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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24 (일) 12:42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16사도행전6강-1(황아브라함).hwp (32KB) (Down: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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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2016년 사도행전 제6강                                                               황아브라함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말씀/ 사도행전 5:17-6:7
요절/ 사도행전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1.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사도행전 가운데 나타난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핍박이 하나님 역사를 도와주고 오히려 성도들의 믿음을 도와준다는 사실입니다. 4장에서 첫 번째 핍박 이후 이제 두 번째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그 당시 대제사장 역시 사두개파 입니다. 사두개파는 바리새파보다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교, 특히 제사장직에서 높은 지위들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부활이 없다 함은 하나님의 심판과 보상을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공산주의에서 보상이 없으므로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 같이 또 오늘날 부활과 공의를 강조하는 성경과 크리스찬을 핍박하며 인간적인 선을 강조하는 세상이 점점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같이 분명코 이들 역시 극한 타락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장 거룩해야 할 자리를 불신자들, 타락한 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 성도들의 부활을 강조하니 바리새인들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라는 말만 빼면 그렇게 나쁠 것이 없는데 사두개인들은 정말 입지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다음날 공회에서 사형선고를 내리고자 한 것입니다. 이 사도들은 예수님이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예수님의 인격과 생애와 말씀을 보고 듣게 한 예수님의 유일한 증인들이니 하나님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자들입니다.
해서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었습니다. 그런데 빨리 도망가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싸움이 사두개인들과 사도들의 육적인 싸움이 아니라 사단과 하나님과의 영적인 싸움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영원히 사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쟁이가 타락한 인간을 지배하며 늘 거짓말로 인간을 자기 것으로 삼아 지옥 같은 인생을 살다가 결국 지옥에서 영원히 죽게 만듭니다. 이 거짓말에서 깨어나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인간은 소망이 없습니다. 이를 위해 사랑 많고 한 많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복음을 이루고 복음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전파되면 우리가 그 동안 몰랐던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가를 알게 됩니다. 또 사기꾼의 정체가 탄로납니다. 그러니 이 사기꾼에게는 이 성경말씀 전파가 정말 골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악한 일을 하지만 제일 첫째 목표로 삼는 것이 어찌하든지 성경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신학교에서 성경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고 또 교회에서는 축복, 기적의 복음으로 복음의 본질을 모르게 하는 것이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음의 증인들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감옥에서 꺼내 살려줍니다. 그리고 도망하라 하지 않고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냥 말씀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라 했습니다. 그냥 말하라고 하지 않고 “다 말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애타는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죄와 무지로 인해 다 죽습니다. 이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을 듣고 영접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증인 삼으셨으니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인생목적이요 존재의미입니다. 또 이것이 UBF 즉 우리들의 사명이요 존재가치입니다. 세상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돈 명예로 사람들의 가치를 따지지만 우리는 이것에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가장 귀중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사도들은 옥에서 나오자마자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는 도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옥에서 건지신 하나님이 사두개인의 권세보다 훨씬 힘이 세다는 것을 체험한 사도들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 말하기 위해 새벽부터 열심히 생명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한편 아침이 되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어제 감옥에 잡아넣은 자들을 처형하기 위해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았습니다. 다 모였을 때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끌어오라 했습니다. 부하들이 가서 보니 간수들이 옥문을 지키고 있었고 옥문도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간수들이 즉시 문을 열고 죄수를 꺼내려고 보니 죄수들이 없었습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래서 돌아와서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어제 불침번 섰던 간수들을 고문하여 어떻게 죄수들을 풀어 주었는가 고백을 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참석한 공회원들 가운데 아무도 이를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다만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된 일일까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무의식 속에서 사도들에게서 일어나는 기적들이 이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더니 어떤 사람이 와서 보고 했습니다.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공회는 이들을 끌고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죄수 다루듯이 못하고 부드럽게 모셔왔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하고 야단을 쳤습니다. 4장 18절을 보면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다시 예수 이름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예수 이름은 진리와 생명의 역사의 시금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빼면 더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권세요 예수님만이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유일한 길이요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부인해도 예수님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4장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 진리로 믿고 따르도록 양들에게 가르쳐야 하는데 이들은 하나님 말씀과 뜻을 거역하도록 위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사람은 오정훈 목자님 말씀대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 할 때 바로 이 증인이라는 헬라 원어 어근을 보면 순교자라는 뜻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사실 육신의 생명보다 훨씬 값진 영원한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리의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순교를 각오해야 합니다.
