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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5-18 (일) 12:53
분 류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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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15강]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014년 마태복음 15강                                                                      한아브라함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 마태복음 11:1-30
요절/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날은 쉼이 없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삶은 편해졌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주변엔 온통 힘들다, 피곤하다, 어렵다는 말투성입니다. 병원에는 스트레스, 우울증, 불면증, 등 각종 정신질환 환자로 넘쳐납니다. 그래서 요즘은 휴식, 쉼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어떻게 쉴 것인가?” 2년 전 어느 카드회사가 멋진 문구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적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사실 여행을 떠나서 자기네 카드를 많이 쓰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말에 공감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났고 카드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피곤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쉬는 것이 잘 쉬는 것인가, 무엇이 참된 휴식인지 모릅니다. 오히려 쉬고 나서 더 피곤해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인생들에게 참된 쉼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게로 오라.” 초청하십니다.

제 1장, 세례요한을 도와주신 예수님 (1-19)
  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셨습니다. 11장 1절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제자양성과 복음전파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때 세례요한이 옥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질문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 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세례요한이 왜 이런 회의적인 질문을 하였을까요?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그의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당신이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것일까요?그는 심판하실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3:11). 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가로이 병든 자를 고치시고 전도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사역이 답답하고 성에 안차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요한을 예수님은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예수님은 요한의 질문에 직접 “내가 메시아다”라고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재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을 요한에게 보고하도록 하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즉, 이사야서 말씀대로 행하고 계심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사역을 하고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맹인이 보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입니다. 즉 심판보다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결국 심판 날이 오지만 그때까지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지금 현재 활발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해 주신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의 사역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더라도 이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복된 자가 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메시아 관을 갖고 있다가 이에 맞지 않으면 마음에 회의를 품고 실족하기 쉽습니다. 특히 예수 믿으면 축복 받는다, 승리한다는 축복의 메시아, 승리의 메시아 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소원이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족하고 예수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나의 소원, 계획도 예수님 안에 내려놓고 예수님 말씀을 따라감으로 실족치 않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요한에 대하여 칭찬하십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얼마나 위대한 종인가 직접 말씀하시기보다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광야에 흔들리는 갈대는 당시 세상 지도자들을 빗대어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세상 지도자들은 광야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자기의 유익을 좇아 시대의 조류를 따라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메시아의 선구자로써 목숨 걸고 자신을 바쳤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요한의 또 하나의 특징은 특이한 패션에 있었습니다. 거친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허리에 질끈 동여맴으로 패션을 완정(?)했습니다. 부드러운 옷과 반대되는 광야의 거친 패션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은 부유한 삶, 사치한 삶, 물질추구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당시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고생을 하든 말든 자기 배만 채우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사명 중심의 삶을 살며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의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세례요한이라는 것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요즘은 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세례요한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세례요한과 같은 지도자를 세워주시도록 기도하고 우리도 세례요한과 같은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11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요한이 가장 위대한 자라 칭찬하시고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세례요한은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고 메시아를 예비하는 가장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요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갈릴리 어부 출신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례요한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감당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위대한 일,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세례요한이 오기 전까지 천국은 굳게 닫혀있었고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증거 이후로 천국은 완전히 열리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의 가치를 아는 사람, 강한 영적 소원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천국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고 죄 사함을 받고자 하는 소원이 강렬하니까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를 만나 주십니다.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천국은 뜨뜨미지근한 사람, 믿음도 사랑도 뜨뜨미지근한 사람, 소극적인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사랑도 화끈한 사람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의 칭찬을 받고 천국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사람들이 가까이 온 천국에 대하여 얼마나 무반응인가 하는 것을 비유로 책망하십니다.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반응이 없는 이들을 장터에 앉아서 놀이하는 아이들로 비유하셨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 폰을 가지고 놀죠. 제가 아이였을 때에는 여러 가지 풍성한 놀이 문화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을 제기차기, 말 타기, 여자아이들은 고무줄, 남녀공용으로는 다방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아이들은 결혼식 놀이, 장례식 놀이를 하고 놀았습니다. 결혼식 때처럼 한쪽에서 피리를 불면 다른 한쪽에선 즐겁게 춤을 추어야 합니다. 장례식 때처럼 한쪽에서 슬피 울면 반대쪽에서는 가슴을 쳐야 합니다. 그런데 한쪽이 피리를 불어도, 슬피 울어도, 다른 한쪽이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중심과 극도의 이기주의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세대 사람들은 이런 아이들과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비판하는 데는 선수였습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면 회개해야 하는데 이들은 귀신 들렸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와서 먹고 마시면 잔치에 참여해야 하는데 포도주를 즐기는 술꾼이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이  대도 그 시대와 비슷합니다. 이 시대는 무관심, 무반응, 무감동, 삼무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는커녕 무조건적으로 비판을 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전과 같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말씀에 뜨겁게 반응하고 감동 받았습니다. 요즘은 웬만한 말씀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반응이 없으면 말씀 전하는 자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가까이 온 천국, 예수님에게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주님은 한탄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할 수 있어야합니다.
