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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06 (일) 12:31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5성탄1강-1(이인구).hwp (64KB) (Down: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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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성탄 제1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2015년 성탄 제1강                                                                         이 인구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말씀 / 이사야 9:1-7
요절 /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오늘 말씀은 BC 8세기경 선지자 이사야에게 임한 메시지입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대는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소망이 보이지 않는 매우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절망적인 시대에 장차 이 땅에 한 아기로 오실 메시야 탄생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아기로 인해 받을 놀라운 영적인 축복을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함으로 성탄의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스불론과 납달리 땅은 갈릴리 북방의 경계지역입니다. 이곳은 국경지역이라 이민족의 잦은 침입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BC 734년 북이스라엘 베가왕 때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이 쳐들어와 갈릴리 지역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전쟁포로로 삼고 앗수르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왕하15;29)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고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앗수르 사람들이 갈릴리 지역에 이주해오면서 혼혈족과 혼합종교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의 순수혈통임을 자부했던 유대인들에게 이 지역사람들은 큰 수치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동족인 남쪽의 유대 사람들로부터 ‘이방의 갈릴리’ 라는 소리를 들으며 온갖 무시와 차별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입사 시험에서 이력서의 본적란에 갈릴리라고 적혀있으면 아예 서류심사부터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성탄 연극에 나오는 조폭들은 다 갈릴리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로 묘사되었습니다. 갈릴리에 대한 이런 멸시는 700년이 지난 예수님 당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 “갈릴리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요1;46) 의심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의 내면은 흑암과 같이 어두웠습니다. 그들은 약육강식의 국제정세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족한 왕을 저주했고 변두리 땅을 물려준 조상을 원망했고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는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원망, 저주, 불신 속에서 어디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어 절망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흑암에서 다니고 있습니다. 흑암에 있다는 것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참 의미와 방향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태어났으므로 표류하는 조각배처럼 두려움과 절망을 안고 삽니다. 최근 사용되는 말 중 ‘헬 조선’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옥 같은 한국이란 뜻으로 한국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체념의 말인데 현실에 절망한 젊은이들에서 시작된 말이 어느 샌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며 나라를 원망하고 ‘흙수저’라며 부모를 원망합니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역사를 지나면서 힘들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매년 마다 지금이 가장 힘든 때라는 말이 반복되어왔습니다. 과거 IMF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독재정권 밑에서 최류탄 냄새 맡으며 데모했던 때도 또 그전 전쟁 후 폐허 속에서 일어설 때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전 일제 통치 때나 풍전등화 같았던 조선말기 때는 더욱 심했습니다. 과거 어찌나 가난했든지 “아침 드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가 인사말이 되어 버린 배고픈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억압과 굶주림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북조선이나 전쟁 중의 시리아 땅과는 비할 바가 못됩니다. 얼마 전 터키 해안가에서 발견된 3살 아기의 시체 사진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전쟁과 굶주림을 피해 고국을 탈출했지만 어느 나라도 받아주지 않아 바다에서 떠돌다 배가 뒤집혀 빠져 죽어 해안가에 밀려온 것입니다. 찬 바닷 속을 유령처럼 떠돌다 밀려온 아기의 얼굴은 세상의 깊은 어둠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세상의 흑암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갈릴리 땅이 고통 받고 멸시를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편 107편 10,11절은 말합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열왕기하(15;28)는 갈릴리 땅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게 된 이유를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로보암의 죄란 우상숭배의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선 당신을 떠난 인간들을 돌이키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후손들로 제사장나라를 세우시고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뜻 두셨습니다. 하지만 솔로몬 왕 사후 나라는 분열되고 북이스라엘 지배한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남 유다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도록 했습니다. 전 국민이 왕을 따라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여로보암이후의 왕들도 그의 전철에서 벗어나지 않고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음으로 하나님 없는 이방민족보다 더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며 돌이키도록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선지자까지 핍박하고 죽이며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선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강대국들을 통해 연단하셨습니다. 그것은 포기요 심판이 아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포기치 않는 사랑입니다. 