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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1-08-17 (수) 18:22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여름수양회_주제6강-1.hwp (29KB) (Down: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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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수양회 제6강]하나님의 그리스도-문대범

2011년 여름바이블 캠프 주제 6강                                                       문대범

하나님의 그리스도
말씀 / 누가복음 9:18-27
요절 / 누가복음 9: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현재 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스마트폰, 컴퓨터 등으로 클릭 한번이면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정작 중요한 정보는 놓치고 가쉽거리의 별 도움 되지 않는 정보들만 많이 접하며 살아갑니다. 얼마 전 한 연예인의 스탠포드 졸업을 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긴 논쟁을 하다가 결국 법적인 문제로 까지 발전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 진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하등 도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꼭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의 구원과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타진요가 아니라 ‘예진요’ - 예수님께 진리를 요청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귀 기울여 듣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Ⅰ.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8-22)
  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누가복음에는 특히 중요한 역사를 앞두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3:21), 열두 사도들을 부르실 때(6:12), 변형되사 영광스러운 모습이 되실 때(9:28), 십자가를 지실 때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물으실 때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본문의 사건이 매우 의미심장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 시점에서 따로 기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장차 세상에 나가 예수님을 증거해야 할 자들로서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해 잘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지혜와 경험으로는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영적인 눈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바로 알고 신앙 고백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무리들은 예수님을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당시에도 예수님을 심지어는 귀신의 왕이라고 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11:15). 그러나 편견 없이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게 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와 같이 영적 지도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예수님을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수많은 종교의 창시자 중 한명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 대하여 알면 알수록, 편견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행하심을 보게 되면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깨닫게 됩니다. 그 시대에도 영적소원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무리들의 말은 완전한 답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무리들의 견해를 들으신 후 제자들의 주관적 견해를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But what about you?" 예수님은 제자들의 예수님께 대한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견해를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분명한 개인 신앙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중 많은 사람은 남들이 가니까 덩달아 군중 심리에 이끌려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문제 앞에서 모두 예수님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반면 예수님께 대한 분명한 개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베드로가 확신 있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그의 대답은 짧았으나 예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정확한 답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리스도”란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리스도란 말의 어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구약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 부었습니다. 본문에서는 "the Christ"로 구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고 예언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바로 그 때에 여자의 후손 가운데서 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3:15) 그리고 각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견고히 하시고 이 약속을 기초로 인류 구속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을 믿고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는 가운데 선민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약속하신 메시아로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약속된 대로 하나님이 보내시고 인치신 바로 그 메시아이십니다.(행17:3) 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 즉,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그리스도란 뜻입니다. 이는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의 신성을 말해줍니다. 빌립보서 2:6절에서는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 하였고, 골로새서 1:15절에서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신 하나님의 본체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십니다(요 10:30;요일4: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 되십니다.(요14:6)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이는 예수님만이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위해 예비하신 유일하고 완전한 중보자요 구원자가 되신다는 선포입니다. 인류역사의 시작과 함께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어 왔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자기를 구원해주고 지켜줄 구원자를 찾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사람들이 만든 갖가지 거짓 메시아, 거짓 사상들이 완전한 구원을 줄 것처럼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구원자는 결국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과 명예를 구원주로 믿고 이를 얻기 위해 온 생애를 바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요, 세상 권세와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허무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벧전1:24) 또한 오늘날 사람들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을 구원자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과학문명은 우리의 삶을 이전보다 현저히 편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은 나날이 늘어나고 또한 질병 없이 사는 날이 곧 도래할 것으로 소망을 심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세상은 영육간에 심하게 파괴되고 있어 인류가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구원의 길은 우리에게 참된 생명과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들의 유일한 구원자시요, 진정한 희망이 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입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은, ‘나는 진정으로 구원자가 필요한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이런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나아가 나의 전 인생을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섬기겠다는 고백입니다. 