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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6-11 (일) 13:20
분 류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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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14강]예루살렘 공회
2023년 사도행전 제14강                                                      고 영훈
               예루살렘 공회
말씀/사도행전 15:1-35
요절/사도행전 15:28,29a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이제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가 이루어집니다. 많은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방 땅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할례, 율법, 전통, 생활방식 등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런 장벽들 때문에 서로 하나가 되기 어려웠고 복음의 본질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논쟁을 통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복음의 본질을 확정했습니다. 이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은 우리에게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고 복음 역사를 잘 섬겨나가기를 기도합니다.

I. 복음 진리를 수호하는 바울과 바나바(1-5)
1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예루살렘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들보다 이방인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성령의 한 그릇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유대로부터 내려온 형제들이 안디옥 교회에 들어오면서부터 분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입니다. 교회에서 형제들을 가르친 것을 보면 지도자급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을 보면 구약 성경과 유대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들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당연히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었는데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가르치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할례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외적인 표식입니다.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또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하나님이 명하신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창17:27 출12:48). 이 할례는 아브라함도 받았고 모세도 받았고 다윗도 받았고 예수님도 받았고 열두 제자들도 받았고 바울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성경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와 율법을 더해야 합니다. 인간의 공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2a을 보십시오.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란 NIV 영어 성경에 sharp dispute and debate로 나오는데 아주 날카롭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고 싸우는 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은혜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 율법주의자들과 이렇게까지 다투고 변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복음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마련하신 것으로서 완전하고 완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어떤 ‘플러스 알파’를 덧붙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이 복음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은 절대적이고 유일한 복음을 상대화 시키는 죄악입니다. 이 때 복음은 그 생명력과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복음의 진리와 절대성을 굳게 붙들고 조금도 그들과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들과 타협하여 할례를 묵인했다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로 전락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유대교의 율법과 형식 속에 사장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또 이방 세계의 선교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타문화권의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다른 것은 다 양보한다 해도 복음의 진리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2b을 보십시오.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갈등과 혼란만 커졌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과 바나바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바울 일행은 교회의 전송을 받으며 안디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중간 경유지인 베니게와 사마리아 센터에 들러 선교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그곳의 형제들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의 뜨거운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모든 역사를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순간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리새파 중에서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들도 이방인들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마땅히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키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죄악 된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들은 초대 교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었지만 아직까지도 복음 진리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율법의 역할이 무엇이고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II. 예루살렘 공회(6-35)
6절을 보십시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방인도 유대인처럼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들로 구성되었고 바리새파 출신들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전통을 언급하며 이방인도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베드로와 야고보를 통해서 깨우쳐 주십니다.

7-9절을 보십시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본래 그도 다른 유대인들처럼 유대의 율법과 전통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고넬료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생각을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율법에 금지된 부정한 짐승들을 보여 주시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부정한 짐승들은 율법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율법 없이 살아가던 부정한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셔서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는 할례와 율법을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들은 후에 고넬료의 집에 가서 생명을 얻는 회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똑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구원의 보증으로서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은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과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마음에 성령이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율법 없이 함부로 살았던 이방인이라도 진실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질 때 마음을 깨끗케 해주십니다. 여기에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이를 기초로 베드로는 할례를 주장하는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을 통하여 복음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1:16). 그런데도 할례를 주장하는 것은 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시험하는 죄악입니다. 또 베드로는 할례와 율법을 요구하는 것은 조상과 자신들도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이 조상과 우리도 메지 못하던 멍에라고 했습니다. 이 말대로 율법의 멍에는 누구도 멜 수 없는 무겁고 힘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메고 있던 멍에도 풀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전에 없던 멍에를 양들의 목에 메는 것은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악한 행위가 됩니다. 이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율법의 멍에를 메게 되면 자유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더 이상 신앙생활이 기쁘지 않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가 사라지고 자기 의와 자기 불의가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베드로는 구원을 얻는 데는 다른 조건이 필요 없음을 단호히 선언했습니다.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나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나 동일하게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줄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구원은 결코 율법의 행위나 할례를 행한다고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구원의 은혜를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아니하시고 믿기만 하면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3:16에서 감격적으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절대 기초는 바로 주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이 은혜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며, 이 은혜가 가져다주는 생명력으로 주님을 섬기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의 말에 그 동안 열심히 변론을 하던 모든 무리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나바와 바울이 나서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이방인 가운데 이루신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역사를 보고하면서 자신들을 통해 이루어진 성령의 역사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체험한 그 역사와 동일선상에 있음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야고보가 나서서 말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서 현재 사도 베드로를 이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변화되어 교회의 기둥과 같은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할례주의자들이 자기들 편으로 여길 만큼 전형적인 유대인으로서 엄격한 율법 준행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야고보서를 보면 그가 얼마나 행함을 강조한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례주의자들은 야고보가 혹시 자기들 편을 들어 주지나 않을까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그는 시므온 곧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방인 중에서 구원의 역사를 처음으로 이루어 주셨음과,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고 있음을 증거하였습니다. 