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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1-08-01 (월) 12:07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바이블캠프준비특강1(오정훈).hwp (45KB) (Down: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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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바이블캠프준비특강(1)]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2011년 여름바이블캠프준비특강(1)                                                 오정훈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말씀:누가복음 18:1-17
요절:누가복음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여인이 품은 한이 그만큼 깊고 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렇게 그 마음에 품은 한을 풀기 위해 간청하는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통해서 신자들이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서 얼마나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세리의 기도를 통해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가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 또 하나님께서 들으시기 위해 어떤 마음과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과부의 한 맺힌 기도(1-8)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기도의 본질이 항상 해야 하며 또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절실한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지만 별로 문제가 없을 때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항상이라는 말씀은 시간적으로 항상이란 의미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먼저 기도부터 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적인 생각, 잔머리를 굴려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의 주역 여호수아는 범사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정복전쟁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자신들을 속이려고 나온 기브아 거민들에 대해 하나님께 묻지 않으므로 올무와 가시를 그 옆구리에 두게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항상 기도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그일라 거민을 블레셋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다윗은 당연히 이런 자신을 그일라 사람들이 사울에게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다윗은 이때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와 성공은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고 기도하는가 기도하지 않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기도하는 사람은 때로 실수할지 몰라도 결코 실패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든지 없든지 깨어서 항상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해야 하는 동시에 낙심하지 말아야 됨을 가르쳐 주십니다.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기도가 응답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항상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를 통해 이를 가르쳐 주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어떤 도시에 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은 무시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니 그가 얼마나 안하무인의 인격자였겠습니까? 이런 재판관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에 사는 한 과부는 다른 길이 없었는지 자신의 문제를 들고 이 재판관에게 나와 억울함을 하소연하였습니다. 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이 여인은 원수에 대해 풀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원한이 있었습니다.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겼는지 아니면 과부라고 엄청나게 무시를 당했는지 그는 이 원수에 대한 원한으로 인해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원한에 사무친 과부는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도록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본문에는 그가 자주 찾아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판관이 일할 때에는 집무실로 찾아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하였고 그가 집에 돌아올 때는 그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 하였습니다. 그래도 재판관이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자 밤마다 하얀 소복에 머리를 헤쳐 풀고 재판관의 방 유리창 앞에 나타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하였습니다. 4a절을 보십시오. 재판관은 얼마 동안 여인을 무시하고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콧방귀도 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이 포기치 않고 날마다 찾아와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하자 재판관도 괴로워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4b,5절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니라” 재판관이 과부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던 죄를 회개해서가 아닙니다. 이는 여인이 물귀신처럼 따라다니며 자신을 번거롭게 하여 괴롭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못해 할 수 없이 과부의 청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 비유가 가르쳐 주는바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않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한 맺힌 기도제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유에서 과부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재판관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해결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한 맺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인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앉아도 이 원한, 걸으면서도 오로지 이 원한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이 맺혀 있었을 때 재판관이 아무리 자신을 무시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원한을 풀 수 있을 때까지 머리를 헤쳐 풀고 재판관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이처럼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끈질기게 매달려 기도함으로 들어주시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반면에 이루어져 지면 좋고 안 이루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좀 기도하다가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포기치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려면 한 맺힌 기도제목이 분명하게 있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김구선생님은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김구선생님은 그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자신의 간절한 소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간절한 소원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첫째도 조선의 독립이요, 둘째도 조선의 독립이며 셋째도 조선의 독립이라 말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그만큼 컸고 한이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한 맺힌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는 순간까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때가 이때이니까 물을 정도였습니다. 한이 맺히면 꿈엔들 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한 맺힌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꿈에도 소원인 조국의 통일입니까? 아니면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직장인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홀로 독처하는 것에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이처럼 나름대로 한 맺힌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자에게는 아마 양 한 사람을 얻어서 제자로 세우는 것이 한 맺힌 기도제목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에게는 더 한 맺힌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땅에 완전히 떨어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부도덕함과 온갖 죄악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 들어가 보면 기독교를 기독교라 부르지 않고 더 욕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 믿는 자의 악영향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게 된 까닭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말씀대로 살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성경말씀대로 사는 자의 심령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배우고 또 가르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위해 한 달이 넘도록 여름수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초청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심령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 가운데 밤낮 부르짖음으로 이번 수양회 역사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포기치 않고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재판장이 불의하지만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재판장이 과부가 번거롭게 하니 괴로워서라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불의한 재판장과는 완전히 다른 분이십니다. 