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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7-02 (일) 13:16
분 류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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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22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2017년 누가복음 제22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 누가복음 13:10-35
 요절/ 누가복음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니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열여덟 해 동안 등이 꼬부라져 고통당하던 한 여인을 고쳐주신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작은 겨자씨가 땅에 심겨져 큰 나무로 성장하듯, 적은 누룩이 떡 반죽 전체를 부풀리듯 작은 믿음, 한 마디 말씀으로 인해 성장하고 팽창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 말세지말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10-21)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들린 것 때문에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고 살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지난 18년 동안 조금도 허리를 펴지 못한 인생을 살았으니 그 고통이 어떠했으며 땅만 바라보고 사는 그 삶이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여인은 잠도 남들처럼 허리를 곧게 펴고 자지 못하고 하늘도, 사람도 올려다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직립 인간으로 지으사 멀리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만물을 다스리는 위대한 인생을 살도록 만드셨는데 그의 완전히 꼬부라진 신체는 그의 인생을 꼬부라진 인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가 안식일에 회당에 온 것은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위로를 얻고자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보셨습니다.(12) 그리고 바로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해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오랜 세월의 고질병, 꼬부라진 병이 곧 펴지게 되고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열여덟 해 동안 꼬부라진 인생을 살던 여인의 허리가 곧게 펴졌으니 그 기쁨이 어떠했겠습니까? 순식간에 그의 인생이 딴 세상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와 사랑의 안수의 힘으로 강력한 귀신이 쫓겨나고 여인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꼬부라진 인생도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고침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구원자 메시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죄의 세력과 귀신의 세력으로 고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으로 인해, broken family의 슬픔과 가난에 대한 운명주의와 피해의식으로 인해 미움과 분노로 마음이 꼬부라지고, 과도한 경쟁사회가 주는 두려움과 염려로 꼬부라져 한탄하며 땅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학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짓눌리며 다람쥐 체 바퀴 돌리는 일상에 지쳐 인생이 점점 땅만 바라보는 꼬부라진 인생이 되고 있습니다. 또 더러는 정욕귀신, 교만귀신, 반발귀신, 욕심의 귀신에 사로잡혀 꼬부라져 정상적인 교제와 사귐을 갖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차게 살아야 할 귀한 존재들이 죄와 사탄에 얽매어 원치 않게 죄의 종노릇하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슬픈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한 맺힌 소원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네 병에서 놓였다’ 말씀 권세를 선포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꼬부라진 병에서 놓임 받도록 고쳐주고자 하십니다. 이 여인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주께 나가면 예수님은 보시고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로운 역사를 보고도 기뻐하지 못하고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분을 내며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며 일장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를 보시고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모든 것을 율법의 잣대로만 보았습니다. 율법의 잣대로 보았을 때 예수님은 안식일 법을 어긴 죄인이요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는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도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는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고 지적하셨습니다.(15) 탈무드에 의하면 안식일 날 동물의 등에 짐을 지우고 몰고 다니는 것은 금지했으나 짐승에게 물을 먹이는 것은 허용했습니다. 자기 짐승에게는 그렇게 자비를 베풀면서 열여덟 해 동안 꼬부라져 고통 받고 있는 이 비참한 여인을 해방시켜주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여기고 분을 내었습니다. 이는 율법을 주신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는 소치요 율법을 편협하게 적용하는 외식이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이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로 영접하시고 그를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깨우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귀한 여인을 구원하사 참 안식을 주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귀신들린 여인의 꼬부라진 몸을 고쳐주시고 안식일에 대한 근본 의미를 가르쳐주시자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한 불쌍한 여인을 보는 예수님의 관점과 회당장의 관점이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장은 율법을 고수하는데 역점을 두고, 예수님은 여인을 고쳐주고 매임에서 풀어주시기 위해 마음이 타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법을 지키는 것이요 합당한 것인가 생각해보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고통 받는 이런 불쌍한 여인을 볼 때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까? 그 여인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냉담하게 cool하게 보거나 대책이 없다고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율법에 따라 내 할 일 하는 데만 집중하여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이런 경우라면 나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도와주기를 바라겠습니까? 그저 자기 소나 자기 양이 귀해서 물 먹이는 일을 우선시 하다가 불쌍한 한 영혼을 보지 못하고 눈 감고 지나가는 사람은 아닙니까? 열여덟 해 동안 죄와 사망권세의 귀신의 세력에 시달리며 살아온 이 여인은 남 몰래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 예수님의 마음과 같이 그를 고쳐주기 위해 마음이 불타고 모든 방해세력을 물리치고 그를 이 비참함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목자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여인의 모습은 얼마 전 바로 나의 모습이었고 지금도 상당부분 꼬부라진 병으로 고침이 필요한 나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예수님께 나가 고침을 받고 또 내 주위 캠퍼스에 있는 이런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예수님께 데리고 나가 고침 받도록 돕는 목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는 어디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까? 누구를 도와주고자 기도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자기중심성, 율법적인 생각, 무정한 마음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병에서 놓임 받게 하는 구원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은지 깨우쳐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배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겨자씨 비유