만약 포기하신다면 그냥 놔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그냥 마음대로 죄짓고 살도록 놔두는 것입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신다면 결국 스스로의 죄악가운데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모든 세상역사가 다 그런 허무한 흥망성쇠를 반복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소망을 끊지 않으시고 그들을 연단하시고 때가 될 때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다시 일으키실 뿐 아니라 세상가운데 영화롭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을 영화롭게 하십니까? 갈릴리에서 금맥이나 석유가 발견됩니까? 아니면 행정수도가 이전해 땅값이 폭등하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큰 빛을 비추심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어둠은 오직 빛을 비출 때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아무리 짙은 흑암이라도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선 큰 빛을 비추심으로 모든 어둠을 몰아내시고자 하셨습니다. 큰 빛은 누구입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큰 빛은 바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유명한 수필가 임어당은 말년에 예수님을 만나고 말했습니다. “태양이 떴다. 이제 촛불을 끄자.”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인생의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빛을 찾았습니다. 많은 성인들이 빛된 인생을 살고자 했지만 결국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처럼 그 주변을 잠시 비추다 꺼지는 한계적인 빛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영원토록 비추는 참 빛이십니다. 왜냐면 인생의 근본문제인 죄와 사망을 물리치는 구원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 빛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밝히 드러내어 주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길을 비추어 줍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달처럼) 빛을 반사할 수 있는 빛 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한반도 위성사진을 보면 남쪽은 환한데 북쪽은 깜깜합니다. 오직 한 점이 밝게 빛나는데 그곳은 평양입니다. 실로 북한 땅은 흑암가운데 있습니다. 전력을 생산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빛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입니다. 원래 북한 지역은 한국 교회의 중심지였습니다. 해방 전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같은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 신처럼 군림하면서 하나님을 떠나 흑암 속에 묻히게 됐습니다. 지금도 3대에 걸쳐 돼지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소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억압과 굶주림 속에서 또 온 세상으로부터 무시와 멸시를 당하게 하심으로 낮추셨습니다. 흑암과 죽음의 땅에 큰 빛 되신 예수님이 임하시면 그 땅은 살아나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영광을 다시 회복하고 21세기의 제사장 나라로 설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유대사람들처럼 북한 사람들을 멸시할 것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의 소망가운데 그들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큰 빛이 임하면 어떻게 변화됩니까? 3-5절을 보십시오. 큰 빛이 임하면 창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큰 빛을 영접한 자에게 복을 주셔서 세상가운데 그의 영향력을 점점 커지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처럼 영향력을 끼치게 하십니다. 또 큰 빛이 임하면 즐거움을 더하게 하십니다. 그 즐거움은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입니다. 추수하는 즐거움은 자신이 열심히 일한 대가에 대한 열매를 얻는 즐거움입니다. 어두운 세상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열매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저주받은 땅은 평생 땀을 흘리며 수고해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인생은 결국 허무한 흙으로 돌아갑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제자리이고 아무리 열심히 올라가려해도 사다리가 끊어져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빛 안에 있는 신자는 수고한 만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설사 세상이 그 열매를 보상하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수고와 노력을 아심으로 보상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흘린 땀을 아시고 수고한 것 이상으로 열매를 얻게 도와주십니다. 또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은 전쟁에서의 승리에서 오는 즐거움입니다. 신앙생활은 세상 어둠을 지배하는 사단과의 전쟁입니다. 신자는 작은 전투에서 가끔 패배하기도 하지만 결국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미디안의 날은 기드온이 미디안의 135000명의 군대를 300용사로 물리친 전쟁을 말합니다. 기드온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300명의 용사가 싸움을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심으로 인생이 무겁게 맨 멍에와 그들의 어께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하는 것을 믿을 때 매일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고 또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까? 6절을 보십시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의 어께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큰 빛 되신 예수님은 이 땅에 한 아기로 탄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아기는 보통아기가 아닙니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매고 있습니다. 정사는 통치권을 의미합니다. 아기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자시요 왕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이 흑암으로 어두운 것은 사람들이 죄와 사망권세에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자신은 누구의 다스림도 받지 않는 자유인이요 독립자라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이들은 결국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자입니다. 메뚜기 떼는 다스리는 자가 필요 없지만 인간에게는 사랑과 진리로 다스리시는 참된 왕이요 완전한 통치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 우리의 사회와 나라를 다스리길 원하십니다.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은 예수님의 닉네임으로 예수님께서 어떻게 어두운 세상을 다스리실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기묘자요 모사가 되십니다. 기묘자요 모사는 'wonderful counselor'란 뜻으로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초월한 완전한 충고자란 의미입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됩니다. 