7,8a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 풀어주시리라.” 재판장은 불의하지만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서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언제라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 택하신 자들의 밤낮 부르짖는 원한을 속히 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나아가 밤낮으로 부르짖으면 반드시 그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때 빨리 응답하여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속히 응답하신다고 하시는데 1년 2년 3년이 지나도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안 들으신다고 불신하여 버립니다. 불신이 들어오면 더 이상 기도할 힘을 잃고 기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안 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의 간절한 인생 문제에서부터 양들을 위한 기도, 이 나라를 위한 기도,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들으시고 가장 좋은 때, 가장 방법으로 내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끈질기게 악착같이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단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찬송을 부르고 밤낮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우리 마음에 불신을 심어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1-2년 했으면 정말 오래했다 그래도 응답이 없으니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 않니? 라며 포기하라고 종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을 때 포기치 않고 기도할 수 있고 포기치 않고 기도할 때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받는 기도로 유명한 조지 뮬러는 그의 일생 동안 5만 번의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실 1년에 한두 번 응답받기도 어려운데 그가 5만 번이나 응답을 받았다고 하니 그의 기도생활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평생 새벽을 깨워 기도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라 응답받을 때까지 포기치 않고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냐면 친한 친구의 구원을 위해 50년 넘게 기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50년을 기도해도 친구에게 변화가 없자 마음에 불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을 때 그의 생애 끝자락에 친구가 회심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50년이 넘는 한 영혼을 위한 포기치 않는 기도가 한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포기치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실 것을 믿고 과부와 같이 악착같이 기도하고 있는지요? 조금 기도해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기도하기를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평생을 위해서 기도하는 친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끈질기게 기도하므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평소 포기치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근거로 저는 한 사람을 위해 7년간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지 뮬러에는 못 미치지만 7년 동안 기도했으면 정말 끈질기게 기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책을 정리하다가 올 초 일용할 양식책자에 제가 적어 놓은 기도제목을 보고 제가 얼마나 많은 기도제목을 놓치고 있는지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조금 기도하다가 포기해버린 양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칼로 무를 자르듯 저는 조금 기도해보다 안되면 쉽게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쉽게 포기하다보니 올 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양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름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헛된 자부심만 있을 뿐 실상은 믿음도 없고 심정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여인처럼 한 맺힌 기도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한 맺힌 기도 대신 잠자는 것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기도시간에 자다가 자기 코고는 소리에 놀라서 매번 깰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제가 이 주님의 가르침에 기초해 간절한 심정으로 한 영혼을 위한 끈질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이번 수양회 가운데 한 영혼을 초청하기 위한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8b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간절함을 아시고도 25년이란 세월을 지체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보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까지 때로는 오래 지체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준비되면 언제라도 응답하여 주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깊이 체험하고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인자가 오실 때까지 포기치 않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바리새인의 기도, 세리의 기도(9-17)
  과부의 끈질긴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자기를 의롭다 여기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당시 바리새인은 경건에 이르기 위해 많은 율법을 만들어놓고 몸부림치며 투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오경을 암송하는 것에서부터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등 까다로운 규칙을 철저히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자 투쟁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바리새 곧 세속에서 구분된 자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반면 세리는 당시 자타가 인정하는 공인된 죄인이었습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민족도 버리고 양심도 버리고 이민족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세리를 손가락질하며 상종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으니 그 모습이 어떠하였을까요? 11,12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이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했습니다. 따로 서서 기도했다는 것은 그가 남과 다르게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을 봐도 자기 의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런 그의 기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의로 충만해 공인된 죄인인 세리를 멸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의로 인해 하나님께 들으심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1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만 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는 죄인으로서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따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의 기도를 통해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 여기심을 받고 그 집으로 내려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14b). 하나님은 자기 의에 기초해서 나온 자를 받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의는 헛된 자부심과 자기 성실의 허상으로 하나님께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자를 받으시고 그런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께 죄인된 심정으로 긍휼을 구함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많이 헌신했다고 자기 의를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영광이요 감사제목으로 알고 오로지 긍휼을 구하는 자세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나도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가 돕는 양들도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기도하므로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기도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오자 제자들은 아이들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막 꾸짖어 돌려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지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린 아이는 순수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천국과 지옥 하나님의 의의 심판을 말씀하시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이런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받들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 맺힌 기도제목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 수양회 한 영혼의 초청을 위해 끈질긴 기도를 감당하므로 실제적인 초청역사를 이루고 생명이 살아나는 긍휼의 역사 체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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