16-1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아모스 9:11,12과 이사야45:21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실 때 유대의 남은 자들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 되리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는 고넬료 사건이나 바울과 바나바를 통한 이방 선교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해 놓으신 말씀이 성취된 것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도록 뜻을 두셨음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을 두지 않으심을 확증해 보였습니다. 이로써 베드로의 말대로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임을 확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야고보는 이 모든 사실을 기초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19,2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야고보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모든 율법으로부터 자유 하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행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야고보는 이방인에게 4가지 사항 즉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여기서 ‘우상의 더러운 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희생 제물을 가리킵니다. ‘음행’은 이교의식이나 성전 성매매와 연관된 음행이거나 구약 성경에 금지된 근친결혼 등을 뜻합니다. ‘목매어 죽인 것’은 동물의 피를 빼지 않은 것인데 이방인들의 제사나 식사 때에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피’는 제물의 피를 맛보거나 마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최소한 이런 4가지 사항을 멀리해 주도록 부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이는 곳곳에 유대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교제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위의 4가지는 율법에 금한 것이어서 유대인들이 혐오스럽게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일들을 행하는 이방인들을 역시 혐오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로 들어온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들이 혐오스렵게 여기는 것들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유대인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성령의 한 그릇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최소한 이런 것들을 멀리하여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하나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복음을 믿는다고 해서 무조건 다 자유가 아니요, 신앙의 중심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규례가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의 덕을 위하여 최소한으로 삼가야 할 것들과 최소한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삼가야 할 것들은 술과 담배 문제나 마약, 도박, 음란물 같은 것들은 삼가야 할 것들입니다. 반면에 일용할 양식, 소감, 1:1말씀 전파 등은 UBF로서의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알기 위한 방편으로서 그 의미와 중요성을 영접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는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 공회의 결의사항을 보증할 사절로 뽑혔습니다. 23-29절은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이 이들 편에 부친 편지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편지의 수신인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입니다. 24-27절은 편지를 보내게 된 동기를 적고 있습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사도와 장로들은 안디옥 교회에 가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여러 가지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대에서 내려와 형제들을 미혹하던 자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최고의 칭찬과 인정을 함으로써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깊이 신뢰하는 훌륭한 목자임을 보증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 사항이 무엇입니까? 28,2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사도와 장로들은 이 결정이 성령과 우리의 결정이라고 하여 성령을 앞세웠습니다. 이는 공회의 결정이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이요, 성령께서 인도하신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예루살렘 교회는 오직 믿음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를 수호하고 확증했습니다. 이로써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 헛된 주장이었음이 만천하에 공포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율법주의자들은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기독교는 유대교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세계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다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 진리가 확고히 서게 되었습니다. 민족, 문화, 전통, 관습, 할례, 무할례 등 모든 문화의 장벽을 초월해서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또 선교지에서 일어난 문제를 본 교회가 해결해 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줌으로써 본 교회와 이방 교회와의 사이에 사랑과 신뢰의 관계성이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본 교회의 편지를 읽고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큰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동안 율법주의자들로 인한 무거운 멍에와 짐을 벗고 다시 주님의 은혜로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그들은 흔들리던 신앙을 바로 잡고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서게 되었습니다. 더욱 더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함께 내려온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였으므로 여러 말로 형제들을 권면하고 굳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문제가 완전히 수습되자 형제들의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계속 머물며 수다한 다른 리더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과거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불신자 집안에서 나고 자라 이방인 중에서도 이방인인 제가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받게 되었음을 깨닫고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학생 시절 영적인 무지와 죄악된 습관들을 반복할 때도 목자님들은 율법적인 잣대로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으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품고 인내하고 끝까지 섬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장점은 살려 주시고 약점은 감당해 주심으로 제가 영적으로 잘 성장하게 도와주셨습니다. 만일 우리 모임이 율법적인 모임이었으면 신앙의 기초가 없는 저는 견디지 못하고 세상으로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족한 저를 오직 주님의 은혜로 구원하여 주시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저도 제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동일하게 캠퍼스 양들을 율법적인 잣대로 섬기지 않고 오직 인내와 사랑으로 잘 섬겨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싸웠습니다. 또 성령께서 예루살렘 공회를 통해 복음 진리를 확증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오직 믿음으로,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복음 진리가 얼마나 중요한 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거짓 진리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복음 진리를 수호하는 진리의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복음 진리위에 굳게 서서 양들이 메고 있는 율법과 죄의 멍에를 벗겨 주고 이 복음 진리를 땅 끝까지 전파하는 세계 선교 사명을 줄기차게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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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5강]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23-06-18 328
3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9강]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관리자 2023-07-16 302
2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2강]이방의 빛 바울 관리자 2023-05-28 297
28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1강]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294
2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1강] 안디옥 교회 관리자 2023-05-21 282
2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0강]일어나 잡아먹어라 관리자 2023-05-14 276
25 요한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특강]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관리자 2023-07-30 273
24 누가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관리자 2023-07-23 270
2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관리자 2023-06-25 254
2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4강]예루살렘 공회 관리자 2023-06-11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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