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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7-23 (일) 16:2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23년_여름수양회_주제_4강-1.hwp (86KB) (Down: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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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                    최바울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말씀/누가복음 24:1-53
요절/누가복음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신체의 모든 근육이 약해지는 SMA라는 병은 치료받지 않으면 2살 이전에 90%가 사망하는, 치명적인 유전질환입니다. 이 병이 무서운 병이긴 하지만 불치병은 아니라서 ‘졸겐스마’라는 주사제 한방으로 완치가 가능한데 문제는 그 주사 한방이 25억 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이 약이 건강보험적용을 받게 되어 80만원까지 떨어지게 되면서 현재 이 병을 앓고 있는 200여명의 아이들이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던 아이가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부모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죽는다’는 것은 가장 슬픈 소식이고 ‘살아났다, 살 수 있다’는 것은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83세인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63년 안에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대부분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누가가 우리에게 정말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우리 인생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놀랍고 희망찬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될 수 있는지, 부활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여시고 성경 말씀을 통해 부활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1-12)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부터 웬만한 활동은 다 금지되는 안식일 준비일이였기 때문에 장례절차도 없이 급하게 장사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실 때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큰소리치던 베드로도,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따라 온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의 위치와 예수님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확인한 후 돌아가서 향품과 향유를 준비했습니다.(23:50-56)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일요일 새벽 동틀 무렵,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라도 발라드리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들었고 입구는 들짐승이 시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커다란 돌로 막았습니다. 이 돌의 무게가 많게는 2톤 가까이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묻히시고 무덤이 봉인되는 것을 지켜본 여인들이 무덤입구가 돌로 막혀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여인들이 조금만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했더라면 아마 이곳까지 올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활의 믿음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한번 가보기나 하자, 혹시 알아’ 하는심정으로 왔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왔든지 여인들이 가서 보니 무덤 입구를 막고 있어야 할 커다란 돌이 마치 여인들을 부활의 현장으로 초청하듯 옆으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용기를 내서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이번에는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이 옮겨져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다! 평소 예배 때 말씀을 잘 들었거나, ZOOM으로 성경공부 할 때도 다른 사이트 보며 한 눈 팔지 않았다면 여인들이 이 두 가지 범상치 않은 사건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부활의 가능성을 떠올렸어야 했습니다. 부활을 암시하는 증거 앞에서 설레며 기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근심했습니다. 죽음의 세력에 붙들려 있을 때 여인들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내면은 근심에 싸여 무덤처럼 어둡고 슬펐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여인들이 근심할 때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곁에 섰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의 드레스코드가 영 무덤과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검은색 구두에 검은색 깃털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초상집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의 현장입니다. 천사들은 칙칙한 상복 대신 찬란한 부활의 예복을 입고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5,6a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천사들의 메시지에 담겨 있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께서 완전히 부활하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7명(사르밧 땅의 과부아들, 수넴 여인의 아들, 야이로의 딸, 나인성의 청년, 나사로, 여 제자 다비다, 유두고) 등장합니다. 또 죽음을 겪지 않고 승천한 인물이 두 사람(에녹과 엘리야) 나옵니다. 그런데 앞서 7명은 잠시 소생했다가 결국 다시 죽어 무덤에 있기 때문에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무덤 자체가 없는, 즉 우리와 상관이 없는, 매우 예외적이고 특별한 케이스에 불과합니다. 우리처럼 죽었다가 무덤에 묻히신 후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겪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지만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심으로 진정한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신 완전한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소망하고 간절히 바랄만한 참된 부활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빈 무덤은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줍니다. 인간이 불행한 근본 원인은 ‘모든 인간은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아무리 공기 좋은 전원주택에서 무공해 유기농만 먹고 산다 할지라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잘난 자나 못난 자나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누구나 그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는 무덤입니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며 죽음에 대해 초연한 모습을 보였던 스티브 잡스도 연이은 재발로 죽음이 가까워지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최첨단 치료들을 받았지만 결국 죽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죽음의 세계 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진정한 희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입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결혼을 위해, 승진을 위해, 더 좋은 집과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치열하게 살다가도 가까운 사람의 부고를 듣거나 내 몸 어딘가에 이상이 생기면 일순간에 죽음권세에 사로잡혀 허무와 무의미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번 뿐인 인생 즐기며 살아야지! 한번 갈 때까지 가 보는 거야!’ 하며 쾌락을 좇아 본성대로 살기 쉽습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차피 죽으면 끝인 데 아등바등 살 필요 있어?’ 