  19절 하 반절을 보십시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지혜는 하나님의 진리를 말합니다. 결과가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옳다함이 증명됩니다. 참된 지혜는 듣는 자들이 생명이 살아나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우리는 이 세대와 달라야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쉽게 감동 받고 성령의 역사에 뜨겁게 반응하며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종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특별히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정받아야겠습니다. 양들을 사랑하고 섬김으로 인정받아야겠습니다.

제 2장, 참 쉼을 주시는 예수님 (20-30)
  20-24절은 회개치 않는 고을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고라신과 벳새다는 예수님이 기적을 많이 행하신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 곳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능의 역사를 보고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들은 주의 말씀도 많이 듣고 기적의 역사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회개치 않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로서 예수님께 대한 편견과 인간적인 생각 자기의 때문에 복음을 영접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다면 다 회개하고 돌아왔을 것이다 “화 있을진저” 라고 이들을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도 반만년 역사 가운데 복음이 전해 졌던 것이 불과 백년밖에 안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사천 구백 년 동안 예수 믿고 구원받고 싶어도 그럴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복음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은혜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과거 조상들에 비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백 년 전 복음이 이 미개한 땅에 전파되었을 때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습니다. 누구나 구원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침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자기 욕심대로 살고 있습니다. 복음 듣기를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조금만 가져도 얼마든지 복음을 영접하고 구원열차에 올라탈 수 있겠지만 교만함으로 거부하는 이들은 복음을 듣지 못했던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가혹한 혹독한 심판이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복음 증거자를 부모로, 자식으로, 형제로 두고도 끝까지 믿지 않는 가족입니다. 말씀공부를 충분히 하고도 회개치 않는 자, 변화되지 않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 말씀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이 가까이 온 천국을 예수님을 겸손하게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이쯤 말씀하시고 끝내도 되는데 예수님은 계속하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 교만한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참된 지혜를 계시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자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지혜를 안 받아들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제자들, 겸손한 자들, 배우고자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십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이 계시해 주지 않으면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통해서 계시해 주십니다. 이를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수고하는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힘들고 피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봅시다. 오월은 어린이 달, 가정의 달이지만 어린이들의 일상이 어떠합니까. 어린이들은 피아노, 태권도, 영어 학원, 등 보통 서너 개 이상씩 하며 하루가 바쁩니다. 초등, 중고등학교기간에는 대학 입학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오면 끝입니까? 또 다른 시작이죠. 취업을 위해 전공, 영어에 매진하고 스펙을 쌓고자 투쟁하고 천신만고 끝에 취직하면 어떻습니까? 본격적으로 고난이 시작됩니다. 그 전까지는 경쟁의 실체가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망망대해에 나온 것 같이 무한 경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이 경쟁을 부추기고 욕심을 불어넣습니다. 더 높이 오르라고, 더 많이 소유하라고 부추깁니다. 경쟁사회에 지치고 피곤해하는 자들에게 사단이 두려움을 심습니다. “그래 가지고 밥 빌어먹고 살겠니.” 그러나 이는 저주받은 세상의 당연한 삶의 모습입니다. “땀을 흘려야 먹으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28절을 다시 보십시오. “무거운 짐진 자들아” 게다가 무거운 짐까지 지었습니다.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죄의 짐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힘들고 지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휴식, 쉼입니다. 잘 쉬는 사람이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휴식을 취합니까? 탁구를 열심히 치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들어 누워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주말에 차를 몰고 교회에 가지 않고 교외에 갑니다. 그러면 피곤이 풀리고 회복이 됩니까? 그렇지 않죠.