무기력에 빠집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전1;9)”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선 한번도 구태의연하게 과거의 일을 반복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선 항상 놀라우신 새 일을 계획하시고 추진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새 일을 배움으로 우리가운데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새 일을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장 너는 내 것이라.(1-13)
오늘 말씀은 이사야가 장차 있을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에서의 귀환에 관해 예언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지만 특권과 축복가운데서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연단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되자 하나님께선 세상역사를 주관하셔서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해방시키고자 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약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이제 마침내 해방되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히 기쁘고 신나는 일일 텐데 그들이 왜 두려워했을까요?
먼저 그들의 귀환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서에도 언급된 사마리아와 암몬통치자의 지속적인 방해와 위협이 있었습니다. 또 고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 때문입니다. 바벨론에서 유대까지의 거리는 서울에서 북경까지의 거리정도였습니다. 3개월가량이 걸리는 이 멀고 거친 광야길을 걸어서 갈 때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2절 말씀처럼 강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고 광야의 뜨거운 태양볕의 위협과 도적떼들의 공격가운데 불속에서 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힘들게 도착한 고국땅은 과거 자신들이 뛰어 놀던 땅이 아니라 많은 침입과 약탈로 폐허가 된 땅이었습니다. 현재 그들은 학대와 무시 속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대해 이방 땅에서 자리를 잡아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 위험속에 빠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두려움의 이유는 자신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죄의식과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감정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이 자기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 대한 원망도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40장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어려운 사정과 원통한 것을 알지 못한다면 sorry한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대부분의 인생을 포로백성으로 허비하고 이제 나이 들어 기력도 없을 때 폐허가 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 하나님께 대한 아쉬움과 원망이 교차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번에 본국으로 귀환해 또 제대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한눈 팔면 더 크게 심판하지 않을 까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구속하셨다는 것은 노예상태에서 값을 주고 사신 것을 말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하나님의 구원은 항상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속죄제물의 값비싼 희생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나님께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제물로 희생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도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고 출바벨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바사왕 고레스가 애굽정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돌려보내 예루살렘성을 재건케 하고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B.C 526년 애굽을 정복함으로 이 말씀이 성취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선 하찮은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애굽과 같은 인류최대문명국을 희생하셔서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8) 하나님께서 출애굽 후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많은 기적과 은혜의 역사를 보이시면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적 무지와 무감각가운데 우상숭배의 죄로 하나님을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하나님을 슬프시게 했습니다. 죄와 연단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불평하며 원망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특히 구약을 보면 이런 이스라엘의 죄악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며 택한 백성으로 세우시면 세상 죄에 빠지며 하나님을 떠나고 다시 연단가운데 돌이키시면 다시 세상죄가운데 힘들어지는 반복된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보면서 때로 절망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바로 나의 삶, 신앙생활과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예수님의 피의 댓가로 구원받고 축복가운데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사명을 맡지만 세상죄에 빠지면서 하나님을 떠나기를 수도없이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 반복되는 역사속에서 또한 희망과 위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런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다시 돌이키시며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맡게 하신 하나님의 오래 참는 사랑때문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이스라엘같이 무지하고 목이 곧은 백성들을 포기하고 성실하고 총명한 애굽이나 바벨론 백성들을 새로 택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능력많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는 차라리 세상에 널린 돌들을 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인도하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부족하고 말을 잘 듣지 않아도 자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설사 때리고 혼을 내서라도 다시 자식이 올바로 서도록 일으켜 세우고 인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선 부족하지만 이스라엘 백성과 또 우리를 택하시고 부모의 사랑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식을 감정과 욕심가운데 그릇 인도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선 공의와 또 오래참는 사랑으로 그들을 기다리시며 다시 돌이키시며 다시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주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함이라” 이스라엘은 지극히 못난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깨달은 유일한 백성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게 오직 하나님만이 택한 자와 항상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며 구원하시는 유일한 주가 되심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참된 구원자임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이제 하나님게선 그들과 함께 하셔서 동서남북에 흩어진 백성들을 불러모으시고자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멸망될 때 또한 많은 백성들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졌습니다.(디아스포라) 케인이란 학자에 의하면 많은 유다 망명객들이 지중해의 도서지방은 물론이고 중국에까지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이제 그들을 다시 모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선 다시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거룩한 사명을 맡겨주시기 위해 불러모으십니다. 이스라엘 랍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이 두 번 성취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첫 번은 바로 이 예언대로 바벨론에 망해 각지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귀환한 것이며 또 한번은 1948년 엑스더스호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온 일단의 유대인들에 의해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졌을 때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께서 마지막날 공중에 임하시면 천사들을 보내사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 백성들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2장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14-21)
14-21절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이 말씀은 이사야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바벨론은 실로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강대국이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그 성벽은 이중벽으로 약 60미터 높이로 건축되었고 그 위에 다시 약 90미터 높이의 망대들이 세워져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성벽의 두께는 밑부분이 약 56미터였고 그 성벽으로 둘러 싸여진 면적이 약 500평방 킬로미터였습니다. 더구나 그 성벽주변으로 강물이 흐르고 바벨론 사람들은 무역을 위해 호화여객선을 타고 다니며 자신들의 힘을 드러냈습니다. 바벨론은 난공불락의 성읍이었고 그 성읍안에 하나님없는 견고한 바벨론 문명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노예백성으로 살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지으시고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선 이제 하나님의 권능으로 새 일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16,17절에서 하나님께선 과거 출애굽 당시 홍해를 가르시고 바다가운데 길을 내사 그 백성을 첩경으로 인도하시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 시킨 사건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과거의 일만 해도 믿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8) 왜냐면 하나님께서 이전일은 기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새 역사를 이루시고자하시기 때문입니다.