이들은 바로 이들을 죽이고자 하는 권세자들 앞에서 진리를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30-32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이 말씀의 뜻은 “너희가 너희 죄를 감추기 위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은 실상은 우리 조상에게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세상 만민이 복을 받도록 예언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 죄를 마음과 몸으로 친히 담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심과 같이 죽음 권세를 파하셔서 부활하게 하셨다. 우리 조상에게 예언하신 내용을 자세히 공부해보면 바로 우리로 회개케 하여 죄 사함을 얻고 우리 주요 왕 되신 예수님께 참사랑으로 순종하도록 하심입니다. 우리는 그의 제자로서 그의 삶과 인격과 가르침과 또 죽고 살아나신 후 우리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에 대해 증인이요 또 너희들이 알듯이 무식하고 겁 많은 우리가 이렇게 담대하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바로 성령이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역사한다는 것을 너희들이 보는 바와 같다. 즉 “우리가 증거하는 이 모든 것은 진리이다”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증거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풀려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구원받도록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3장 9절에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즉 사도들은 이 핍박의 목적이 바로 이들에게도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임을 잘 알았습니다.
이 회개의 메시지 앞에 유대 백성들은 3,000명이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보다 더 영적이고 거룩해야 할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의 거의 유일한 증인들로 하나님 앞에 보배와 같은 자들입니다. 이 증인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은 가말리엘이라는 유대교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을 쓰셨습니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이 말씀의 의미는 사도들이 가르치는 것이 진리가 아니면 핍박을 안 해도 저절로 망할 것이요 반대로 진리이면 핍박자 우리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우리가 망하니 그냥 내버려 두자는 뜻입니다.
율법교사인 가말리엘은 그들에게 율법이나 성경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있었던 그들이 다 들었던 사건이야기를 기초로 논리로써 이야기합니다. 논리란 무엇입니까? 논리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이 상대방이 부인할 수 없도록 이해시키고 진리로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3년 동안 단지 지식을 가르치지 않고 이 논리적인 생각 능력을 끊임없이 훈련시키셨습니다. 반면 당시 성경공부를 많이 했다는 지도자들은 바로 이 논리적인 생각 부족으로 성경지식이 예수님을 믿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하게 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우리는 성경을 남에게 듣기만 하면 분별력이 개발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자립적으로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은 후에 예수님께 그 뜻을 물으면 예수님께서 논리로써 인생의 실제문제와 현안들의 응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밀을 가르쳐줍니다. 가말리엘에게 바울이 배웠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보면 바로 그의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구약들 가운데 숨어 있는 많은 영적 비밀들을 찾아내어 누구보다도 더 영적인 비밀을 깨달은 성경 선생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목자와의 성경공부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열심히 성경공부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40절에서 공회의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옳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해서 죽이는 것을 금하고 대신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았습니다. 41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채찍에 맞으면 아픕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참 희한한 사람들입니다. 아니 매를 맞고 기뻐하다니! 이들이 왜 기뻐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5장 10-1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바로 이들은 지난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또 부인할 때의 패배를 승리로 바꾼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마음에 있는 것을 어떤 위협 앞에서도 말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로 인해 기뻤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 이러한 시험을 허락하시고 또 자신들이 이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육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진리를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진리의 사람들로 변한 것입니다. 이는 그들 안에 있는 확고한 부활의 믿음 때문입니다. 여러 승리가 있지만 믿음의 승리만큼 기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를 맞고 위협을 받았지만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했습니다. 이들은 어디에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단 한 가지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이들의 생활은 참 단순했습니다. 단지 집과 성전만을 왔다 갔다 하며 가르치며 전도했습니다. 우리 UBF 목자님들의 생활도 참 단순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말만 되면 여기 저기 돌아다니느라 교통이 혼잡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직 집과 직장, 캠퍼스, 센터만 날마다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하게 반복되는 삶을 인해 지루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돈이 있어 여기 저기 여행을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누립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 안에 있는 생명력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생명을 살리는 일로 인한 열매와 보람들로 인한 것입니다.