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이고 월요병에 시달립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진정한 쉼은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습니다. 내가 내 의지대로 쉰다고 진정한 쉼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I will give you rest.” 즉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쉼을 주실 때 내가 이 쉼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 진정한 쉼을,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은 수고하고 불쌍한 인생들을 참 쉼의 세계로 초청합니다. 예수님께로 갈 때만이 참 쉼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가서 주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우리 마음에 참된 안식은 없다.” 어린 아이는 부모의 품에 있을 때 안식합니다. 강아지는 주인의 품에 있을 때 안식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께로 가서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교만한 사람은 마음이 높아지기 위해서 피곤한 투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마음이 낮아져 있습니다. 낮은 곳에 저절로 은혜의 물이 고입니다. 평강과 안식은 낮은 곳에 임합니다. 29절을 다시 보십시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십니다. 멍에를 멘다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휴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큰 오산입니다. 세상에서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힘이 솟고 건강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는 주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진정한 휴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사라 배리 선교사님이 본국에 오셨다가 저희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셨습니다. 연세가 86세이신데 다 정상이고 너무나 건강하십니다. 특히 혈관이나 뇌의 나이는 20살 아래로 보였습니다. 같은 나이에 할머니들은 거동도 못하고 말귀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지금도 양들과 일대일을 하십니다. 도움이 필요한 리더나 선교사님들을 적극적으로 도우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를 멜 때 참 쉼을 누리고 건강하고 생명력 충만한 삶을 사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멍에를 멘다 할 때 특별히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는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멍에는 소 두 마리가 함께 끄는 멍에였다 합니다. 예수님이 메는 멍에를 같이 메면 예수님이 다 끌고 가시고 우리는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99% 하시고 내가 1%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고 할 때 2인3각 경기가 생각났습니다. 이 경기는 잘 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이기냐 하면 협동이 잘 되는 사람이 이깁니다. 리더가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갈 때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이기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이 하나 둘, 하나 둘 할 때 내가 따라가면 쉽게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할 일 많은 세상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까지 메라니 슈퍼맨이 되라는 것입니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할 것입니다. 내 일 다 하고 그 다음에 주의 일 하고 그 다음에 쉬겠다. 하니까 쉼이 없는 것입니다. 주의 일 먼저하고 그 다음에 나의 일 하다가 시간이 안 되면 거기서 믿음으로 자르고 믿음으로 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안식을 누리고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과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불쌍한 인생을 살던 자였습니다. 과중한 의대공부 감당하느라 지치고 두려움의 죄 짐 지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방학 때 어느 여름 수양회 초청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제목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무도 초청하지 않았지만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서 참 쉼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휴식을 하니 힘이 생기고 그 이후 새롭게 도전하는 인생, 열매 맺는 인생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기저기 아프게 되자 육신이 피곤하니 쉬고자 무조건 쉬고자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내게로 오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시는 주님의 초청의 음성을 새롭게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는 멍에, 아니 예수님이 다 지시고 나는 동참하는 멍에, 은혜로 주님이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자 방향 잡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의기소침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전할 힘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우리가운데 참 쉼이 필요한 사람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아와 참 쉼을 얻으십시오.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말씀하십니다. 예, 주님 제가 예수님께 가겠습니다. 대답한다면 지금부터 영원히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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