로마서 10:9, 10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를 볼 때 구원은 아주 쉽게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제시하신 구원의 길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까다로운 율법을 흠 없이 지켜야 하거나, 모슬렘교와 같이 반드시 몇 번 성지 순례를 해야 하고 1000가지 선을 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만 하면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이 없으면 결코 고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믿으면 되었지 꼭 입으로 고백할 필요가 있는가 생각합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경희의료원 병리과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병리과는 주로 조직을 현미경으로 보고 어떤 질병인지 진단하는 일을 하는데 특히 암과 같이 치명적인 질환들을 진단합니다. 그래서 동료의사들이 결과 좀 빨리 알려달라고 독촉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100%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 구두로 진단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제가 비록 99% 확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가 입으로 진단을 말하는 순간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제가 진단을 입으로 시인 할 수 없다는 것은 제가 진단을 확실하게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저에게 진단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백 할 수 없는 신앙이라는 것은 확실한 믿음이 없는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일지도 몰라 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결국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마치 혼인서약과 같아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견고히 맺어주는 출발점이 됩니다. 우리가 고백을 하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귀한 신부로 맞이해 주시고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고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함께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고백을 통하여 맺어진 이 관계는 누구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신앙고백 이후에도 여전히 실수와 허물을 드러내었지만 주님은 그의 고백을 기초로 변함없이 그를 선하게 인도하시고 복음역사에 교회의 반석이요 인류의 스승으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또한 이 고백은 더 나아가서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삶을 살겠다는 인생 방향을 의미합니다. 어떤 유혹과 핍박이 있더라도 왕 되신 예수님께 충성하고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출교당하는 큰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이는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면 불신 가정이나 캠퍼스에서나 직장에서 핍박과 미움과 따돌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두려워서 예수님께 대한 신상고백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과 함께 진정한 승리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초로 비로소 그리스도로서 감당하셔야할 사역에 대해서 가르치기 사작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예수님은 ‘must'라고 하심으로 이 길은 그리스도로서 필연적으로 가야할 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하기를 원하지 고난 받기는 싫어하고, 인정과 사랑받기를 원하지 따돌림 당하고 버림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롱과 채찍질과 멸시 등 많은 고난을 받으셨고, 사람들로부터 버린바 되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버림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후에는 반드시 부활하셔야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난을 통한 영광의 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 이 길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가실 길이었습니다. 이 길이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의 길이요, 하나님의 뜻이기에 여기에는 어떤 타협도, 다른 길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가실 길을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에게도 가야할 길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Ⅱ. 제자의 길(23-27)
  예수님은 신앙고백에 이어 제자의 삶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는 신앙고백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부연 설명한 셈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분명한 각오와 자세가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곧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면서도 분명한 각오와 자세가 없으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자기부인: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면 자기 인격이나 개성을 부인하고 자기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심하게 반발합니다. 그러나 자기부인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분명한 자세로 따르면 죄악된 자기는 분명히 없어집니다. 그러나 인격이 고상하게 되고 개성이 더 뚜렷해지고 하나님 안에서 자기 존재가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됩니다. 자기부인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할 때 방해되는 자기계획, 세상적인 꿈, 욕심 등 이 세상에 속한 죄악된 자기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서로 일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육신의 소욕을 갖고 사는 죄악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것을 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해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크신 소원과 뜻을 두시고 역사하시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살고자 하는 소박한 연분홍 빛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성령으로 메시아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이로 인해 마리아와 요셉은 평범한 시골부부에서 하나님의 메시아를 보내는 구원역사에 쓰임 받은 가장 영화로운 가정이 되었습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 자기 십자가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만이 져야할 십자가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이지만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는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두운 이 시대를 진리의 말씀으로 밝히는 성경선생의 사명이 있습니다. 특별히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제자양성의 사명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온 천하에 다니며 모든 족속에게 성경을 가르쳐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이러한 사명의 십자가를 반드시 져야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라 하심으로써 각자 믿음의 분량과 위치에 따라 크기와 종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예외 없이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함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만 지고 일반 신자는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기는 좋아해도 지는 것은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십자가에 대한 자세입니다. 십자가를 안지고자 하니까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지 지고자만 하면 십자가는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기쁨과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은혜의 줄이 됩니다. 