2. 오로지 기도와 말씀사역에 힘쓰리라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때란 핍박을 이기고 담대하게 말씀을 가르칠 때입니다. 핍박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기준으로 비겁하고 자기중심적인 자들은 떠나가고 의와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제자로서 주님을 따르고자 결단해 더욱 성장하게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희생적이 되고 사랑이 넘쳐 납니다. 이처럼 사랑이 많아 어려운 자들을 물질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쉽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은 오병이어로 예수님의 떡을 먹은 자들처럼 타락하기 쉽습니다. 6장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사실은 각자 하나님만 의지하고 어떤 가운데서도 자립적인 인생을 살고자 적어도 크리스찬들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제를 받다보니 불공평한 분배에 마음을 빼앗겨 원망이 생겼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문제만을 보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사단에게 속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 문제가 생긴 좀 더 근원적인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2절에서 4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들은 문제 해결을 일곱 평신도를 세워 해결하도록 하고 자신들은 더욱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즉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사도들의 마음과 시간을 문제 해결하는데 쓰도록 하는 고단수 사단의 궤계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은 고단수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단은 어찌하든지 주의 종들이 말씀과 기도에서 멀리하도록 고단수로 유혹합니다. 우리는 이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첫번째 part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단이 제일 골 아파하는 것이 바로 말씀공부와 전파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복음 역사의 성공 여부는 바로 우리가 얼마나 말씀공부와 기도에 전무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 됩니다. 아주 단순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UBF를 크게 축복하신 것은 바로 고 이사무엘 목자님께서 말씀공부에 집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와 말씀에 전무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비록 제가 부족하지만 저의 작은 간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그 부지런함과 성실함에 비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에 온 힘을 드려 하는 것을 보며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 때문에 저는 세상에서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게으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머리도 스마트 하지 않아 무슨 일이든지 빨리 처리하지 못합니다. 거기다가 두려움이 많고 남과 부딪히는 것을 싫어하여 그냥 양보만 할 줄 알았지 도전하며 남을 설득하는 것을 싫어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무 꼬투리 없는 불쌍한 저를 UBF 모임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것은 성경공부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특히 서제임스 목자님의 주옥과 같은 논리적이고 깊은 말씀을 들으면서 저 역시 이를 소원했습니다. 드디어 서제임스 목자님이 군에 가 계신 동안 수요회 말씀을 제가 대신하여 전하는 은혜를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호세안 선교사님이 섬기시는 멕시코 역사의 계승자로 저를 부르셨을 때 무엇보다 제가 매주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크게 기뻤습니다. 제게는 매주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늘 말씀을 제 마음에 받고 아무리 양들에게 힘든 말씀이라도 저는 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할 때 많은 양들이 도망갔지만 저는 속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놈들’하며 개의치 않았습니다. 반면 진리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전할 때 오히려 영적인 소원이 있는 자들은 결단하고 헌신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리더들이 자랄 때 저는 차츰 차츰 모든 일들을 이들에게 맡겼습니다. 그 많은 시간으로 더욱 성경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제게는 말씀을 깨닫는 기쁨과 감사가 늘 충만하여 흔히 선교사들이 말하는 burn out, 소진 되었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전혀 괴롭지 않습니다. 침대에 눕기 전에 말씀을 읽고 잡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 있는 동안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으며 참 즐거운 시간을 밤중에 보냅니다.