  19절을 보십시오.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예수님께서 한 여인을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심으신 사건은 겨자씨 한 알을 채소밭에 심은 것과 같은 역사입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그것을 밭에 심으면 3-4m나 되는 큰 나무로 자라 공중의 새들이 찾아와 그 가지에 앉아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점에서 겨자씨와 같습니까?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 속에는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생명력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후에는 온 세상을 지배할 만큼 엄청나게 크게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큰 나무는 큰 왕국을 상징합니다.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든다는 것은 수많은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제국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고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생명이 있었기에 점점 자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마침내 로마를 정복하고 세상 만민에게 구원을 주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심겨진 겨자씨의 역사입니다. 아브라함의 심령에 한 알의 겨자씨, 약속의 말씀이 심겨졌을 때 그를 통해 하늘에 허다한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자들이었고 어부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 소망을 가지고 이들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양성 역사는 점점 자라 마침내 온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알 때 우리는 한 사람을 소망 가운데 섬기게 되고, 한 말씀을 심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작은데서 시작하지만 말씀의 생명력과 믿음의 power로 인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팽창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둘째, 누룩 비유
  20,21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적은 양의 누룩은 어른 10명이 하루 동안 먹을 수 있는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누룩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깊숙한 내면에서 놀라운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누룩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내면적인 변화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복음이 한 사람의 마음에 심겨지면 어느새, 마침내 그 사람의 전 인격을 변화시킵니다. 온통 자기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사람을 헌신적인 사람으로, 소심한 사람을 대범한 사람으로, 미움과 증오의 사람을 사랑의 사도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누룩 비유는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의 위력을 가르쳐줍니다. 복음은 한 개인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 한 사람을 통한 영향력으로 캠퍼스가 복음화 되고, 직장과 사회가 복음화 되고, 마침내 나라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때로 나 한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의미와 영향력을 무시하여 나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고 나를 통해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미미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절대적인 복음신앙으로 살 때 사도 바울을 통해 이방인 가운데 큰 역사가 일어났고, 고 Dr. Samuel Lee 선교사님을 통해 ‘주는 정신’을 배우고 세계선교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한 사람을 통해 큰 변화의 역사,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무늬만 신자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복음신앙의 누룩을 소유한 위대한 잠재력을 가진 영향력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22-35)
  2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각 성과 각 마을로 다니시며 더욱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습니까?” 하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가 보기에 예수님이 직접 그렇게 열심히 말씀을 전하시는데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적은 것으로 인해 그는 의문이 들고 답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또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에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 부지기 수였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성서 이스라엘은 경한 일이요 온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을 날이 곧 도래하리라 꿈도 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구원을 위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시자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이런 역사를 지켜보면서 그는 점점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두 구원받을 것으로 여겼으나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적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이 구원 받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수고도 감당하고자 하지만 남는 자가 많지 않아 안타까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강력한데 구원받는 자가 적음을 보고 확신과 믿음이 흔들리는 그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은 그에게 숫자가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시점에서 그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 구원의 길을 가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십니다. 힘쓴다(make every effort)는 것은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싸운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쉽고 편한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힘드냐며 편안하고 재미있게 신앙생활 하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또 사람들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안전하게 생각합니다. 그 문에 들어가면 무엇인가 좋은 일, 유익한 일,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기 때문에 옳은 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왜 들어가기 쉽고 편안한 넓은 문을 배제하고 구태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까? 마태복음 7:13,14절은 말씀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넓은 문이 좋은 문이 아니요 쉽고 편안한 길이 결코 좋은 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좁은 문으로, 생명의 길로 들어가고자 결단하고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10:7절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14장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구원의 문이요 참된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께서 앞서 가신 길을 믿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의 문이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 이 문은 좁은 문입니다. 좁은 문은 찾는 이가 적고 그 길이 협착하여 힘듭니다. 