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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9-11 (일) 12:26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20강-1.hwp (26KB) (Dow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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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21강] 요나보다 더 큰 이
2011년 누가복음 제 21강

요나보다 더 큰 이

말씀: 누가복음 11:14-32
요절: 누가복음 11: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에 대해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 악한 말을 함으로써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매도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주님이 보여주실 표적의 역사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표적신앙을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복음신앙을 갖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사탄보다 강하신 이(14-28)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 사람은 말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사람은 말 못하게 하는 귀신 때문에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었습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귀신을 쫓아내주시므로 이 사람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의 역사였습니다.(사35:5) 이 역사를 보고 무리들은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역사를 보고 순수하게 성령의 역사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악평하였습니다.(마9:34) 또 더러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왜곡하고 비판하는 것입니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 편에서 보지 않고 인간 편, 자기편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본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의심과 적대감 때문에 영적 분별력을 잃고 모든 것을 비뚤어진 눈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의 비판이 논리적으로 얼마나 모순되는가를 지적해주셨습니다.(17,18)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집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의 세력을 쫓아낸다면 귀신의 나라가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바리새인들의 제자들 중에도 귀신을 쫓아내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반문하셨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성령 곧 성령의 능력을 의미합니다.(마12:28)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임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귀신이 그 사람을 지배하였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왜곡하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만이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강한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여기서 강한 자는 사탄을, 자기 집은 사탄으로부터 괴롭힘 당하는 인간을, 더 강한 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또한 여기서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킨다’ ‘그를 굴복시킨다’ ‘무장을 빼앗고’ 하는 말은 모두 전쟁 용어입니다. 곧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사탄과 치열한 전쟁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싸워 우리를 구원하려면 사탄보다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사탄은 인간에게 애굽왕 바로와 같이 강한 존재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연약하여 강한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 고통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보다 더 강한 자가 되시므로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힘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의 검으로 싸우게 하시고 기도로 싸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탄보다 강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로와 소망을 줍니까?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진리가 없고 죄와 어두움의 세력이 우리의 영혼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자신은 연약하여 사탄의 역사임을 알면서도 싸우지 못하고 패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데 왜 힘이 없고 성장이 없고 열매가 안 보이는가? 회의와 의심을 갖습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패배할 때가 많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저절로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의심, 두려움, 불신, 운명주의를 심는 사탄의 세력이 굴복하도록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만 의지하면 어두움의 세력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과 불의가 진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탄보다 더 강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확신과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이 말씀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중립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편이냐 사탄 편이냐 어느 한쪽에 속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은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편이 되어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양들, 예수님의 역사와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의 양다리를 걸치면서 적당히 살면 자연스레 사탄 편에 속하게 됩니다. 우리는 의의 종이 아니면 죄의 종이 됩니다. 24-26절에서 예수님은 이를 좀 더 알기 쉽게 가르쳐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더러운 귀신이 쫓겨났을 때 그 귀신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찾았지만 얻지 못하자 과거 나온 집이 그리워 그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집이 깨끗이 청소되고 수리까지 되었는데 그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귀신은 혼자 있기에는 아깝다 여기고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함께 거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주와 복음을 위해 살지 않으면 고침을 받기 전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악령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다가 말씀을 공부하고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나음을 받고 좀 살만해지면 사명인의 삶을 부담스러워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을 배척하고 거부하다가 세상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면 귀신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았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충만히 채우고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개척초기부터 떠날 때까지 줄기차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습니다.(행20:21) 이는 회개와 함께 말씀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간직해야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게 됨을 가르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무리 중에서 한 여인이 음성을 높여 외쳤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습니다.”(27) 아마 이 여인은 문제 많은 자녀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같이 지혜롭고 능력 많으신 훌륭한 아들을 낳고 기른 마리아는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워했습니다. 당시 한 여인의 가치는 자신이 낳은 아들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도 예수님과 친인척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두 아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혀달라고 청탁했습니다. 이 여인의 복의 개념은 다분히 세상적입니다. 오늘날도 부모들은 자식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생각하고 그런 아들을 둔 부모를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배고 젖을 먹인 성모 마리아는 분명 복 받은 여인입니다. 그러나 정작 마리아가 만세에 복 받은 여인이 된 것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명예나 타이틀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사실 행복이 외적인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지고 부와 권세를 누린다 해도 심령에 참 평안이 없고 악령에 시달린다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은 왕좌에 앉았고 요나단 같은 훌륭한 아들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을 때 악령에 시달리며 불행한 삶을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반면 다윗은 양치는 목동이요 이새의 막내아들에 불과하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을 때 세세토록 만백성이 우러러 보며 좇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종이 되는 복을 누렸습니다. 진정으로 복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며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생명과 평안과 참된 소망을 줍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시1:2)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좇아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하늘의 신령한 기쁨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분명한 영적 가치관과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장래 걱정, 염려를 할 필요 없이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되고자 전심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노력의 대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사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요나보다 더 크신 이(29-32)
  이 부분의 말씀은 16절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 답변하셨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표적을 구하는 동기가 잘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 못하는 자가 말을 하는 놀라운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의 역사를 믿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기들이 원하는 표적을 계속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에서는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12:40) 하였습니다. 요나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나 그는 원수나라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니느웨와는 반대쪽인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요나를 풍랑을 일으켜 바다에 빠지게 하시고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가두어두시고 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가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니느웨에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살아난 것은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서의 표적이 되어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꼬투리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은 인생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는 표적이 된 것입니다. 이 표적은 우리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는 최대의 표적입니다. 더 이상 다른 표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우리 인생들을 죄와 사망권세로부터 구원하는 능력이 됩니다.(롬1:16) 이 예수님과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희망찬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심령의 병과 육신의 질병도 낫게 되었습니다. 이 보다 더 큰 표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생활에서 하나님께 다른 표적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표적, 나에게 필요한 표적을 구하다가 구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 나를 사랑하시는가? 불신하고 원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한 행위요 주님께 대한 잘 못된 자세입니다.
  31,32절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해주십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해 땅 끝에서 많은 예물을 싣고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니다. 남방 여왕은 진리를 사모하는 불타는 영적 소원 때문에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아낌없이 투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솔로몬 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더 크신 분으로서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시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나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직접 구원의 말씀을 전하시는데도 반응이 없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그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요나를 보내어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도록 하심으로 구원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요나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편협한 마음으로 억지로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이런 메시지를 듣고서도 재를 무릅쓰고 크게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비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 사람들은 요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직접 전해주셔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비판을 일삼고 자기들이 원하는 표적만 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그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표적신앙에 빠져 말씀보다 방언이나 이적과 같은 신비한 능력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자세가 좋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 대한 자세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솔로몬이나 요나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창조주시오 생명의 수여자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권세를 가지신 절대권세자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는 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고 회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세상 어떤 표적보다 더 큰 표적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탄을 쫓아내고 우리를 지켜주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한 마디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더 이상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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