19절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 새 일은 역사적으로 B.C 539년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가 난공불락의 바벨론을 멸망시키며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시키는 사건입니다. 바벨론이 내분가운데 흔들리고 있을 때 신흥강대국으로 일어서는 바사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호화여객선으로 파티하던 귀족들이 그 배를 타고 도망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선 이방의 바사왕 고레스를 쓰셔서 아무 조건없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도록 아낌없이 물자를 제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고레스를 ‘내 목자’라고 하셨고(사44;28)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사45;1)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직 바벨론이 강대국으로 성장하지도 않은 시점에서 하나님께선 이사야를 통해 장차 약 150년 후 바벨론을 멸망시킬 고레스왕의 이름까지 나타내셨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소감발표도 하지 않은 이방인인 그가 구원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다니 정말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 놀라운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처럼 하나님께선 택한 자들에게 새 일을 이루심으로 그 영광을 드러내시며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과거 하나님 없는 지상낙원을 꿈꾸며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강대국 소련도 갑자기 출현한 (머리에 세계지도가 그려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의해 문을 열게 되며 택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또 현재 우리센타에서도 고레스와 고르바초프와 같은 고씨인 고영훈 목자님께서 하루도 빠짐없는 새벽기도를 하심으로 하나님의 새 일을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과거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땐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이 윤봉길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터뜨리고 안중근 의사가 일본 대장을 쏴 죽여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는 유관순 누나가 삼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켜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이 돼서 우리민족의 해방은 우리의 노력이나 힘이 아닌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일본이 항복해서 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나중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가난한 심령의 우리 민족을 택하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때문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현재 북한이 불안한 김정은 체제가 되고 격변하는 시점에서 우리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새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섭리가운데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 일을 믿고 영접하며 그 가운데 쓰임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의 새 일을 깨닫고 쓰임받을 수 있습니까?
첫째, 과거에 억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과거의 일은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속에 남아 현재를 억매이고 정체하게 합니다. 미래의 희망을 빼앗아 버립니다. 이전일과 옛날일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죄악으로 실패한 것을 자꾸 기억할 때 억매임이 되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실패, 신앙생활에서 실패한 기억을 놓지 못할 때 작은 한계에 부딪히면 “내 주제에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어?” 불신에 빠져 주저앉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일을 생각하지 말라.” 왜냐면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1;18)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103;12)  
또 과거에 잘나간 때만 기억하면 현재 앞으로 나아지 못합니다. 잘나갔던 과거를 생각하며 허무와 무기력에 빠집니다. 현재는 (영어로) present로 선물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현재 이 시점이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임을 영접하고 과거로 인해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주신 이 시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둘째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봐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신자들은 본향으로 돌아갈 때 지나야 될 어두운 광야같은, 메마른 사막같은 세상에서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타 죽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두려움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앞서 가시며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며 인도하십니다. 광야와 사막의 특징은 길이 없고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선 천지를 지으시고 세상의 모든 생명을 지으시고 또 세상을 주관하시는 권능자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시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나와 함께 하시며 내 앞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또 세상은 어둡고 메마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손을 잡고 믿음으로 한 걸음씩 발을 디딜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새 일에 두려움과 부담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기대와 설렘 가운데 준비하며 때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귀한 역사가운데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 일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눈과 믿음을 허락해 주실 수 있길 기도합니다.
새 일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한 새 구원역사,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역사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두려움과 염려로 심히 위축되어 있고 자기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통한 새 구원역사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도 세계 경제가 위축된 가운데 알 수 없는 불안과 염려에 시달리고 경쟁적인 세상일에 마음이 오므라들어 있습니다. 내 한 몸, 내 가족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통하여 새 일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은 나 한 사람, 우리 가정을 통해서 또 우리 모임을 통해서 이 말세의 때에 놀라운 새 일을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비젼을 영접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을 영접해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 힘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동참해야 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새 봄학기에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비전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이 하나님의 비젼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도록 준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면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내어 그 택한 백성을 마시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승냥이와 타조는 거칠고 난폭한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그들도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행하신 놀라운 구원역사를 인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은 그 지으신 백성을 통해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서이십니다. 부족하지만 택한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으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번에 이 말씀을 맡았을 때 또 무슨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시는가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부족하고 완악한 죄인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새 일을 기대하게 됐습니다. 죄인이 부족하지만 매일 30분 이상 기도와 30분 이상 말씀묵상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제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신입생들이 몰려옵니다. 현재 모세처럼 항상 섬기시며 인도하셨던 서제임스목자님의 투병가운데 많은 두려움과 부담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믿음으로 새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준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부족할 지라도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투쟁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하나님의 새 역사가운데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증거하고 또 찬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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