한편 신앙생활 초기에 저는 위대한 주님의 종들의 생애를 읽으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 같이 기도에 매달린 기도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남는 모든 시간을 기도에 투자하고자 무단 노력을 했으나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나온 선교사님들 명단을 들고 늘 기도하며 저도 선교사로 내 보내어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제게 선교 비전을 주셨고 이를 위해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을 쓰셔서 고졸 직장경력 5년 이상자들끼리 경쟁하여 야간 대학을 들어가는 산업체 제도를 만드시고 외대 스페인어과 야간 1회로 기도대로 미달되게 하여 들어가게 하시고 당시 가장 믿음이 훌륭하고 복음적인 사라 선교사와 결혼하게 하시고 대학 졸업시험을 치자마자 멕시코 선교사로 보내 주셨습니다. 이외에 저는 정말 기적과 같은 여러 가지를 체험하며 기도의 중요성을 체험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립적인 존재입니다. 즉 인간은 기도함으로 가장 자립적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기도는 아무리 저와 송명희 시인과 같이 무능하고 쓸모없는 자라도 가장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예수님 이름인데 이 예수님 이름을 가장 잘 써먹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또 정말 쓸모없는 조각 시간과 또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가장 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면서, 걸으면서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까지 시간을 가장 귀하게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또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100%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는 100%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 때문에 행복한 신뢰의 시간이요 사랑의 시간입니다. 또 기도는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최고의 힘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바로 원수를 위한 기도만이 진실된 원수 사랑이요 또 기도를 많이 하면 원수를 만나서도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불공평이 따르는데 이 기도는 내가 빚진 것을 소리 없이 갚을 수 있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중요해도 무엇을 계속하면 지겨워지고 이 하는 일이 즐겁기보다 노동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에는 계속 만나만 먹는 것을 지겨워 하다가 여러 가지 요리를 다르게 해먹으며 만나를 즐겼듯이 저 역시 제 마음의 상태에 따라 말씀공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게 되니 참 좋았습니다. 특히 말씀공부를 계속하기보다 말씀 앞에 제가 조금이라도 위험성이 있으면 “하나님 저도 똑 같이 넘어 질 수 있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보호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며 성경 공부하는 것은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누가 저를 보면, 여행도,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면서 멕시코에서 너무 단순한 생활하는 정말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자같이 보이지만 저는 정말 이제까지 너무 행복한 인생을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UBF에도 많은 연세 드신 분들이 있어 역사를 제자들에게 물려주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멕시코 제자들이 제게 늘 말씀공부를 통해 이전 까지 깨닫지 못한 비밀을 매주 섬기면서 멕시코 역사의 모든 것을 다 제자들에게 넘겨주어도 매주 수요일 인도하는 그룹리더 공부와 금요일 새로운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자들을 위한 말씀공부는 어쩌면 평생 제가 입을 놀릴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할 것이라는 운명적인 즐거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우리는 오로지 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여러 일을 한다는 뜻은 어쩌면 그 하나하나의 일을 온전히 힘쓰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일 한 가지에 매달리는 것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세상일을 할 때 수요공급의 원칙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많아 세상은 경쟁과 홍보에 시간을 낭비하고 늘 쓰임 받지 못할까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기도와 말씀사역은 수요 공급의 원칙에서도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 70억의 인구가 다 구원이 필요하여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기도와 말씀의 종은 너무 적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기도하는 분들을 위해 하나같이 “기도와 말씀의 종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7명의 평신도를 택하여 섬기는 종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7,8장을 보면 이들도 기도와 말씀의 종으로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아니 사도행전은 12 사도들보다 사실상 평신도 바울에 관한 기록이 더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 평신도들이 기도와 말씀의 종으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평신도들은 직장일로 바쁜 것을 인정하고 풀타임 교회목사님들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성경하나만을 붙들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충만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심이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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