적당히 안주하며 개척하고 도전하는 것 없이 무기력하게 살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장차 우리도 부활하게 된다는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고전15장에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외쳤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두 번째 세 번째 그 다음 열매가 되어 예수님과 동일하게 부활하게 됨을 선포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님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 무덤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무덤은 종착지가 아니라 경유지입니다. 우리의 무덤이 예수님의 무덤처럼 빈 무덤이 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어느 날 하늘로부터 나팔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 날에 대한 준비 없이 살았던 자들은 얼마 전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북한의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에 놀라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던 사람들처럼 당혹스러워 할 것입니다. 공습경보 사이렌소리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하늘로부터 나팔소리가 울리면 절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전 4:16,17절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부활신앙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과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하여 칙칙한 무덤을 나와 아름다운 천성에서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활을 믿고 사는 자와 그런 건 허탄한 이야기일 뿐이라며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영생을 소망하며 깨어 의를 행하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살아 있는 자’가 있고 부활의 믿음이 없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면서 한번 뿐인 인생을 허비하며 사는, ‘죽은 자’가 있습니다. 저희가 무덤에 계시지 않는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부활이 아무리 좋은 소식이라도 쉽게 믿을 수 없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예수님이 평소 하신 말씀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6b을 보십시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여러 차례 자신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눅9:22,44,18:31-33) 여인들은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평소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도, 예수님의 죽으심도 이전에 하신 말씀의 성취임을 깨달았습니다.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소식도 이전에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습니다. 여인들이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 때 더 이상 슬픈 얼굴로 무덤 속을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무덤을 박차고 나와서 열 한 사도에게 달려가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번에는 사도들이 문제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여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이 너무 슬픈 나머지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벌겋게 상기된 채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여인들 가운데 과거 일곱 귀신이 들렸던 마리아가 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안을 들여다보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길 뿐이었습니다. 부활은 남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만 듣고 믿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부활의 현장에서 부활의 증거들을 보고도 믿기 어렵습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부활을 믿도록 도와주십니까?

Ⅱ. 제자들과 동행하신 예수님(13-35)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짐을 싸서 예루살렘 센터를 빠져 나온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이제 다 끝났다며 고향으로 돌아가 그 동안 사명 감당하느라 못 다한 아들노릇, 가장 노릇이나 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며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그들과 같이 걷는 이가 있었습니다. 15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의와 절망에 빠진 채 부르심에서 멀어져 가는 그들과 가까이서 함께 걸으며 동행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심문받으실 때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멀찍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고 능력을 행하시고 떡을 먹이실 때에는 서로 더 가까이 있겠다고 다투었지만 예수님이 고초를 겪으실 때에는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과 한동안 말없이 동행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친구처럼 나와 동행하시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내가 가장 외롭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나와 동행하시며 나의 슬픔과 고통, 고뇌와 좌절과 고민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두 제자는 바로 옆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계셨기 때문이었을까요? 이는 그들의 영적인 눈이 가리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자 예수님도 마치 그들이 초면인 것처럼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물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낯선 남자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글로바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참 답답한 사람이네..” 예수님께 핀잔을 주면서 조금씩 선을 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 내 인생을 회복시켜 줄 구원자로 철썩 같이 믿었는데 십자가에 죽으시는 바람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예수님 앞에서 소감으로 발표했더라면 차마 쓰지 못했을, 그들의 솔직한 속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가볍게 책망하시고 부활의 영광은 반드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또다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 곧 구약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해보는 예수님과의 성경공부가 그들의 차가워진 마음을 녹이고 뜨겁게 했습니다. 가시처럼 날카롭고 길가처럼 딱딱했던 그들의 마음이 성경 공부를 하고 나서 한결 은혜롭고 부드러워졌습니다. 더 가시려는 예수님을 붙잡고 함께 유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집에 머물며 함께 식사할 때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자 그들의 영적인 눈이 떠져 그제야 예수님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자세히 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풀었던 짐을 다시 싸서 단숨에 떠나온 예루살렘을 향하여 되돌아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의 기쁨이 임했을 때 부르심에서 멀어져 가던 자들이 다시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Ⅲ.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36-53)
3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모여 “주께서 과연 살아났을까?” 라는 주제로 어설픈 부활 심포지움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몸의 부활을 증명하시기 위해 못 박힌 손과 발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손발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예수님은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청하시고 일부러 제자들 앞에서 가시를 발라가며 맛있게 드셨습니다. 생선을 드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말씀을 기초로 부활신앙을 심으셨습니다. 44,45절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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