학생 목자님들은 학과 공부의 십자가만 해도 힘들지만, 일용할 양식도 먹고 기도도 하고 피싱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잠을 덜 자는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사모님들은 오전에 애 맡기고 캠퍼스에 갔다가 오후에 다시 찾고, 저녁에 다시 애 맡기고 기도 모임 갔다가 다시 애 찾는 일을 매일같이 합니다. 평신도 목자님들은 양들을 섬기다가 자식뻘 되는 학생들에게 무시 받는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왜 예수님이 ‘날마다’ 라는 말을 넣으셨는지 섭섭하다고 합니다. 시대적인 trend에 맞게 주5일 정도 감당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까? 이는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듯이 매일 십자가를 짐으로써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형상이 내 안에 조각되고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자신을 점검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 성장케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분명한 구원의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말씀은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귀히 여깁니다. 사실 우리의 목숨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자에게 목숨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번밖에 없는 고귀한 목숨을 어떻게 쓰는 것이 유익한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 육신의 생명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도 있고 영원한 파멸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가 그렇게 긴 것이 아닙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어느 날 가야할 날이 오게 됩니다. 더욱이 젊음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우리 인생은 시행착오 없이 하루하루를 진리를 좇아 보람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잃지 않고자 자기를 꾸리는 것이 현명한 것 같지만 지내놓고 보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고 결국에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자기 꿈을 부인하고 젊음을 투자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잃는 자는 한 알의 썩는 밀알과 같이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구원의 도리를 좇아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자기 목숨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목숨을 잃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사는 자들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께서 장차 영광 중에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 부끄러워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가는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그때 예수님으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반면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산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 영광이 얼마나 큰지 저자는 자기와 아버지와 천사들의 영광이라는 삼중의 영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 보화를 저축하는 구원의 삶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 예수님을 따라 영광에 참예하는 영광스러운 제자의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1980년 군인이셨던 아버지와 유치원 선생이셨던 어머니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로 인해 저희 집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고 부모님의 불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교회에는 꼬박꼬박 나갔지만 우리 집을 이렇게 어렵게 만든 아버지와 하나님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는 신학의 길을 잠시 접고 친척과 동업하여 사업을 하셨는데 98년 IMF와 동시에 사업이 부도가 나며 저희 집은 모든 재산을 잃고 빛 더미에 안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운 형편 가운데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고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깊게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행이 98년 경희대 의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대학생활도 성실하게 보내며 성공한 인생을 향해 순조롭게 나가는 듯 했습니다. 학과공부도 열심히 하며 틈틈이 여러 동아리 활동과 운동, 음악도 노력하였고 이러한 저를 차츰 선배들과 친구들이 저를 문귀족 또는 Royal Moon 이라고 별명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여도 한 순간에 죽음으로 끝날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본과 1학년 의약분업 데모로 인하여 학교가 휴교하고 있을 때 같은 이유로 병원을 휴업하고 계시던 최동진 목자님과 일대일 말씀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과2학년 여름수양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신앙고백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후에도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저의 욕심 앞에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헌신 했을 때 주님은 도리어 좋은 성적을 주시고 학과 공부에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물질도 벌면서 의사로써 인정받고 살게 되니 영적 교만이 들어왔습니다. 무엇이든 내 힘으로 하여도 잘 될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죄악된 저를 주님께서는 훈련하셨습니다. 주님은 공부 안 해도 당연히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과를 간발의 차로 2번이나 떨어뜨리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병리과에 들어갔으나 극심한 근육통이 발병하여 매일 진통제를 먹으며 생활해야 했고, 더욱이 현미경을 보던 중 저의 눈에 선천성 백내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련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세상에서 낙오자가 된 것 같은 절망감에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불평에 불만으로 가득 차 기도하던 중 고후12장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영접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훈련하시려는 주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찬양팀 인도자로서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날 망하게는 못할 것이라고 주님께 배짱부리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믿음으로 해보기로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감당코자 할 때 주님께서는 때마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건강도 차츰 나아지게 하셨습니다. 저는 능력이 없는 자이지만 교수님들께서는 저를 능력 이상으로 인정하여 주셨고 또한 몇 편의 논문도 SCI에 채택되어 경희대에서는 유일하게 유한학술상도 받게 하셨습니다. 또한 절대적인 믿음의 여인인 주연 목자와 행복한 가정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귀엽기로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딸 예랑이를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허물 많고 죄악 된 자였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그리스도 되신다는 한 가지 믿음을 가지고 살았을 때 주님은 저에게 수많은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양들을 섬기고, 찬양 팀과 성가대를 섬기는 십자가를 감당하는 삶이 도리어 지치고 힘들 때 은혜와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 안에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부담스러워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며 세상 영광을 좆는 마음이 있음을 회개하게 됩니다. 제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로 굳게 붙들고 날마다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감당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기만 하면 예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 주십니다. 더 나아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가장 영광스럽고 위대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요, 생명의 길이요 열매 맺는 인생을 사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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