그러나 왜 꼭 이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예수님의 길이 보이고 구원의 길로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또 이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 들어갈 기회를 얻었을 때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에 들어가고자 하나 들어가지 못할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주어진 기회,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스에 시라큐스라는 동상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동상을 보면 처음에는 그 이상한 모습을 보고 모두 웃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밑에 새겨진 글의 내용을 알게 되면 모두 감명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동상의 모습은 앞머리에는 머리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인데다 발에는 날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상 아래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내가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자원은 기회입니다. 세리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복인 구원을 받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후서 6:2절은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울 두드리며 주여 열어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구원의 문은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때 가서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날에는 자기 원하는 대로 인생을 즐기며 살다가 후에 인생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되어서야 십자가의 강도처럼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는 행운을 얻고자 합니다. 마치 구원을 자기가 원하는 때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구원은 하나님께 달렸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구원의 기회를 주셨을 때 믿음으로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문이 닫힌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뒤늦게 주인에게 항변하며 과거 주님과 함께 하며 성경공부 한 것을 내세우며 문을 열어주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7절을 보십시오.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지만 주인이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성이 없이 살던 자들이라 하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이들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악을 행한 삶이었습니다. 그 날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는데 오직 그들은 밖에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까? 29,30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이스라엘이냐 이방인이냐 상관없이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한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에 힘썼다는 자부심으로 만족하며 더 이상 투쟁을 하지 않고 안일에 빠져 산 자는 나중 된 자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된 자들이 다 안다는 교만과 자기 의로 인해 자만심에 빠져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않고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삶을 살 때, 자기 편리한 대로 살고자 할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신실하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힘쓰는 자들은 최후의 승리로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31-35절은 좁은 문으로 앞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 속히 이곳을 떠나라고 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획이 무엇이었습니까? 3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하시며 그의 위협을 개의치 않으시고 오늘과 내일은 구원역사를 섬기시고 제 삼일에는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역사를 완성하셔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명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사명인의 각오와 결단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 가정의 박해나 세상 친구들의 조롱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길을 가면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사탄이 심는 두려움과 염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인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음을 알고 한번밖에 없는 삶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데 헌신하고자 하는 분명한 사명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4,35절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멸망의 길을 가는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안타까운 탄식입니다. 예수님은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 함같이 예루살렘을 사랑의 품으로 모으려 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배척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AD 70년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의 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앞에는 넓은 문과 좁은 문이 있습니다.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고 좁은 문은 구원과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 문은 구원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상급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 예수님이 가신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며 캠퍼스 양들의 목자요 성경선생으로서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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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관리자 2013-09-29 2766
500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7강]하나님과 결혼한 시온 관리자 2011-02-20 2765
499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1강] 요나보다 더 큰 이 관리자 2011-09-11 2762
498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2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17-07-02 2758
497 신명기 [2015년 신명기 제11강] 평생에 옆에 두고 읽어라 관리자 2015-01-25 2758
496 디모데전서 [2017년 신년 제2강]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관리자 2017-01-08 2755
495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8강]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관리자 2017-08-13 2754
494 시편 [2018년 추수감사예배] 주의 은택을 감사하나이다 관리자 2018-11-18 2750
493 누가복음 [2014년 성탄 제1강]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 관리자 2014-12-07 2750
492 누가복음 [2011년 여름바이블캠프준비특강(1)]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리스닝 2011-08-01 2749
491 이사야 [2015년 성탄 제1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5-12-06 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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