컴퓨터 뒤에 엉켜있는 전선줄처럼 복잡한 현실에서 명쾌한 삶의 지혜를 얻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상담자로 인생선배나 멘토를 찾습니다. 어떤 이는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현인이라 불리는 워렌 버핏의 조언을 듣기 위해 어떤 이들은 경매를 통해 30억 이상의 돈을 내고 몇 시간 식사하며 상담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담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대개 상담자는 푹신한 소파네 앉혀 놓고 이야기를 내내 들어주다가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몇 마디 말을 해주고 상담을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카운슬링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성공했지만 왠지 모를 허무 속에 방황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해주셨고 사랑에 목말라 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참 경배대상을 제시하셨고 영생의 확신이 없어 고뇌하는 부자청년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지혜롭고 명쾌한 조언입니까? 만약 세상 상담자라면 사마리아여인에게 더욱 아름답게 거듭나는 방법(술식)을 말해주고 니고데모에게 책을 써서 지식을 팔도록 하고 부자청년에게 돈을 경배대상으로 섬기도록 상담했다면 더욱 인생이 꼬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가장 합당한 맞춤형 카운슬링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각 사람에게 가장 합당하게 상담해줄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지으신 분으로 우리를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 한 아기로 오셔서 어두운 이 땅에 살면서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은 시험과 고난을 받은 분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히4:15) 예수님은 나의 눈물과 아픔, 고독과 불안을 아십니다. 진정 나의 모든 문제를 아시고 고치고 도울 수 있는 분이십니다.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이십니다. 이 아기는 평범한 아기가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는데 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천둥과 번개가운데 수많은 천사들과 군대를 이끌고 오셨다면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나 IS 용사라도 찍소리 못하고 납작 엎드려 용서를 빌 것입니다. 아기는 세상의 엄청난 권세도 지식도 부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기로 오심으로 세상의 모든 권세와 지식과 부가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는데 쓸데없음을 말씀하십니다. 만약 엄청난 권능으로 오셨다면 죄인들은 두려움으로 감히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보다 비천한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말구유에 뉘인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한 아기로 오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성인이나 건달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만나고자 가장 겸손한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한 아기로 오셨지만 본질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무거운 멍에와 가혹한 채찍과 막대기를 꺾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세상어둠의 주관자인 사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을지라도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매일 나와 함께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이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자기백성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어떤 존재입니까? 어느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시가 있습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줘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내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냉장고나 개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어떤 아버지들은 쓸데없는 권위를 부리며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무자비해서 가족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 그 힘과 권위가 떨어지는 날 아버지가 퇴근해 집에 올 때 오직 강아지만 맞아주는 쓸쓸하고 외로운 처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선 아버지를 가정의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또 예수님을 통해 그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가 되어 나와 함께 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로써 사랑과 진리로 나와 함께 하시고 보호하고 인도하시고 또 나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나이 들어 가족에게 못준 사랑을 깨닫고 후회할 때 가족의 곁을 떠나지만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나와 함께 하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아무리 부족하고 못나도 그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하고 못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랑과 정성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고자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내가 부족하고 못나고 쓸모없어서 세상 모든 이들이 나를 떠나도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또 일으켜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 세상이 두렵지 않고 사람들이 두렵지 않고 실패가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예수님과 매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넷째,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평화로 다스리십니다. 현대인들의 특징은 불안한 장래와 무한경쟁 속에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내면에 진정한 평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평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여행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거나 그래도 안 되면 신경안정제를 먹습니다. 제 환자 중 어떤 분은 항상 마음에 평안이 없었는데 많은 보험에 가입한 후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많은 보험료를 어떻게 감당하느냐 물으니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항상 그게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내면의 평안은 누구의 다스림을 받느냐의 문제입니다. 인간에게 진정한 평안이 없는 것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노력도 그 빈자리를 온전히 채울 수 없습니다.
역사는 평화가 많은 피를 요구했음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 많은 피를 흘렸지만 아직도 온전한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그 피의 댓가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되어 진정한 평화(평안)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는 겸손과 섬김과 희생으로 다스리시는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분이 다스리는 곳에 전쟁과 복수가 그치고 화해와 용서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올 한 해 죄인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의 빛으로 인도함 받게 도와주셨습니다. 작년부터 헤드 위생사와 깊은 갈등이 있었고 또 집에서는 사춘기 첫째아이와 자주 부딪히게 됐습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대로 했으면 위생사를 해고 하고 첫째 아이도 아버지의 힘과 권위로 눌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으면 병원과 가정가운데 돌이킬 수 없는 큰 위기가 왔을지도 몰랐습니다. 올해 말씀을 맡게 되면서 항상 큰 짐이 되었지만 또한 말씀가운데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인도함 받게 됐습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이 아닌 말씀을 붙들면서 그 직원의 마음을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덧입게 됐고 또 가정에서도 권위적이고 감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조금씩 예수님의 은혜와 진리로 가정을 섬기도록 노력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내면의 평안을 덧입게 됐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붙들고 증거함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쓰임 받을 수 있기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절망의 어두움에서 희망의 빛으로 되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으로 되는 것임을 증거합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세상 나라는 흥망성쇠하며 역사의 수례바퀴를 돌립니다. 세상 나라는 모두 다 개국과 성장, 전성기, 그리고 쇠퇴 후 멸망이라는 싸인 그래프를 그립니다. (자칭 태양의 아들이 다스리는 이집트도,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로마도 멸망했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스리는 자들의 불의와 거짓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기 때문에 그 통치권과 평강이 영원합니다.
  이렇게 놀라운 한 아기를 주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은 700년 후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 한 아기로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한 아기 예수님으로 흑암에 있던 우리는 큰 빛을 보게 됐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어께를 짓누르던 죄와 사망의 멍에를 십자가와 부활로 완전히 꺾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큰 빛 되신 예수님이 오신 후 200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세상은 어둡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사단의 그늘 속에서 들어가 예수님의 빛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상엔 그늘이 많지만 한 아기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이 나라는 결코 망하거나 쇠하지 않고 더욱 더 번성해 갈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세상을 지으시고 지금도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때문입니다. 인간의 첫 범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예수님께서 한 아기로 오시면서 그 나라가 시작되었고 나중 예수님께서 영광의 왕으로 다시 오실 때 완성됩니다. 세상 누구도 하나님의 열심을 막거나 지체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어두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많은 빛의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게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큰 빛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나라백성이 된 자들로써 어두운 세상가운데 예수님 빛을 증거하는 자들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많은 이름을 가지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혜가 필요한 자에게 기묘한 모사가 되시고 능력이 필요한 자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시고 아버지가 필요한 자에게는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되시며 평강이 필요한 자에게는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2015년 한 해에도 예수님은 변함없이 우리 아버지가 되주셔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힘과 능력을 주시고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며 평안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연말에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예수님께 받은 많은 은혜를 묵상하고 새 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소망과 비젼을 덧입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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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10 마태복음 [2015년 성탄 제2강]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관리자 2015-12-13 2816
509 출애굽기 [2015년 가을 준비 특강 제5강]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관리자 2015-09-13 2813
508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13강] 나는 선한 목자라 관리자 2015-06-14 2802
507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9강]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관리자 2011-11-06 2791
506 사도행전 [2016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관리자 2016-04-24 2783
505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3강] 꿈꾸는 요셉 2 관리자 2013-10-13 2783
504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9강]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관리자 2017-12-03 2776
503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3강]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관리자 2017-07-09 2773
502 누가복음 [2011년 여름수양회 제6강]하나님의 그리스도-문대범 리스닝 2011-08-17 2771
501 창세기 [2013년 창세기 제21강]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관리자 2013-09-29 2766
500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7강]하나님과 결혼한 시온 관리자 2011-02-20 2765
499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21강] 요나보다 더 큰 이 관리자 2011-09-11 2762
498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2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17-07-02 2758
497 신명기 [2015년 신명기 제11강] 평생에 옆에 두고 읽어라 관리자 2015-01-25 2758
496 디모데전서 [2017년 신년 제2강]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관리자 2017-01-08 2755
495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8강]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관리자 2017-08-13 2754
494 시편 [2018년 추수감사예배] 주의 은택을 감사하나이다 관리자 2018-11-18 2750
493 누가복음 [2014년 성탄 제1강]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 관리자 2014-12-07 2750
492 이사야 [2015년 성탄 제1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5-12-06 2749
491 누가복음 [2011년 여름바이블캠프준비특강(1)]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리스닝 2011-08-01 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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